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항댐 출렁다리
고려가 망하면서 시작된 충신들의 두문동 고집이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이유로 선대로부터 지금의 나에게까지 이어져 내려옴을 절실히 느끼게한 2018년 성탄절입니다. 한무리로 열다섯명이 떼지어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빠짐없이 모두 서울로 올라갔음에도 나홀로 숙소에 남아 올 해 초에 세웠던 계획을 달성해보려고 성경을 마무리 타자하며 거의 밤을 꼬박 새웠습니다. 그리고 성탄절...31,102절의 신구약 통독타자의 목표를 드디어 성탄절 아침에 감명깊게 달성하였습니다.
목표달성을 축하하는 메시지가 모니터 상에 나타납니다. 출장가방에 담아왔던 노트북 화면이 밝아집니다. 드디어 그 분과의 약속을 지켰다는 감회가 가슴 뿌듯하게 2018.12.25로 선명하게 찍혀 집니다. 누가 시켜서 한 일이 아닙니다. 돈이 되는 일도 아닙니다. 보람이 있는 일도 아닙니다. 한 햇동안 시간과 정성을 바쳐서 신구약 말씀을 타자한 노력은 순전히 고집입니다. 조상대대로 이어져 내려 온 고집쟁이 피가 자랑스럽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그냥 아무 생각없이 하루 하루를 그냥 물처럼 바람처럼 살지 않고, 뭔가를 계획하고 실천하면서 더 나은 삶을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내 일상은 누가 알아주든지 말든지 그저 자랑스럽습니다. 오늘은 올 연초에 계획했던 성경타자 1독을 마쳤기에 그 통독 기념으로 김천 부항댐 출렁다리로 달려 갔습니다. 숙소에서 네비게이션을 찍으니 28킬로 나오더군요. 거창방면으로 가다가 무주방면으로 우회전하니 이곳이네요.
경북 김천시 부항면 유촌리의 감천 지류인 부항천을 2002년 태풍 루사가 지나가며 남긴 홍수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목적으로 댐이 설계되어 2018년 11월 20일 개통한 김천 부항댐 출렁다리는 길이 256m 폭 2m로 국내 최장이랍니다. 청양호 출렁다리는 149m, 강원도 원주의 소금산 출렁다리는 200m, 경기도 파주의 마장호수 흔들다리는 220m로 이제 김천 부항댐 출렁다리가 국내 기록을 갱신했답니다. 2002년에 착공하여 2013년에 준공한 댐을 호반길로 한바퀴 돌아드는데 약 5.5km로 두시간 조금 넘게 걸었습니다.
1995년도에 경북 금릉군과 김천시를 통합하여 더 크고 넓어진 김천은 경부고속도로와 경부선 철도 및 KTX가 지나가는 남북을 가로지르는 우리나라 교통의 축이라서 누구나 편리하게 찾을 수 있는 요지입니다. 댐의 가장자리에 드러난 작고 아담한 산봉우리를 연결하는 부항댐 출렁다리는 현수교 임에도 출렁거림이 거의 없어서 출렁다리라는 명칭이 좀 과하다 싶습니다. 1,400명이 한꺼번에 올라서야 출렁거릴텐데 늙은이 한사람 뿐이라서 그런가 봅니다.
"김천 부항댐 호반길은 종합병원이요. 당신의 두다리가 의사입니다"라고 써 붙여놓은 호반데크길을 걷습니다. 이름하여 "인현왕후 길"은 이조 숙종의 계비였던 인현왕후가 폐위된 후 이곳에 머물면서 복위를 기도했던 청암사가 자리한 수도산을 중심으로 산책로 9km가 조성되어 있는데 다음에 걷기로 하고 그냥 되돌아 나왔습니다. 이렇게 혼자서 걷는 길은 아무리 산자수명한 금수강산이라도 외롭고 쓸쓸함이 요소요소에 자리하고 있음을 다시 깨닫습니다.
현수교 중간에 커다란 선박을 형상화한 섬이 보이네요. 그냥 걷기만하는 단조로움을 잠시 멈추고 주변 산하를 잠시 둘러보고 지나가라는 의미인가 싶어서 돌아봅니다. 드넓은 지평선을 바라보며 어린시절을 보냈던 내 눈에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쌓인 아담한 곳에 이런 호수가 자리하고 있다는 그 모습만으로도 참으로 신비하고 아름다운 곳입니다. 또 현수교 중간에 정자가 있기에 올라서 옜 시조시인의 풍류를 생각하며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천사천하유아독존의 멋진 한시를 읊조려 보기도 했습니다.
김천은 삼산이수의 고장으로 황악산, 금오산, 대덕산이 해발 1,000m의 고도가 넘는 삼 산이 있으며,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낙동강의 지류인 감천을 품고 있는 고장이 바로 김천입니다. 김천중고 출신이라는 긍지가 대단했던 내 둘째 사돈의 프라이드가 떠 오르네요. 이렇게 산 좋고 물 맑은 고장은 역시 인재가 많이 나올 수 밖에 없다는 생각에 미치자 고개가 끄덕여 집니다. 부항땜은 해발 1,176m인 삼도봉이 빚어 낸 샘물로 시작되어 이제 거대한 호수로 변했다는 희망의 샘물 조형물도 참 아름답습니다
호젓한 호반길에는 거의 사람들이 안보이더니만, 국내 인공구조물 최고 높이라는 93m의 타위형 짚와이어 아래는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조금 보이네요. 전망대에 올라가면 백두대간이 보이며 철탑타워 88m 높이에서 와이어를 타고 1.7km왕복하는데 요금이 4만원이네요. 김천시의 시조인 왜가리를 형상화했다는 커다란 구조물을 보면서 혼자는 외로워 둘이랍니다를 생각하자니 더더욱 외롭고 쓸쓸하며 배고픔까지 겹치는 모습으로 내려왔습니다.
지례 흑돼지 마을이라는 곳에 주차를 하자니 주인 아주머니가 반갑게 맞아 줍니다. 늦은 점심시간 임에도 손님이 처음이랍니다. 훅돼지는 2인 이상이어야 한다며 된장찌개를 먹으라더니, 아줌마는 내 밥상 앞에 자릴 잡고 앉아서 왼쪽 다리를 절면서 걷는 이런저런 신상타령을 합니다. 쿵짝을 맞추어 주자니 젊은 시절엔 잘 생겼을 거라며 칭찬인듯 띄워주면서 장사한지 12년 만에 처음으로 1인분 흑돼지구이를 대접한다며 추가메뉴를 해주시는 바람에 정말 맛있고 배 터지게 먹었습니다. 이래 저래 올 해의 크리스마스는 기억해야 할 만큼 정말 의미있는 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