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청주 상당산성은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성내로124번길 14 산성동(山城洞)에 구축된 대규모 포곡식 석축산성으로 둘레 4.2km, 내부면적 22여만평 규모의 사적 제212호이다. 산성 이름에 붙은 '상당(上黨)'은 청주의 옛 지명이다.
상당산성은 둘레 4,200m로 1716년(숙종 42)에 이전에 남아있던 백제시대의 토성을 돌로 고쳐 쌓고, 그 뒤 몇 차례에 걸쳐 중축·개축했다. 이조 숙종 때의 축성기록에 '인상당기지 개석축(上黨基址 改石築)'이라는 기사가 있는 점과 청주가 백제시대 상당현이었던 점으로 미루어 보아 이곳에는 원래 삼국시대부터 토성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충청도의 군사 책임자인 병마절도사는 청주읍성에 있었으며, 그 배후인 성당산성에는 병마우후를 두어 이곳을 방어하게 하였다. 상당산성에는 대략 3,500명의 병력과 승군이 배속되어 산성의 유지와 보수를 담당하였다.
산성의 4벽 중에서 서벽이 가장 높고, 장대·포루가 배치된 점으로 보아 이 성의 방어 요지가 서쪽임을 알 수 있다. 성곽시설로는 남문을 비롯한 동문과 서문, 3개의 치성, 2개의 암문, 동장대와 서장대, 15개의 포루, 1개의 수구 등이 있었다. 1977~80년에 남·서·동문의 문루를 모두 복원하였다. 이 성을 신라 김유신의 전적지인 낭비성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상당이라는 명칭은 백제 때 청주의 지명인 상당현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남문 밖에서 발견된 옛 기와의 명문을 통해 통일신라의 서원경과 관련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영호남과 서울로 통하는 통로를 방어하는 요충지로 크게 주목받았다. 특히 임진왜란을 거쳐 조선시대 후기에 이르러 군사적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었던 곳이다.
이 산성은 상당산의 8부 능선에서 시작해 성내 골짜기를 감싸고 있는 동서 산맥의 등성이를 타고 사행하다가 남동의 수구를 향해 꺾여서 합쳐지고 있다. 성벽은 비교적 잘 남아 있는데, 네모지게 다듬은 화강암으로 수직에 가깝게 쌓았고, 그 안쪽은 돌을 깨뜨려 틈을 메운 뒤 흙을 쌓아 다지는 내탁 공법을 사용했다. 남아 있는 성벽의 높이는 약 3~4m이다.
현재 상당산성은 동문·서문·남문의 3개문과 동암문·남암문의 2개 암문, 치성 3개소, 수구 3개소가 남아 있다. 산성둘레길에서 잠시 벗어나 서남 암문인 이곳을 지나면 것대산으로 가는 산책로에 설치된 출렁다리를 만날 수 있다.
지금의 모습은 임진왜란 중인 선조 29년(1596년)에 수축된 이후 숙종 42년(1716년)부터 영조 23년(1747년)까지 대대적으로 개축되었다. 이때 성벽 축조는 물론 성내에 구룡사 및 남악사와 장대사의 3개 사찰과 암문이 마련되었으며, 관아건물과 장대·포루·창고 등이 완성되어 면모를 갖추었고 이후에도 계속 보수되었다.
한남금북정맥(漢南錦北正脈)은 백두대간의 속리산에서 시작된 정맥으로 안성 칠현산 (七賢山)에서 끝맺는 정맥이며, 한남·금북으로 이어주어 서북쪽으로 김포 문수산(文殊山)과 서남쪽으로 태안반도 안흥까지 이르게 하는 산줄기의 옛 이름이다. 《산경표》에서 규정한 1대간 1정간 13정맥중의 하나로, 해발 400∼600m의 산들로 연결되었으나 때로는 100m의 낮은 구릉으로 이어지기도 한 이 산줄기는 동쪽으로는 괴산·음성·충주 등 중원의 남한강지역과 서쪽으로 이어지는 보은·청주·증평·진천 등 금강 북부지역의 생활 문화권을 영유하였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와 백제의 접경지역이기도 하였지만 현재는 중부지방과 호남지방의 자연스러운 한 경계를 이루고 있다.
