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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베트남어Cộng hòa xã hội chủ nghĩa Việt Nam 꽁화싸회쭈응이어비엣남, 한국한자음:월남사회주의공화국, 문화어:윁남사회주의공화국), 약칭 베트남(Việt Nam 비엣남, 한국한자:越南(월남))은 동남아시아의 국가로 면적은 약 33만 341km2 이며, 인구는 9,649만명으로 세계에서 15번째로 인구가 많은 나라이다.
월남전이 한창이던 시절에 군생활을 하면서 모험과 도전을 즐기던 나는 월남전에 참전하고 싶어 두번씩이나 파월을 자원하였지만 중대장이 필수요원이라며 허락하지 않았고, 작년에도 업무적 출장으로 열흘간의 베트남 방문기회가 다른 용무로 인하여 올 수 없었던 곳이다. 이웃 중국과 라오스, 캄보디아, 태국, 필리핀 등은 여행경험이 있지만, 베트남은 처음이다. 이번에도 아내의 모임인 한마음회에서 여성들만으로 여행이 계획된 곳인데, 멤버 중에 한 분이 건강상의 이유로 보호자가 절대 필요하다는 탓에 덩달아 나도 역시 추가멤버가 되어 뜻하지 않게 옛 미군의 휴양시설이 있었던 이곳 나트랑 땅을 밟게 되었다.
한밤에 도착하는 항공편이라서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숙소인 베트남 카인호아 나트랑(Vinh Hoa 102 Duong Hien Quyen St (650000))에 있는 Nhatrang Horizon Hotel로 들어왔다. 호텔은 나트랑 기차역에서 약 6km 정도 거리에 있고, 나트랑 캄란 공항에서는 약 42km 정도 거리에 있어서 한팀인 13명 우리만 예약된 관광버스로 호텔까지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주변에 혼총 곶, 포나가르 참탑, 탑바 머드 온천 등 관광지들이 많이 있어 특별한 여행을 즐길 수 있는 곳이며, 별다섯개의 특급 호텔이다.
호텔에서 제공하는 부페식 아침식사에서 평소 좋아하는 베트남 칼국수로 맛있고 배부르게 첫날을 시작하면서, 고샅길 걷기를 즐기는 평소 습관대로 나는 잠시 호텔주변을 걸었다. 숙소의 창문에서 바라보니 바닷가에서 의연하게 떠오르는 아침 햇살도 힘차게 내다보며 감상하였고, 바닷가 도로를 아침운동으로 걷는 이곳 주민들 사이로 싱그러운 공기가 온 몸을 감싸고 가쁜하게 돌아드는 나트랑 모습이 정겹다.
이국적인 풍경 중에서 맨먼저 눈에 띄는 건물들의 모습이 프랑스의 모습으로 보인다. 역사적으로 1882년 베트남은 프랑스와 청나라의 청불전쟁에서 승리한 프랑스의 보호국이 되면서 식민 지배를 받는 동안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일부로 편입되었다. 베트남은 프랑스 식민 지배 기간 동안 계속하여 독립 운동을 벌였고,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는 잠시 일본의 지배를 받기도 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1945년 9월 2일 호치민은 하노이의 바딘 광장에서 베트남의 독립을 선언하고 베트남 민주공화국의 수립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프랑스는 베트남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았고, 프랑스와 베트남은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을 벌이게 되었다. 1954년 3월13일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베트남군이 대승을 거두고, 프랑스군이 철수를 하면서 드디어 베트남은 독립을 맞게 되었다. 그러나 서구 열강은 제네바 협정을 통해 베트남을 다시 북위 17도를 기준으로 남북으로 분단시켰고, 약속하였던 전국 선거를 거부한 채 응우엔 왕조의 마지막 황제 바오다이를 꼭두각시 왕으로 내세워 베트남국을 수립하였다.
