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용두산공원(釜山中)

영대디강 2024. 12. 15. 04:17

부산광역시 중구 용두산(49m)에 조성된 용두산공원(龍頭山公園) 금정산(金井山 801.5m), 황령산(荒嶺山 427m)과 더불어 부산 3대명산의 하나이다. 옛날에는 울창한 소나무 사이로 바다가 보였다 하여 송현산(松峴山)이라 하였다가 그후 산세가 흡사 용()모양이어서 일본에서 건너오는 왜구(倭寇)들을 삼켜버릴 기상이라 하여 용두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공원으로 향하는 40계단은 오늘날의 영주동에서 옛 부산역과 국제여객부두를 왕래하는 편의를 위해 설치되었다. 이 계단은 한국전쟁 당시 피난 중 헤어진 가족들의 상봉장소였고, 피난살이의 애환을 상징하던 곳으로 부산으로 이주한 10만명이 넘는 피난민들에게는 가장 친근한 장소였다. 이곳이 유명해진 것은 1951년 가수 박재홍이 부른 대중가요 경상도 아가씨가 크게 유행하면서 부터인데, 이노래는 피난살이의 고달픔을 읊은 것이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40계단에서 영도다리를 바라볼 수 있었는데, 피난민들은 더러 40계단에 기대고 앉아 영도다리를 바라보며 피난살이의 고달픔을 달랬었다고 한다

그 당시의 40계단은 4m가량의 폭이었지만, 그 시절과는 달리 지금은 폭이 많이 줄어 옛모습을 잃었다고 한다. 그래서 본래의 40계단에서 남쪽으로 25m 쯤 떨어진 계단을 현재는 40계단이라고 말하고 있다. 원래의 자리에서 떨어져 있는 계단에 1993 8 ‘40계단기념비’를 세우고, 그 뒤쪽에 대중가요 ‘경상도 아가씨’의 노래 가사와 계단의 유래를 새겨 넣었다. 1999년 개봉된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오프닝 장면에 이 계단이 등장하여 더욱 유명해진 곳이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동안에는 일본인들이 용두산 정상에 용두산신사(神社)를 세워 일본과 조선을 오가는 선박의 무사 항해를 빌었던 곳이기도 하였다. 당시 부산상업회의소에서 주관하여 용두산은 근대적인 공원으로 조성되었으며, 1915 11 10일 기공식이 있었고 1916 10 15일 준공되었다. 용두산공원의 부지는 용두산의 정상부를 600여평의 부지에 조성되었다. 용두산을 오르는 길은 4갈래의 길이 만들어 졌으며, 근래에는 에스컬레이트가 설치되어 운영되고 있다. 

용 모양 조각상이다.  6·25전쟁 때는 피난민들이 용두산 산꼭대기까지 판잣집을 짓고 살았는데 2차례에 걸친 대화재가 일어나 소실되고 민둥산이 되었단다. 그후 나무심기에 주력한 결과 지금은 숲이 많은 시민공원으로 가꾸어졌다. 자유당 때에 이승만의 호인 우남공원(雩南公園)이라고 불렀다가 4 ·19혁명 후에 다시 원래 이름인 용두산공원으로 불렀다. 부산항과 영도(影島)가 내려다보이는 경승지이며, 부산탑에 올라가 내려다보는 부산광역시 일대와 부산항과 영도 등의 모습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보인다. 요즘 우리나라 정치의 현실을 탄식하시면서 "내가 왜 이렇게 못난 자손들을 위하여 이 나라를 지켰는지...." 눈물을 흘리시는 그런 모습으로 보여지면서 내 맘 속에 용두산 엘레지가 흐른다. "용두산아 용두산아/ 너만은 변치 말자/ 한발 올려 맹세하고 두발 딛어 언약하던/ 한 계단 두 계단 일백구십 사계단에/ 사랑심어 다져놓은 그 사람은 어디가고/ 나만 혼자 쓸쓸히도 그 시절 못 잊어/ 아~ 못 잊어 운다// 둘이서 거닐던 일백구십 사계단에/ 즐거웠던 그 시절은 그 어디로 가버렸나/ 잘 있거라 나는 간다 꽃피던 용두산아/ 아~ 용두산 엘레지//"

부산의 상징 포토존이다. 이곳에 올라오면 부산항과 영도가 내려다보이는 경치가 아주 좋은 곳이며, 공원 가장 높은 곳의 부산탑에 올라가면 부산항과 멀리 남항 등 부산 시내의 야경이 기가막힌 곳이다. 공원 내에는 대원군이 세운 척화비를 비롯해 이충무공동상·충혼탑·4·19의거기념탑·부산탑 등이 세워졌다. 공원 규모에 비하여 동상이나 비 같은 구조물이 많은데, 이는 부산의 지나간 역사의 흔적을 반영한 것이다용두산공원에는 부산시가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높이 120m의 부산탑이 부산의 상징처럼 서 있다

공원의 가운데 우뚝 솟아 높이 120m에 달하는 부산타워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부산의 전경이 특히 인상적이라고 하는데, 나는 낮에는 일 하느라고 어둠이 드리운 새벽마다 찾은 곳이라서 좀 아쉽다. 도심속 휴식공간으로도 사랑받는 이곳에서는 각 시즌마다 다양한 프로그램과 행사가 진행된단다. 광복로 거리에서 용두산 공원으로 이어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면 쉽게 오를 수 있으며, 매년 3.1절과 광복절 그리고 연말에는 시민의 종 타종식이 거행된다고 한다.

