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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만석공원(水原)

영대디강 2023. 11. 26. 04:41

만석공원(萬石公園) 경기도 수원특례시 장안구 송죽동 434번지에 면적 355,800㎡의 규모로, 만석거(萬石渠)를 중심으로 조성된 도시공원이다. 이곳  만석거(萬石渠)1795(정조19) 수원화성 건립사업의 일환으로 축성된 저수지이며, 원래 둘레 1,022(1.28Km)길이는 387m, 높이는 4.8m, 저수면적은 24.7, 몽리면적은 82.2, 평균수심은 1.8m이다수구(水口, 물의 수위를 일정하게 유지)와 수갑(水閘, 관개 용수의 양 조절)과 같은 조선시대에는 당대 최신 기술이 반영된 수리시설이었다.

1794(정조18년)에 극심한 가뭄이 들자 정조는 수원의 화성 성역공사를 일시 중지하고, 농업 개혁을 위한 혁신사업으로 수리시설 조성을 명하였다. 화성 유수 조심태(趙心泰, 1740 ~ 1799)와 판관 홍원섭(洪元燮)은 정조의 명을 받아 1795년 윤2월 장안문 북쪽의 황무지를 개간하여 국영농장인 둔전(大屯田)을 만들고, 농업용수를 안전하게 공급할 수 있는 만석거 조성에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만석거 공사는 17953월 초하루에 제방을 쌓기 시작하여 518일 완성까지 2개월 반 밖에 걸리지 않았다. 수원 북쪽에 거주하던 평양조씨 문중을 비롯한 백성들이 힘을 모아 노력한 결과였다.

공원 입구에서부터 황금빛 단풍나무들이 무성한 이파리를 뽐내며 어서 오라고 반겨준다. 단풍나무(red emperor maple, palmate maple or smooth Japanese-maple) 무환자나무목 무환자나무과의 식물이다.  손바닥 모양으로 갈라진 잎사귀가 특징이다. 봄이 되면 잎사귀와 함께 붉은 꽃봉오리를 가진 꽃이 핀다. 꽃이 안개꽃보다 작아서 여러 꽃이 다발로 모여서 피어난다. 열매는 익기 전에는 ㄱ자 부메랑처럼 생겼는데, 열매가 익으면 열매가 반으로 쪼개져 떨어져 공중에서 빙빙 돌면서 날아간다. 가을이 되면 낙엽이 지기 전에 잎사귀가 붉게 물들어 새빨갛게 단풍이 든다.

당단풍나무(Acer pseudosieboldianum) 무화과나무과에 딸린 낙엽교목이다. 우리나라 한반도 각처의 산지에 흔히 나며, 높이 8m이다. 잎은 손바닥 모양이며, 가장자리에 겹톱니가 있고, 어린잎의 뒷면과 가지에 털이 있다. 꽃은 암수한그루이며 산방꽃차례로 가지 끝에 많이 피며, 양성화는 2-3송이고 꽃잎이 없다. 수술은 8, 꽃받침은 5장이다. 열매는 시과, 길이 1cm 가량이며 털이 없고, 날개는 타원형이다. 관상용으로 심으며, 목재는 기구재, 땔감용으로 잎은 염료용으로 쓰인다.

늦가을에도 아름다운 단풍(丹楓) 기후의 변화로 식물의 녹색 잎이 붉은 색이나 노란 , 갈색 등으로 물드는 현상을 말한다통상 하루 최저기온이 5 이하로 떨어지면 단풍이 물들기 시작한다. 단풍은 나무의 잎이 이상 활동하지 않게 되어 나타나는 현상이다. 캐나다에서는 단풍을 국기(國旗)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인터넷 상에서 단풍국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자라는 단풍나무의 잎은 공교롭게도 대마초와 꽤나 닮은 관계로, 단풍나무의 품종과 모양이 다르고 대마초를 많이 합법적으로 피우는 캐나다와 미국의 일부 출신 사람들이 가끔 이를 보고 대마초인 줄로 오해한단다.

소나무가 늘어선 노송지대(老松地帶)이다. 경기도 기념물 제19호 노송지대는 지지대비(遲遲臺碑)가 있는 지지대고개 정상에서부터 옛 경수간(京水間) 국도를 따라 노송이 생장하는 약 5Km의 지대이다. 조선 정조(正租)(1776~1800 재위)가 생부(生父) 장헌세자(莊獻世子)의 원침(園寢)인 현흉원(지금의 융릉-隆陵)의 식목관(植木官)에게 내탕금(內帑金) 1,000()을 하사(下賜)하여 이곳에 소나무 500주와 능수버들 40주를 심게 하였다고 한다. 현재는 대부분 고사(枯死)하고 34주(효행기념관 인근 9, 장안로 346번길 인근 19, 송정초등학교 인근 6)의 노송만이 보존되어 있다. 낙락장송( 落落長松)이 울창한 이 자연경관은 정조의 지극한 효성과 사도세자의 슬픈 역사를 함축하고 있어 길손들 발길을 멈추게 하는 곳이다.

