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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염하강철책길(金浦)

영대디강 2023. 1. 15. 05:05

염하강철책길 순환코스(6.5km /1시간 40분 소요)에서 출발지인 덕포진은 조선시대 진영으로, 서울로 통하는 바닷길의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이다. 높은 평지에 세운 돈대와 대포를 쏘는 포대, 그리고 포를 쏠 때 필요한 불씨를 보관하고 포병을 지휘하는 파수청이 있다. 포대 모습과 파수청터, 손돌묘 등을 볼 수 있으며, 전시관 또한 관람할 수 있는 코스이다. 계획된 일정으로 덕포진을 찍고 나서는데, 겨울비가 가늘게 내리며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짙게 깔린 겨울안개 속을 가르며, 그래도 이제 세상이 나에게 길을 걷도록 허락된 시간이 그리 길게 남아있지  않음을 생각하며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고 라이트를 켰다. 

김포 덕포진은 강화해협을 통해 수도 서울에 진입하려는 외세의 침공을 방어하기 위하여 설치한 조선시대의 전략적 요충지였다.  전체 면적은 48.794m2로 이곳에는 돈대와 포대 및 파수청이 있었으며, 처음 세워진 연대는 알 수 없으나, 1679(숙종5)에 광성보, 덕진진, 용두돈대와 함께 축성되었다. 병인양요 때는 프랑스 함대와 신미양요 때는 미국함대와 싸웠던 격전지로서 해협이 매우 좁고 물살이 빨라 손돌목이라 부르기도하며, 1981년 발굴과 복원사업을 하여 전시관에는 중포1문과 소포1문이 고정 포대에 거포된 채 전시되어 있다.

덕포진 돈대터로 돈대는 적의 침입을 경계하고 방어하기 위해 평지보다 높은 평평한 곳에 보루를 만들고 화포를 비치한 소규모 방어시설물이다. 덕포진은 조선시대 해안지대의 방어를 위해 설치되었던 진영으로 처음 세워진 시기는 선조대(재위 1567 ~ 1608)로 추정된다. 1980년 발굴 조사 당시 이곳에서 돈대를 위한 시설의 하부구조가 확인되었으나, 돈대의 설치시기를 알 수 없었다. 이곳은 해안 쪽으로 돌출된 지형이어서 강화 해협을 사이에 두고, 강화와 덕진진 남장포대, 광성보 용두돈대와 삼각대형을 이루는 중요한 지점이다.

사적 제292호인 덕포진은 강화만을 거쳐 서울로 진입하는 길목인 손돌목에 천혜의 지형을 이용해 설치한 조선시대의 군영이며, 덕포진은 신미양요와 병인양요때 서구 열강과 치열하게 싸웠던 격전지로 역사적 가치와 유물사적 이미를 가진 곳이다. 1981년 전 김포문화원장 김기승씨가 사비를 들여 발굴작업이 시작되었다. 현재는 포대와 파수대가 복원되었고, 2007년 새 단장한 덕포진 유물전시관에서는 조선 후기에 사용했던 포의 위치와 포의 유효거리 등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덕포진 포대(약물터) 7개의 포대로 이루어져 있으며, 강화 초지진과 덕진진의 남장포대를 향하고 있다. 발굴조사 당시 중포 2문이 발견되었는데, 이 중 1문은 고정식 포가(포 받침대)에 걸려 있는채로 발굴되었다.  각 포에는 명문이 음각되어 있는데, 포의 무게와 화약의 용량과 함께 고종 11(18745)에 운현궁에서 제작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덕포진 포대는 총5개의 포대로 이루어져 있으며, 강화 초지진과 덕진진의 남장포대를 향하고 있다. 1980년 발굴조사 당시 5번째 포대에서 고종11(1874)에 만들어진 소포 2문과 중포 1문이 출토되었다. 이곳에 사진을 찍으러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다가 모자가 벗겨질만큼 머리통을 심하게 부딪혀서 불의의 사고를 만났던 정말 낮고 낮은 포대였다. 몸도 맘도 더 낮은 자세로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으로 받는다. 

