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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쌍봉산둘레길(華城)

영대디강 2024. 3. 10. 04:28

경기도 화성시 "화성 3.1운동 만세길 안내지도"에는 걷기코스가 31km이어져 있으며, 당일에 모든 코스를 종주할 자신이 없어서 그 중 우정읍 조암리의 "쌍봉산"이 걷기코스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어 쌍봉산을 걷기로 선택하였다. 지도를 보며 먼저 머릿속에 "삼월 하늘 가만히 우러러 보며유관순 누나를 생각합니다/ 옥 속갇혀서도 만세부르다/ 푸른 하늘 그리며 숨이 졌대요// 삼월하늘 가만히 우러러 보며/ 유관순 누나를 불러 봅니다/ 지금도 목소리 들릴듯 하여/ 푸른 하늘 우러러 불러봅니다//"의 동요가 오랜 세월속에서도 잊혀지지 않고 생생하게 떠오르는 그 시절 그 가사에 스스로 감탄하면서 시작한다.  

쌍봉산은 해발 117M의 낮은 산이며, 화성시 장안면과 우정면을 아우르는 산이다. 1919 3.1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자, 화성지역은 여느 지역보다 격렬한 3.1운동을 전개했다. 191943일 조곡리를 출발하여 석포리, 소촌리를 거쳐 어은리의 장안면사무소에 도착한 만세꾼들은 면사무소를 전부 불태웠다. 이후 쌍봉산 남쪽 봉우리에 올라 만세를 부르며 독립의지를 다졌다. 이곳 쌍봉산은 화성지역 3.1만세운동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유적지이다. 1919, 만세를 외치며 걸었던 이 길에는 독립운동가의 집터, 생가, 관공서, 횃불 시위운동 장소 등이 남아있어, 만세길을 걸으며 그날의 역사를 오늘에도 되새겨 볼 수 있다.

쌍봉산 근린공원 추차장에서 걷기를 출발하여 맨처음 만나게 되는 '쌍봉산 등산로 입구' 표지석이다. 산림임업 용어사전에는 '등산로(mountaintrail路)는 등산(자연자원의 보존과 이용, 분산같은 공원관리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용이 지정된 운동, 놀이, 탐험따위의 목적으로 산에 오름)있도록 조성된길'이다. 이곳은 산림의 이용촉진과 이용자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하여 필요한 등산로를 조성하고 이를 보전 · 관리한다. 등산로의 조성 · 보전 및 관리를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하여 매10년마다 관할 산림의 등산로에 대한 실태를 조사하고, 관리계획을 수립하여 등산로를 관리한단다.

쌍봉산 등산로의 방향 안내 표지판에는 쌍봉산 산책로(총길이 1.4km)로 나타나 있다. 산책로(, walk road)는 하천, 공원,산야 등에 주로 산책을 목적으로 만든 길이며, 운동시설, 정자와 같은 휴식시설과 같이 구성돼 있는 경우가 많다. 산책로는 하나의 테마(3.1운동 만세길)로 구성되어 지역의 관광, 문화코스로 자리매김하는 경우가 다수이. 최근들어서는 환경친화적 분위기가 주목받고 있어 도시내에서도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둘레길보다 개념이라 생각하면 된다. 이용객은 이곳을 산책하는주민들이며, 북한말로는 '거님길'이라고한다고 위키백과에서 설명하고 있다. 

3월임에도 영하의 기온으로 날씨가 쌀쌀하고 바람이 불어서 산책로의 서쪽인 왼쪽방향으로 난 길을 따라서 걷다보니, 우리가 산행시 꼭 기억해야 할 현위치 표시목이 나타난다. 국가지점번호는 국토 및 인접 해양을 일정 간격으로 나눠 지점마다 번호를 부여한 제도이며, 격자형 좌표형식의 위치표시체계로 경찰과 소방 및 산림청 등 기관별로 서로 다른 위치표시체계를 표준화하였으며, 사고나 재난같은 긴급상황에서 공동활용하기 위해 2013년에 도입한 제도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쌍봉산 산책로가 2.0km로 표시되어 있다. 화성시의 쌍봉산산책로 표지판보다 약600m의 길이가 더 길게 차이가 나는데 어느게 맞는걸까?

