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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처음 열린 날(開天節),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질퍽한 지방도를 아침 일찍 내달려 천흥저수지 둘레길로 한걸음에 찾아갔다. 집에서 출발할 때 퍼붓던 빗줄기가 신기하게도 천안에 도착하니 가늘게 내리던 가랑비 조차도 그치고 하늘도 맑아서 시월의 호숫가를 낭만의 걷기 좋은 둘레길로 우릴 안내한다.

천흥저수지는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성거읍에 위치한 만수면적 4만평의 계곡형 저수지로 1959년 만들어진 아담한 저수지이다. 데크길로 잘 조성된 호숫길을 한바퀴 돌아드는데 30분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라서 이쪽으로 한바퀴 반대방향으로 또 한바퀴, 그리고 요리조리 둘러보며 또 한바퀴 모두 세바퀴를 돌았더니 그제서야 겨우 만보란다. 얏호~ 릴리리 맘보. 목표달성! ㅎㅎ

이 저수지의 뒷편에 솟아있는 성거산은 차령산맥의 북쪽에 발달된 화강암 지대로 지난달에 올랐던 태조산을 비롯하여 왕자산, 일봉산, 노태산 등이 주변부에 발달해 있다. 산지의 경사는 비교적 급하나 산림지의 역할을 하며, 두 종류 이상의 수목으로 구성된 혼합림(混合林)이 자라고 있다. 능선은 남북 방향으로 뻗어 있고, 정상의 북서 산기슭에는 계곡들이 위치한다. 이들 계곡수는 정상으로부터 약 2㎞ 떨어진 천흥 저수지로 집수(集水)된다.

성거산 주변에 있는 많은 봉우리들에서 기반암의 심층 풍화(深層風化)의 영향을 받은 작은 규모의 토르(tor) 및 핵석(核石)을 관찰할 수 있으나 산림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다. 암봉의 단애의 발달도 미약한 편이며 이 역시 삼림에 가려 관찰이 힘들다. 맑은 물빛에 투영되는 하늘과 산그림자가 정겹다.

이곳에 있던 천흥사는 현재는 폐사된 사찰이다. 유물로 보아 고려시대 이전에 창건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1481년(조선 성종 12) 편찬된 《동국여지승람》에 폐사지로 나온다. 현재 절터는 마을로 변하였고, 그나마 1959년 천흥저수지가 만들어지면서 많은 부분이 유실되었다. 보물급 문화재가 많은 것으로 미루어 옛날에는 큰 절이었음을 알 수 있다. 천흥사지오층석탑은 보물 제354호, 천흥사지 당간지주는 보물 제99호로 지정되었다. 이중 오층석탑은 고려의 석탑 양식을 띠고 있는 것으로, 1966년 해체 복원할 때 부근에서 옥개석이 발굴되어 함께 복원하였다. 당간지주는 기단의 양식으로 볼 때 통일신라 때의 유물로 추정된다.

성거산 주변은 경사가 60~100%로 오대통(五垈統)에 속한다. 오대통은 산성암인 화강암 및 화강 편마암의 풍화 잔적물을 모재(母材)로 한 토양으로 심한 경사 내지 매우 심한 경사지인 산악지에 분포한다. 이 토양은 사양질로서 토양 배수가 매우 양호하고 토심이 얕은 것이 특징이며, 표토는 암갈색, 농암갈색, 농암회갈색 혹은 흑생의 세사 양토 내지 사양토로서 자갈과 잔돌이 있고 두께는 10~31㎝ 정도이다.

천흥사(天興寺)는 신라 때 창건되어 고려시대까지 유지되다가 조선 전기에 폐사된 사찰로, 고려시대에는 유가종(瑜伽宗) 소속 사원이었는데 조선 초기에는 조계종에 속해 있었다. 현재 천흥저수지의 조성으로 인해 사역(寺域) 대부분이 파괴되었고 성거산 동북 사면 하단부에 최근 건립된 불당이 있다. 원래의 절터는 불당의 전면에 있는 과수원 지역으로 추정된다. 절터에는 각종 석부재를 비롯하여 기와·자기·토기 조각 등이 산재해 있고 ‘천흥(天興)’이라는 명문이 새겨진 기와 조각도 발견된 바 있다.

수련(睡蓮, Nymphaea tetragona, water lilies)은 한반도 중부 이남의 늪이나 연못에서 재배하는 여러해살이 수생식물로 길고 단단한 잎자루와 꽃자루는 깨끗하고 얕은 물 속의 진흙에 내린 뿌리줄기에서 나온다. 둥글고 중앙을 향해 갈라진 잎은 물 속에 잠기지 않고 물 위에 둥둥 뜬다. 꽃은 흰색을 띠며, 물 밖으로 나와 있는 길다란 꽃자루 끝에서 6-7월에 핀다. 꽃잎은 낮에 활짝 벌어졌다가 밤에 접힌다. 꽃받침에 싸인 열매는 물 속에서 익은 뒤 썩어서 씨를 내보낸다. 밤에 꽃이 오므라들므로 수련(睡蓮)이라고 한다.