산성고개 출렁다리는 길이 31m, 폭 1.5m 규모로 깃대산과 상당산성을 연결하는 등산로에 설치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지방의 지자체들이 경쟁적으로 설치한 길고 넓은 출렁다리를 걸었던 경험으로 이곳은 장난감 같은 느낌이다.
상당산 계곡을 둘러 돌로 쌓아 만든 산성으로 백제 때 부터 이미 이곳에 토성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되는 곳이다. 『삼국사기』에는 통일신라 초기에 김유신의 셋째 아들이 서원술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때 쌓여진 것이 아닌가 추측되기도 한다. 김유신 탄생지와 태실(鎭川 金庾信 誕生址와 胎室)은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상계리에는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룩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김유신 장군이 태어난 곳과 그의 태실이다. 태실은 아이가 출산한 뒤 나오는 탯줄을 보관하는 곳을 말한다. 김유신이 태어난 곳은 만노군 태수로 부임한 김유신 장군의 아버지 김서현 장군이 집무를 보던 곳이다. 김유신 장군의 태실은 태령산성의 정상부에 있으며 자연석을 둥글게 기단으로 쌓고 주위에 돌담을 쌓아 신령스런 구역임을 나타내고 있다. 원형으로 3단의 석축을 쌓은 뒤, 그 위에 흙을 덮은 봉분형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태실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지금의 성은 임진왜란 때에 일부 고쳤으며 숙종 42년(1716)에 석축으로 다시 쌓은 것이다. 성벽은 네모나게 다듬은 화강암으로 쌓았으며, 성벽은 비교적 잘 남아있으나 성벽 위에 낮게 쌓은 담(여장)은 전혀 남아있지 않다. 성 안에 5개의 연못과 3개의 사찰, 관청건물, 창고 등이 있었는데, 현재는 문과 치성이 남아있다.
이곳을 걸으면서 남한산성의 모습과 너무 많은 점이 닮았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조선시대 성곽의 형태뿐만 아니라 주변의 자연 풍경이나 이동로의 구조까지 잘 보존되었고, 도시 외곽에 존재해서 접근성이 애매한 것이 산성과 주변 환경을 비교적 잘 보존하는 데에 도움이 됐을거란 생각과 토속 한옥 먹거리촌이 들어선 모습까지 유사한 풍경이다.
산성을 쭈욱 따라 걸으면 높낮이가 거의 평탄한 길에 이렇게 조경도 멋진 이름다운 풍경과, 산성에 올라가면 청주 도심이 보이며, 식당이나 관광시설이 들어서 있고 걷기좋은 옛길 산책로가 또 있다. 성은 동그란 모양으로 작은 골짜기를 싸는데, 안쪽에는 기와집 마을이 있어서 여러 가지 토속음식들을 판매한다.
정상에 오르면 서쪽으로 청주·청원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여서 이 산성은 서쪽 방어를 위해 쌓여진 곳이었음을 알 수 있다. 충청북도와 대전광역시 일대는 소위 한반도의 중원지역이라고 지칭되며 삼국시대인 5~6세기의 고구려와 백제 신라의 각축장이었던 만큼 관방시설(關防施設:국경의 방비를 위하여 설치한 진(鎭)이나 영(營), 보(堡), 책(柵) 등 군사적 목적의 시설)이 굉장히 많다
현재 상당산성에는 동문인 진동문(鎭東門), 서문인 미호문(弭虎門), 남문인 공남문(控南門)의 3개 문과 동암문 남암문의 2개 암문, 치성 3개소, 수구 3개소가 있는데, 1977년부터 1978년까지 정비공사로 동·남문루와 동문이 재건되었고 1992년 말에는 동장대 역할을 했던 동화정(棟和亭)도 재건되었다. 또한 1995년도의 발굴조사로 서장대 역할을 했던 제승당(制勝堂)의 규모(15평)와 위치가 확인되었다.
