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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축만제(水原)

영대디강 2021. 1. 31. 05:24

축만제(祝萬堤)는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화서동에 조선 후기 화성의 서쪽 여기산(麗妓山, 105m) 아래 축조한 저수지이다. 2005 10 17일 경기도의 기념물 제200호로 지정되었다. 일명 서호(西湖)로 불렸으나 2020년에 공식적으로 축만제로 명칭이 환원되었다.

축만제(祝萬堤)는 조선 후기 화성의 서쪽 여기산 아래 축조한 저수지로 서호라 불렀으며, 1799(정조 23) 수원성을 쌓을 때 일련의 사업으로 내탕금 3만 냥을 들여 축조하였다. 당시 수원성의 동서남북에는 네 개의 호수〔四湖〕를 만들었다. 북지(北池)는 수원성 북문 북쪽에 위치한 일명 만석거(萬石渠)를 말하는 것으로 1795년에 완성하였다. 또한 남지(南池)는 원명 만년제(萬年堤)라 하여 1797년에 화산 남쪽의 사도세자 묘역 근처에 시설한 것이다. 그리고 동지는 수원시 지동에 위치하였다고 하나 현재는 형체를 알 수가 없다.

축만제의 규모는 문헌상 제방의 길이가 1,246(), 높이 8, 두께 7.5, 수심 7, 수문 2개로 되어 있다. 제방에는 제언절목(堤堰節目)에 따라 심은 듯 아직도 고목들이 서 있다. 아울러 축만제둔(祝萬堤屯)을 설치하여 이곳에서 생기는 수입은 수원성의 축성고(築城庫)에 납입하였다는 것을 보면 제방 아래 몽리구역[물이 들어와 관개의 혜택을 받은 곳]의 농지는 국둔전(國屯田)이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축만제는 천년만년 만석의 생산을 축원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화성 서쪽에 있어 일명 서호로 불리고 있다.

축만제의 가치는 세계적으로도 인정 받아 김제 벽골제와 함께 2016 11 ICID(국제관개배수위원회) 세계 관개시설물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김제벽골제는 제천의 의림지, 밀양의 수산제와 함께 삼한 시대의 저수지로 알려져 있으며 중에서도 가장 저수지로서 오늘날 사적 111호로 지정돼 있다. 이곳 축만제와 김제 벽골제가 등재되면서 우리나라도 ICID 등재 시설물 보유국이 됐다.

삼남길은 조선시대 10대 대로 중 하나로 가장 긴 우리나라의 대표 도보길이다. 해남 땅끝마을에서 시작해 서울 남대문까지 무려 1천리에 달하는 삼남길은 한반도를 종으로 가로지르고 있다. 때문에 삼남길은 ‘한반도의 대동맥’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삼남길은 조선시대 전국 각지의 사람과 물자가 이동하는 육로 교통의 중심이었다. 보부상에서부터 왕의 행차에 이르기까지 모두 삼남길을 통해 이뤄졌으니 그야말로 전국을 오가는 모든 사람들이 이 삼남길을 이용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삼남길의 수원, 화성, 오산 구간은 경기도와 수원시, 화성시, 오산시가 연구개발하고 ()아름다운도보여행, 코오롱스포츠가 함께 참여하여 조성한 것으로 총 33.4km에 이른다. 삼남길은 옛 삼남길의 원형을 최대한 따르면서 도보객들의 안정성과 쾌적성을 최대한 반영해 조성됐다. 특히 지지대비, 서호(축만제), 용주사, 독산성 및 세마대지, 궐리사 등 풍부한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는데다 보행조건만을 고려했던 기존의 도보길과는 달리 역사성까지 함께 갖추고 있어 역사문화 탐방의 교육 효과도 곁들일 수 있는 역사문화탐방길로 평가받고 있다.

호수를 한바퀴 돌아들면 오리(2,000m) 라고 한다. 우리네 보통사람들은 그냥 세바퀴쯤은 거뜬하게 시오리(6Km)를 걸었더니 약 한시간 반쯤 소요되는 것 같다. 그래도 일만보가 조금 넘어가긴 하지만, 축만제 호수 주변을 돌아보면서 이곳에 조성된 환경이 너무 좋아서 그런지 건강보약을 한첩 마신것 같은 기분으로 저절로 업(Up)된다. 

약 500m의 제방이 곧게 뻗은 길을 걸으며, 이 길을 언제 만들었나 궁금하여 검색창을 들여다 봤더니 재밋다.  1799(정조 23) 서호라고 불리는 축만제(祝萬堤)가 축조된 이후에는 방축이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방축촌(防築村)이라고도 불리었으며, 서호에 수문이 동서로 한 개씩 있어서 동쪽 수문이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에서 동수문촌(東水門村)이 라고 불리기도 했다. 동말이란 지명은 막을 동()에 말리꽃 말()을 쓰고 있는데 주민들은 옛날부터 이 지역에 마을이 생기고 방축을 쌓게 될 것이라는 예언적인 지명으로써 지명이 뜻하는 예언이 꼭 들어 맞았다고 말하고 있다.