베트남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응오딘지엠의 쿠테타로 붕괴하고, 베트남공화국이 세워져 남북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미국은 도미노 이론을 내세워 베트남에 개입하였으며, 통킹만 사건을 빌미로 베트남 전쟁이 벌어지게 되었다. 베트남 전쟁 기간 동안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사용한 것보다 훨씬 많은 폭탄을 북베트남 지역에 투하하였고 막강한 화력과 병력을 동원하였으나, 북베트남의 끈질긴 저항과 전쟁을 계속하는 동안 일어난 전 세계와 미국 내의 반전 여론에 밀려, 결국 1973년 파리협정을 맺고 철군하였다. 1975년 북베트남은 사이공을 점령하였고, 1976년 7월 2일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을 수립하였다.
우리 국군이 월남전에 참전하게된 계기는, 1964년 8월부터 참전한 미국이 당시 전투 병력이 모자라게 되자 한국에 주둔해 있던 미군중 제2보병사단과 제7보병사단을 한국에서 철수하여 베트남에 파병하려고 했었다. 이후 월남전 종료와 비슷한 시기에 닉슨 정부에서 제7보병사단을 본토로 철수 해체했다. 그런데 미군이 빠져나가 전력에 공백이 생겨 벌어질 안보부담의 증대와 북한의 침공 위협을 우려한 우리나라 박정희 정부는 미국 측에 먼저 "우리가 너네 대신 병력을 보내줄게!"라고 제안을 하게 된다.
이 제안을 미국이 이를 승낙하면서 1964년 9월 의무대와 태권도 교관단이 파견된 것을 시작으로, 1967년 8월까지 4차례에 걸쳐 우리국군이 베트남에 파견되었다. 본격적으로 참전하게된 한국도 육군 수도사단(맹호부대), 해병 2여단(청룡부대)의 전투 병력을 보내고, 뒤이어 육군 9사단(백마부대)을 파견한다. 그렇게 5만 병력 규모의 한국군(누계 합산으로 총 30만)이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으며, 1965년부터 1973년까지 8년에 걸쳐 한국군은 56만 3,387건의 작전을 수행했다. 휴게소에 붙여 놓은 라이따이한이 맺힌다.
첫 번째 찾은 곳이 롱손사(용산사)이며, 이곳은 1889년에 지어진 오래된 불교사원이다. 롱손사에서는 하얗고 거대한 좌불인 부처님 상을 먼저 만나 볼 수 있으며, 파란 하늘에 하얀 불상이 어우러져 참으로 그림같이 아름다운 곳이다. 우린 20대의 풋풋한 나이에 처음 만나서 젊은날을 같은 직장에서 함께 일하며 5년 동안 같은 통근버스로 출퇴근을 함께하며 보낸 끈끈함으로 맺어진 우정의 친구들이다. 이제 50년의 세월을 흘려보낸 후, 또 이렇게 잠깐만이라도 함께 이국땅에서 정감을 나눈다는 사실이 스스로 생각해봐도 역시 자랑스럽고 행복하다.
롱손사는 언덕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조금 걸어서 올라와야 한다. 이곳은 약 31도의 날씨라 덥기도 하고 계단을 걸어서 올라와야하는 탓에 무릎이 불편한 사람은 그냥 아래서 쉬며 주변 경관을 즐기면 된다. 계단위를 오르면 여기에 누워있는 14m크기의 거대한 와불상을 만난다. 불교국가인 태국에서 선물한 불상으로 오른쪽 팔꿈치가 검게 변해있 모습은, 이 팔꿈치를 관람객이 손으로 만지면 행운이 온다는 믿음 때문이란다. 이 베트남의 절에서도 한국의 절과 마찬가지로 승려들을 볼 수 있었고, 베트남 승려의 모습은 우리 모습과 달라서 이국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절의 입구에서 두마리의 용이 양 옆으로 앉아 여의주를 물고 있는 모습이 너무 신비로워서, 용의 입 속으로 손을 넣어서 그냥 여의주를 만져보고 싶었다. 이곳 베트남의 용은 악어, 뱀, 고양이, 쥐, 새를 합친 이미지란다. 역사적으로 베트남 사람들은 강 근처에 살았기 때문에 악어를 베트남 최초의 용의 종류인 "퉁룽룽" 또는 "자오룽"으로 숭배했으며, 고고학적 유물에서 발견된 용들의 종류들이 여러곳에 있단다.
