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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부락산둘레길(平澤)

영대디강 2021. 9. 5. 05:27

부락산은 경기도 평택시의 지산동에 위치한 산이다. 『여지도서』에 불악산을 "현의 남쪽 10리에 있고, 양성현 천덕산(天德山)에서 줄기가 이어져 온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말하는 양성 천덕산은 지금의 안성시 원곡면에 있는 천덕산이다. 『진위읍지』에는 '부락산(負樂山)'이라 표기하고 "충청도 평택현이 바라 보인다."라는 설명이 덧붙여 있다. 이 부락산은 조선 시대 진위현과 평택현의 경계 역할을 하는 랜드마크였다. 그래서 '불악산'보다 해발고도가 더 높은 동쪽의 덕암산(164m)에 대해서는 옛 문헌들이 잘 기록하고 있지 않는 반면에, 불악산에 대한 기록은 쉽게 찾을 수 있다. 특히 『대동여지도』와 같은 옛 전국지도에서도 불악산이 표시되고 있다.

경기도 평택시 지산로 140번길 264에 위치한 부락산 문화공원에 주차를 한다. 입구에는 시원한 인공폭포가 맨 먼저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을 먼저 어루만져 준다.

부락산 1만여㎡에 모험과 체험활동을 포함한 대규모 산림체험장이 조성돼 있고, 공원 내 산림체험장에는 목재구조물·로프 등으로 연결해 자연을 즐기고 모험심을 길러주는 자연친화적 레포츠 시설로 연습코스·청소년코스·패밀리코스·성인코스 총 4개 코스로 구성되어 있다.

산책로와 숲체험장으로 올라가는 계단부터 데크길로 잘 조성되어 남녀노소 누구라도 쉽게 오를 수 있다. 

숲 사이로 걸으면 시원한 9월초의 바람이 만추의 가을 바람인듯 서늘하다. 비록 마스크 너머로 느껴야하는 숲속 공기도 마냥 신선하기만 하다.

평택지역은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서쪽 낮은 지형에 위치해 있다. 큰 산이 없고 대체로 북동쪽으로는 구릉이 발달하였으며 서남쪽으로는 평야가 발달하였다. 이 지역의 산들은 최고 200미터에서 최저 10미터까지 매우 다양하다. 대표적인 산으로는 무봉산. 덕암산, 백운산, 팔용산, 태봉산, 부락산, 오봉산, 고등산, 마안산, 자미산, 비파산, 무성산을 꼽을 수 있다.

부락산과 덕암산 자락은 조선시대 평택지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땅이었다. 그래서 수백 년 이상 된 동족마을과 유력 가문의 묘역, 다양한 문화유산이 숨겨 있고 삼남대로로 덕암산과 태봉산을 지났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삼봉 정도전 유적, 원균 장군 유적, 경주 이씨 유적, 진위향교도 위에 열거한 산기슭에 있다.

산세가 험하지 않아 가족 단위로 1시간에서 2시간 코스로 등산하기 참 좋은 산이다. 등산 코스가 나무 그늘에 가려져 햇볕을 피할 수 있어 좋고, 가족단위로 많이 찾는다. 중간에 쉼터도 잘 만들어져 있어서 지치지 않는다. 산책로의 밤나무에 주렁주렁 열린 밤톨들이 풍성함을 느끼게 해 준다.

부락산(負樂山)은 경기도 평택시의 지산동에 위치한 산으로 송탄의 주봉이다. 조선시대에는 부락산(負樂山), 조락산(鳥落山), 불악산(佛樂山), 요악산(樂山) 등 다양하게 불려졌다. 불현듯 우리들 세대에는 무슨 이야기를 잘못하게 되면 그건 오산 밑의 숯고개야!”라고 개그스럽게 말하던 바로 그 숯고개가 바로 이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조광조가 소년시절 서당에 다닐 때 그의 옆집에는 비슷한 또래의 댕기머리 낭자가 살고 있었다. 이 낭자는 날마다 책을 끼고 생각에 잠겨서 집 앞을 지나는 미소년을 보다가 그만 마음에 사모하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 그렇지만 불행히도 낭자의 집안은 중인이어서 신분의 벽을 넘기가 어려웠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끙끙 앓던 낭자는 그만 마음에 병을 얻어 자리에 눕게 되었다.

