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이리군립공원(三陟)
나때는 "척~하면 삼척! 툭~하면 호박떨어지는 소리! 쩝~하면 입맛 다시는 소리!"라는 개그가 유행이었던 그 유명한 삼척에 하늘이 열린날이라는 개천철 대체휴무일을 얻어서 찾아왔다. 강원도 삼척시 신기면 환선로 800에 위치한 환선굴은 천연기념물 제178호로 지정되어있는 고생대 시대의 석회암 동굴이다.
태고 자연을 간직한 아름다운 숲속 국내 최고의 대굴로 1662년 허목선생이 저술한 『척주지』에 최초 기록이 존재하는 환선굴은 약 5억 3천만년 전에 생성된 석회암 동굴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석회암 동굴이다.
환선굴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복잡한 구조를 지닌 노년기 동굴로써 종유석의 발달이 퇴폐적이나 윤회재생(輪廻再生)의 과정에 있는 것을 볼 수 있기도 하며 동굴류(洞窟流)의 발달이 탁월하고 동굴의 동물도 많이 서식하고 있어 학술적인 면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곳이다. 신선이 되었다는 뜻인 환선(幻仙)의 동굴 이름 유래를 소개하는 글이 동굴 입구와 동굴 안에 2개가 있다.
주굴의 길이는 약 3.3km이고, 총길이는 약 6.5km로, 동굴은 대체로 북향으로 전개되고 안쪽 80m 지점에 둘레 20여m의 거대한 석주를 중심으로 그곳에서 북굴·북서굴·중앙굴·남굴의 4갈래로 갈리는 구조이다.
동굴내부에는 미녀상, 마리아상, 도깨비방망이, 옥좌대 등 여러 모양의 종류석, 석순, 석주가 웅장하게 잘 발달되어 있다.
환선굴에서 발견된 동물은 모두 47종이며, 이 중 환선장님좀딱정벌레 등 4종이 환선굴에서만 발견되거나 환선굴이 모식산지로 기록되어 있다.
천연기념물 제178호인 대이리동굴지대에 위치한 관음굴은 우리나라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동굴학계에서도 동굴다운 동굴로 인정받고 있다.
동굴 중앙에는 축구장만하게 탁 트인 통일광장이 있다. 이 광장에서는 환선굴을 대표하는 옥좌대를 볼 수 있고, 계단식 논을 연상하게 하는 만마지기 논두렁도 볼 수 있다. 옥좌대는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돔형석순으로 넓은 광장 한 가운데30m 높이의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로 형성된 평평한 모양의 거대한 석순이다. 옥좌대 표면의 무늬를 찬찬히 살펴보면 커다란 하얀 연꽃 한송이를 보는 것 같다.
동굴에서는 눈으로 보기만 하고 동굴 내부를 손으로 만져서는 안 된다. 특히, 종유석이나 석순, 동굴을 흐르는 물 등을 손으로 만지면 오염이 되어 석순이나 종유석이 더는 자라지 않을 수도 있다. 동굴 환경을 훼손하지 않도록 특별히 주의해야한다.
석순의 생성 과정은 탄산칼슘이 주성분인 석회암이 지하수나 빗물에 녹아 칼슘 이온과 탄산 수소 이온이 된다(CaCO3+H2O+CO2 → Ca2++2HCO3-), 이 이온을 포함한 지하수가 벽면을 타고 흐르다가 탄산수소 이온에서 이산화탄소가 빠져나가면 탄산수소 이온은 탄산 이온으로 변한다(2HCO3- → H2O+CO2+CO32-). 이때 생긴 탄산 이온이 칼슘 이온과 만나 흰색 앙금의 탄산칼슘이 된다(Ca2++CO32- → CaCO3).
석회동굴은 석회암을 이루는 탄산칼슘이 산성을 띤 물에 녹아서 만들어진 지형이다. 이산화탄소가 지하수나 빗물에 녹으면 탄산 이온이 만들어지고, 이것이 탄산칼슘을 조금씩 녹여 동굴을 만든다. 그리고 이 지하수로부터 생긴 탄산 이온이 다시 칼슘 이온과 만나면 탄산칼슘 앙금이 생성되며 종유석, 석순, 석주와 같은 지형을 형성한다.
