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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모수길(水原)

영대디강 2025. 1. 26. 04:19

6일간의 설 연휴가 시작되는 1월 25일의 만보걷기는 수원팔색길 중 제1색 모수길을 걷기로 했다. 수원팔색길이 조성된 2014년 말, 8개의 걷기 노선은 수원의 옛길과 등산로 및 하천길을 연결하여 단절된 구간은 되살려서 이정표와 쉼터 및 그늘을 만들어 시민들이 쉽고 편리하게 걸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렇게 안전하고 걷기 좋은 길로 만들기 위해 수원시에서는 주변수목과 시설물을 유지·관리하고, 시민단체와 함께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운영한다.

수원팔색길 안내판에 쓰여진 대로 '수원사람 발가벗고 삼십리 뛴다'라는 표현 그대로 오늘의 걷기코스인 수원일색 모수길은 '도심 속 생명의 길'이며 총거리: 22.3km, 소요시간: 7시간 20분, 주요구간은 광교저수지 -> 화홍문 ->수원화성박물관 -> 팔달문시장 -> 수원천 -> 수인선협궤열차길 -> 잠사과학 박물관 -> 서호공원 -> 서호천 -> 노송마을-> 광교산 노선이다. 모수길은 수원의 대표 하천인 서호천과 수원천을 따라 도심속 자연환경을 느낄 수 있는 길이다. 

시작지점인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화서동 436-1 서호저수지가 있는 서호공원주차장에서 출발한다. 서호저수지인 축만제는 1799(정조 23) 화성의 서쪽 여기산 아래에 길이 1,246, 너비 720척으로, 당시로서는 최대 크기로 조성된 저수지이다. 2016 11월 국제관개배수위원회(ICID) 세계총회에서 축만제의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관계시설물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또한 수원팔경 중 하나인 '서호낙조'의 아름다움을 품고 있어서 해질 녘, 서호에 여기산의 그림자가 덮이며 그 위로 석양이 내리면서 서호를 찾는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는 아름다운 곳이다.

출발지점에서 저수지를 한바퀴 돌면 2Km 거리인 서호(祝萬堤)는 조선 후기에 수원성을 쌓을 때 일련의 사업으로 내탕금 3만냥을 들여 축조하였다. 축만제의 규모는 문헌상 제방의 길이가 1,246(), 높이 8, 두께 7.5, 수심 7, 수문 2개로 되어 있다. 아울러 축만제둔(祝萬堤屯)을 설치하여 이곳에서 생기는 수입은 수원성의 축성고(築城庫)에 납입하였다는 것을 보면 제방 아래 몽리구역(물이 들어와 관개의 혜택을 받은 곳)의 농지는 국둔전(國屯田)이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정조대왕 당시 수원성의 동서남북에는 네 개의 호수(四湖)를 만들었다. 북지(北池)는 수원성 북문 북쪽에 위치한 일명 만석거(萬石渠)를 말하는 것으로 1795년에 완성하였다. 또한 남지(南池)는 원명 만년제(萬年堤)라 하여 1797년에 화산 남쪽의 사도세자 묘역 근처에 시설한 것이다. 그리고 동지는 수원시 지동에 위치하였다고 하나 현재는 형체를 알 수가 없다. 이곳 서호는 1961년 국무원 고시 제16호에 의해 정식 명칭이 되었다가 2020년 축만제로 변경되었다. 하지만 국가지명위원회에 따르면 공문 등 법적 문서에서는 '축만제(서호)'와 같은 병기는 지양하지만, 서호라는 지명도 여전히 별칭으로 사용 가능하다.

이곳은 2005 10 17일 경기도 기념물 200호로 지정되었다. 지금도 서호저수지 또는 서호(西湖)로 불리고 있으나, 2020년에 공식적으로 축만제로 명칭이 환원되었다. 이곳의 공식명칭인 축만제(祝萬堤)는 천년만년 만석의 생산을 축원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화성 서쪽에 있어 일명 서호로도 불리고 있다. 옛 농촌진흥청이 자리하고있던 곳으로 지금은 중앙선관위 선거연수원이 이 길 오른쪽에 있다.