만석공원 맹꽁이 생태학습장이다. 맹꽁이라는 이름은 수컷 맹꽁이가 암컷을 부르는 울음소리인 "맹꽁맹꽁" 하는 울음소리에서 유래했다. 사실 마리가 맹꽁맹꽁 우는 아니라, ""이라고 우는 맹꽁이와 ""이라고 우는 맹꽁이의 소리가 겹쳐져 그렇게 들리는 것이란다. 정확히 말하면 어떤 마리가 "" 하고 울면 다른 녀석은 자신의 소리를 암컷이 구별하도록 하기 위해서 ""으로 소리를 바꿔서 운다고 한다. 맹꽁이과에 속하며 몸길이는 4~4.5cm 정도로 몸통은 뚜렷하게 팽대되어 있어 몸의 거의 대부분을 이룬다. 주둥이는 짧고 작으며, 맨끝이 약간 둔하면서 뾰족하고, 아랫입술보다 약간 앞쪽으로 돌출돼 있다.

한폭의 그림처럼 이렇게 풍경이 아름다운 수원시 향토유적 14호인 만석거(The Mannseokgeo Reservoir)는 장안문 북쪽의 황무지를 개간하고 안정된 농업경영을 위한 관개시설로서 1795(正租 19) 축조되었다. 만석거는 정조대왕때 최신식 수문과 수갑을 설치하였으며, 여기에 모인 물은 농업용수로 이용하여 대규모 농장인 대유둔(北屯)을 설치해 풍요로움을 누리고자 했다. 저수지 가운데는 작은 섬을 두어 꽃과 나무를 조화롭게 심었고, 호수에는 연꽃을 심었으며, 호수 남단의 약간 높은 곳에는 정자인 영화정을 세워 만석거 부근을 조망할 수 있도록 배치하였다.

만석거의 주변 경관 또한 예로부터 아름다워서 누렇게 익은 벼가 황금물결을 이루는 가을풍경은 석거황운(石渠黃雲)이라하여 수원 가을팔경(秋八景)의 하나로 꼽혔다. 1997년 만석거 일부를 매립하여 공원화하면서 오늘날 시민들의 쉼터로 사랑받고 있다. 정조시대 최초의 제언(堤堰)인 만석거의 가치는 국제적으로 인정받아서, 2017 10 멕시코에서 열린 국제관개배수위원회(ICID) 68 집행위원회에서세계 관개시설물 유산으로 공식 등재되었다. 

만석거 주변 둘레길은 1.3Km로 시민들이 걷기 좋은 환경이라서 그런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이 거의 끊임없이 줄지어 걷는다. 둘레길 산책로 주변으로 심겨진 단풍나무들 사이로 11월의 마지막 주말 햇살이 눈부시다. 오늘은 체감온도가 영하10도 이하 일거라며 올 해에 가장 추운날씨라는 기상예보를 들으면서 두툼하게 차려입고 이곳에 찾아왔지만, 햇살도 따스하고 바람결도 거의 없어서 웃옷의 여민 단추를 느슨하게 풀어헤치고 네바퀴를 가볍고 거뜬하게 걸었다.  

지금의 만석거를 예전에는 교구정() 방죽이라고 불렀단다. 그 이유는 화성부사가 교체될 때마다 영화정에서 거북 모양으로 생긴 관인(官印)을 인수인계 하였기 때문에 거북을 교환한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이름이 와전되어 교구정은 조기정(평양조씨마을 정자)으로 변하였고, 당시엔 이곳에 많은 성씨들이 살고 있었는데 모든 성씨의 집안들은 번성하였지만, 용씨(龍氏)만은 아무리 노력해도 되는 일이 없어 초라한 가세를 벗어나지 못하였단다. 그렇게 자포자기 상태로 지내던 중 길을 지나던 노인이 그 모습을 보고, 용이 승천하려면 물이 있어야 하거든 이곳엔 물이 없으니 출세를 못하는 것이라며 이곳에 저수지와 정자를 만들면 용이 승천하듯 가문이 번창할 거라고 말 하였단다.

그렇지만, 용씨는 모두다 허물어져가는 가세로는 별다른 방법이 없어서 한숨만 쉬던 중, 나라에서 이곳에 대유평둔전을 만들려고 공사를 위해 저수지를 만든다는 소문을 듣고 석달전 노인이 한 말이 생각나 모든 가솔들을 이끌고 저수지 공사에 참여하였다. 이 모습을 본 사람들은 모두 용씨를 놀렸지만, 이에 아랑곳 없이 열심히 저수지 공사에 참여하였으며 저수지가 완성된 후 정말 용씨 집안은 크게 번성하였고 다른 집안들은 몰락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이곳에 저수지를 만들고 정자를 짓자 용씨가게 번성하였다는 전설이 교구정과 함께 내려오고 있다.