이 소문은 동네방네 퍼졌고, 낭자의 부모는 딸의 애통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기 위하여 조광조의 집에 사람을 보냈다. 서당에 가는 길에 한 번 만이라도 고개를 돌려 낭자의 얼굴을 봐줄 것을 청하는 부탁이었다. 그 후 낭자는 이제나저제나 사랑하는 도령이 한 번이라도 눈길을 줄까 고대하며 담장에 매달렸다. 하지만 낭자의 부탁을 전해들었을 조광조는 소녀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가 아니면 행하지 말고,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는 것이 이유였다. 결국 소녀는 상사병이 도져 자리에 눕게 되었고 끝내 세상을 달리하였다" 이 이야기는 조광조가 죽은 후 만들어졌거나 부풀려졌을 가능성이 있지만, 이야기만으로도 그의 성품을 짐작하게 한다.

조광조는 28세 되던 1510(중종 5) 사마시에 장원으로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갔다. 당시 사림유생들의 진출이 두드러졌던 성균관에서 도학(圖學)정치를 역설했던 그의 사상과 학문은 많은 유생들의 지지를 받았다. 1515(중종 10)에는 성균관 유생 2백 명의 천거와 문우(文友)였던 안처겸의 부친이며 당시 이조판서였던 안당의 추천으로 조지서사지라는 관직에 초임되었다. 또 그 해 가을에는 증광 문과에 급제하였고, 전적, 감찰, 예조좌랑 등을 역임하면서 중종의 신임을 얻었다. 조광조가 개혁의 전면에 부상한 것은 이 때부터 였다.

부락산 아래 동령마을은 고려시대 이래 송장부곡의 중심이고 이충마을은 조광조와 오달제의 유허가 남아 있어 '이충(二忠)'이라는 지명이 유래되었다. 부락산 북쪽 우곡(소골)마을에는 영조4(1728) 무신 난으로 멸문지화를 당한 진주 소씨 가문의 전설과 묘역이 있으며, 부락산과 덕암산 사이로는 삼남대로의 험로 흰치고개가 넘어갔다.

흰치고개는 삼남대로의 험로(險路)다. 안성 죽산의 칠현산에서 출발한 한남정맥의 한 줄기가 백운산·천덕산·덕암산을 거쳐 부락산으로 연결되는데, 덕암산과 부락산 사이를 넘어가는 고개가 흰치다. 흰치는 순우리말과 한자가 혼합된 용어로 한자로는 ‘백현(白峴)’, 또는 ‘희도(希道)’라고 했다. 이 고개를 ‘흰치’라고 한 것은 토질이 석회암층(석비례)이어서 나무가 없을 때는 멀리서 희게 보였기 때문이다.

조선후기에는 흰치고개의 지로支路로 송북동 동막마을에서 진위면 마산2리 숲안말로 넘어가는 새 도로가 생겼다. 새 도로는 태봉산 줄기의 염봉재를 넘어야 했는데 이 고개를 ‘작은흰치재’라고 불렀다. 또 흰치고개 정상부 근처에는 이충동 동령마을과 장안마을로 넘어가는 고개가 만들어졌다. 이 고개도 ‘흰치고개’라고 불렀다.

이렇다보니 용어에 혼선이 생겨 조선후기에는 종래의 흰치고개를 ‘대백치(큰 흰치고개), 새로 생긴 염봉재와 동령마을로 넘어가는 고개를 ‘소백치(작은 흰치고개)’라고 불렀다. 근래 시민들이 부락산 트래킹로와 자전거도로를 많이 이용하면서 국제대학교 뒷길로 올라가는 고개가 조성되었다. 시민들은 이 고개를 통상 ‘흰치고개(흔치고개)’로 부른다. 하지만 사실상 이곳은 ‘작은흰치’다.

