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봄의 도시라는 Dalat(달랏)이다. 제목을 달랏(越南)이라고 올려 놓고보니, 아재개그를 즐겨하는 나에게 "달라? 뭐가 달랏?" 그렇게 말장난으로 어지러울까 싶어서 Dalat(越南)이라고 바꿔 올렸다. 이곳은 비교적 최근에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고있는 관광지로 떠오르는 지역이기 때문에 어쩌면 조금 생소한 지역일 수 있단다. 달랏(Dalat)은 베트남 럼동성의 성도(省都)로, 해발 1500m 높이의 럼비엔(Lâm Viên) 고원(高原)에 위치하고 있어 연평균 기온이 15도에서 24도 사이의 서늘한 곳이다. 2015년 기준으로 인구는 약 40만명이 살고 있으며, 당초 이 지역의 인구는 1999년 12만명 → 2009년 20만명 → 2015년 40만명으로 증가에서 보듯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달랏(Dalat)은라틴어: Dat Aliis Laetitiam Aliis Temperiem(“어떤이에게는즐거움을, 어떤이에게는신선함을”이란의미를지니고있다)에서왔으며, 프랑스식민지정부가달랏(Đà Lạt)이라는이름을정식으로사용하면서달랏(Dalat)이란도시명이사용되었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먼저 크레이지하우스를 찾았다. ‘베트남의가우디’라는별명을얻은베트남총리의딸 '당비엣응아'가기존의건축양식을파괴하고숲속의이미지를형상화해서기괴스럽고특이한구조로지은건축물이며, 마치동화속궁전같은건축물로어린이나어른이나 모두 흥미를가지고둘러볼만하는평이다. 이곳의 1층은갤러리와게스트하우스가있어서숙박도가능하다고 한다.
랑비앙산전망대이다. 6인승 케이블카에 4명씩 마주앉아 랑비양산전망대(해발 2,167m)에올랐다. 오르는 길목에는 케이블카 창밖으로 보이는 곳마다 직선으로 쭉쭉 뻗은 울창한 아름드리 소나무숲이우리를반겨주는듯했다. 산위에오르니달랏시내가한눈에보인다. 포토존에서사진도찍고, 커피도주문하여 마시면서 한가로이달랏시내를조망하면서여유있게 한시간을보냈다. 랑비앙산에얽힌전설은마치 ‘로미오와줄리엣’과같은사랑이야기로이곳을찾는사람들의마음에남아있다.
랑비앙산 전망대의 비석에 있는 전설을 옮긴 글이다. 「옛날 이 산악지대에는 라트족(tộc Lát) 족장에게 ‘랑’이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그는 칠족(tộc Chil) 족장의 딸 ‘비앙’이라는 딸을 사랑했다. 부족이 서로 달랐기 때문에 비앙은 랑과 결혼할 수 없었다. 그래서 두사람은 사랑을 지키기위해, 엄격한 관습에 반대하며 죽을 수 밖에 없었다. 랑과 비앙이 죽자 비앙의 아버지는 후회를 하며, 라트족, 칠족, 스레부족을합쳐서꼬호족으로 통합했다. 그때부터 모든 부족의 젊은 남녀는 쉽게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게된다. 두사람의 무덤은 차츰 옆에놓여 있는 높은 산 두개가 되었고,마을 사람들은 이 산의 이름을 랑비앙산으로 지었다.」(네이버지식백과)
우리 일행은 1시간동안랑비앙산전망대에서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 놓은 이곳저곳을 두루 돌아다니며 구경했다. 오밀조밀하게 정말잘꾸며놓아서 랑비앙 산의 어디를가든 그곳이 바로포토존이다. 단체사진을 찍자며 이 도시의 한가운데 위치한 둘레 약 5Km의 쑤엉흐엉 호수-춘향(春香)호수를 내려다보며 포즈를 잡았는데, 여기서는 너무 높아서 그런지 잘 보이지 않는다. 달랏에 머무르는 사흘동안 매번 코스를 바꿀때마다 이 호수를 중심으로 관광버스가 움직여서, 쑤엉흐엉 호수 가운데 커다랗게 만들어 놓은 핑크빛 연꽃을 열번도 훨씬 넘게 많이도 바라보아서 눈에 익은 곳이라 기억에 오래 남는다는 생각이 든다.
달랏에서는 어딜가든 마주치는 곳마다 비닐하우스가 바다처럼 넓게 자릴잡고 있으며, 여기서도 산아래로 즐비한 비닐하우스가 보인다. 자랑스런 한국인- 김진국. 대구효성여대에서화훼장식학을가르치던 김진국 교수는 1990년대초반 '제2의정착지'를찾아동남아 10개국을 2년간돌아다니다가 1994년달랏을찾았다. 현지관공서와담판을지어산비탈돌산개간을허가받았으며, 움막을짓고삽과괭이로바위를깨고돌을날랐다. 8년동안어깨가으스러지고손바닥이까지는험난한작업으로 5000평을계단식밭으로개간했다. '한국에서온미친노인'은점점 '달랏의보배'가됐다. 김교수는회사를만들어자신이생산한화훼·채소는물론이웃이생산한농작물도사들여대도시에출하해 줬다. 국화와카네이션의일본·싱가포르수출길도열어준 그는 달랏을 꽃의 도시로 만들었고, 상징적으로 달랏의 아버지가 되었단다.
