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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양재천의 발원지인 과천시 별양동에서 출발하여 부자동네인 과천시, 서초구, 강남구로 소리없이 으시대며 흐르는 양재천에 조성된 양재천길 따라 출발한다. 과천시 보건소의 건강걷기 안내판에 구간별 거리는 별양동상가 -> 부림동 1 km 약15분, 부림동 -> 관문체육공원 0.8 km 약12분, 관문체육공원 -> 환경사업소 0.8 km 약12분, 환경사업소 -> 안골마을 1.1km 약17분, 이 코스를 모두 돌아들면 별양동상가 –> 안골마을 3.7km 약56분이란다. 나는 왕복 7.4km로 약 2시간을 목표로 삼아 만보걷기를 시작하였다.
출발지에서 조금 걷다보니 관문정(官門亭)이라는 아름답고 멋진 정자를 만나게 된다. 이곳 경기도 과천시 관문동(官門洞)은 과천고을의 관문이 있어서 생긴 지명이다. 과천에서 남태령이라는 고개만 넘으면 바로 한양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 때문에 과천은 중요한 관문 중의 하나였다. 대한제국시절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의 삼남지방 사람들이 한양으로 들어가려면 다섯 번의 문을 통과하며 문세(門稅)를 내야 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이 과천의 관문동이었다. 이곳은 서울로 들어갈 때 첫 번째 문세(門稅)를 내던 곳이라고 해서, 관문동이 생긴 내력이 당시의 교통과 지역 텃새와 관련하여 전해지고 있다.
관문공원 잔디밭에는 소를 몰고 쟁기질을 하는 동상작품이 있어서 우리들 세대에는 어린시절에 늘 접하던 풍경이라서 그런지 한 눈에 쏙 들어온다. 관문동을 지나서 남태령고개를 넘을 때 병정들이 도적으로부터 보호해준다는 명목으로 지나가는 여행객에게 고개넘이 돈을 뜯어냈단다. 남태령은 원래 여우고개였는데, 조선시대 정조대왕이 부왕인 사도세자의 능(隆陵)으로 참배하러 가는 길에 고개 이름을 묻자 차마 여우라는 말을 입에 담기 어려워 이방(吏房) 변씨가 삼남대로로 통하는 길이라고하여 남태령(南泰嶺)으로 고쳐 불렀다고 전한다.
또한 양재천의 이름은 양재동을 가로질러 흐르기 때문에 붙여졌다고 한다. 구룡산의 설화에서 양재천이라는 하천이름이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서초구청 홈페이지에 의하면, 조선시대 양재동에는 한양과 삼남지방을 이어주는 역참(驛站)으로 말죽거리 양재역(良才驛)이 있었는데, 『한국지명총람』에는 “쓸 만한 인재들이 모여 살아 양재동(良才洞)이라 했다.”고 한다. 양재천은 양재동을 관류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며, 양재천의 옛 이름은 공수천·학탄(학여울)등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양재천은 1970년대 초 강남개포 직강화 공사를 거치며 이렇게 콘크리트 하천이 되었다. 공사 이전에는 한강으로 직접 흘러들었으나 이때부터 탄천에 합류하게 되었다. 1970~80년대에는 서울의 강남 일대가 발전하면서 생활하수가 대량으로 유입되어, 악취가 진동하는 시커먼 오폐수 하천으로 전락했다. 하지만 90년대에 생태공원 조성을 시작하면서 수질을 정화하고 주변 시설을 확충하여 현재의 모습이 갖춰졌고, 이제는 이렇게 도심형 생태공원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손꼽힌다고 한다.
천주교 과천성당의 모습이 보인다. 1982년 3월 4일 천주교 과천본당을 신설하고 한연흠 신부를 초대 주임으로 발령했으며, 첫 미사는 본당 신자의 집에서 신자 60여 명과 미사를 봉헌하고 그 집을 임시사제관으로 사용했단다. 이에 교구는 성당부지를 매입했고, 미사를 봉헌할 공간이 없었던 본당 신자들은 야외에서나마 미사를 봉헌할 수 있게 됐다. 1982년 12월에는 한 신자의 주택부지에 임시성당으로 사용할 천막을 설치했으며, 본당의 성당건립은 1984년에야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성당부지로 매입한 땅이 용도변경이 불가능해 새로 땅을 구해야 했기 때문이다. 마침내 1986년 11월 27일 새 성당이 준공됐으며, 이렇게 우뚝 솟은 성당은 화강석 아치와 종각형태로 '주님의 굳건한 성(城)'을 상징하는 건물로 건축되었다.
출발지인 별양동에서 걷는 산책로 길바닥에는 매 100미터마다 거리표시가 하얀 글자로 프린트되어 있다. 별양은 순우리말로 '배랭이(배레이)'라는 뜻이다. 별양(別陽)을 한자의 뜻 그대로 풀어 특별히 양지바른 곳의 의미로 해석하는 이들이 있으나 사실과 다르단다. 이 곳은 청계산의 낮은 산자락이 삼태기처럼 감싼 골짜기 안으로 햇빛이 많이 들지 않아 양지(陽地)의 의미로 땅이름이 붙여질 이유가 없단다. 그래서 배랭이는 비탈의 뜻인 별(밸)에 접미사 -앙이가 붙어 이루어진 이름인 듯하다. 별(밸)+앙이=별양이(밸앙이) 벼랑이 〉배랑이 〉배랭이가 되었다고 한다.