행로를 따라가다 보면 거대한 종유석벽을 이룬 꿈의 궁전, 거대한 편심종유석인 도깨비방망이, 동굴내 퇴적암이 쌓여서 성벽처럼 보이는 만리장성, 만물상, 악마의 발톱 등 신비롭게 생긴 다양한 종유석과 석순 등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발끝이 까마득한 지옥소와 소망폭포, 동굴폭포도 볼 수 있다. 또한 악어, 사자, 거꾸로 매달린 양, 용머리 등 동물들도 찾아보고, 천정의 싱크홀이 무너져 생긴 하트 모양의 사랑의 맹세, 마리아상, 무지개 다리 등과 같은 신비로운 형상을 숨은 그림 찾기처럼 하나씩 찾아가는 재미도 있다.
환선이라는 수도승과 관련된 전설도 있다. 먼 옛날 한 스님이 수도를 위해 이 동굴로 들어갔는데, 나오는 것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은 스님이 신선이 되었다고 믿고는 이 스님을 환선이라 불렀으며 동굴의 이름도 환선굴로 불렀다고 한다. 동굴 안에 있는 수도승 주거지에는 스님이 기거하던 온돌터와 아궁이,그리고 약초를 빻던 돌절구 등의 유적이 남아 있고, 당시 환선스님이 짚고 왔던 지팡이는 환선굴을 오르는 길목의 산신당 앞에 꼽혀져 엄나무로 자라고 있다고 한다.
한국판 그랜드캐년이라 불리는 미인폭포를 찾았으나 공사중으로 관람금지였다. 미인폭포는 태백시 통리와 신리의 중간지점인 도계읍 심포리 남쪽산 계곡에 있는데 심포리 우보산 계곡에서 발원하는 하천수가 흘러 절벽에 부딪치는 물방울이 적은 것은 분수와 같고, 큰 것은 설산을 연상케하는 폭포이다.
미인폭포 동북편 고원지대 및 폭포 위의 계곡에 고금을 통하여 미인 출생지역으로 전해오고 있다. 이 근처에는 미인묘가 있는데, 이 묘는 옛날 한 미인이 출가하였으나 남편이 일찍 사망하여 재가했는데, 또 다시 사망하니 그 미인은 이 폭포에서 투신자살하였다고 한다. 일설에는 남편이 죽은 후 재혼할 낭군을 찾았지만 사별한 남편 만한 사람을 찾을 수 없게 되자 자신의 신세를 비관하여 이 폭포에서 투신 자살한 일이 있었기에 “미인폭포”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도 한다.
삼척시 근덕면 초곡항은 삼척해양레일바이크가 출발하는 궁촌해변과 어촌 체험 마을로 유명한 장호항 사이에 조용하고 아름다운 곳으로 자리하였다. 이곳에 용굴촛대바위길이 조성되어 있다.
해안 절벽을 잇는 초곡용굴촛대바위길은 촛대바위, 거북바위, 사자바위, 용굴 등 독특한 지형이 늘어선 해안 절경 외에 출렁다리가 이 길의 주요 자랑거리다. 끝자락인 용굴까지 데크 512m, 출렁다리 56m 포함 총연장 660m 길이 짙푸른 해변을 따라 이어진다. 용굴 일대는 구렁이가 용이 돼 승천했다는 전설이 있다.
드넓은 동해를 배경으로 사진 찍기 좋은 지점이 보인다. 포토 존 모형 안에 푸른 바다가 동그랗게 담긴다. 청정한 초곡항 앞바다는 자연산 문어, 전복 등의 주요 서식처다. 제주에서 건너온 초곡마을 해녀들은 물질로 삶을 꾸려갔다.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의 어머니 역시 제주 출신 초곡마을 해녀다.
테크로드512m, 출렁다리56m, 광장4곳, 전망대3곳이 있고, 총660m의 초곡용굴촛대바위길이 데크길로 아름답게 조성되어 있으며, 초곡용굴촛대바위길은 왕복 30분 거리인데 사진을 찍으며 바닷바람과 더불이 조용히 걷다 보면 한 시간 남짓 동해와 더불어 즐길 수 있다.
전설을 간직한 용굴과 촛대바위와 거북바위 그리고 피라미드, 사자바위 등의 다양한 모습을 보며 이름과 어우러진 모습이 맞는지 요모조모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바닷가 대크길에 들어서면서 맨먼저 만나게되는 바위위에 우뚝 솟은 제1전망대가 먼저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에는 전망대가 세 곳이 있지만, 초곡용굴촛대바위길의 모습을 한눈에 조망하기에는 이곳이 아주 좋다.
