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나무'로 유명한 충남 부여군 임천면 성흥로97번길 167(군사리) 가림성(加林城 ) 느티나무의 우람한 모습이다. 수령 400년 이상으로 추정되는 이 느티나무는 높이 22m, 둘레 5.4m의 크기이며, 백제시대 군사적 요충지인 가림성 남문지(南門地)에 위치한다. 이 느티나무의 가지가 하트처럼 보여서 일명 ’사랑나무’로 불리는 가림성의 랜드마크이다.
가림성 정상부에 있는 느티나무는거센 비바람으로 인해 땅위에 판 모양으로 노출된 독특한 뿌리 모양과 함께 탁 트인 주변환경과 어우러진 나무 모양이 천하일품이다.이 나무에는 고려시대 유금필(庾黅弼)장군과 관련한 전설이 있다. 유금필 장군이 임천에 머무르는 동안 후백제 패잔병들이 노략질이 심하고 흉년까지 겹쳐 백성들의 생활이 어려웠다고 한다. 장군이 이 광경을 보고 고을 창고를 모두 열어 백성들에게 식량을 나누어 주며 민심을 수습하고나서 이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나무의 나이가 400년이 아니라 추측컨대 1200년 이상 됐을거 같다는 생각이 헤아려진다.
부여 가림성(扶餘加林城)은 사적 제4호로 백제의 사비천도 이전인 서기 501년에 쌓은 백제시대의 산성이다. 해발 268미터의 성흥산 정상에 돌로 쌓은 석성과 그 아래쪽에 흙과 돌로 쌓은 토성이 있다. 석성의 둘레는 1,350m이고 성곽 높이는 4m 가량되는데, 성 내부에는 우물터, 건물터 등이 남아있으며, 남문, 동문과 서문 3개의 문터가 확인되었다. 현재까지 백제시대의 성곽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된다. 나당 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멸망한 후에는 백제 부흥운동의 거점이 되었다. 이렇게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므로 18세기 중엽까지 사용되었다.
가림성이라는 명칭은 김부식의 《삼국사기》권28 백제본기제6(百濟本紀第六) 의자왕(義慈王) 당고종용삭2년가을 7월 (唐高宗龍朔二年秋七月) 中에 이지역의이름이가림군이었기때문이다. 부소산성과부여군(백제때지명은 "사비")으로부터직선거리로약 10 km 남쪽에위치한이곳은백제도성들(부여및 공주)을따라흐르는금강하류요충지로서, 금강하류일대를 조망하며 관측할수있다. 백제시대성곽중유일하게 축성연대와당시의지명을알수있는곳이다. 또한, 부여일대의 석성산성, 증산성, 청마산성등과함께사비도성을보호하는거점산성으로알려져있다.
가림성(扶餘加林城)은 백제 후기 사비도성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석성이다.삼국사기 권26 백제본기 제4에 501년(동성왕 23년) 11월에 위사좌평(衞士佐平) 백가(苩加)가 쌓았다는 기록이 전한다. 백제시대 성곽가운데 성을 쌓은 시기가 정확히 알려진 유일한 성이자, 옛 지명을 알 수 있는 유적으로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 가림성이 둘러싸고 있는 성흥산은 금강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략적 중심지로서 백제가 멸망한 후에는 백제 부흥운동이 거점이 되기도 했던 곳이다.
이 성을쌓은백가는동성왕이자신을이곳으로보낸것에앙심을품고동성왕을살해하고난을일으켰으나,무령왕이왕위에올라난을평정하고백가를죽였다고전한다. 오늘날의대통령경호처장과유사한직위로,높은관리인위사좌평(衞士佐平)으로하여금 이 성을지키도록하였다는사실은이 가림성의전략적중요성을말해주고있다.
가림성의형태는산꼭대기를빙둘러쌓은테뫼식으로, 돌과흙을함께사용하여성벽을쌓았다. 성안에는남·서·북문터와군창터, 우물터 3곳과돌로쌓았던방어시설인보루가남아있다. 또한, 백제부흥운동군의거점지이기도한이곳에는고려전기의장수유금필이이곳에들러빈민구제를하였다고하여해마다제사드리는사당이있다. 이성은백제때쌓은성곽가운데연대를확실히알수있는유일한성이고, 옛지명을알수있는유적으로매우중요하다. 원래 이 성의 명칭은 부여성흥산성이었으나(부여성흥산성→부여가림성)으로명칭변경되었다(2011.07.28고시).
성흥산은 높이가 260미터에불과한높지않은산으로, 주차장에서 약 5분쯤만 걸으면 성곽까지 오를 수 있어서오르기도 그리 어렵지않다. 낮은높이의 산이지만부여로부터휘돌아나가는금강을끼고있는평야지대와인근의야산들로인해탁트인시야를제공한다. 매년 1월 1일에는정기적으로새해해맞이행사와고려시대유금필장군의사당에서는충혼제라고하는연래행사가치러지고있다.