산책로를 따라서 걷다보니 중간 중간마다 '둘레길 산책 방향'이라는 화살표 표시판이 보인다. '둘레길(circumference trekking way)'은 산 둘레를 고리모양으로 연결하는 길로, 장거리 도보길 관광사업진흥을 목적으로 도보여행용이하게 하기위해 조성한 길이다. 걷기의 동기 부여를 위해 스탬프 투어병행하기도 한다. 둘레길은 '걷기길', '걷기여행길'이나 '도보여행길'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며, 한국관광공사에서는 '걷기여행길'이라는 명칭으로 관련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 '올레길'서울특별시 '북한산 둘레길' 프로그램의 성공으로, 이곳도 이를 벤치마킹해서 둘레길 만들었단다.

쌍봉산의 정상으로 오르기 위해서는 이 문을 통과해야 한다. 불로문(不老門)이다. 이 문을 지나면 노화를 더디게 하거나 아예 늙지않게 하여 오래도록 사는 것이 가능해질까? ㅎㅎ.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이를 실현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고안(考案)하였으나 인간에게서 성공한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례는 현재까지 존재하지 않는단다. 요즘의 우리사회는 평균수명이 너무 길어져 오래사는 장수가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데, 명실상부 이미 노인이 된 나는 이 불로문을 그냥 즐겁게 오고갔다.

불로문을 지나고 나니 정상을 향하여 데크로 만든 계단이 끝이 보이지 않을만큼 길게 나 있다. 정상까지 몇계단이나 되는지를 처음에는 하나 둘씩 머릿속으로 셈하면서 계단을 밟아 오르다가 어느 순간에 헉~ 숨을 내쉬며 잊어 버렸다. 무한한 생명이나 영원한 젊음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누구라도 가지는 욕망이지만, 그래도 시간의 흐름속에서도 젊음을 유지하려는 욕구는 이렇게 허무하게 그냥 본능으로만 끝나고 마는 것 같다. 불로문을 거쳐 올랐음에도 역시 세월을 이길 수 없는게 바로 사람의 한계인가 보다. 국어 교과서를 통째로 암기했던 60년전 고교시절에 외웠던 " 吾等 我 朝鮮 獨立國임과 朝鮮人 自主民임을 宣言하노라. 此로써 世界萬邦하야 人類平等 大義 克明하며, 로써 子孫萬代하야 民族自存 正權 永有 하노라"기미독립선언서의 전문이 아직도 떠 오르는데.....

둘레길을 서쪽에서 동쪽 방향으로 걸으며 숲속으로 난 오솔길이라 그런지 이곳은 아주 무더운 한여름 낮에도 걷기에 아주 좋겠다는 생각으로, 찌는듯한 여름날에 다시 이곳을 찾으리라 그런 약속을 혼자 해본다. 아늑하고 조용한 숲길을 걸으며 까치 울음소리와 이름모를 산새들의 지저귐 소리도 클래식 교향악처럼 들으며 걷는다. 

주변에 산소들이 아주 많은 풍경을 보니 이 산은 명당인가 보다.  명당(明堂)은 풍수설(風水說)에서 나온 말로 그 자리에 조상의 묘를 쓰거나 집을 지으면 부귀영화를 누린다는 자리이다. 좌청룡(左靑龍)ㆍ우백호(右白虎)ㆍ남주작(南朱雀)ㆍ북현무(北玄武)의 중심혈(中心穴) 자리를 말한다. 먼 뒤쪽에서 흘러내려온 산(太祖山)이 크게 멈추고(玄武) 거기에서 좌우로 갈라져 내린 두 산자락(內外靑龍 內外白虎)이 감싸 있으며 앞에는 물이 흐르고 가까이 안산(案山)과 멀리 우뚝 솟은 산(玄武)이 바라다보이는 중심이 되는 자리이다. 이곳에 집을 지으면 양택(陽宅), ()를 쓰면 음택(陰宅)이라고 한다. 양택의 경우 주 건물을 중심으로 내명당ㆍ외명당ㆍ중명당ㆍ소명당의 구별을 하기도 했다. 이 명당은 적게는 개인 가정으로부터 크게는 국도(國都)를 선택하는 일에까지 크게 영향을 미쳤다.