산성이 조금 높은 위치라서 그런지 다른 지역에서는 모두 떨어져버린 벚꽃이 이곳엔 4월이 거의 다 지나가고 있음에도 한창 화사하게 피어 있다. 꽃잎에 코를 디밀며 향기라도 맡아보려는 꼰대 길손의 모습이 머언먼 삼국시대의 역사속에서도 안쓰럽다 못해 조금은 애처러워 보인다.
정상에 오르면 서쪽으로 청주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여 서쪽을 방어하기 위하여 축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성곽시설로는 남문을 비롯하여 동문과 서문, 3개의 치성(雉城 : 성벽에서 돌출시켜 쌓은 성벽), 2개의 암문(暗門 : 누각이 없이 적에게 보이지 않게 숨겨 만든 성문), 2곳의 장대(將臺), 15개의 포루(砲樓)터 외에 성안 주둔병력의 식수를 대기 위한 대소 2곳의 연못이 있다. 정문인 남문 주변에는 3개의 치성과 장대, 4곳의 포루가 설치되어 있다.
한반도의 성 건축 형태뿐만 아니라 풍경까지 잘 남은 성곽으로서 가치가 높다. 조선시대의 지방 촌락이 잘 보존된 낙안읍성과 함께 보존상태로만 본다면 조선시대 산성의 풍광을 대충이나마 찾아볼 수 있는 유적이다. 대도시권 성곽에 비하여 많이 갈아엎지 않았으면서도 적당한 규모라서 전통적인 매력을 듬뿍 느낄 수 있다.
서문인 미호문은 조선후기에 새로 다시 쌓아졌다. 동문처럼 서문은 아래 위 2개의 무사석 위에 장대석을 올려 평문 구조로 만들어졌다. 상당산성의 3개 문 중에 가장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성 밖으로 좌우에 방어에 쓰이는 옹벽을 만들고 문 안쪽에서 왼쪽으로 돌아야지 문루에 오를 수 있다. 이런 형식은 암문에서 볼 수 있는 방식으로 서문에 활용된 까닭은 축성 비용을 줄이고 전술 효과를 늘리는 것에 있다.
동·서·남방 3개소에 성문을 두었는데, 남문은 무사석(武砂石)으로 홍예문을 만들고 그 위에 목조 문루(門樓)를 세웠다. 지금은 석축 부분만 남아 있고, 성문의 높이는 3.5m, 너비는 4.2m이다. 동문과 서문도 역시 문루가 있었으며 성문은 무사석으로 네모지게 축조하였는데 높이 2.7m, 너비 2.8m이다. 동문과 남문 부근에 1개소씩의 암문(暗門)이 있고 동남방에 수구(水口)가 있었으나 지금은 여기에 저수지가 만들어져 있다. 성내에는 동장대(東將臺)와 서장대(西將臺)의 터가 남아 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산성으로 이곳 상당산성과 부산의 금정산성 및 경기 광주의 남한산성이 있으며, 한국을 대표하는 산성으로는 역시 남한산성을 꼽으며, 금정산성 쪽은 일제강점기 때 사람들이 많이 몰리면서 성곽훼손이 심해진 터라 상당산성처럼 보존이 좋지 못하고, 성곽의 보존상태도 남한산성이 더 뛰어나다. 하지만 주변 환경에 있어서는 상당산성이 훨씬더 조선시대의 풍광을 유추하기 쉽다.
