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야의 신기록을 갱신중인 요즘에도 나는 폭염을 디디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하여 만보걷기의 길을 나섰다. 수지구의 알프스라는 용인시 수지구의 동천/고기 머내길을 걷기로 계획하고, 손곡3교에서 교량을 건너 동천배수지로 운전하고 올라오니 넓은 주차장이 어서 오라는 듯 먼저 시원하게 맞아준다.
동천배수지 옆길로 조성된 데크계단을 올라서니 동천/고기 머내길 안내 표지판이 나타난다. 동천배수지(입구) 0.73Km, 미륵사 3.73Km, 래미안이스트팰리스 0.56Km의 화살표와 함께 동천고기 머내길의 화살표시를 따라 미륵사를 돌아오는 코스로 목적지 삼아 천천히 숲길을 걷는다.
36도의 폭염속에서도 완전하게 숲 그늘이 드리워진 머내길은 그야말로 여름날의 걷기운동에는 최고 최적지라고 여겨진다. 숲속에서 불어오는 바람결은 보이지 않아도 목에 걸친 선풍기 바람이 쉬익~ 쉬익~ 소리를 내면서 상큼하게 줄줄 흐르는 땀방울도 조용히 식혀준다.
지난주에 군포 수리산 둘레길을 걸으면서 수도권 최고의 여름산책길이라며 너무 좋았었던 그 기분에서 벗어나며, 오늘은 그 산책로보다 더더욱 좋다는 감성이 간사스러운 민낯으로 드러난다. 이곳은 도보 산책로라서 자전거가 다니지 않을뿐만 아니라, 산행객도 거의 만나지 못해서 한시간쯤 걸으면 겨우 한사람 마주칠 정도로 아주 호젓하게 아늑하며 좋은 숲산행길이다.
낙생저수지가 보인다. 낙생저수지는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과 성남시 분당구 금곡동에 위치한 저수지로 1956년에 착공하여 1961년 준공되었다. 당시의 저수지 설립 목적이 그렇듯 농업용수 확보가 목적이었다. 저수지 이름은 옛날 경기도 광주군낙생면에서 따왔다고 하는데, 근처에 고기근린공원이 위치하기 때문에 고기리저수지라고 부르기도 한다. 저수지 뒤편으로 대장동아파트 촌이 보인다.
동천은 동막리와 원천동을 병합하여 동막에서의 ‘동’자와 원천에서의 ‘천’자를 따서 이름이 되었다.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이 지역에 있던 고분현과 손기동을 병합하여 수지면(水枝面) 고기리(古基里)가 되었다. 고기(古: 옛 고,基: 터 기)라는 지명은고분현의 ‘고’자와 손기동의 ‘기’자를 따온 것에서 유래하였다. 1996년 3월 1일 용인군이 용인시로 승격되면서 수지면도 수지읍으로 승격되었고, 2001년 12월 24일 수지출장소가 설치되면서 고기리는 고기동으로 승격하였다. 2005년 10월 31일 용인특례시가구(區) 체제로 개편되면서 수지출장소는 수지구로 승격되었고, 고기동은 수지구 관할의 법정동이 되었다.
사거용인(死居龍仁)이라더니, 이곳 고기동에는 우리가 존경하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조부인 풍암(楓巖)이백록(李百祿?~1546)선생의 묘소와 재실인 덕풍재(德楓齋)가 있다.할아버지 이백록 선생은 손허산 자락, 증손자 이완장군은 안산(치마산장군봉)자락에 따로 모셔져 있다.직선거리로는 약200m정도인 두분 묘소 가운데를 신축 전원주택들이 우후죽순으로 가로막고 있어서 돌아서 왕래해야 한다.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과동천동에 걸친 손허산(遜墟山297m)과 안산(案山 치마산272.7m)이 위치한 수지구 동천동을고기동에 거주하는 분들조차 광교산으로 그렇게 알고 있다가, 요즘 들어서야 제 이름들이 알려지고 있단다.손허산은 낙생저수지가 조성되기 전 치수(治水)와 연관해 제방 언(堰)자가 들어간 손언산(遜堰山),안산(치마산)은 이순신(李舜臣1545년~1598)장군의 조카 이완(李莞)장군의 묘가 있어 장군봉(將軍峯)이라고도 전한다고 한다.
산등성이로 난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니 이렇게 뭔가를 기원하며 쌓아올린 돌탑도 보인다. 돌탑을 쌓는 신앙의 의례들은 모두 마을의 풍요와 안정을 기원하는 데 목적이 있단다. 자식 낳기를 기원한다든지, 화재를 예방하기 위해서 지내는 것도 그 하나의 방편이고, 특히 풍수상에서 비보적 기능을 가지는 경우가 상당수 된다고 한다. 이때 탑뿐만 아니라 선돌, 숲 등과 함께 세워져 기능이 더욱 보강되는 듯하다.