삼척의 가을 포구를 찾는 길은 작은 떨림이 있다. 호젓한 바다와 어우러진 해변 길은 파도와 이색 지형이 뒤엉켜 가느다란 설렘으로 다가선다. 초곡항은 삼척의 고요하고 아늑한 어머니같은 품으로 포근하게 안기는 포구다.
몬주익의 영웅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황영조의 고향으로 알려진 작은 어촌은 최근 기암괴석 해변 길이 공개되며 삼척의 새 명소로 조명 받고 있다. 근덕면 초곡항은 삼척해양레일바이크가 출발하는 궁촌해변과 어촌 체험 마을로 유명한 장호항 사이에 다소곳이 자리한다.
거북바위는 커다란 바위 맨 위에 거북 한 마리가 놓인 형상이다. 보는 방향에 따라 모습이 다른데, 용굴 쪽으로 다가가서 보면 삼각형으로 변해 ‘피라미드바위’라고도 부른다. 길 끝자락 절벽에는 사자바위의 윤곽이 또렷하다. 수컷 사자가 절벽에 얼굴을 내밀고 동해와 하늘을 바라보는 모습이다.
독특한 바위가 빚어낸 해안 절경은 군사 지역이라 한동안 육로로 다가설 수 없었다. 장호항에서 배를 타고 감상하거나, 초곡마을 주민이 귀한 손님에게 배편으로 보여주던 숨은 명소다. 삼척시에서 해안 절벽을 따라 데크를 만들고, 철조망을 걷은 뒤에야 이곳의 비경이 일반 관광객에게 공개됐다.
장호항(莊湖港)은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장호리 287-1 외 8필지에 있는 어항이다. 장호항은 우리나라 지도에서 호랑이 등처럼 생긴 부분에 위치하며, 본 항이 위치한 장호리는 항의 형상이 장오리와 흡사해서 장울리, 장오리라고 부르다가 장호리가 되었다.
장호항은 방파제가 있어 파도와 바람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며 바다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항으로 1973년 기본시설계획을 수립했으며 1993년 정비계획을 수립하면서 현재의 안정된 항세를 갖추게 되었다.
수로부인 설화로 유명한 헌화가의 발원지로 나폴리형 해안선이 있어 동양의 나폴리라고 부른다. 장호리 당두산 연안에 내장오, 외장오가 있어 깊은 어항으로 어족이 풍성하여 일명 장오리진이라고도 한다. 장호항 및 인근 민박에서 생선을 이용한 다양한 음식을 싼 가격으로 즐길 수 있으며, 주변 관광지로 해신당 공원, 어촌 민속 전시관, 장호 해수욕장, 갈남리 월미도(일출) 등이 있다.
삼척시는 삼한시대에 진한의 실직국이었다가 102년에 신라에 병합되었다. 신라는 505년(지증왕 6)에 실직주를 설치한 후 몇 차례의 변화를 거쳐 757년(경덕왕 16)에 삼척군으로 개칭하고 명주도독부(강릉) 관하에 두었다. 이때 영현으로 죽령현·만향현·해리현·우계현을 거느렸다. 고려시대 940년(태조 23)에 척주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1018년(현종 9)에는 삼척현으로 강등되어 동계에 속했다가 1377년 군으로 승격되었다. 조선시대에는 태조 이성계의 5대조인 목조의 외향이라 하여 1393년 부로 승격되고 1413년(태종 13)에 도호부가 되었다. 강릉과 더불어 영동의 큰 고을로서 삼척포진이 설치되어 강원도 해안방어의 중심지 구실을 했다. 별호는 척주·진주 등이었다.
1895년 지방제도 개정으로 강릉부 삼척군이 되었다가 1896년 강원도에 소속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 때 부내면·말곡면이 부내면으로 통합되었다. 부내면은 1917년에 삼척면으로 개칭되고, 1938년에 삼척읍으로, 1986년에 시로 승격·분리되었다. 1995년 지방자치선거를 앞두고 실시된 대대적인 행정구역개편으로 삼척군과 삼척시가 하나의 도농통합시를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