울창한 소나무 숲 사이를 걷는다. 소나무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나무로 전국 산야에서 많이 자라는 상록 침엽수이다. 줄기 윗부분의 껍질이 적갈색이다. 잎은 2개씩 달리며 2년 후 가을에 떨어진다. 한 나무에 밑씨 솔방울(겉씨식물의 암꽃)과 꽃가루 솔방울(겉씨식물의 수꽃)이 따로 달리는 암수한그루로 5월에 꽃이 핀다. 종자 솔방울은 2년에 걸쳐 성장하며, 종자에는 흑갈색의 날개가 달려 있다. 솔잎 꽃가루인 송화가루를 식용하며, 나무는 목재와 땔감으로 쓰인다.

쌍봉산(雙峰山)은 봉우리가 두 개로 되어 있어 먼저 찾은 북쪽 봉우리에는 누군가 리본을 매달아 놓았다. 쌍봉산의 명칭은 고려시대 쌍부현(雙阜縣)이 있는 곳의 산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전한다. 아주 오래전에는 이곳에 봉수(烽燧)가 있었다고 전하나 근거는 없으며, 일제감점기 3.1운동 당시 인근 마을 주민들이 이 산에 올라 만세를 불렀다. 또한 1794(정조18년)에 발간된 수원부읍지에 쌍부산(雙阜山)이 나오는데, 우정읍에 있으며 서남해를 바라볼 수 있다는 기록이 있어 쌍봉산의 본래 이름은 쌍부산(雙阜山)이라고 할 수 있다.

쌍봉산 남쪽 봉우리에는 각종 운동시설과 함께 제각(祭閣)이나 화장실같은 건물이 보인다. 아마도 이 둘레길에서 화장실을 찾을 수 없어 아쉬운 마음에 그렇게 생각했나 보다. 화장실(化粧)은 문자 그대로는 화장을 고치는 방이다. 일반적으로 노상 배변을 하거나 농촌 지역에서는 구덩이 변기 위에 화장실이나 옥외변소를 사용했고 도시 지역에서는 거리나 배수구로 비워진 변기통을 사용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는 공중 화장실이 있었고, 경우에 따라 기초적인 하수도 시스템과 연결된 실내 배관이 있었다. 중세 수도원의 화장실은 리어도터(reredorter) 불렸다. 이곳에도 화장실은 꼭 필요한 시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

쌍봉산 남쪽 봉우리에 우뚝 솟아 있는 4층으로 된 사각형 타워전망대이다. 둘레길을 한번 걷고나서 정상인 두 봉우리를 모두 찍고 e코스로 돌아 전망대에 올라서서 만보계를 펼쳐보니 이제 겨우 5,280보이다. 지금까지 걸었던 코스와 반대로 다시 한버 더 걸어야 되겠다고 맘 속에 만보걷기를 목표를 정한다.

육각정의 멋진 모습이다. 쌍봉산을 예전에는 이 산에 잣나무가 많아 백산(栢山)이라고 불렀다고 전하기도 하며, 이 산의 정상을 망월봉(望月峰)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후에 이 산에 장사들이 나서 마주 보이는 남산의 장사들과 돌을 던지며 싸움을 하였는데, 쌍봉산 장사가 힘이 세어 돌이란 돌은 다 남산으로 던져 쌍봉산에는 돌이 없고, 남산에는 돌이 많게 되었단다. 또한 이 지역에서는 쌍봉산을 바라보고 집을 짓고 살면 자손이 많고, 먹을 복이 많으며 다같이 다복하다고 전한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화성평야의 모습이다. 하늘과 땅이 맞닿은 지평선을 바라보며 너른 들판에서 태어나고 자랐던 어린날의 기억으로도 이렇게 광활하게 펼쳐진 들판을 바라보면 가슴이 그냥 확 트임을 느끼게 된다. 한마디로 발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곳이 모두 내 것인듯 그야말로 아주 아주 시원하다. 

멀리로 서해바다가 보이고 산 아래로는 길게 누운 저수지가 멱우지란다. 경기 화성군 우정면 멱우리에 있는 수면적 154000평의 조암낚시터이다.  근래에는 굵은 떡붕어 자원이 부쩍 늘었단다. 산란기에는 상류권에서 월척 잔치가 벌어지며, 연안의 좌대나 수상좌대를 이용하면 낚시하기 편리하단다. 가능한 수초대를 의지하는 관건이라는데, 내가 낚시인은 아니지만 궁금하여 한번 찾아 가보고 싶다.

