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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꽃밭머리길(原州)

영대디강 2021. 8. 16. 19:08

치악산 둘레길의 11 코스 139.2  1코스가 펼쳐지는 행구동은 국립공원 치악산을 등지고 앉아 광활한 원주벌을 내려다 보고 있다. 아름답고 조용한 지역으로 고려 말의 충신 운곡 원천석(耘谷 元天錫) 선생의 묘역 있어 조상님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코스 내에는 요즘 국형사 솔바람 숲길을 조성하는라 황토흙을 퍼 나르는 중장비 소리가 요란하다. 치악산의 소나무 속에 자리한 국형사(國亨寺) 관음사(觀音寺), 보문사(普門寺) 고찰이 많으며, 골짜기마다 환상적인 비경을 자랑하는 관광자원들이 묻지 않은 보존되고 있어 시민들의 피서와 휴식처로 사랑받고 있다.

1코스 꽃밭머리길이 시작되는 국형사 초입이다. 이곳에서 시작하여 종점인 제일참숯까지 11.2Km로 약 세시간을 걸어야 한다. 국립공원 치악산을 둘레둘레 걸으면서 광활한 원주 벌을 내려다 볼 수 있.

치악산의 소나무 속에 골짜기마다 환상적인 비경을 자랑하는 풍경들이 잘 정리된 데크길 주변에도 나타나고, 때로는 원시의 숲속을 걷는 자연인처럼 맑은 물소리와 풀벌레, 그리고 이름모를 새 소리와 벗삼아 걷기도 한다.

피톤치드를 흠뻑 마시며 소나무와 전나무 숲을 걷다가 마주치는, 출입금지라고 써 붙여놓은 이 팻말은 개인의 사유지이니 들어가지 말라는 친절한 표지판이라서 그런지 정겨운 마음이 들 정도로 포근하다.

치악산은 수려한 경관과 함께 이렇게 원주시내를 한 눈에 담을 수 있도록 광활한 풍경이 멋지다. 고려 말의 혼란한 정치를 개탄하며 치악산에 들어가 은거했던 운곡 원천석(元天錫 1330~?) 선생의 큰 뜻이, 요즘의 코로나와 더불어 살아가는 마스크 세상살이 속에서도 이렇게 펼쳐놓고 싶다. 그의 묘역은 2000 1118 강원도기념물 75호로 지정됐다. 원천석 선생은 어릴 때부터 학문에 밝아 목은 이색(李穡) 등과 함께 성리학 보급에 역할을 했다. 조선 태종 이방원의 어릴 스승으로, 조선 개국 벼슬이 내려졌으나 끝내 거절하고 태조가 찾아왔을 때에도 만나지 않으며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켰다.

조금 걷다보면 습한 산기슭의 기온탓인지 온몸에 땀이 흐른다. 중간중간에 쉼터의자가 많이 마련되어 있어서 흐르는 땀을 식히우면서 솔바람 사이로 몸을 내어 맡기고 가쁜 숨소리를 가다듬을 수 있고, 멀리로 원주 시가지를 내려다 볼 수 있어서 더욱 좋다.

세명선원 담장이 황토색 벽돌이고 이 담장사이에 어우러져 피여있는 능소화 꽃들이 상큼하다. 둘레길이 소나무 숲으로만 쭈욱 이어지면 좋겠지만, 여기서 부터 관음사까지 시멘트 포장길이 나타난다. 땡볕에 지치거든 주변에 문을 연 카페에서 쉼표를 찍으란 뜻인가 보다.

광복절 연휴, 그리고 코로나19, 스스로의 닫힌 마음을 돌아보게 된다. 아파트 단지에서 유일하게 한집 테라스에만 태극기가 결려있는 모습을 올려다 보면서, 그냥 홀가븐하게 집을 나서서 이곳으로 달려왔어도, 왠지모를 아쉬움이 가슴 저 깊은곳에 남아있다. 

이 아름다운 강산을 누가 우리에게 물려 줬을까? 아무 생각없이 그냥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너무나 크고 강한 나라들의 틈바구니에서 부대끼며 살아가야하는 이 나라를 왜 더욱 사랑하라고 가르쳐 줬을까? 산자수명한 이 강산이 자랑스러운 때문일까? 자손대대로 가꾸고 지켜야하는 이유가 조상들에게 물려받은 이 강산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반적으로 산사에 가면 만날 수 있는 토담도 일주문도 없이 세상을 향해 열려 있는 관음사는 1971년에 창건된 사찰로, 역사는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지만  한국불교의 맥을 이어온 전통종단의 산호사찰로 석호선사의 기도정진 관세음보살의 계시로 창건하였다고 한다.