한국인 김진국 교수가 전파한 비닐하우스로 달랏의화훼·채소농가는부유해졌고, 이곳의 집들은그림엽서처럼예쁘게변해갔다. 베트남 1인당 GDP가 1000달러정도지만달랏의농가수입은 4000~5000달러에이른다. 김진국 교수의도움으로달랏대학교에는 2005년농과대학, 2006년난(蘭)연구센터가만들어졌다. 2004년엔한국어학과를개설해작년봄까지졸업생 220여명을배출했다. 달랏대는지금 우리나라의 26개대학과자매결연을 맺어서 활발한 교류를 하고있다.
꽃의 도시인 달랏을 상징하는 달랏 플라워 파크 정문이다. 달랏은 정말 꽃이 많은 도시가 맞다. 온실의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하는 모습도 그렇고, 이곳은 기후가 정말 좋고 식물들이 자라기에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 준단다. 실제로 달랏의 많은 별명 중 하나는 '천꽃의 도시’라고 한다. 달랏 중심가 쑤엉흐엉호수 바로 옆에 위치해 있어서 접근성도 좋고, 300종류가 넘는 꽃들이 전시되어 있어서 그야말로 꽃의 천국이다.
신기하게도 분재된 나무들이 우리 사람의 키보다 더 크다.분재(盆栽)란한자만으로는'그릇안에묘목을담는것'또는'화분에서재배하는것'을뜻하지만,관용적으로'나무를화분에심어난쟁이로자라게하는것,또는그결과물'을가리킨다. 그러므로,식물이환경에맞춰성장하는성향을극단적으로이용해서 작게 만든다.작고얕은화분을척박한흙으로채우고,바람과햇빛이잘드는곳에두어생장을억제한다.분재를만드는나무는특정한품종이아니다.분재나무를넓은땅에심어영양분을충분히주면다시큰나무로자라난다.분재의잎과가지가작아지는이유는세포분열이억제되었기때문이다.
관광명소인 달랏기차역은베트남에서가장아름다운기차역으로알려져있단다. 프랑스식민지시대에건축되어프랑스건축양식영향을받아세개의뽀족한지붕이하늘로솟아있는독특한디자인으로,묘하게서구의건축과동양적인멋을생각케하는건물이다. 아름다운건물로이기차역을배경삼아사진을담는여행객들로붐비고 있다. 실제로 여기서 7km 구간에이르는관광열차가운영되고있기때문에, 이관광열차를이용하려는여행자들에게아주인기있는곳이란다.
노부부가 열차에 올라 사진을 찍는다. 우리가 어린시절에도 접하지 못했던 이국적인 열차의 모습이다. 이곳은 우리가 생각하는 여름날이라서 사계절이 무더운 동남아 도시이긴 하지만, 고도가 상당히 높은 지역이라 그런지 아침저녁으로 생각보다 더 쌀쌀하게 느껴진다. 습관적인 걷기를 즐기는 버릇때문에 아침일찍 일어나 호텔밖으로 새벽에 나가면 즐비한 비닐하우스 옆길을 걸으면서도 춥게 느껴진다. 우리 여행객은 긴 팔 옷을 반드시 챙겨서 입고 나가야 한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이곳 현지인들은 밤이 되면 오리털 패딩을 입고 다니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으니 그렇다.
이곳이 이틀밤을 머물게 될 나달랏 호텔이다.2017년에지어진본숙소(LADALAT HOTEL)는달랏여행을위하여 아주스마트한선택이란다. 이유로는 별다섯개의5성급숙소는공항에서단35km거리에있어서쉽게이동할수있으며, 달랏의필수관광명소에손쉽게접근할수있는편리한위치를자랑한단다. 이곳은 피곤하고지친여행자들을기운나게하기위한우수한서비스와모든필수시설을제공한단다. Wi-Fi (무료/전객실), 24시간룸서비스, 24시간경비서비스,일일청소서비스,택시서비스등과같은최상급편의/부대시설을본숙소에서즐길수있단다.
호텔앞 분수대에는 조각된 여인들이 악기를 들고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멋지다 . 이 숙소에는최고수준의편의성과편안함이갖춰져있단다. 일부객실에서무료차, 타월, 카펫바닥, 마룻바닥, 옷걸이등을제공하고, 실내수영장등과같은멋진여가시설/활동을즐길수있어잊을수없는추억을만들수있단다. 본숙소(라달랏호텔)는달랏여행객의스마트한선택이될수있단다. 바쁜일상을벗어나매순간이편안한휴식이될것이란다. 실내 샤워기에 급수문제로 데스크에 전화를 했더니 금방 여직원 두명이 달려와서 조치해 주는 걸 보면서, 이곳에서 이틀밤을 지내어 보니 사실이 그렇다는 걸 확실하게 체험했다.