덕포진 포대(굽두리)는 총3개의 포대로 이루어져 있으며, 강화 덕진진의 남장포대를 향하고 있다. 다포대는 지붕이 기와로 되어 있는데, 발굴 당시 발견된 기와에 근거해서 복원한 것이다. 1980년 발견 당시 고종 11(1874)에 만들어진 중포 1문이 고정식 포가(포받침대)에 걸려있는 채로 발굴되었다.

손돌목은 손돌묘를 정면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으로 보이는 강이 손돌목이다. 손돌목은 인면도, 염창동과 함께 난파위험지역으로 꼽히며, 물살이 빠른 곳이다. 조선 태조4(1395)에 조운선 16, 태종3(1403) 30, 태종 14(1414) 60척이 침몰한 기록이 있다. 손돌은 몽골의 침입으로 고려 고종이 강화도로 피란할 때 뱃길을 잡은 뱃사공인데 험한 물길에 불안을 느낀 왕이 그의 목을 베었는데, 손돌은 죽음에 직면하면서도 물위에 작은 바가지를 띄우고 그것을 따라가면 강화도에 무사히 도착할 것이라고 말한 뒤 죽음을 받아 들였다.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한 왕은 자신이 경솔하였음을 깨닫고 후하게 장사를 치른 뒤 사당을  세워 억울하게 죽은 손돌의 넋을 위로하였다

파수청의 명칭은 1871통진부 읍지에서 파수청이라는 명칭이 처음 등장하였고, 다른 유사 사례에도 확인되지 않아 덕포진 내에만 존재하는 건물로 가진 명칭임이 확인 되었다. 고지도에 나타난 파수청은 포청, 포사청, 덕포진으로 표기되어 있기도 하며 건물의 기능에 따라 명명된 것으로 보이고 복합기능을 수행했던 고유성을 가진 건물임을 알 수 있다. 파수청의 위치는 덕포진 포대 말굴조사(1980)’시 발굴된 유구를 통해 명확히 확인할 수 있으며, 토성에 인접하고 손돌목의 돈대와 남측의 포대사이에 자리잡고 있어서 덕진진 전체를 지휘하기 용이한 위치에 입지하고 있다. 사적제 292호로 지정되었다.

경기도 김포와 인천시 강화도의 사이에 위치한 염하강은 역사적으로도 전쟁터로 우리들의 역사책에 기록되어 있으며, 지금도 역시 남과 북이 휴전상태로 철조망이 막고 있는 곳이지만 면면히 유유자적 평화를 품고 역사를 가르치며 조용히 안개속을 흐르고 있다. Walk for peace.

경기둘레길 1코스인 염하강철책길 순환코스는 철책선을 따라 민족 분단의 아픔을 안고 걸어야 한다. 철책선을 따라 걷는 길이 오랜 시간동안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았어도 겨울 안개 자욱한 둘레길을 우산을 받거나 우의를 입은채로 걷는 사람들의 모습이 무척 여유롭다.

예전에는 철책선에 설치된 초소를 경비병들이 완전무장으로 집총한 채 언제라도 발사할 수 있도록 거총자세로 순찰하는 병사들의 길이었음직한 군사용 벙커로, 그런 길을 지금은 민간인이 아무런 제약도 없이 이렇게 둘레길로 걷는다는게 너무 신기하기도 하다. 그래서 그랬는지 평화누리길 1코스는 한국관광공사 “비대면 여행지 100선”에 선정되었단다.

염하강? 그런 강도 있나? 너무 궁금하여 백과사전을 찾아보니, 강화해협(江華海峽) 인천광역시 강화군과 경기도 김포시 사이의 해협으로 염하(鹽河)라고도 한다. 강화도 전등사를 마주 바라보는 김포 덕포진 앞, 좁은 바다를 사람들은 염하(鹽河) 또는 염하강이라고 부른다. 헤엄치면 건너갈 만한 물길로 강과 같다고 하여 그렇게 불려왔다. 그러나 이 바다는 물살이 거세고 빨라 사고가 많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섬의 주위는 사방이 갯벌이나 절벽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어렵게 염하를 건너온 적들이 발이 빠지는 갯벌을 건너거나 절벽을 타고 올라와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런 이유로 염하강은 방어하는 입장에서 볼 때 하늘이 내린 좋은 요새였던 것이다.