부산 중구 부평동2가 부평교차로에서 출발하여 동광로1가 옛시청교차로에서 끝나는 도로인 광복로 거리의 새벽 모습이다. 남포동의 대표적인 번화가 거리로 흔히 남포동이라고 하면 이 곳을 가리킨다. 다만 실질적인 행정동은 광복동에 속해 있다. 서울로 치자면 명동과 분위기가 비슷하단다. 구도심에 위치해 있고, 주변에 수입상가가 있어서, 현지인 비율이 적고 외지인이나 외국인 관광객 비율이 많아 현실경기인 정치상황에 아주 민감한 거리다.

자갈치 시장은 중구 남포동에 위치한 우리나라 대표적 어시장이자 부산의 관광명소이다. 자갈치란 용어는 구덕산, 아미산 등의 돌자갈이 보수천을 따라 내려온 곳으로 용구산, 복병산 주위에서 굴러 내려온 돌자갈들과 함께 바다기슭으로 모여 파도에 까끼인 몽돌이 깔린 해안지대에서 유래하였다. 부산항 개항 당시에는 남비(남쪽물가)로 몰리면서 파시( 波市:바다위에서 열리는 생선시장)의 성격을 띠고 있었고, 1930년대 남항의 매축으로 최대어시장으로 자리잡았다. 광복이후 일본에서 돌아온 동포들이 이 일대에서 활어중심의 난전으로 생계를 이어갔고, 한국전쟁 당시에는 많은 피난민들이 부산으로 몰려오면서 자갈치 시장은 더욱 붐비기 시작했다. 이렇게 나날이 발전한 오늘날의 자갈치 시장은 지금까지도 밤낮 없이 활기를 띠는 곳으로 가장 부산다운 시민의 삶의 터전이란다.

자갈치 시장은  오이소! 보이소! 사이소!’로 더 유명하다. 부산사투리 특유의 정겨움이 물씬 묻어나는 곳이다. 이 시장에서는 살아있는 횟감을 그 자리에서 고르면 즉석에서 회를 떠 준다. 부산을 찾은 관광객이 한번쯤은 반드시 들르는 대한민국 최대의 수산시장이다. 부산출신으로 우리와 함께 일하며 매일 가이드를 해주는 동료가 이곳 노점에서 파는 칠백원짜리 믹스커피를 한잔씩 사주면서 새벽 추위를 녹이란다. 참으로 고맙고 정겨운 이웃이다.

영도대교를 만났다. 벌써 육십년도 더 지나버린 오래된 기억으로도 중학교 시절 졸업여행으로 찾아왔던 이곳 모습이 떠 오른다. 이곳은 47년만에 도개가 회복된 부산 최초의 연육교다. 한국전쟁 당시 영도다리 난간위에 이름을 새기고 흩어진 가족의 소식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모여 들었던 곳이란다. 노래가사에도 종종 등장하는 영도대교는 사랑과 그리움을 상징한다. 지금은 매주 토요일 2시부터 약 15분간 영도다리가 위로 올려 들려지는 도개가 진행된다고 한다.  

산복도로(山腹道路 / Hillside Road)는 부산의 역사와 전통문화가 스며있는 곳이다. 이곳의 관광명소가 사전적 의미로는 문자 그대로 산()의 중턱()을 지나는 도로를 뜻한다. 보통의 도시들은 산을 깎아서 평평하게 만든 후 도시를 계획하고 도로를 만드는 지역인 반면, 부산은 한국전쟁의 피해가 전혀 없는 지역일 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난민이 일시에 유입돼 도시에 땅이 부족해졌고 유독 도시 가운데에 산이 많은 도시 지역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러한 방식으로 도로가 생겼단다. 따뜻한 도시여서 눈이 잘 내리지 않지만 위와 같은 이유로 눈이 0.1cm만 와도 도로들이 폐쇄되면서 도시가 마비된단다

행복도시 중구는 부산의 개항과 더불어 전국 각처에서 모여든 상인들이 현재의 영주동 터널위에 정착함으로서 새로운 마을이 생겨나게 되었고, 1889 11 12일 현대청로 ~구 미화당백화점 간 도로가 개설되면서 송현산(현 용두산)을 중심으로 그 당시부터 도시 형태를 갖춘 시가지가 형성 되었다. 1908 4 1일 경부선 기점이 초량역에서 부산역으로 옮겨지고, 1910 10 30일 부산역사(1953년 화재로 소실) 를 준공하여 제1부두까지 철도를 부설하면서 명실상부한 동양 굴지의 무역항으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부산 중구 도로지도 안내판이다. 부산 도심기능수행의 중구는 업무기능 집중으로 금융, 무역, 정보, 통신, 상사기능 밀집과 도심상가 지역으로 부산상권 중심지, 유동·생활인구 운집 그리고 부산의  관문으로 연안여객부두 소재, 국제여객부두 및 부산역 인접 또한 문화관광 자원으로 용두산공원, BIFF광장, 광복로, 책방골목 등이 한국의 현관인 부산항의 중추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중구이다. 중구의 동쪽은 영주천, 서쪽은 보수천을 경계로 하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복병산을 접하고 남쪽은 바다에 임하고 있다.

부산에서 일을 마치고 출장 마지막날에 일터로 출근 전 숙소인 호텔에서 창문으로 바라보는 부산의 남항대교 모습이다. 부산(釜山)이란 한자를 풀이하자면 가마솥을 엎어놓은 모양인 산이라는 뜻인데, 이 산이 당시 어떤 산을 가리키는 말이었는지가 주된 논점이다. 하나는 현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동에 있는 증산(甑中)에서 유래했다는 증산설과, 다른 하나는 현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동에 있는 자성대에서 유래했다는 자성대설이다. 아무튼 대한민국 최초의 광역시(직할시)이자 제2의 도시, 6개의 광역시 중 가장 인구가 많으며, 인천광역시와 더불어 300만 이상의 인구가 거주하는 광역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