이곳낮에는농산물과같은달랏에서나오는특산품들이주로거래되기때문에베트남특유의거래문화가강하게지배한단다. 그렇지만야시장이 되면여느야시장과마찬가지로보다조리된식사, 식품판매가늘면서낮처럼흥정의거래보다는조금더즐기는분위기로변한단다. 이곳도 베트남다른관광지처럼호갱이 되지않기위해서는열심히흥정할필요도있단다. 우리도 역시 달랏시장 한복판에 있는 계단에 줄지어 앉아 반짠느엉 간식을 맛보며,길거리 음식과 노상에서 즐길 수 있는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달랏의 명소인 다딴라 폭포에 가기 위해서는 롤러 코스터를 타고 내려와야 한다. 두사람이 앉는 좌석에서 뒷사람이 조종석에 앉아 달리는 속도를 빠르게 또 느리게 조정하는 운전사가 되어야 한단다. 브레이크를 잡지 않아도 천천히 달려야 하는 중간의 두곳에는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어서 무조건 싫든 좋든 사진을 찍어주고, 도착하면 먼저 사진을 찾을건지 말건지를 컴퓨터 화면을 보면서 결정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 해당 사진을 찾겠다고 의사표시를 하면 한장당 3만동씩 프린터로 이렇게 출력을 해 준다.
폭포에서 쏟아져 내리는 물소리가 우렁차고 힘있게 들리는 다탄란 폭포앞에서 나는 환호한다. 달랏 외곽에 있는 다탄란 폭포는 달랏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 명소이며, 롤러 코스터를 타는 액티비티도 있고, 정말 스릴있게 재밋다. 산악지형을 따라 내려가면서 폭포를 구경하다보면, 이곳은 속세에서 벗어난 별천지임을 느끼게 해 준다. 다만, 물빛이 황토색이라서 그런지 '폭포의 물이 너무 맑아서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했다는 그런 물은 정말 아닌것 같았다.
전설에의하면다딴라는또한잎사귀로덮인맑은물때문에선녀들이목욕을하곤했던폭포였다고한다. ‘잎사귀밑에물이있다’는것을모르고, 폭포를발견했을때소수민족들은그것을 ‘물이있는잎사귀아래’라는뜻의‘다땀느느하’(Đạ Tam Nnha)라고이름붙였다. 후에프랑스와킨족이이서정적인고지에발을들여놓자, 그말은다띠나(Đatina)로변했고, 그다음에는다딴라(Đatanla)로변했다. 두갈래로 쏟아지는 폭포수를 상징하는 나뭇잎 모양으로 만든 잎사귀 아래 선녀들이 목욕을 한다는 조형물이 재밋다.
베트남의 마지막 황제인 바오다이 황제의 여름별장이다. 바오다이황제(베트남어:Hoàng đế Bảo Đại / 保大보대, 1913년10월22일~ 1997년7월31일)는베트남의마지막황제(재위:1925년11월13일(정식즉위는 1926년 1월8일) ~ 1945년3월11일))이자베트남 제국의황제(재위: 1945년3월11일~1945년8월23일)이고, 베트남공화국의국가원수(재임: 1949년6월13일~ 1955년4월30일)이다. 재위기간중프랑스와일본의식민통치하에서형식적으로황위를유지하였다.
어쩌면 우리나라의 고종황제 역사와 매우 닮은 것 같은 베트남의 마지막 황제가 사용하던 초라한 의자에 앉아 만감이 교차함을 어쩔 수가 없다. 바오다이 황제가아버지카이딘국왕으로부터 황제위를물려받은것은 13세때다. 그러나 1858년이래베트남을거듭침공해보호국으로삼은프랑스가 1887년라오스ㆍ크메르와함께베트남을프랑스령인도차이나연방으로통합해버린터라, 바오다이는아버지가그랬듯이름뿐인국왕에지나지않았다. 당시프랑스는베트남식민지를셋으로나누어북부하노이시티중심의통킹을반보호령으로, 남부사이공(지금의호치민시티) 시티중심의코친차이나를직할령으로, 중부후에시티를중심으로하는앤냄을보호령으로삼고있었다.프랑스는앤냄의후에를수도로삼은내응우옌왕조(구엔왕조)의황권을형식적으로는인정했지만, 실제의시정권은파리에서파견된총독에게있었다.
처음으로 맛보는 사슴고기가 식탁에 올랐다. 사슴고기는베니즌(venison)이라고도한다.사슴고기는 11세기노르만정복당시에영국왕실에서사슴을사냥한뒤이를먹던것에서비롯되었으며, 보통사냥한사슴을대상으로한사냥감을먹기때문에동물권에대한논란이있다. 상당히 쫄깃거리는 사슴고기를먹을때 그래도 두려워할것이없단다. 사슴고기는매우향긋하고맛있는 고기란다. 쇠고기보다더얇고단백질이많다는데, 우리팀의 여성들은 젓가락도 대지 않아서 남자들만 넷이서 소주 안주로 삼아 푸짐하고 맛있게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