절 마당에도 곳곳에 걸려있는 오방색기를 만난다. 오방색이란 오행사상을 상징하는 색을 말한다. 동양의 오행사상에서 유래되었으며 방(方)이라는 말이 붙은 이유는 각각의 빛들이 방위를 뜻하기 때문이다. 파랑은 동쪽, 빨강은 남쪽, 노랑은 중앙, 하양은 서쪽, 검정은 북쪽을 뜻한다. 오행은 음양오행(陰陽五行)중에서 오행을 말하며, 동양에서 오행은 우주 만물의 변화를 나무(木), 불(火), 흙(土), 쇠(金), 물(水)의 다섯 가지 기운으로 압축해 설명하려고 했던 사상이다.
포나가르 힌두교 사원이다. 이곳의 주소는 61 Hai Thang Tu, Vinh Phouoc, Haha Treng, Khah Hoa 6500000, Vietnam이다. 현재도 참족은 베트남의 소수민족으로 남아있는데, 포나가르 사원은 7세기 경에 지어진 것으로 힌두교 최고의 신인 ‘시바’의 부인이자 10개의 팔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포나가르’를 모시던 사원이다. 현존하는 참파왕국의 유적으로 가장 오래된 것이며, 포나가르 사원을 방문하여 여러 기둥들과 조각들, 탑들을 보면서 우리와 다르게 상당히 이국적인 느낌이 든다. 이곳에서 가장 높은 탑은 28미터 정도로 높으며, 높은 곳에서 나트랑(나짱)의 도시를 내려다 보는 멋도 있다.
이번 여행을 함께 한 모임에 참가한 13명이 모두 모인 단체 기념촬영이다. 5년 동안 무상 거주하도록 제공되는 관사인 아파트에서 47년전에 처음 만났던 여인들이란다. 당시에는 아마도 20대의 젊음과 미모를 가진 모습이었을텐데, 지금은 그 때 그 시절의 싱싱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지만 그래도 매월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친교를 이어온 40여년의 우정이 돋보인다. 세월속에서 묻어나는 사람과 사람사이 공간속에 엉켜있는 끈끈한 사랑이 하트를 펑펑 내지르는 멋진 모습으로 눈에 보이는 것 같다.
나짱(나트랑)에는 담시장이 유명하다. 이층으로 된 시장에서는 현지에서 생산된 식료품이나 과일 그리고 여러 기념품과 함께 짝퉁제품도 구입이 가능하다. 내가 머리에 쓴 모자도 역시 이곳에서 구입한 짝퉁이다. 라탄가방과 같은 수공예품이나 동남아식 편한 바지 구입도 여기가 좋단다. 여기에는 호객행위도 있고, 물건 겂은 흥정도 가능하단다. 다만, 관광객에게는 더 비싸게 받으려는 경향이 있으므로 흥정해도 성공할 확률이 매우 높아서 그렇단다. 일행은 너무 후덥지근하게 더워서 그냥 앉아 과일쥬스만 마셨단다.
밤이 되자 바다가로 나왔다. "동해의 진주"라고 불리는 나트랑시는 2003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곳이기도 하며, 월남전 당시 한국군 야전사령부와 십자성부대가 주둔했던 곳으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지명이다. 바다와 섬을 사랑하는 외국의 관광객들에게 아주 친숙한 곳이다. 베트남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이 있는 이곳에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발견하는 이국적인 그런 경험으로 유명할 뿐만 아니라, 나트랑 (나짱)은 중요한 유적지를 모을 때 여러 전통 문화의 "보물 상자"이기도 하다.
