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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장

마무리 흐름

영대디강 2025. 11. 1. 10:34

세월을 거스르며 산 사람이 지구상에 없노라는 선배들의 넋두리처럼

건강하고 즐겁게 살아 온 젊음이 이젠 마무리 흐름으로 바꾸어지고 있다.

어젯밤 갑자기 왼쪽 어금니 잇몸이 아파서

주말마다 청정한 공기 찾아 길 떠나는 만보걷기 그시간에

11월 첫날은 이른아침 치과를 찾았더니, 

이빨과 잇몸사이에 음식물이 껴 잇몸이 주저앉은 증상은

의사인 자기도 노화를 치료할 수 없노란 말.

치간칫솔로 이와 잇몸 사이에 음식물이 끼지 않도록 관리하란다.

정말 오랜만에 토요일 빈 집에 홀로 앉아

머언 산 바라보며 인생무상을 한숨짓다가

창 옆으로 보이는 베란다와 테라스를 무심코 살펴보니

여기저기 곰팡이가 벌여놓은 페인트 천정과 벽체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다. 

그동안 가장으로 이 집에 살면서도

내가 관리인이란걸 모조리 잊고 살았었다. 

청소기며 세탁기를 한번도 돌려 본 기억이 없다.

아침에 나갔다가 밤이면 돌아오는 일상에서

이 곳을 그냥 잠자리로만 여겼나보다.

여섯이 살다가 두사람이 살기엔 아파트가 너무 넓으니

이젠 새로 지은 작은 규모 아파트로 이사하자는

수년 전 아내의 요구를 거절하며,

내 평생에 이렇게 오래도록 4반세기를 살았던 집은 없었다며

이곳이 바로 내 고향집이란 억지 논리를 고집하고

뭉그러진 집은 관리하지 않은채 그냥 살았음을 자책하면서,

폰카로 찍어들고 집수리를 요구하려 페인트 가게를 찾았더니

이런 허드렛일은 하룻일거리도 안돼서 모두가 기피하기 때문에

페인트를 갖고가서 집주인이 직접해야 한단다.

이 집을 샀던 당시 집을 수리해 주셨던 장인이 문득 떠 오른다.

사위가 있어 나도 장인임에 까짓거 이런걸 못하겠는가 ~

타고난 뱃장으로 우쭐대는 자신감 솟는다.

여든이 넘은 연세임에도 수리해 주셔서 지금까지 왔는데...

그렇다. 시도해 보자. 페인트 한통과 롤러 굴림판 그리고

붓과 롤러를 사들고 들어와, 일단 커다란 비닐 비옷을 머리까지 덮어

챙겨입고 일회용 비닐장갑을 낀 후 바닥에 신문지를 깔아 놓은 다음에

구석지에 엉겨붙은 곰팡이와 페인트를 벗겨내는 작업을 후두둑 후두둑 처리했다.  

다음엔 롤러에 페인트를 발라서 시멘트 벽에 칠하니 반쯤은 아래로 떨어지고

겨우 반쯤만 시멘트 위에 붙는다. 이래선 안되겠다 싶어서

그냥 롤라 대신에 페인트 붓으로 다시 칠해 본다. 마찬가지로 또 그렇다.

요령이 생긴다. 붓의 한쪽만 페인트를 묻혀 그쪽으로만 조심스레 발라본다.

맞다 바로 이거다. 이곳 저곳 둘러보며 보기 흉했던 양쪽의 베란다와 테라스를

돌아들며 이렇게 엉성하게 페인트를 덧칠 했다. 

하다보니 요령이 생겨서 난생 처음 해보는 이런일도 재밋다.

몸을 놔두고 머리로만 살아 온 한 평생도 몸을 쓰다보니 뭔가 된다. 

이후 온 몸이 모두 고장난 듯 아프다. 손목이 삐그덕 거리더니 왼쪽 발바닥부터

허리며 어깨랑 발바닥까지 중풍처럼 왼쪽편이 모두 고장난 듯 그렇다.

마음만 젊은 그런 늙은이가 바로 나였구나 돌아보자니,

세상을 속여도 나이는 못 속인다는 선배들 말처럼

내 인생도 이젠 마무리 흐름으로 바꾸며 분에 넘치는 짓 하지말고

조심스레 겸손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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