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쑥부쟁이 둘레길(陰城)

영대디강 2021. 5. 30. 05:29

쑥부쟁이 둘레길(용산리 저수지)은 충북 음성군 부용산 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상류쪽에는 군립 봉학골 산림공원이 있다. 저수지 옆으로는 음성궁도장과 다양한 위락 시설들이 들어서 있다. 용산저수지라고도 한다. 농업 용수 공급을 목적으로 1970 1 1일에 착공하여 1975 11 1일에 준공하였다.

함께 일하는 동료의 추천으로 방문하였으며, 역시나 참 조용하게 아름답고 작지만 알찬 곳이다. 북부에 선지봉[565m]과 가섭산[709m] 등의 높은 산이 있다. 이들 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용산리 저수지를 이루고 유역에는 넓은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사정이고개·중고개·질마재·기름고개·장고개 등이 있다.

이곳 주차장은 봉학골 산림욕장 주차장이다. 넓은 주차장에도 주말이라서 그런지 많은 차들이 이미 주차 중이다. 이 둘레길은 원점회귀 코스라서 어느 쪽으로 돌아도 상관이 없다. 저수지를 따라 잘 설치된 데크길에 들어서는 것으로 본격적인 둘레길 걷기에 들어갔는데,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바뀌는 저수지의 풍경이 감탄사가 나올만큼 아름답다.

저수지 뒤로 솟아 있는 가섭산이 눈에 들어온다. 용산저수지를 한 바퀴 돌아 드는데 둘레길 거리가 2.09km에 불과해서 걷는 시간도 30분 남짓이다. 봉학골 앞 주차장=>화장실=>저수지=>제방=>주차장 원점복귀로 너무 짧다는 생각에, 저수지 상류쪽에 조성된 군립 봉학골 산림욕장으로 오른다.

쑥부쟁이. 옛날 이곳에는 대장장이 가족이 살고 있었다. 대장장이의 11남매 중 맏딸은 병든 어머니와 동생들을 돌보면서 가족들을 돌보기 위해 쑥을 캐러 다녔다. 그 모습을 본 마을 사람들은 그를 '쑥을 캐러 다니는 불쟁이의 딸'이라는 뜻으로 '쑥부쟁이'라고 불렀단다.

어느 날 쑥부쟁이가 쑥을 캐다가 상처를 입고 사냥꾼에게 쫓기고 있는 노루를 발견하고, 쑥부쟁이 딸은 상처 입은 노루를 숨겨주었고, 상처까지 치료를 해주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또 며칠 후에는 산짐승을 잡으려고 파 놓은 함정에 빠진 사냥꾼 또한 구하게 되었습니다. 사냥꾼은 잘생긴 청년이었다. 둘은 첫눈에 반하고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청년은 다음해 가을에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떠났으며, 쑥부쟁이는 사냥꾼 청년을 기다리면서 한 해 두 해 보냈지만 사냥꾼은 소식이 없었단다. 쑥부쟁이는 사냥꾼을 돌아오게 해 달라고 산신령님께 간절히 기도를 했고, 기도에 응답을 받아 그랬는지 몇 해 전 자신이 구해 준 노루가 또 나타났다.

노루는 주머니에 담긴 노란 구슬 3개를 주며 이 구슬을 입에 물고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첫 번째는 병든 어머니를 낫게 해달라는 소원으로 어머니 병을 고쳤고, 두 번째는 사냥꾼을 만나게 해달라고 빌었으나 사냥꾼은 이미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있는 몸이었다. 쑥부쟁이는 사냥꾼이 원망스러웠지만 마지막 세번째 소원으로  사냥꾼이 그를 기다리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게 빌었다.

그 후 쑥부쟁이는 사냥꾼에 대한 그리움으로 산을 헤매다 절벽에서 발을 헛디뎌 떨어져 죽고 말았고, 이듬해 그 자리에 아름다운 꽃이 무더기로 피어나기 시작했으며, 사람들은 이 꽃을 쑥부쟁이라고 불렀다. 쑥을 캐러나간 불쟁이(대장장이)의 딸이 죽은 자리에서 핀 꽃이라 쑥부쟁이라 이름 붙여졌단다.