덕포진에서 대명항으로 걷는 길에 공원으로 조성된 등나무 터널을 만난다. 등나무라고 부르는 콩목 콩과 등속에 속하는 식물이다. 잎이 지는 덩굴성 갈잎나무로 10미터 이상으로 자라는 기다란 덩굴이 물체를 감싸면서 성장한다. 대체로 5월이 되면 연자줏빛이나 꽃들이 잎겨드랑이에서 수십cm 이르도록 주렁주렁 피는데, 등나무꽃 여러 개가 한번에 피어있을 경우 장관이다. 자체의 향도 향긋하고 진해서 등나무 근처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코가 등나무꽃 향으로 가득 찬다. 강렬한 향기로 천리향처럼 멀리서도 보지않고도 등꽃이 것을 느낄 있다. 그래서 주로 관상용으로 재배하는 . 등꽃에는 달콤한 꿀이 들어있어 옛날 시골에서는 등꽃이 피면 아이들이 등꽃을 따서 먹기도 하며 보릿고개의 배고픔을 달랬다고 한다.

철책선을 따라 2011 마을 미술프로젝트추진위원회가 전국 지역의 생활공간을 미술작품으로 꾸미는 공공미술사업인 '마을 미술프로젝트' 사업의 작품들이 세워져 있다. 대규모 미술 마을을 조성하는 '행복 프로젝트' 마을 미술프로젝트 가운데 발전 가능성 있는 프로젝트를 추가 지원하는 '기쁨 두배 프로젝트', 재활용품을 창작 재료로 사용하거나 지역 특색이나 명물 등을 콘텐츠로 활용하는 '테마이야기' 가지로 진행된 작품들이 이곳에도 설치되어 있다.

평화누리길 1코스의 시작지점인 대명포구는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대명리에 위치한 어항이다.  2000 9 25 지방어항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으며, 지방어항 이전에는 대명포구로도 불리었다마을이 '대망(이무기)'처럼 바다를 향해 굽어져 있다고 해서 대망고지, 대명꾸지, 대명곶으로 불린 것으로 전해진다.

대명항에 있는 김포함상공원이다. 2차세계대전에 참전한 후 한국해군에 인계되었던 퇴역 군함 운봉함은 과거 대한민국 해군 초계함으로 활동했다가 2006 퇴역한 'LST 671 운봉함' 개조하여 해군본부가 김포시에 기증하게 되었고, 현재는 김포시에서 관리한다.

김포시는 김포시 소재 39개소의 국가ㆍ도ㆍ시 지정문화재를 자세히 소개하고, 매장문화재 발굴 조사를 통하여 확인 된 유적과 문화재를 아름다운 김포문화유산으로 소개하고 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김포한강신도시 개발과 더불어 매장문화재에 대한 조사가 활발히 이루어지면서 구석기 시대부터 역사시대까지 다양한 유적이 발굴되었고, 이렇게 확인된 고고학적 증거는 우리 김포가 얼마나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를 김포문화재로 보여주고 있다.

경기둘레길과 평화누리길은 2010년 5월 8일에 개장 된 길이다. 김포시, 고양시, 파주시, 연천군의 DMZ 접경지역을 잇는 트레킹 코스이며, 총 12개 코스 189km의 둘레길이다. 1개 코스의 길이는 15km 내외이며, 1코스 염하강철책길은 대명항~문수산성의 약14km 구간이다.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이 정립하고 있었을 때 김포시 지역은 삼국의 각축장이었다김포시는 대한민국 북서부이자 경기도 중서부에 위치하고 있는 시로, 한강의 퇴적으로 충적토가 쌓여 농경에 적합한 김포평야를 이룬다. 동쪽으로 한강을 경계로 고양시, 파주시, 서쪽으로 인천광역시 강화군, 남쪽으로 서울특별시 강서구, 인천광역시 계양구, 서구와 인접하고, 북쪽으로는 한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의 개풍군과 경계를 이룬다. 시청은 사우동에 있고, 행정 구역은 3 3 8행정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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