관문체육공원(官門體育公園, Gwanmun Sports Park)은 5,0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넓은 종합운동장을 비롯한 각종 체육시설을 갖춘 과천시의 전문체육공원으로, 인조잔디 필드와 우레탄 트랙이 갖춰진 다목적 경기장 시설로 2001년 9월에 준공되었다. 시민의 건강·휴식 및 체육활동의 대중화에 기여하고 일상에서의 푸름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양재천의 물줄기 위로 가로질러 걷기위해 만든 보도교의 모습이다. 과천을 기준으로 양재천을 지나가는 차량이 통과하는 다리(橋梁)로는 별양교 - 부림 1교 - 부림 2교 - 관문차도교 - 과천대로교 - 과천교 - 경마공원대로교 - 주암 2교 - 주암교 - 여의천합류지 - 영동 1교 - 영동 2교 - 영동 3교 - 영동 4교 - 영동 5교 - 영동 6교 - 대치교가 있으며, 이후 탄천으로 흘러든다. 경마공원대로교에서 과천저수지를 발원으로 흐르는 시냇물이 합류하고, 영동 1교를 지나가기 전에 옛 염곡천 여의천이 합류한다.
멀리로 관악산 줄기가 보인다. 우리가 자주 오르는 높이 632m의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송악산, 운악산, 화악산, 감악산과 함께 경기 5악으로도 유명하다. 관악산과 접하고 있는 이곳 경기도의 과천시와 안양시 및 광명시 지역에 있는 초중고교들의 교가(校歌)에는 공통적으로 '관악산' 또는 '관악'이라는 단어가 들어간단다. 그런데 이 지역들이 아닌 관악산과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학교인데도, 교가에 관악산이 들어가는 학교들도 더러 있단다. 그만큼 관악산은 서울과 경기지역에서는 대표적인 산이다.
양재천을 걷는 이곳은 천천히 걷는 사람들보다 빠르게 뛰면서 조깅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부잣동네를 흘러서 그런지 젊음이 휘감아 내리는 개천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주일 내내 영하 10도를 넘나드는 맹추위가 오락가락 하더니만, 토요일인 오늘은 영하4도의 비교적 포근한 겨울 날씨이다. 햇볕이 포근하고 따스하게 내려 덮이는 개울가에는 아직도 얼어붙은 얼음조각들이 또 어린날의 추억을 소환해 준다.
지하철 4호선 과천역 5번출구 앞에 있는 양재천길로 내려선 다음부터 길바닥에 새겨진 이정표시를 어림셈하며 걸었던 거리가 약 3km를 조금 넘은 것 같다. 얼마나 걸었는지 스마트 폰의 만보계를 바라보니 이미 오천보를 지났다. 이제는 황태찜으로 예약된 점심끼니도 해결해야 하니까 다시 돌아서 가야 한다.
서울과 경기도가 접하는 경계지역에 표지판의 모습이다. 양재천의 총길이 약 16km 중 과천쪽 상류가 절반 정도이고, 서초구에서 관리하고 있는 구간이 4㎞, 강남구 구간이 4㎞로 강남권 도합 8km로 나머지 절반 정도를 차지한다. 이렇게 양재천길은 경기도와 서울이 반반씩 점유한 곳이란다.
경기도 과천시에서 서울 서초구로 경계를 넘자마자 양재천길의 도로 모습이 완전히 바뀐다. 자전거 도로와 산책로의 위치 및 도로의 색갈이 완전히 다르게 바뀐다. 참 재밋다. 과천에서 부터 양재천길을 따라 쭈욱 걸어온 길은 황토빛 길로 자전거도로가 오른쪽이었는데, 서울 서초구로 접어드는 순간 이렇게 우레탄으로 만든 푸른빛 걷는길이 오른쪽으로 바뀌고 자전거도로가 왼쪽이라서 더욱 폭신하고 정겹기는 하다.
우면산 수변공원은 서울 우면산 아래에 위치한 공원이다. 도심 및 근교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도시림'과 산림의 문화'를 주제로 하며, 우면산의 양호한 자연생태와 참나무 군락지를 활용하여 도심속에서 자연학습이 가능하게 하고 생태보전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조성되었다. 공원 내에 두꺼비 서식지 보호구역이 있다. 그러나 아쉽지만, 우면산자연생태공원은 2012년 이전해 발생되었던 우면산 산사태가 일어나기 직후 재정비를 거쳐 현재는 폐쇄되어 있고 우면 수변공원만 보인다.
되돌아오면서 양재천의 오른쪽 산책로를 따라 걷다가 말들의 동상을 만났다. 1928년 9월 20일 서울 신설동에 경성경마장(京城競馬場)이 개장하면서 용산, 동대문 등지에서 개최되던 경마경기를 한국마사회에서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 시초이다. 이후 1954년에 서울경마장(-競馬場)으로 이름이 바뀌어 다시 뚝섬으로 이전하였다. 오늘날의 경마공원은 1989년 올림픽을 대비하여 건설한 이후 이 곳으로 1989년 9월1일에 이전하면서 발족하였다. 이후 경마장이라는 명칭이 도박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경마공원으로 개칭하였다가, 2014년 렛츠런파크 서울이라는 현재의 이름으로 다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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