낙목한천(落木寒天)에 피는 구절초, 쑥부쟁이 그리고 산국, 감국(甘菊)이라는 이름도 있다. 산에 가까운 곳에서 피면 산국이요. 단맛이 나면 감국이란다. 꽃의 크기가 50원짜리 동전만 하면 산국이고, 500원짜리 동전만 하면 감국이다. 조선시대 약초에 관한 책으로 신농서(神農書)에는 국화(菊花)가 몸을 경쾌하게 하고 수명을 연장시키며 머리와 눈을 맑게 한다고 하니 이제야 사람들이 국화주를 마시는 이유를 알겠다. 그 중에 가장 늦게 꽃을 피우고 붉은 줄기에 노란 꽃이 피는 감국이 최고라고 했다.

봉학골산림욕장은 약 40만 평의 산림욕장으로 조각공원, 식물원, 산림욕장, 자연학습장, 야영장, 물놀이장 등을 갖추고 있어 많은 이들이 찾고 있으며, 뒷편에는 높이 709m의 음성군 진산인 가섭산이 자리하고 있어 산행을 할 수도 있다.

가섭산으로 오르는 길에, 엊그제 연이틀 내린 비에 계곡의 물이 많아져서 그런지 산길을 오르고 내리는 도중에 청아하게 흐르는 물소리가 너무 정겨웠다. 온 몸과 마음의 피로물질이 모두 씻겨내려가는 그런 맑고 시원한 느낌이었다.

소원탑, 참 정성스레 만들어진 돌탑이다. 이 탑을 쌓으면서 그 분은 무슨 소원을 이 탑에 담았을까?

조각공원에서 백호의 등에 올라탄 저 철딱서니 논네는 뭘까? 그냥 한대 쥐어박고 싶은 맘이 있어도 여긴 충청도 그리고 아늑하고 여유로운 쑥부쟁이 둘레길이 그 분노의 맘도 녹여 버릴것 같다.

돌로 만든 예술가의 혼과 정성으로 피땀의 소산인 백마위에 올라타고 사진을 찍으면 더 좋은 모습이 될까? 정말로 이해하고 싶지않은 그런 꼰대 모습이다.

조각된 돌 농구화가 무척 큰데도, 거기에 발을 집어넣고 맞지도 않는다며 또 그렇게 억지 모습으로 사진을 찍어야만 했을까? 이런 사람때문에 우리사회에는 어른이 없고 꼰대들만 득실거린다는 청년들의 등돌림이 생겨나지 않았을까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든다.

오리배를 타고 싶지만, 코로나19로 문을 닫은 곳에서도 풍경은 마냥 아름답다 못해 신비하기까지 하다. 어쩌면 이렇게도 산 좋고 물 맑은 곳에서 과연 얼마나 복을 받은 그 누가 살았을까?

보고 또 보고, 걷고 또 걸으며 둘레길을 마음껏 돌아봐도 그저 좋기만하다. 봄내음과 호수의 절경이 어우러진 이 자연환경을 음미하며 인간은 창조주 신에게 그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음성군은 동쪽은 충주시·괴산군, 서쪽은 경기도 안성시, 남쪽은 진천군, 북쪽은 경기도 이천시와 접하고 있다. 동경 127°26′∼127°47, 북위 36°50′∼37°09′에 위치한다. 면적은 520.30㎢이고, 인구는 9 6396(2015)이다. 행정구역으로는 2개 읍, 7개 면, 328개 행정리(115개 법정리)가 있다. 군청은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 있다.

용산리저수지는 농업용수 공급을 목적으로 1970 1 1일에 착공하여 1975 11 1일에 준공하였으며, 제체 길이는 185m 제체 높이는 12m이다.

무장애 나눔길은 장애인, 임산부, 노약자, 어린이 등 보행 약자의 숲 접근성 강화를 위해 숲과 공원 내에 계단이나 단차를 제거하고 완만한 경사로를 이용해 무장애 산책로, 쉼터 등을 조성한 숲길이다.
그러나 현재는 보행약자를 위한 편의시설이 제대로 설치돼 있지 않아 다양한 불편사항들이 발생하고 있단다.

