나의 이야기

한양도성 순성길

영대디강 2018. 3. 12. 10:44

주말에는 홀수월 두번째 토요일에 분기별 모임을 갖는 옛직장 동료들과 함께 어울려 한양도성 순성길을 걸었습니다.

지하철 동대문역 1번출구에서 오전10시로 계획된 시간 이전에 모인 멤버들이 동대문을 바라보면서, 그 중 한사람이 남대문은 국보1호인데 동대문은 왜 보물1호인지를 묻는데 대답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멤버들 중에 특허청, 대검찰청, 철도청, 방위사업청, 국방부 출신들 뿐 문화재청 출신은 없어서 아무도 대답을 해 주지 못해 나도 정말 궁금했습니다.

 문화재보호법 제23조에는 유형문화재 중 중요한 것을 보물로 분류하고 "보물에 해당하는 문화재 중 인류문화의 관점에서 볼 때 그 가치가 크고 유례가 드문 것을 국보로 지정"한다고 되어있네요.

모임에 구성된 멤버는 모두 공채로 임용된 공무원들로 같은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들이며, 지금은 모두 정년퇴직이나 명예퇴직한 OB들 입니다. 재직중에 다른 부처로 옮겨간 동료들도 젊은날의 끈끈한 정들은 변함이 없어서 지금도 이렇게 잘 모입니다.

성곽을 따라 걷는 길에서 바라보이는 경관이 너무 감동적이라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냥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서울을 내려다 보며 중간 중간에 잠시 멈추곤 했습니다. 우리들이 어린 옛시절에는 문안사람과 문밖사람으로 구분되었던 터라, 완전 시골촌놈인 나는 사대문안에 들어 섰다는 자긍심 비슷한 뿌듯함으로 남산타워를 배경삼아 한장을 찍었습니다.

내 퇴직이 벌써 만27년이나 됐네요. 수직적인 조직문화에서 함께 일했으면서도 이렇게 호형호제하는 모습으로 정답게 지내는 우리들의 노후가 너무 멋지다고 여기면서, 이제는 현직에서의 수직적인 간격을 허물어 없애고 더더욱 가까운 사이가 되고 싶은 마음에서 아재개그도 수시로 던져서 많이 웃는 즐거운 시간이 됐습니다.

지하철 동대문역 1번출구에서 출발하여 이화동-낙산공원-혜화문-와룡공원-성대후문-남북회담사무국본부-가회동-헌법재판소-안국역으로 성곽길을 따라 걷는 이번 3월에는 멤버 21명 중 10명이 참가했습니다. 통오리바비큐 집에 앉아서 식사를 하며, 청춘을 함께 했던 우리들이 앞으로 몇년 혹은 몇번이나 더 만날 수 있을런지 손으로 꼽을 만큼 많지 않다는 사실을 멤버들이 겪는 유지보수 이야기로 유추해야 했습니다.

모임을 마치고 전철을 탔는데, 손자를 데리고 말씨름을 하는 할머니를 보며 문득 우리 아이들 모두를 산후조리해 주신 장모님 생각이 떠 올랐습니다. 지금의 내 나이인 일흔둘에 돌아가신 그 분이 함께 하셨던 그때는 왜 그리도 가난하게 살았는지, 가슴이 먹먹해져서 혼자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개포동 공무원 아파트에 살면서 큰아이가 미술을 하는데, 그 사교육비만큼이 딱 내 월급이었습니다. 월급을 세곱쯤 더 받는 회사로 옮긴지 석달 후에 그만 돌아가신 장모님이 너무 죄스럽고 그리웠습니다.

1박2일에 나왔던 여주 오송가든 쌀밥집에 가자며 아내를 꼬드겨, 2부예배 마치고 서둘러 떠난 장모님 영전에 국화 한다발을 놓고 묵도를 하는데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어렵고 힘들었던 고난의 한시대를 살고 가신 그 분의 세월만큼 살아온 내가 이렇게 행복하게 살고 있음도, 세상에는 원인 없는 결과가 없듯이 그 분들의 끝없는 사랑과 희생이었음에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