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코스 꽃밭머리길이 시작되는 국형사 초입이다. 이곳에서 시작하여 종점인 제일참숯까지 11.2Km로 약 세시간을 걸어야 한다. 국립공원치악산을 둘레둘레 걸으면서 광활한원주벌을내려다 볼 수 있다.
치악산의소나무숲속에 골짜기마다환상적인비경을자랑하는 풍경들이 잘 정리된 데크길 주변에도 나타나고, 때로는 원시의 숲속을 걷는 자연인처럼 맑은 물소리와 풀벌레, 그리고 이름모를 새 소리와 벗삼아 걷기도 한다.
피톤치드를 흠뻑 마시며 소나무와 전나무 숲을 걷다가 마주치는, 출입금지라고 써 붙여놓은 이 팻말은 개인의 사유지이니 들어가지 말라는 친절한 표지판이라서 그런지 정겨운 마음이 들 정도로 포근하다.
치악산은수려한경관과함께 이렇게 원주시내를 한 눈에 담을 수 있도록 광활한 풍경이 멋지다. 고려말의혼란한정치를개탄하며치악산에들어가은거했던운곡원천석(元天錫 1330~?) 선생의 큰 뜻이, 요즘의 코로나와 더불어 살아가는 마스크 세상살이 속에서도 이렇게 펼쳐놓고 싶다. 그의묘역은 2000년 11월18일강원도기념물제75호로지정됐다. 원천석선생은어릴때부터학문에밝아목은이색(李穡) 등과함께성리학보급에큰역할을했다. 조선태종이방원의어릴적스승으로, 조선개국후벼슬이내려졌으나끝내거절하고태조가찾아왔을때에도만나지않으며고려에대한충절을지켰다.
조금 걷다보면 습한 산기슭의 기온탓인지 온몸에 땀이 흐른다. 중간중간에 쉼터의자가많이 마련되어 있어서 흐르는 땀을 식히우면서 솔바람 사이로 몸을 내어 맡기고 가쁜 숨소리를 가다듬을 수 있고, 멀리로 원주 시가지를 내려다 볼 수 있어서 더욱 좋다.
세명선원담장이황토색벽돌이고 이 담장사이에 어우러져 피여있는 능소화꽃들이 상큼하다. 둘레길이 소나무 숲으로만 쭈욱 이어지면 좋겠지만, 여기서 부터 관음사까지 시멘트 포장길이 나타난다. 땡볕에 지치거든 주변에 문을 연 카페에서 쉼표를 찍으란 뜻인가 보다.
광복절 연휴, 그리고 코로나19, 스스로의 닫힌 마음을 돌아보게 된다. 아파트 단지에서 유일하게 한집 테라스에만 태극기가 결려있는 모습을 올려다 보면서, 그냥 홀가븐하게 집을 나서서 이곳으로 달려왔어도, 왠지모를 아쉬움이 가슴 저 깊은곳에 남아있다.
이 아름다운 강산을 누가 우리에게 물려 줬을까? 아무 생각없이 그냥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너무나 크고 강한 나라들의 틈바구니에서 부대끼며 살아가야하는 이 나라를 왜 더욱 사랑하라고 가르쳐 줬을까? 산자수명한 이 강산이 자랑스러운 때문일까? 자손대대로 가꾸고 지켜야하는 이유가 조상들에게 물려받은 이 강산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반적으로 산사에 가면 만날 수 있는 토담도일주문도없이세상을향해열려있는 관음사는 1971년에창건된 사찰로, 역사는그렇게오래되지않았지만 한국불교의맥을이어온전통종단의산호사찰로석호선사의기도정진중관세음보살의계시로창건하였다고 한다.
염주(念珠)는‘생각하는구슬’로구슬은부처님을, 구슬을꿰는실은관음보살을상징한다고 한다. 치악산관음사에봉안된통일대염주는지름 74㎝, 무게 240㎏의모주(母珠) 1 개와지름 45㎝, 무게 45㎏의나머지염주로한벌의전체무게가 7.4톤에이르는세계최대의염주라고한다.
나고야항에서단단하기가무쇠와같은신령스러운수령 2천년의부빙가나무를보고 즉시부빙가원목을구입하여염주를만들게되었으며, 2000년 5월에 108염주 3벌을완성하였다. 한벌은원주치악산관음사에보관함과동시에또한벌은일본화기산통국사에 봉안하였으며, 나머지한벌은 통일 후 북한묘향산보현사에봉안할예정으로현재까지는원주관음사에보관하고있다고 한다.
산신각뒷쪽에는다양한돌탑과함께석비가세워져있었는데그석비에山神功德碑라고세겨져있어,공덕비에는수많은사람들의이름이새겨져있는것을보아서는아마도신신각을중건할때도움을주었던신도들의이름이아닌가 생각된다.
1코스의 중간 중간 자릴잡은 카페들의 풍경이다. 고즈녁하게 한가롭다.
풍경이 아름답다기보다 그야말로 기가 막힌다. 문 닫힌 어느 카페 입구에 앉아 보기도 하고, 자작나무 아래 서서 기가막히도록 아름다운 풍경에 취해본다.
치악산주변에예전에는거의칠팔십개의절이있었다는데지금은칠팔개정도만남아있다고한다. 유명한절로는치악산산봉우리높은곳에위치한구룡사, 상원사등을소개하고있다. 이곳은 성문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