이렇게 조성된 무장애 나눔길에 전동휠체어 급속충전기가 없어 전동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이 배터리가 방전될까 염려하는 마음에 무장애 나눔길을 이용하지 못하거나 불편한 마음으로 이용하고 있는 실정이란다. 산림청 자료에 따르면, 전국 97개소의 무장애 나눔길 중 전동휠체어급속충전기가 설치된 곳은 28개소로 전체 28.8%에 그치고 있단다.

가섭산 또는 가엽산(迦葉山)은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과 충주시 신니면에 걸쳐 위치한 산이다. 정상에는 봉수대가 있었으나 지금은 흔적을 찾기 어렵다. 부처님 10대 제자의 한사람 가섭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한자로는 迦葉이라고 표기하는데 이는 '가엽' 또는 '가섭'으로 읽힐 수 있다. 충주 신니면 주민들은 한자 음대로 '가엽산'으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음성지역 주민들은 '가섭산'이 맞다고 말하고 있다. 지상파 방송 송출시설은 '가엽산'으로 표기하고 있다.

보고 또 보고, 뒤돌아보며 ...... 아쉬운 마음에 내려오는 길, 뒤돌아 보며..... 보고, 또 보고, 뒤돌아보며.....

용산저수지는 한국농어촌공사 충북지역본부 음성지사가 관리하며, 총 저수량 50만 톤 이상의 1종으로 수원공은 주수원이다. 제체 형식은 중심점토형 댐이고 제당 구조는 토언제 균일형이다. 제체 길이는 185m, 제체 높이는 12m이다. 총 저수량은 52 1천 톤, 유효 저수량은 59 4천 톤이다. 한발 빈도 5년과 홍수 빈도 200년을 기준으로 설계되었다. 유역 면적은 413, 만수 면적은 9.3, 홍수 면적은 10.5, 수혜 면적은 92.8㏊이다.

세계의 대통령으로 불리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생가를 찾았다. 반기문생가마을 조성사업은 총 부지7803, 건축면적 2856㎡의 규모로 조성되었는데 2010년 생가가 복원되었고 2018 98억을 들여 평화기념관과 평화랜드가 조성이 되었다고 한다.

해발510m의 보덕산 아래 행치마을에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태어났다. 1944년에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상당리에서 아버지 반명환과 어머니 신현순 사이에서 3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광주 반씨로 중국 남당(南唐) 시기에 태사(太師)를 지낸 판여우(潘佑)의 후손이며, 조선 중종 때 형조판서를 역임한 반석평(潘碩枰)의 후손이다. 반기문은 3살때 이사하여 충주시 문화동에서 성장했다.

충주 교현초등학교 6학년 때 다그 함마르셸드 유엔 사무총장에게 헝가리 혁명에 대한 탄원서를 제출했다. 소련군헝가리를 무력으로 침공했기 때문이었다. 반기문은 당시 "헝가리 사람들이 자유를 위해 공산주의에 맞서 싸우고 있으며 세계의 평화를 위해 일하는 유엔에서 그들을 도와야 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그는 유엔사무총장에 출마를 하여 2007년부터 2016년까지 10년간 유엔사무총장을 역임하였다.

유엔총회에서 192개 회원국의 박수로 통과되었다. 그는 사무총장 수락연설에서 인류가 어느 국가도 혼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음을 지적했다. 유엔 사무총장으로서의 책임감과 무게를 통감하게 된다.

반기문생가마을엔 "비채길"이 조성되어 있어 보덕산 정상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길이 만들어져 있다. 반기문생가는 초가삼간 토담집으로 1970년대 새마을운동 당시 스레트지붕으로 개량되었다가 2002 3월경에 철거되었으며 2010년 예전 자료를 바탕으로 고증을 거쳐 생가가 조성이 되었다고 한다.

1970년 외무고시에 합격한 이후, 동남아1과 사무관을 시작으로 유엔대표부 1등서기관, 외무부 국제연합과 과장, 하버드대 석사학위 취득, 국무총리비서실 파견, 미주국장, 대통령비서실 의전·외교안보 수석비서관, 오스트리아대사, 외교통상부 차관을 거쳐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외교통상부장관을 역임하고, 드디어 유엔사무총장에 출마를 하여 2007년부터 2016년까지 10년간 유엔사무총장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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