고둔치(곧은재) 입새, 수려한 산자락에 안긴 기도 도량 관음사, 재일 한국인 3 林寬至(한국 이름 임종구)씨가 조국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과 남북통일의 발원으로 탄생시킨 108 대염주의 사연이 보고싶어 사찰 경내로 들어섰다.

염주(念珠) ‘생각하는 구슬’로 구슬은 부처님을, 구슬을 꿰는 실은 관음보살을 상징한다고. 치악산 관음사에 봉안된 통일대염주는 지름 74, 무게 240㎏의 모주(母珠) 1 개와 지름 45, 무게 45㎏의 나머지 염주로 벌의 전체 무게가 7.4톤에 이르는 세계 최대의 염주라고 한다.

나고야 항에서 단단하기가 무쇠와 같은 신령스러운 수령 2천년의 부빙가 나무를 보고 즉시 부빙가 원목을 구입하여 염주를 만들게 되었으며, 2000 5월에 108염주 3벌을 완성하였다. 한벌은 원주 치악산 관음사에 보관함과 동시에 한벌은 일본 화기산 통국사에 봉안하였으며, 나머지 한벌은 통일 후 북한 묘향산 보현사에 봉안할 예정으로 현재까지는 원주 관음사에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산신각 뒷쪽에는 다양한 돌탑과 함께 석비가 세워져 있었는데 석비에  山神功德碑라고 세겨져 있어, 공덕비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보아서는 아마도 신신각을 중건할 도움을 주었던 신도들의 이름이 아닌가 생각된다.

1코스의 중간 중간 자릴잡은 카페들의 풍경이다. 고즈녁하게 한가롭다. 

풍경이 아름답다기보다 그야말로 기가 막힌다. 문 닫힌 어느 카페 입구에 앉아 보기도 하고, 자작나무 아래 서서 기가막히도록 아름다운 풍경에 취해본다.

치악산 주변에 예전에는 거의 칠팔십개의 절이 있었다는데 지금은 칠팔개 정도만 남아 있다고 한다. 유명한 절로는 치악산 산봉우리 높은 곳에 위치한 구룡사, 상원사 등을 소개하고 있다. 이곳은 성문사이다.

성문사(星門寺) 고려 중기 대각국사 의천 스님이 천태종을 개창하면서 법안종에서 천태종 사찰로 변모한 거돈사(원주시 부론면) 있다. 거돈사는 천태학을 고려에 널린 알린 원공국사(圓空國師, 9301018) 주석한 도량이다.

의천(義天1055 10 30(음력 9 28) ~ 1101 10 28(음력 10 5))은 고려시대 왕족 출신 승려, 작가이다. 자는 의천(義天), 속성은 (), 이름은 석후(釋煦) 또는 ()이며, 호는 우세(祐世), 흔히 대각국사(大覺國師)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시호이다.

성문사는 1971 창립 이후 지역사회 봉사와 각종 신행단체의 활동, 성문유치원과 성문노인요양원 등을 운영하며 어린이 교육과 복지 포교에 힘써 왔으며, 지역민과 함께 있는 문화 공간 조성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는 도심 포교 도량이다.

대각국사 의천대사는 당시 혼란했던 고려불교를 하나로 통합하고 바로잡기 위해 6세기경 천태 지의가 개창한 천태종을 한국에 들여왔고, 천태사상은 학문과 수행을 두루 겸비한 새로운 불교정신이었으며 불교사상을 모두 아우르고 통합하고 있었다. 

치악산 둘레길 표지목도 예술작품처럼 아름답다.

맨발로 걸을 수 있는 황토길도 만들고, 땀에 절은 발을 씻을 수 있도록 이렇게 족욕장도 만들어 준 원주시에 감사한다. 이 물로 불치병도 치료했다는 희희공주의 옛 모습도 아슴하게 보이는 듯하다. 

조선 2 정종의 둘째 공주인 희희공주(숙신옹주) 폐병에 걸려 보문암에 와서 낭응대사의 지극한 간호를 받으며 백일기도를 드리고 약수터의 물을 마신 병이 말끔히 낫자 정종이 절을 크게 중창했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숙신옹주(淑愼翁主, 생몰년 미상)는 조선 왕족으로 정종(定宗) 둘째 딸이며 어머니는 숙의 기씨(淑儀 奇氏)이다. 판돈녕(判敦寧) 김세민(金世敏) 혼인하여 4 4녀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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