만석거 수문 옆 여의루(如意樓)의 모습이다. 수원시 미술전시관 건너편의 족구운동장 한편으로 우뚝 솓아있는 커다란 누각이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곡선미가 돋보이는 건물이다. 2층 마루에 올라서면 사면으로 시야가 트여있고 만석거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어서 아주 시원스럽다. 누가 언제 이 누각을 세웠는지 궁금하여 그 실체를 알고 싶어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찾아봐도 안내표지판은 없다. 여의루를 보며 서울의 여의도(汝矣島)가 머릿속에 떠오르지만, 이곳은 뜻대로 이루어진다는 여의(如意)라서 자료를 찾아보니,  如意橋橫萬石渠(여의교횡만석거)라는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 만석거 편의 내용 뿐이다.

잘 조성된 둘레길에서 벗어나 나무들 사이로 조성된 오솔길을 걷는다. 이곳은 소나무와 잣나무, 전나무, 낙엽송 같이 잎이 바늘처럼 기다란 나무들이 침엽수들이 늘어선 곳이라서 괜시리 피톤치드가 풍성하게 품어져 나오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렇게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냥 집을 나와서 가볍게 만보걷기를 할 수 있는 동네 산책길이 너무 좋다. 이곳에 사는 수원 시민이 아니라도, 소나무 숲 사잇길로 걸으면서, 만석거의 옛이야기도 재밋게 공부하며 온 몸으로 즐기는 멋과 맛이 어우러진 힘찬 길이 여기에 있다 

영화정(迎華亭)이다. 수원특례시 장안구 송죽동 만석공원 내 영화정은 정조19년 을묘년(1795)에 완공된 건물로서, 이곳에서 신구관 부사와 유수들이 거북모양의 관인을 인수인계하고 업무를 시작하였다 하여 일명 교구정(交龜亭)으로도 불렸다. 현재의 영화정은 8칸의 평면구조를 하고 있으며, 2고주5, 겹처마의 팔작집으로 익공이 없는 자 형태를 갖추고 있다. 현재의 건물은 199610월에 신축 복원되었다.

정조는 수원화성을 축성하면서 이 성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네 개의 저수지를 축조하였는데, 북쪽에 조성한 것이 만석거(萬石渠)이다. 1794(정조 18) 정조는 화성 공사를 중지하고 가뭄에 대비한 구휼대책과 농가의 이로움, 수원화성 운영 재원마련을 위해 만석거를 조성하였다. 또한 동쪽, 지금의 수원시 지동에 축조한 저수지는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1798(정조 22) 남쪽에 축조한 것이 사도세자 묘역인 화산(花山) 현륭원(顯隆園) 앞의 만년제(萬年堤)이고, 1799(정조 23) 서쪽에 축조한 것이 수원시 서둔동의 축만제(祝萬堤, 西湖)이다. 이 저수지들은 수원화성[華城]을 수축하면서 장용위(壯勇衛)를 설치하게 되자 사관병졸들의 급료나 기타의 경비에 충당하기 위한 화성둔전(華城屯田)에 물을 대려고 판 것이었다.

이병희(1926.8.1 ~ 1997. 11.13)선생의 동상이다. 경기도 용인출생으로 육군사관학교 8기 졸업생인 이병희는 5.16의 주체세력으로 정무담당 제1무임소장관과 수원에서 제6,7,8,9,10,11,15대의 민선7기 국회의원을 역임한 인물이다. "열정이 없는 사람은 선인도 악인도 되지 않는다. 수원의 역사에서 한 시대를 꿰뚫어 본 정치인으로 그는 수원 사랑의 열정만으로 생애를 일관한 이병희 선생이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격동으로 점철된 청장년기를 오직 선생은 수원의 미래와 영광을 위해 전신을 투구했다"는 비문이 보인다. 1999512일 고 이병희 선생 동상건립추진위원회를  결성하여 2000519일 제막식을 가졌으며, 고인의 육사동기이며 오랜 동지인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직접 쓴 글이란다. 

수원시의 역사를 한눈에 알아보게하는 길이다. 수원시의 승격은 1949.8.15일 부터 시작이다. 2019년에 길바닥에 화강암으로 만들어 진 이 비문은 1949815일 수원읍에서 수원시로 승격한 70주년이 되는 해이며, 시민과 함께 수원특례시 원년으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해로써 수원시 역사를 연도별로 정리하였다. 이 길을 걸으며 누구나 쉽게 수원의 지나온 역사를 돌아 볼 수 있도록 역사의 길로 조성하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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