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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동 웅진로 280에 위치한 공산성은 백제 문주왕 원년에 서울 한성에서 웅진으로 천도한 후 성왕16년에 부여로 수도를 옮길 때까지 5대 64년간 웅진시대의 방어거점이었던 산성이다. 공산성은 웅진성, 쌍수산성, 공산산성, 공주산성 등 여러 이름이 있어 시대적인 변천을 알 수 있다.
공산성 입구에 세워진 황금빛 동상은 백제의 무령대왕 모습이다. 서기 504년 무령대왕(武寧王)은 동생인 사아왕(斯我王) (466~535)과 백제 군대를 함께 보내어 일본 큐슈(九州) 정벌을 시작하였다. 사아왕이 바로 안한천황(安閑天皇)이 되었다. 그는 백제 군대로서 큐슈 임나에 상륙하였던 것이다. 사아왕은 법사군(法師君)을 낳았고 그가 훗날 왜군(倭君)의 선조가 되었다고 하는데, 왜군은 곧 왜왕(倭王)을 왜곡한 것이다. 큐슈는 왜국을 가리킨다. 대반금촌대련(大伴金寸大連)은 백제 침공을 당하여 일단 고구려 피가 섞인 무열천황을 죽였다. 그리고 계체천황(繼體天皇)을 새 천황으로 끌어들였다. 무령대왕은 일본에서 태어났는데 조선의 현종, 대한민국의 이명박과 더불어 외국에서 태어난 몇 안 되는 한국사의 지도자이다.
공산성은 충남 공주시에 위치한 산성으로 백제의 건국이후 두 번째 도읍지인 웅진성으로 비정되고 있다. 공산의 산세를 그대로 살려 성벽을 쌓아 전체적으로 들쭉날쭉한 외형이 특징이다. 가장 유명한 건축물인 서쪽 문 금서루 말고도 성 곳곳에 크고 작은 정자들이 여럿 남아 있다. 총 연장 2,660m의 고대 성곽으로 해발 110m의 능선에 위치한다. 이곳은 475년에 백제가 고구려에게 서울인 한성이 함락되고 난 후 급하게 도읍지로 삼았던 곳이기 때문에 산세가 험하다.
공산성 깃발은 공산성 성벽의 동서남북에 배치한 깃발이며 송산리 6호분 벽화에 있는 사신도를 재현한 것이다. 사신도는 동서남북의 방위를 나타내고 우주의 질서를 지키는 상징적인 동물로 외부의 나쁜 기운을 막아주는 의미가 있다. 영하 12도의 추운 날씨임에도 산성의 깃발을 바라보며 포근함을 느낀다면 아마도 백제의 기운이 온화하게 추위도 막아줘서 그럴거라는 생각이 된다.
공산성에서는 성 내부에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건물지들이 발견되어 이 곳이 백제의 두 번째 도읍지로 기능하였음을 추정할 수 있다. 대벽건물지와 초석건물지를 비롯하여 전형적인 백제 목곽고, 비교적 큰 규모의 저장시설 등이 존재하고 있어 일단은 왕궁지라고 추정되고 있다.
석성은 대부분 조선시대 때 만들어졌지만 일부는 백제 초축 당시의 성벽도 확인되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아예 토성으로 형성된 구간이 있기도 하다. 더군다나 공산성은 복원정비를 70~80년대에 이미 다 완료하였기 때문에 백제가 사용하였던 성벽 부분을 확인하는 것이 쉽지 않다. 원래 백제시대에는 흙과 모래를 쌓아 건축한 판축식 건설로 만든 토성이었다. 일부 성벽을 절개한 조사에서도 그 흔적이 확인되었는데 대부분 성의 남동쪽을 조사했다. 해당 조사에서는 토성이 백제가 웅진을 도읍으로 삼은 당시 사용하였던 성벽이고, 지금의 공산성은 조선시대에 들어와 개축하면서 축소되어 남았다고 보았다.