천흥사의 유물로는 1963년 보물로 지정된 오층석탑이 있는데, 신라 석탑의 조형미를 계승한 고려시대 석탑이다. 1966년 해체 수리 때 옥개석이 발견되었다. 약 5.5m의 높이에 이중 기단 위에 탑신을 올린 형태이고 1층 탑신에는 사리 봉안 장치가 있다. 1963년 보물로 지정된 당간지주(幢竿支柱)는 원래 위치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이며 60cm 간격을 두고 동서로 세워져 있다. 원래는 2층 기단 위에 당간과 지주를 받치고 있었으나 기단은 파괴되고 간대석(竿臺石)도 흩어진 상태이다. 기단의 전후와 측면에 안상(眼象)이 새겨져 있는데 그 수법이 매우 정교하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1993년 국보로 지정된 천흥사명 동종(銅鍾)은 국내에 남아 있는 고려시대 종 중에서 가장 크다. 연곽 아래에 위패형 틀을 설치하고 명문을 새겼는데, ‘성거산천흥사종명통화이십팔년경술이월일(聖居山天興寺鐘銘統和二十八年庚戌二月日)’이라 기록되어 있어 1010년(현종 1)에 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성거산의 북서측은 잔자갈이 있는 양질 조사토로서 경사는 60~100%이며 침식이 있는 도산통(陶山統)에 속한다. 도산통은 조립질 화강암 및 화강 편마암의 풍화 잔적층을 모재로 하며 약한 경사 또는 매우 심한 경사를 가진 구릉 및 산악지에 분포하고 있는 암쇄토로서 잔자갈이 많은 조사질로 유효 토심이 10~30㎝로 얕고 토양 배수가 매우 양호한 것이 특징이다. 한편 남동측은 외산통(外山統)으로 운모 편암 및 편마암의 풍화 잔적층을 모재로 하며 자갈이 매우 많은 양질로서 토양 배수가 양호하고 유효 토심이 10~30㎝로 얕다.

천안시의 저수지 20개의 읍·면·동별 분포를 보면, 성환읍에 어룡리 어룡 저수지, 매주리 매주 저수지, 왕림리 왕림 저수지, 율금리 율금 저수지 및 학정리 학정 저수지, 직산읍에 마정리 마정 저수지, 양당리 양전 저수지 및 삼은리 직산 저수지, 성거읍에 송남리 남창 저수지, 천흥리 성거 저수지·천흥 저수지 및 소우리 신월 저수지, 목천읍에 교촌리 용연 저수지, 수신면에 발산리 발산 저수지, 입장면에 기로리 입장 저수지 및 시장리 풍년 저수지, 성남면에 대정리 대정 저수지, 안서동에 문암 저수지, 업성동에 업성 저수지, 신부동에 천호 저수지가 각각 입지(立池)해 있다.

호수를 세바퀴째 돌아드니 습한 날씨라서 그런지 땀이 많이 흘러 저수지 주변 천정사(天正寺) 로 올라갔다. 산사라서 그런지 정말 조용하다. 인적이 끊긴 채 절 입구에서 막걸리 등을 파는 노점상만 바쁘다.

정상에는 성거산성이 자리잡고 있으며 군사통신기지 설치 당시에 성곽이 많이 파괴되어 옛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산 정상부를 둘러쌓은 테뫼식 산성으로, 둘레는 950m이고, 성 안의 면적은 5700m2이다.

성거산의 높이는 579m이다. 천안 시가지 동북쪽에 자리잡고 있다. 고려 태조 왕건이 삼국을 통일하기 위하여 애쓰고 있을 때 천안시 직산읍 산헐원을 지나다가 동쪽의 이 산을 보고 신령이 있다면서 성거산이라고 부르고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근처 맛집 식당을 검색하여 가까운 이곳을 찾았는데 입구에 오래된 Eldorado 승용차가 서 있다. 아마도 오래된 차량을 수집하는 취미를 가진 분이 이 식당의 주인장이 아닐까 싶다. Eldorado는 1950년대 최고급 승용차로, 엘도라도는 축제 때 벌거벗은 몸에 황금가루를 칠하고 의식이 끝나면 구아타비타 호수에 뛰어들어 가루를 씻어냈다고 하며, 신하들은 보석과 금으로 만든 물건들을 호수에 던졌다고 한다. 페루와 멕시코를 정복한 스페인인들은 1530년 이전에 이 이야기를 전해 들었고, 1538년 '금가루를 칠한 사람'을 찾기 위해 보고파 고지대로 갔으나 흔적을 찾지 못했다. 이후 그 지역은 스페인인이 통치했다. 엘도라도는 전설적인 황금의 도시를 뜻하는 말이 되었지만, 시볼라·키비라·카에사르·오트로메이코처럼 풍요를 상징하는 여러 신화적인 지역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이러한 지역을 찾아다니면서 스페인 등은 아메리카 대륙을 빠른 속도로 탐험해 정복해나갔다. 그뒤 엘도라도는 그 자리에서 쉽게 부를 얻을 수 있는 모든 장소를 뜻하게 되었다.

보리굴비 정식을 먹고 나오면서 커피와 매실차를 마시는데 주변의 풍경이 기가 막히게 아름답다. 아마도 젊은 가족이 여름날에는 아이들과 함께 캠핑 겸사겸사로 이곳을 찾는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손자 태윤이가 구청장배 태권도 대회에 나가서 개인과 단체 모두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고 자랑하러 왔단다. 태윤의 모습을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가슴에도 자랑스럽고 뿌듯한 이 감정을 뭐라 표현해야 할런지 모르겠다. 은메달 두개를 목에 건 손자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으면서 태윤이의 좋아하는 모습과 생기 넘치는 자신감에 찬 그런 활동이 좋아도 너무 벅차게 좋다. 그래 그래. 건강하고 멋지게 활동적으로 무럭무럭 무탈하게 자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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