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카눈이 한반도를 종단하며 지나가는 모습을 몰아치는 비바람과 함께 매일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재난재해 소식으로 매스컴에서 접하면서 인간의 능력으로 어쩔 수 없는 운명(運命)을 생각한다. 꼰대세대에게 운명이란 아무리 노력해도 이룰 수 없고 주어진 환경따라 살아가야하는, 타고난 운명인 노후오복(老後五福)으로 일건이처삼재사사오우(一健二妻三財四事五友)를 자주 이야기한다. 사람이 늙으면 반드시 필요한 다섯가지 복으로 첫번째는 자신의 건강이고, 두번째는 함께 살아갈 배우자가 필수이며, 세번째는 뭔가를 하고 싶은걸 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 해 줄 수 있는 돈이며, 네번째는 죽는 날까지 시간을 그냥 무료하게 흘려보낼 수 없으니 하루를 보람있게 보낼 뭔가의 일이 있어야 하고, 그리고 다섯번째는 함께 소줏잔을 기울이며 세상살이 불평불만도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친구가 있으면 오복을 누리는거란다.
이렇게 우리네 오복에는 요즘시대의 가족관계처럼 자녀와 가족이 모두 빠져있다. 그렇지만서경(書經)주서(周書)풍속편(通俗編)에나오는오복은수(壽),부(富),귀(貴),강녕(康寧),자손중다(子孫衆多)의다섯가지이다.수(壽)는장수(長壽)하는것,부(富)는부유한삶을영위하는것,귀(貴)는귀하고소중하며 사회적인지위가높다는것,강녕(康寧)은가정에 우환(憂患)이없이편안한것,그리고자손중다(子孫衆多)는자손의수효가아주많은것으로나온다. 『서경』오복의유호덕이귀로, 고종명이자손중다로바뀐것은그럴만한이유가있는것으로, 서민이나천민은귀하게되는것이남을위하여봉사하는것이라생각하였고자손이많은것이 천수를 누리는 고종명보다낫다고생각하였기때문이다.
다만, 요즘처럼 체계화된 의무교육제도의 학교교육이 쉽지 않았던 그때 시절에도 우리나라 상인계층(常人階層)에서 구전(口傳)되어온 오복(五福)은 첫째로 치아(齒牙)가좋아야 한다는 것:아마도 뭐든잘먹는것에대해말하는게아닌가 싶다. 둘째로 자손(子孫)이많은것:옛어른들은자손이많아대(代)가끊기지않아야 한다는것. 세번째로부부백년해로(夫婦偕老)하는것:자식보다 부모가 오래살아있어야 한다는것. 네번째는 손(客)대접할것이있는것:가진게(財力)있어야손님을대접할수있겠다는 이야기다. 다섯번째는 명당에묻히는것:죽어서명당(明堂)에묻혀자손들에게복을전해줄수있는것이라고 믿었다.
우리 가족은 여름방학임에도 학원에 다녀야하는 손주들이 모처럼 시간을 내어 대부도의 팬션에 모였다. 중2, 중1, 초4, 초3, 초2, 초2, 세살배기인 일곱 손주들이 줄지어 계단에 앉아 할아버지 할머니 오래오래 건강하시라며 손가락으로 브이(V)를 그려 준다. 그래 그래. 정말 고맙고 또 감사하다. 너희들이 아니면 운명적으로 우리가 세상의 오복을 모두 갖추고 살아가고 있다한들 허허롭게 웃을일이 뭐가 얼마나 있겠는가?
손주..... 손주는 손자의 경기 방언이란다. 쉽게말해서 내자식의자식이다. 그러나 2011년8월31일표준어규정개정에의해'손자/손녀의총칭'이라는뜻으로 손주는 표준어로인정되었다. 또, 손자와손녀의표현자체가남자와여자를나눈다고하여, 손주를양성평등의표준어로했다는설도있다.손자나손녀라고부르는경우도많다. 구태여 구별하자면여자아이는손녀가맞다. 또아들의자식은친손자/친손녀다. 딸의자식은외손자/외손녀이다. 본래한자(漢子)의자(子)는원래아들과딸모두를함께아우르는말이다. 민법에서는여전히자녀를자(子)라고통칭한다.
요즘은 손주를 보는 나이도 자녀들의결혼시기가늦어짐에따라평균적으로 50대후반에서 60대초중반이며, 60대후반도상당하고, 첫자녀를 40대에보는경우도늘어나서첫손주를 70대에되어서야 겨우보게되는경우가늘어나고있단다. 나도 역시 60대에 손주를 만나기 시작하여 70대까지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금쪽같은 자원들이다. 이 글을 쓰면서도 나는 자연스레 웃음을 머금고 있다. 인구절벽의 시대에 일곱명의 손주를 둔 나는 그냥 애국자인듯 나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 간다. 행복하고 감사함 뿐이다 .
중1인 손녀가 내 생일에 연락을 못 했다면서 이렇게 편지와 함께 사무실 책상위의 장식용으로 피아노 모형선물까지 건네준다. 주말이면 항상 만보걷기로 호수주변이나 둘레길 산행을 즐기는 할아버지 얼굴에 타지않게 바르시라며 썬크림으로 선물을 준비했단다. 손주들에게 잘 해준것도 없고 뭐 특별하게 기억나게 해준게 아무것도 없으니 더더욱 미안하고 고맙다. 그럼에도 세상에서 제일 잘 생긴 할아버지께라는 맺음에 눈물이 날 만큼 울먹임과 시큰한 감성이 된다.
고래희지기(古來稀知己)인 내 어린시절 친구들의 삼십년 전 모임 모습이다. 지금은 유명을 달리한 친구들의 모습도 더러 보이지만,작년에는 내 친구의 아들이 먼저 떠났다는 소식을 들어야 했고, 어제는 또 어린시절부터지금까지매월모임을갖고만나는친구의딸이어제지병으로세상을등졌다는동반자의 슬픔을 들어야 했다. 이런 아픈 소식을 듣는 것 조차도 너무너무 싫다. 백세시대라는 요즘에도 장수가 축복이 아니라는 생각과 함께 조금은 아쉽다는 지금의 나이에 내가 먼저 떠나야 한다는 마음이 절대적이다.부모앞에서먼저세상을 떠나는게가장큰불효라고배웠던우리 꼰대세대에는 뭐라 형언하기힘든아픔이밀려든다. 그런저런 이유로도 운명을 바꿔서라도 홀연히 갑자기 떠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