가림성이위치한산정상에서는강경읍을비롯한인근 지역을한 눈에조망할수있어서방비용성으로서의그입지가상당히훌륭하다. 가림성은백제의성가운데기록에의해축조연대가전해지는유일한성이고, 부여군의옛지명을알수있는유적이기도하다. 1963년 1월 21일에사적제4호 '부여성흥산성'으로지정되었다가, 2011년 07월 28일 '부여가림성'으로명칭이변경고시되었다.
이곳은 금강하구인 충청남도 논산, 강경, 서천과 전라북도익산까지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도록 전망이 탁 트인 곳이다. 산성은 성흥산의 꼭대기 8부 능선을 따라 내성을 쌓고 동쪽으로 외성에 붙어있는 형태로 이중 또는 사슬모양의 구조이다. 성안에는 남문, 동문, 서문 터와 우물터 등이 남아 있다.
사랑나무라는 느티나무 주변에는기타다른수종이나식물들이생육하고있지않으며, 답압의피해도없는것으로보인다. 느티나무는수형이매우아름답고웅장하며, 또한주변에나무나숲이없어멀리서도눈에잘띄어 가림산성의랜드마크적성격을나타낸다. 또한느티나무가서있는곳에서는임천면의전경을 모두 바라다볼수있어조망점이 아주 빼어난곳이다. 이느티나무는경관적으로매우아름다울뿐아니라산성의성벽안에서생육하고있어 오랜 역사성을띠고있다고할수있다.
충혼제를 올리는 사당이다. 임천충혼제는매년 4월가림성내에위치한충혼사에서나당연합군에항전하다가순국한무명장졸들의넋을달래고우국충절을기리기위해개최하는제례행사이다. 충혼사에는마지막까지백제의수도를수호하던장졸들의 신주(神主)에해당하는수성장졸제신위(守城將卒諸神位)라고적힌위패들이모셔져있다. 1979년에거행한이후지금까지이어져 내려오고있다. 임천향교 총재의 조화가 외롭게 지키고 있다.
안내표지판에 사적 제4호로 지정된 부여 가림성은 성의 면적이 182,526 ㎡이다. 성곽의 구역 내성길이 약 1,342m이고, 면적은 92,568㎡이며,외성길이 약 724m이고 면적이38,173㎡이다. 이곳 부여 가림성 느티나무는 역사성,경관성,심미성이 뛰어나 한국의 자연유산으로서 가치를 인정받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가림성 느티나무는나뭇가지가 하트처럼 보여 일명‘사랑나무’로 더 많이 알려졌고,각종 드라마와 영화의 촬영지로 주목 받고 있다. 대하드라마 '대왕세종(KBS)'에서도자주촬영지로이용되었으며,마지막편이여기에서촬영되었다. 신윤복과김홍도를중심인물로그린 '바람의화원(SBS)', 고려전기를배경으로하는 '천추태후(KBS2)',환타지사극인 '환혼(tvN)'에서도촬영장소로활용되었다.
초가을의 서늘한 날씨와 함께 한글날 연휴에 하늘나라로 떠나신 이모를 조문하고 찾은 곳이라서 그런지 마음이 쓸쓸하다. 내 윗대인 1촌, 3촌, 5촌 중에서 유일하게 생존해 계시던 이모를 떠나 보내고나니, 이제는 사랑을 받는 시절이 지나고 오로지 사랑을 베풀어야 하는 가족들 삼각점의 꼭지점이 되었다. 이모의 여고생 시절에 초딩이던 나와는 열살차이로 너무 이뻐해 주셨던 이모가 급성담도암으로 돌아가시고, 받은 사랑이 너무 그리워서 조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검은 상복을 입은채로 이곳 사랑나무를 찾았다. 군대에 입대하기 전 석달동안, 가축병원을 하시던 이모댁에서 아카시아 나무의 말린 이파리를 사서 사료공장으로 납품하던 일을 도와드렸던 오십몇년전의 아슴하던 그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부여 가림성 솔바람길 4.63km 안내 표지판이다. "대조사 전설에 따르면, 한 스님이 큰 바위 아래서 수도중에 관음조(觀音鳥) 한마리가 날아와 그 바위 위에 앉자 놀라 잠을 깨니, 바위가 미륵보살상으로 변해 있어서 절 이름을 대조사(大鳥寺)라 했다고 한다. 가림성은 501년(백제 동성왕 23년) 8월 위사좌평(衞士佐平) 백가(苩加)가 축조하였다고 전해지는 토축산성으로 사적 제4호로 지정되어 있다." 고 소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