조선시대 진위군 송장면 장안리. 1914년 진위군 송탄면 장안리가 됐다. 장안이라는 지명은 마을에 장(場)이 섰기 때문에 유래됐다는 설이 있다. 이곳에 역마바위는 부락산 중봉에 있는 바위로 애기장수 전설이 전해온다. 빈대바위는 부락산 대수골에 있는 바위로 무속인들이 치성을 드리는 곳이다.

부락산분수공원은 넓은 광장형 바닥 분수가 있으며 매년 4월부터 9월까지 하루에 두 차례씩 분수가 가동된다. 평택시민의 휴식처로 통하는 이곳은 주말과 휴일에는 민속공연과 거리전시회, 나눔장터 등이 열리는 등 다목적 문화공간으로 이용된다.

흡사 골프장처럼 보이는 공원의 잔디광장이다. 이곳에는 미군들이 많아서인지 가족단위 놀이객들이 대부분 서양사람들의 모습이다.

공원에서 흰치고개로 오른 곳에 세워놓은 아치형 조형물이 고갯길을 연상하게 된다.

고개는 길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다. 혹여 가마라도 메고 천리길을 오가는 가마꾼들에게는 커다란 장벽과도 같았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는 끊임없이 안전하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였다. 새 길은 가급적 최단거리를 고려했고, 곳곳에 쉼터를 마련하여 여행객의 피로를 풀어주려 노력했다.

흰치고개가 험로로 이름을 얻게 된 것은 높이와 함께 길고 지루하게 연결된 구간 때문이다. 대체로 흰치고개의 출발점은 북쪽에서는 송북동 동막사거리이고 남쪽에서는 도일동과 장안동의 경계인 도일사거리라고 말한다. 이 구간은 민촌이나 민가가 없이 구릉과 경사면을 이용한 경작지가 길게 이어졌다. 조선시대에는 산줄기를 타고 화적(火賊)들도 출몰했다.

풀무골은 우곡마을 뒤쪽 골짜기를 말한다. 진주 소씨의 멸문지화에 관련된 풀무골 전설이 전해진다. 기 삼남길 제9길 ‘진위고을길’의 진위향교를 벗어나면 은산5리에서 신리까지 진위천변에 형성된 ‘황새미들’과 ‘건는들’의 시원하게 뻗은 평야지대가 펼쳐진다.

부락산 정상 표지석이다. 해발 150.5m이다. 

평안해오름길 안내도에는 퇴봉산의 세로 붉은색 코스와 부락-덕암산의 가로 푸른색 코스가 +로 만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정확히 만나지는 않는다. 덕암산과 퇴봉산은 평택시와 안성시의 경계에 있어 평안해오름길이다. 평택의 '평'과 안성의 '안'이 만나서 '평안'이란다. 

평택의 하얀고개, 흰치고개의 안내판이다. 삼남대로 평택구간의 가장 험한 구간으로 산봉우리가 희게 보여 대백치라고도 불렀다.

평택(평평할 平, 연못 澤)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평지와 습지로 이루어진 도시이다. 주변에 변변한 산 하나 없지만 저 북쪽에서 동쪽을 아우르는 부덕고백이 병풍인양 두르며 여타 지역의 경계가 되고 있어 보배롭다. 그 이유로 평택의 시민과 산악인들이 수시로 찾는 산이기도 하다.

한양에서 사신이 공신교서를 들고 내려왔던 길이 ‘우리정원’ 옆으로 들어가는 소로다. 그래서 유래된 지명이 ‘왕뒤길’이란다. 왕의 사신이 넘어온 뒷길이다.

평택은 서쪽 땅에서 가장 낮은 지대라서 산이 높지 않고 걷는 길도 오르내림이 비교적 평탄하지만, 산이 높지 않다고 해서 크지 않은 건 아니었다. 부락산둘레길을 한바퀴 걸어서 돌아들면 10Km남짓으로 충분하게 운동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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