길을 걸으며 마주치는 자연사랑의 예술작품(?)도 보인다. 비비람에 쓰러져 죽은 나무가지들을 한데 모아서 작품처럼 만들어 놓은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고 아름답다. 아마도 자연을 사랑하는 산행객 중에 누군가 예술가적 기질을 가진 분이 만들어 놓았으리라 그렇게 혼자서 짐작하며 누군지 모르는 그 분에게 마음으로만 깊이 감사한다.
미륵사로 가는 갈랫길에서 잠시 헤멘다. 스마트 폰에서 맵을 찾아 미륵사로 가는 길을 묻는다. 이런 갈랫길에는 내가 아닌 누군가 뜻있는 분이 표지판을 만들어 놓으면 좋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해 본다.
철조망 너머로 광교산이 보인다. 경기도 용인시, 수원시, 의왕시에 걸쳐있는 높이 582m의 산으로한남정맥의 주봉이며, 백운산, 바라산을 거치면서 서울남쪽의 청계산과 이어진다. 체력이 좋은 이들은 백운산 ~ 청계산을 종주하기도 한다. 삼성산부터 광교산까지 가는 코스도 있다. 삼성산-관악산-우면산-청계산-우담산-바라산-백운산-광교산으로 삼관우청광이라 부르며 불수사도북(불암산-수락산-사패산-도봉산-북한산, 일명 강북5산 종주)보다는 덜 험하지만 코스에 따라 최대 50km에 달하는 코스이다.
미륵사를 만났다. 조계종 미륵사는 용인시 수지구 고기리에서 동천동 방향인일명 말구리고개에 있다. 1980년 주허 스님이 세운 작은 암자가 미륵사의 시작이다. 나무로 만들어진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을 모시고 있다. 후벽에는 현세불인 석가모니 천불상이 있다. 보사전 동쪽 벽면에는 삼장탱화와 신중탱화가 있다. 안쪽으로 올라가면 사찰 법당 중 비로자나불을 본존불로 하는 대적광전이 있다.
말구리고개(傳馬峴225m)는말이 크다는 뜻의 우리말이고, 구리는 골(谷)의 변음이니 말구리는 큰 골짜기라는 뜻이다.청사고(淸史稿)에 ‘조선군이 말1,140마리를 남겨두고 수원 방면으로 퇴각해 획득했다‘는 기록이 있다.말구리고개가 판교를 거쳐 탄천 청군(靑軍) 진지로 이어지는 옛날부터 빠른 길이니 전마현(傳馬峴 말구른고개)을 단순한 한자 차의(借意)표기라고 할 수는 없으므로, 1,140이라는 말 숫자에 의문은 있지만 그 많은 말 들이 좁은 고개를 줄지어 넘었다는 기록이 있다고 전한다.
미륵사 아랫마을에서 만나는 카페에 들려서 시원하게 냉커피를 마시고 다시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오는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며 잠시 숨을 고르느라고 만보계를 쳐다보니 이미 구천보를 넘겼다. 조금은 지친 발걸음으로 손허산 전망정자(머내정)에 앉아 잠시 스마트 폰으로 이곳을 검색해 본다. 이곳 바로 아랫길로 헤꾸니길은 머내만세운동길로1919년 3월 29일 고기리에서 시작된 만세행렬이 동천리, 수지면사무소(풍덕천)를 거쳐 언남리(경찰대 사거리)까지 나아간 루트이다. 여기서 울려 퍼진 “독립만세”함성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토대가 되었다는 기록을 읽으며, 잠시 묵념으로 선열에게 감사했다.
돌아서 내려오는 길을 잘못 들어서 주차된 이곳 동천배수지의 반대 방향으로 이만보를 찍으며 땡볕 아래를 그냥 걸었다. 옛날에 "늙으면 어서 죽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던 할머니 생각이 많이 떠 오른다. 이제 딱 하나 남은 내 소망은 자녀들에게 작은 걱정이라도 남기지 않고 본향으로 돌아가는 그것인데, 오늘도 나이탓에 깜박거리는 그걸 지키지 못하고 말았다.
그래서 만나게 된 동천자연식물원에서는 ‘자연은 아이들의 가장 큰 스승’을 모토로 하며, 동식물을 직접 접하고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단다. 작은 돼지, 염소, 토끼, 거북이를 비롯 파충류, 앵무새 등 평소에 주변에서 접하기 어려운 동물에게 먹이 주기 체험을 할 수 있으며, 유치부와 초등부를 위한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단다. 수도권에서 가깝고 교통이 편리해서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의 방문객들이 많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