베트남 내에서도 아름다운 백사장 주변으로 병풍처럼 드리워진 야자수 나무들과 에메랄드 빛 청정바다가 조화를 이루는 곳으로 손꼽히는 냐짱 해변은 약7km나 길게 주욱 이어진다. 베트남을 대표하는 빈펄 리조트와 해변을 따라 에바종, 아남, 쉐라톤 리조트 등 럭셔리 리조트들이 곳곳에 건설되었으며, 해변에는 많은 여행객들이 모래를 밟으며 바다를 즐기고 있다. 더불어 여기에는 시원한 바람까지 불어오는 풍경으로 마음마저 여유롭게 만들어 준다.
베트남을 대표하는 ‘나짱’으로도 불리는 나트랑은 눈이 시릴 정도의 화이트 비치가 매력적이다. 스피드 보트, 윈드서핑, 패러세일링, 제트스키 등을 즐기기 좋은 바다 환경은 수많은 레포츠 마니아를 유혹한다. 감탄사를 연발하며 엄지를 쳐들게 하는 신선한 해산물로 부페 식사를 마친 저녁식사 또한 식도락 여행의 추억을 선사한다. 무엇보다도 예부터 휴양지로 개발된 곳이라서 고대 전통문화가 엿보이는 럭셔리 리조트와 부티크 호텔 등 숙소에서 즐기는 호캉스 여행지로도 호평 일색이란다.
해안선을 따라 코코넛 나무 그늘 아래로 만들어 놓은 산책로를 따라 밤길을 혼자 걷는 낭만과 멋도 느낄 수 있다. 하얀 밀가루를 뿌려놓은 듯한 백사장을 신발을 벗어들고 맨날로 밟으며 한발 한발 내디는 걸음마다 부드러운 느낌이 발끝에 그대로 사각사각 전해진다. 후욱~ 코끝에 스치는 열대과일의 향기와 귓가에 전해지는 처얼썩~ 파도소리가 온 몸을 편하게 감싸고 돌아든다.
나트랑의 시내 관광을 위해서 전동식 세발자전거의 앞자리에 만들어진 시클로 의자에 앉아 동네 한바퀴를 돌아 본다.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이리저리로 빵빵거리며 클락슨 소리를 무작정 내지르며 무질서하게 마구 달려가는 그런 거리같은 느낌이 드는 이런 곳을, 무사고로 평안하게 앉아 시내를 구경하는 모습이 내가 스스로를 생각해 봐도 참으로 신기하다. 뭔가는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교통질서가 잡혀있는 곳이라는 생각이다.
나트랑에서 다음 여행지인 달랏(Dalat)으로 넘어가는 길은 차량이동 시간이 약 3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너무 긴 시간을 자동차에 앉아 달려가야 하므로 중간에 휴식을 위하여 한시간 건너 한번씩 이렇게 한적한 휴게소에 들르게 된다. 이곳 휴게소에는 강에서 건져온 돌멩이로 만들어 놓은 물소가 먼저 나를 반기며 어서오라고 맞아 준다.
달랏(Dalat)은 우리가 도착했던 국제공항이 있는 나트랑에서 134km, 베트남 경제중심지인 호치민에서 305km 떨어져 있는 곳이란다. 그러므로 달랏(Dalat)으로 이동 방법은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서는 매일 운행되는 항공편으로 약 1.5시간 소요되고, 경제중심지인 호치민에서는 항공편으로 40분, 자동차를 이용하는 경우 6~7시간 소요되며, 나트랑에서는 자동차를 이용해서 약 3시간정도 걸린단다.
130Km 내외 정도의 이동거리라면, 아마도 우리나라에서라면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자동차로 약 한시간 정도면 될 것 같은 수준이다. 차를 타고 오면서 중간에 교량이나 터널같은 시설물을 전혀 만나지 못했고, 꼬불꼬불한 산길에 좁은 도로를 신호등과 차선도 없이 마주치는 차량과 서로 피해가면서 줄레줄레 달려가는 모습이 너무나 신기하다. 차창밖으로 바라다보이는 해발 1500미터의 높고 험준한 산악을 보면서, 예전 월남전에서 세계 최강의 미국군이 이곳 산악 게릴라 전투에서 패한 이유를 알 수 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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