성곽을 따라 좁다란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으며 공산성 붕괴 사고 이후 잠시 통제되었다가 정비가 완료되면서 통행이 가능해졌다. 다만 성곽의 경사가 생각보다 심하니 주의할 필요가 있으며 눈이나 비가 오는 때에는 절대로 올라가면 안된단다.
이곳 추정 왕궁지에 대해서도 왕궁이 맞는다라는 견해와 임류각지가 왕궁이 있던 곳이라는 견해, 왕궁이 공산성 내부에 없을 수도 있다는 견해 등으로 나뉘어져 있다. 공산성 내부라는 견해는 삼국사기에 "임류각의 동쪽에 궁궐이 있다"라는 기록에 기반하여 무왕 30년 사비도성 중수를 위해 임시로 웅진에 머물렀다는 기록을 통해서 궁궐은 공산성에 있다고 추정하였다. 더군다나 공산성 아래의 공주시내를 관통하는 하천인 제민천이 삼국사기에 범람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므로, 당연히 공주 시내에서도 높은 곳인 공산성 내부에 있을 것이라는 추정을 하였단다.
깃발의 바탕색은 황색이다. 이것은 백제의 나라색이며 백제시대 사람들은 황색을 우주의 중심이 되는 색으로 생각하여 소중히 여겼다고 한다. 그리고 깃발의 테두리는 사신도의 각 동물이 상징하는 색을 반영한 것이다. 깃발의 배치는 송산리 6호분에 그려진 사신도의 위치를 그대로 따랐다. 따라서 동쪽에는 청룡, 서쪽에는 백호, 남쪽에는 주작, 북쪽에는 현무를 각각 배치하였다.
안무정은 고려시대에 공주로 온 어떤 안렴사가 금강가의 정자에 들러 금강의 물줄기와 산세를 감탄하며 자신도 모르게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그 정자가 바로 안무정이다. 안무정은 지금의 정지산 정상에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아쉽게도 자취가 남아 있지 않다. 안무정 자리에 정자가 만들어져 금강과 공산성, 공주 시가지를 함께 볼 수 있다면 아마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풍경에 반하여 저절로 어깨춤이 나올지도 모른다.
공산성 금서루는 공산성 4개의 성문 가운데 서쪽 문루이다. 성안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만드는 과정에서 흔적조차 찾기 어려웠지만, 1859년에 편찬된 공산지(公山誌)의 문헌기록과 지형적 여건들을 고려하여 1993년에 복원하였다.
백제가 멸망한 뒤, 북문인 공북루 인근의 땅에 마을이 조성되었고, 이 마을은 '성안마을'이라 불리게 되었다. 성안마을은 백제, 신라, 고려, 조선시대를 거쳐 1997년까지 같은 곳에 있었으며, 마을은 이후 진행된 문화재 발굴 및 관광지 개발로 인해 사라졌다. 이후 발굴 및 정비작업이 진행되었고, 2015년에는 ‘백제역사유적지구’라는 이름으로 인근의 다른 백제시대 유적들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배다리와 금강철교 : 공주가 발전하면서 금강을 건너는 사람들과 물자가 크게 늘어서 그동안 사용하던 나룻배로는 도저히 이들을 모두 다 실어 나를 수 없어서 나무로 된 다리를 놓았지만 이것마져도 홍수에 떠내려가고 말았다. 그래서 만든 것이 배다리란다. 나룻배 20~30척을 잇고 그 위에 널판지를 깔아서 폭 3m 길이 150m로 배다리를 놓았다. 하지만 배다리도 큰 홍수와 오랜 세월을 견디기 힘들어, 1932년 충남도청이 공주에서 대전으로 옮겨가는 대가로 금강에 다릴 만들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금강철교이다. 금강철교는 그 때부터 공주의 관문역할을 하게 되었다.