쌍봉산의 남쪽 봉우리에 세워놓은 전망대에서 바라본 북쪽 봉우리가 봉긋하게 솟아 있다. 이곳에서 화성3.1만세운동의  참가자들은 '조선 독립 만세'라는 구호를 앞세워 일본제국의 무단통치(武斷統治) 거부하고 나라의 독립을 선언하였으며, 이는 민간과 지식인의 반향을 일으켜 대규모의 전국적 시위로 발전하였다. 시위가 끝난 뒤에도 열기는 꺼지지 않고 각종 후원회 시민단체가 결성되었고 민족 교육기관, 조선여성동우회와 근우회 등의 여성 독립운동 단체, 의열단 등의 무장 레지스탕스, 독립군 탄생했으며 종래에는 현대 한국의 모체(母體)인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낳은 운동이다

경기 화성군 우정면 멱우리의 멱우지(覓祐)이다. 멱우라는 이름은 대한제국기 일본 군인이 한국 여인을 애첩으로 삼아 아이를 갖게 되자 주민들이 없애려고 찾아 헤매던 중 마을 주민들의 도움으로 이 마을에 숨어 있는 여인을 찾아 참수시켰다 하여 찾을 멱()자와 도울 우()자를 따서 멱우리라 부르게 되었단다. 또 지형이 머구리(개구리)처럼 생겼으므로 머구리, 머구니 또는 멱운, 멱운동이라 한데서 멱우라는 명칭이 생겼다고도 한단다.

우정읍 화수리의 오래된 보건소 건물을 리모델링해 조성된 방문자센터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2019년에 문을 열었단다. 이곳은 1919 4 3일의 치열했던 독립운동을 상징하는 공간이자 만세길 스탬프 투어를 시작하는 지점이다. 만세길 방문자센터는 화성 독립운동의 역사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공간으로서, 벽돌로 채워진 실내 벽면에는 화성 독립운동가 한분한분의 이름이 새겨져있다. 리모델링 이전 건물 자재일부를 살려 원래 존재했던 벽에 새로운 벽을 쌓아 올려 과거와 현재의 모습이 공존하는 공간에서 방문객들이 100년전 땅을 지키기 위한 결의와 희생을 떠 올리게 된다.

2019 31 화성 3.1운동 만세길의 개통으로, 만세길을 찾는 방문객들이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만세길 답사·체험활동의 기회를 안내해드리고자 만세길방문자센터가 탄생하게 되었단다. 만세길 방문자센터는 리모델링을 거친 새로운 공간으로 거듭났다. ()우정보건지소 건물의 흔적과 현재의 시간이 공존하는 곳에서 만세길을 찾는 방문객들에게 추모의 공간이자 휴식의 공간으로 쓰일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편의시설을 마련했단다.

가와바타 참살터 이곳은 만세꾼들이 일본인 순사 가와바타 도요타로를 처단한 곳이다. 191943일 만세운동에 참여했던 우정면과 장안면 주민들은 화수리 주재소를 습격하였다. 그러자 주재소에서 근무하던 순사 가와바타는 만세꾼들을 향해 총을 쏘면서 도망쳤다. 그 과정에서 이경백을 비롯한 만세꾼들이 부상을 입고 희생 당하였으며, 만세꾼들은 달아나던 가와바타를 붙잡아 여기서 처단하였다.

3.1운동 만세길을 걸으면서 내 나라의 중요성을 새삼 다시금 또 깨닫게 된다. 일제식민지 백성이던 할아버지가 만주땅으로 이주하는 친구에게 이사비용으로 몇푼 쥐어준 그걸 독립운동 자금이라며 왜놈 순사가 이실직고하라며 구타하여 돌아가셨다는 아프고 슬픈 역사와 아버지가 이 연유로 일본에 징용당한  미쓰비씨조선소 노역장 탈출로 유리걸식하며 해방을 맞았다고 들었던 옛 기억이 떠 오른다. 나라잃은 그 분들의 희생을 기억하며 자손인 6남매는 우애하며 형제계(兄弟契)를 하면서 주기적인 모임으로 즐겁고 행복하게 잘 살아간다. 어제 5박6일간의 장가계 여행을 마치고 돌아 온 대장 며느리에게 물었다. 사진을 보면서 "장가든 사람들은 일하는라 바쁜데 시집온 사람들은 매달 유람하고 있으니, 장가계() 보다 시집계(媤家契) 좋지 않아?". 반백년을 함께 살았지만 아직도 내 아재개그를 못 알아 듣는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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