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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만천하스카이워크(丹陽)

영대디강 2020. 12. 6. 18:16

충북 단양의 만천하스카이워크는 만학천봉 위에 25m 높이로 세워진 스카이워크 전망대와 연장 980m 짚와이어, 산악형 롤러코스터인 알파인코스터는 코로나 19사태임에도 정상 운영하고 있다.

남한강 절벽 위에서 8090m 수면 아래를 내려보며 하늘 길을 걷는 스릴을 맛볼 있는 스카이워크로, 시내 전경과 멀리 소백산 연화봉을 있다. 말굽형의 만학천봉 전망대에 쓰리 핑거( 손가락) 형태의 길이 15m, 2m 고강도 삼중 유리를 통해 발밑에 흐르는 남한강을 내려다보며 절벽 끝에서 걷는 짜릿함을 경험하며, 남한강 수면에서 8090 위에 25 높이로 세워진 만천하 스카이워크 전망대는 발밑 100 미터 아래 강물을 내려다보며 걷는 경험을 있다. 남한강을 한눈에 남한강 위에서 하늘길을 걷는 짜릿함! 남한강의 아름다운 전경을 한눈에 담고 짜릿한 재미와 스릴 만점 체험을 만천하 스카이워크에서 한번에 경험해보시라!

만천하스카이워크가 2017 7 개장 이후 2020 6월까지 3 211만명의 관광객이 다녀갔단다. 단양관광 버킷리스트 1순위로 SNS 상에서 높은 인기를 반영하듯 시설별로는 스카이워크전망대 1823826, 짚와이어 124163, 알파인코스터 159503명이 다녀갔다.

도담삼봉(島潭三峯)은 충청북도 단양군 있는 명승지이다. 남한강 맑고 푸른 물이 유유히 흐르는 한가운데 높이 6m 늠름한 장군봉(남편봉) 중심으로 왼쪽에는 첩봉(딸봉) 오른쪽의 얌전하게 돌아앉은 처봉(아들봉) 봉우리가 위에 솟아있다. 이곳은 조선 개국공신 정도전 자신의 호를 삼봉이라 만큼 젊은 시절을 이곳에서 청유하였다 한다.

삼봉은 원래  강원도 정선군 삼봉산이 홍수 떠내려와 지금의 도담삼봉이 되었으며, 이후 매년 단양에서는 정선군에 세금을 내고 있었는데 어린 소년 정도전이 '우리가 삼봉을 정선에서 내려오라 것도 아니요, 오히려 물길을 막아 피해를 보고 있어 아무 소용이 없는 봉우리에 세금을 이유가 없으니 필요하면 도로 가져가라' 뒤부터 세금을 내지 않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단양 고수동굴(丹陽 古藪洞窟)은 충청북도 단양군 단양읍 고수리에 있는 석회암 동굴이다.

4 5천만년 동안 생성되어 온 석회암 자연동굴로서 면적은 18,210, 현재 개방된 길이는 1.7 km, 입구 높이 50m, 5m이다. 지하수가 많이 흘러들어 다양한 형태의 종유석과 석순이 잘 발달되어 있으며 지하궁전을 연상케 하는 장년기의 동굴 지형을 이루고 있다. 동굴의 특색은 지질학적으로 동굴의 생성원인을 밝혀주며 형성물의 특이한 배치와 석주, 호신상 등이 특이하다.[ 정식명칭은 단양 고수리 동굴이며, 1976 9 1일 천연기념물 제256호로 지정되었다. 규모는 주굴 길이 600m, 지굴 길이 700m, 총연장 1,300m, 수직 높이 50m이다. 단양역에서 북동쪽 9.5 km 지점의 남한강 좌안, 금곡천과의 합류지점에서 500m 거리의 등우산 서쪽 기슭에 입구가 있다.

동굴을 형성한 지질은 고생대 초기의 조선계 대석회암통의 두무골 석회암층에 속한다. 1973년 종합학술조사 때 동굴속과 입구 부근에서 뗀석기가 발견되어 선사시대에 주거지로 이용되어 왔음이 밝혀졌다. 동굴 안에는 종유석·석순·돌기둥·유석 등을 비롯하여 곡석·석화·동굴산호·동굴진주·동굴선반·천연교·천장용식구 및 세계적으로 희귀한 아라고나이트가 만발하여 석회암동굴 생성물의 일대 종합전시장을 이룬다.