명국삼장비는 1592년 임진왜란을 일으킨 일본이 1597년 다시 조선으로 쳐들어 왔는데 그것이 바로 정유재란이다. 이때 중국의 명나라가 우리나라를 돕기로 하고 군대를 파견했는데 충청도 내륙에서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했던 이곳 공주에 명나라 군대가 주둔하게 되었다. 당시 제독 이공, 위관 임제. 유격장 남방위라는 세명의 장수가 공주에 머물며 군대를 지휘하였는데, 전쟁이 끝나자 공주사람들은 이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잊지않기 위해 군대가 떠나자 마자 1599년 명국삼장비를 세웠다. 그 후 이 세 비석은 땅속에 묻히는 등 많은 수난을 당하다가 광복이후 다시 세상밖으로 나와 지금의 위치에 세워졌다.
이곳에 아무래도 왕궁이 있었다고 하기에는 발굴조사 전까지 범위 자체도 그렇고 규모가 굉장히 작아 절로 의문을 자아냈다. 물론 백제가 한참 힘들던 시절의 임시수도인만큼 규모가 작을 개연성은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백제만한 규모의 나라의 궁성이 있었다기엔 너무 좁아보인 것이다. 이 때문에 공산성의 왕궁지가 진짜인가 아닌가 하는 논의도 굉장히 많았으나 이렇다할 대안이 마땅치 않은 현실이란다.
공산성의 성곽길을 따라 온전하게 한바퀴를 돌았음에도 겨우 5천보 남짓이라서 아무래도 일만보를 채워야 할거라는 이유로, 아랫동네인 산성시장에 들러 유명한 떡집에서 밤떡 한보따리를 사들고 마곡사로 향하였다. 마곡사 입구 주차장에서 또 유명한 맛집을 찾았더니 만원사례란다. 이웃한 다른 맛집에서 더덕정식으로 명품 점심을 해결 한 후 마곡사 솔바람길 1코스인 백범길로 들어서서 걷는다.
마곡사(麻谷寺)는 충남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태화산 동쪽 산허리에 있는 사찰이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6교구 본사이다. 삼국시대인 640년(백제 무왕 41 / 신라 선덕여왕 9)에 자장 (慈藏)율사가 창건하였다. 이후 후삼국시대 쯤에는 폐사가 되어 도적의 소굴이 되었다가, 고려 명종때인 1172년 보조국사 지눌이 제자 수우(守愚)와 함께 왕명을 받고 중창하였다. 조선시대에도 세조가 이 절에 들려 ‘영산전’이라고 사액을 한 일이 있다.
창건 당시에는 30여 칸의 대사찰이었는데, 현재는 대웅보전(보물 제801호), 대광보전(보물 제802호), 영산전(보물 제800호), 사천왕문, 해탈문 등이 있을 뿐이다. 이 밖에 절의 보물로는 5층 석탑(보물 제799호) , 범종, 괘불 1폭, 목패, 청동 향로 등이 있다. 대웅보전에는 싸리나무 기둥 4개가 있는데, 저승에서 염라대왕이 "마곡사 싸리나무 기둥을 몇 번이나 돌았느냐?" 하고 물어봐서 많이 돌았으면 극락에 쉽게 가고 한 번도 안 돌았으면 지옥에 떨어진다고 하여, 여기 온 사람들이 모두 기둥을 돌기 때문에 반들반들 윤이 난단다.
이 절에는 백범 김구선생이 젊은 시절 한때 머문 적도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결정하는 세계유산위원회(WHC)는 2018년 6월 30일 바레인 수도 마나마에서 열린 제42차 회의에서 한국이 신청한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했다. 우리나라가 등재 신청한 산사는 양산 통도사, 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 보은 법주사, 공주 마곡사 등이다.
마곡사는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중 하나로 세계에 등재되어 있으며, 마곡사 일원은 2018년 1월 22일 충청남도 기념물 제192호로 지정되었다. 마곡사 솔바람길 1코스인 이곳까지 돌아드니 겨우 일만이천보를 채웠다. 동행한 아내에게 '여기가 공주인줄 알았는데 당신이 천오백년전 백제 공주네~'로 아재개그를 날리며, 만보걷기와 맛집 순방 그리고 역사공부로 차거운 겨울날씨에도 훈훈하게 보낸 주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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