서남 암문은 남화문(南和門)이라고도 불렀다. 남쪽 방향 산줄기를 타고 약 1.7km 내려가 것대산 봉수대와 연결되는 위치에 남암문은 위치하고 있다. 남암문을 통해 적군의 후방으로 몰래 빠져나가 포위하거나, 산성 남쪽 교통로를 감시하였다. 남암문은 너비 166cm, 높이 172cm이며 문짝이 있고 빗장으로 걸어잠그는 방식으로 문을 닫았다.
현재의 저수지는 본래의 수문이 홍수로 없어진 후 1943년에 만든 것이다. 저수지의 공식 명칭은 성내방죽이다.
성내 한옥마을에서 전통주와 손두부, 빈대떡을 먹고나서 성내방죽 옆에 조성된 자연마당 다랭이논을 거닐면 사계절 내내 풍경이 달라지는 자연을 만나게 된다. 자연마당엔 유채밭, 연꽃군락지, 생태습지, 청보리밭....
아름다운 풍광이다. 산성을 한바퀴 돌아들면 이렇게 평화로운 저수지를 만나게 되고, 목을 축일수 있는 음료수와 배불리 먹을 수 있는 토속 음식과 그리고 또 길거리에서 파는 노점에서 맛있는 먹거리로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의 성벽은 비교적 잘 남아 있으나 성벽 위에 설치하였던 성가퀴[城堞 : 성 위에 낮게 쌓은 담]는 전혀 남아 있지 않다. 지금의 성멱은 성벽의 안쪽은 돌을 깨뜨려 틈을 메운 뒤 흙을 채우고 다지는 공법을 사용하였다. 숙종 때의 개축 이후에도 1731년(영조 7) 남문 문루를 세우는 등 대대적인 보수를 했으며, 1802년(순조 2) 1,176개의 첩(堞)을 시설하여 산성으로서의 완벽한 격식을 갖추게 되었다. 그 뒤 성벽이 퇴락하고 문루가 모두 없어져 버렸는데, 1971년 석축 부분을 개축하였고, 1977년부터 1980년까지 남문·서문·동문의 누문을 모두 복원하였다.
1978년 복원된 이후, 문루여담, 육축구간 면석, 선단석이 이완 또는 기울어짐에 따라 문화재 전문가의 자문과 고증을 거쳐 성벽, 자연석 미석, 여장하부 1단 등을 2014년 10월부터 2015년 6월까지 해체하여 보수공사를 완료했다. 옛 서문의 위치는 미호문 밖 38m 떨어진 곳에 있었다.
상당산성은 사적 제212호이며, 지정면적 180,826㎡이다. 원래 그 자리에 백제시대부터 토성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되는 상당산성은 1716년(숙종 42) 석성으로 개축되었다. 백제시대에 청주목(淸州牧)이 상당현(上黨縣)이라 불렸고, 숙종 때 축성기록에 ‘上黨基址 改石築(상당기지 개석축)’이라는 기록이 이를 뒷받침한다.
상당산성이라는 명칭은 2011년7월28일 청주 상당산성으로 고시되어, 정식 명칭은 청주 상당산성이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원문화길(忠州) (0) | 2022.05.06 |
---|---|
스테이 둘레길(禮山) (0) | 2022.05.02 |
동물원 둘레길(果川) (1) | 2022.04.10 |
섬강 자작나무 둘레길(原州) (0) | 2022.04.03 |
만수저수지 둘레길(安城) (0) | 2022.03.27 |
- Total
- Today
- Yesterday
- 바람길숲
- 향토유적 숲길
- 동물원둘레길
- 임영대군
- 수원팔색길
- 서호
- 갈산둘레길
- 광교산
- 동방저수지
- 남동둘레길
- 가족
- 물왕호
- 모락산둘레길
- 서봉산
- 설날
- 황성공원
- 소래습지생태공원
- 모수길
- 성경타자
- 보통저수지
- 여우길
- 용인팔경
- 일월수목원
- 감사
- 일월공원
- 서울둘레길
- 흥부저수지
- 경기대학교
- 쑥부쟁이둘레길
- 백범길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5 |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