서둔(西屯)은 축만제에 의거하여 설치된 것으로 축만제둔(祝萬堤屯)이라고도 불리며, 83 15 4승의 밭에 도조(賭租) 556 14 4승이 설정되어 있었다. ‘전좌수택(前左水澤)’이라는 표현에서 보듯이 , , 서쪽의 축만제와 , 즉 북쪽의 만석거는 화성계획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으며, 이에 서둔은 대유평과 마찬가지로 수성(修城)을 위한 주요 재원으로 사용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서둔은 도감관(都監官) 1, 감관(監官) 1, 농감(農監) 2, 동감(動感) 2, 색리(色吏) 1, 사령(使令) 2, 권농(勸農) 2명의 관리가 경영하도록 되어 있었다.

이곳에 있었던 농촌진흥청은 농촌진흥을 위한 시험·연구 및 농업인의 지도·양성과 농촌지도자의 수련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는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중앙행정기관으로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서둔동 250번지에 있었다. 이후 농촌진흥청 본청과 농업과학원이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농생명로 300으로 이전을 완료하였다. 산하 기관인 국립식량과학원, 국립원예특작과학원, 국립축산과학원도 2015 3월 전라북도 전주시 혁신도시로 모두 이전하였다.

우리나라에는 대략 350여종의 새들이 서식하고 있다는데, 그 중에 60여종은 여름철새이고 100여종은 겨울 철새란다. 그 외의 새들은 모두 텃새와 나그네 새들이며, 그 중 가장 많은 겨울 철새는 오리류 란다. 여기 축만제(서호)저수지에는 상류에서 따뜻한 물이 유입되면서 동절기에도 물이 얼지 않아 새들이 찾는 주요 장소로 흰빰검둥오리, 민물가마우지 등 수 천마리 새들의 보금자리로 큰기러기, 쇠기러기, 쇠백로, 흰뺨검둥오리, 물닭, 뿔논병아리가 주로 살고 있다.

‘발가벗고 삼십 리’ 설화의 무대가 되는 곳은 화성시의 병점과 수원의 축만제다. 두 지역간의 거리가 약 삼십 리가 된다고 한다. 병점을 우리말로 풀면 떡전거리로, 떡전거리에 살던 한 양반이 발가벗고 뛸 수밖에 없었던 사연은 이렇다. 옛날 수원 도성에서 30리쯤 떨어진 떡전거리에 양반집 자손인 한 젊은이가 살고 있었다. 평소에 조상의 산소를 잘 관리하고, 부모님에게도 효성이 지극한 선비였다. 그러저러한 이유로 고을에서는 비록 그의 부친이 일찍 세상을 떠나긴 했지만 ‘본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칭찬을 받아오던 사람이었다. 엄한 가풍으로 생활에 있어서도 절제를 하던 그였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그도 친구들의 권유에 못 이겨 기방(妓房) 출입을 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원부중(水原府中) 축만제(祝萬堤)가의 행화촌(杏花村: 술집)에서 기생의 아리따운 자태에 반해 술을 마시다 보니 그만 기방에서 잠이 들고 말았다. 그런데 잠결에 생각하니 그날이 선친의 제삿날이었던 것이다. 아버지의 제사를 지내지 못할 불효를 생각하니 앞이 캄캄했다. 다급한 마음에 의관도 갖추지 못하고 뛰기 시작해 가까스로 자정을 넘기지 않고 집에 도착하여 아버지의 제사를 지낼 수 있었다. 선비된 자가 의관을 갖추지 못하고 뛰었으니 발가벗고 뛴 꼴이 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와전되어 '수원사람은 발가벗고도 삼십리를 뛴다' 이렇게도 전한다.

농사가 천하지대본이었던 조선 시대, 임금의 가장 큰 관심사 역시 농사였다. 특히 농업개혁에 정성을 쏟은 임금이 있는데, 바로 정조다. 정조는 수원 화성 서쪽 여기산 아래(옛 농업진흥청 옆)에 커다란 인공저수지 곧 축만제(祝萬堤)를 만들고 새로운 농사법을 연구하도록 했다. 축만제는 이내 서호(西湖)로 이름이 고쳐졌다. 축만제를 만든 뜻은 튼튼한 나라 재정을 위한 목적도 있지만 수원 백성의 어려움을 덜어주려는 목적도 컸다. 또 정조는 이곳을 우리나라의 표준 농업도시로 만들려 계획했다. 축만제를 중심으로 한 관계시설을 축만제둔(祝萬堤屯) 또는 서둔(西屯)이라고도 불렀고 지금도 이 마을 이름은 서둔동이다. 이곳은 말하자면 우리 농업역사에서 혁신적 농업정책을 펼쳤던 시발점이다. 옛 농업진흥청 곁 축만제둑에는 '축만제'라는 표지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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