특히 상층부의 대광장에는 길이 10m에 달하는 대종유석이 비단폭처럼 줄을 지어 내리뻗고, 동굴 안쪽에는 인공적으로 다듬어진 것처럼 정교한 많은 기암괴석들이 늘어서 있어서 웅장한 지하궁전을 방불케 한다. 그들 기암괴석 중 백미를 이루는 것은 사자바위로, 자연석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그 바위의 형태가 뛰어나서 동굴의 대표적인 존재가 되고 있다.

단양 고수리 동굴은 고생대의 석회암층에서 만들어진 석회동굴로서 그 학술적 가치가 크며 다양한 동굴 생성물을 한눈에 볼 수 있어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의림지(義林池)는 우리 나라에서 오랜 역사를 가진 저수지로 손꼽힌다. 제천의 옛 이름인 내토(奈吐)·대제(大堤)·내제(奈堤)가 모두 큰 둑이나 제방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 이 제방의 역사가 서력기원 전후의 시기까지 오르는 것으로 믿어지고 있다. 《세종실록》에는 의림제(義臨堤)라고 표기하였다.

 

낮은 산줄기 사이를 흐르는 작은 계곡을 막은 제방은 길이가 530()이며, 수위는 제방 밖의 농경지보다 매우 높아서 관개면적이 400()이나 되었다. 못의 둘레는 5,805척이나 되고 수심은 너무 깊어서 잴 수 없다고 하였다. 상주의 공검지(恭儉池)나 밀양의 수산제(守山堤), 김제의 벽골제(碧骨堤)와 같은 시기의 것이지만 제방의 크기에 비해 몽리면적이 큰 것은 제방을 쌓은 위치의 수위가 높기 때문이다.

현재는 물의 주입부에서부터 토사(土沙)가 쌓여 작아진 것이다. 제방은 산줄기 사이의 낮은 위치에 자갈과 흙과 모래·벌흙을 섞어서 층층으로 다지되 제방 외면이 크게 단()을 이루도록 하였다. 단면이 이중의 사다리꼴을 이루고 외면은 석재로 보강하였다.

출수구는 본래의 자리가 원토인 석비레층으로 그 위에 축조되었던 것이나 지금은 원형(原形)이 사태로 말미암아 없어지고 패어나간 흔적만 남아 있다. 이 제방은 신라 진흥왕 때 우륵(于勒)이 처음 쌓았다고 하고 그 뒤 약 700여 년 뒤에 박의림(朴義林)이 쌓았다고 한다.

문헌에 기록된 바로는 세종 때 충청도관찰사였던 정인지(鄭麟趾)가 수축하고 다시 1457(세조 3) 체찰사가 된 정인지가 금성대군(錦城大君)과 순흥부사 이보흠(李甫欽)의 단종복위운동에 대비하여 군사를 모으면서 호서·영남·관동지방의 병사 1,500명을 동원해서 크게 보수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 뒤 1910년부터 5년 동안 3만여 명의 부역에 의해 보수하였던 것이 1972년의 큰 장마 때 둑이 무너지자 1973년에 다시 복구한 것이 오늘날의 모습이다. 현재의 의림지는 호반둘레가 약 2, 호수면적은 15 1,470, 저수량은 661 1,891, 수심은 813m이다. 현재의 몽리면적은 약 300정보에 이른다.

수리관개뿐만 아니라 유서깊은 경승지로 이름이 있으며, 충청도지방에 대한 별칭인 ‘호서(湖西)’라는 말이 바로 이 저수지의 서쪽이라는 뜻에서 유래된 것이다. 제방과 호수주변에는 노송과 수양버들이 늘어섰고 1807(순조 7)에 세워진 영호정(映湖亭) 1948년에 건립된 경호루(鏡湖樓)가 있으며, 이곳 특산물로는 빙어가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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