축만제의 제방에는 제언절목(堤堰節目)에 따라 심은 듯 아직도 고목들이 버티고 서 있다. 여기서 만나는 '서호낙조'는 저녁 노을에 물든 서호의 수면에 여기산의 그림자가 드리워 운치를 더하는 경관을 묘사한다고 전한다. 많은 사람들이 차거운 겨울날씨에도 반려동물과 함께 걷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머릿속에 엉뚱한 생각이 떠 오른다. 사람들이 손주들과 함께 걷는 모습을 전혀 만날 수 없으니, 1799년에 축조된 이곳에 앞으로 100년 쯤 후에는 아지라는 이름을 가진 강씨들이 걷고 있을거라는 그런 쑬슬한 생각이다. 

제방 아래로 펼쳐지는 농경지의 모습이다. 정조는 왕으로 즉위한 이후 농업기술과 농업환경 개선의 핵심은 수리시설이라고 파악했다. 그리하여 화성을 축성하면서 주변에 만석거, 만년제, 축만제 등을 쌓았다. 여러 제언(堤堰)이 축조된 후 물이 관리되자 버려졌던 땅들이 비옥한 전토로 바뀌었다. 그런 이유로도 축만제는 조선후기 농업수리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1799년 정조대왕이 축조한 이곳에는 상류에서 따뜻한 물(13도C) 이 유입되면서 겨울철에도 저수지가 얼지않아 흰빰검둥오리, 가마우지 등 수천마리 철새도래지로 정착되었다. 이곳에 가마우지 서식지가 형성된 이유는 서호의 물이 깨끗하기 때문에 2급수 이상의 물에서만 먹이활동을 하는 가마우지들이 활발한 먹이활동을 할 수 있었다. 그런 이유로 이곳은 자연환경의 우수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가 되었고, 아름답고 깨끗한 자연과 도시의 조화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로 평가되고 있다.

호수 가운데 작은 섬처럼 보이는 곳이 새들의 보금자리라서 그런지 나무들이 온통 새들의 배설물로 채색되어 하이햔 자작나무들로 보인다. 안내판을 읽어보니 이곳에는 민물가마우지, 서호납줄갱이(어류), 큰기러기(멸종위기야생동물2급), 뿔논병아리, 쇠백로, 쇠기러기, 물닭, 흰빰검둥오리 등이 살고 있단다.

축만제는 제방 양쪽 끝에 두 개의 수문이 설치되어 있는데, 이는 축만제에 가두어둔 물을 활용하기 위한 장치였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제방이었으므로 제언 관리를 위하여 감관 1, 감고 1명이 배치되어 있었다. 축만제 아래쪽에 설치한 축만제 둔전은 총 규모가 답 83 15 4승락에 달했다고 한다.

제방끝 수문 주변에 세워진 조선 후기의 정자 항미정(杭眉亭)이 풍치를 더한다. 조선 후기의 정자 항미정(杭眉亭)은 1831년 당시 화성유수 박기수가 호수 남쪽에 정자를 짓고 "서호는 항주(杭州)의 미목(眉目) 같다"고 읊은 소동파의 시구에서 한자씩 따와서 정자 이름을 항미정(杭眉亭)이라 하였고, 서호라는 이름도 중국 항주의 서호와 같다하여 이때 생겼다고 전한다.

제방길을 두바퀴째 돌아들면서 문득 동요 과수원길이 머릿속에 떠 오른다. "동구 밖 과수원 길 아카시아 꽃이 활짝 폈네/ 하이얀 꽃 이파리 눈송이처럼 날리네/ 향긋한 꽃 냄새가 실바람 타고 솔솔/ 둘이서 말이 없네 얼굴 마주 보면 쌩긋/ 아카시아 꽃 하얗게 핀 먼 옛날의 과수원 길// 향긋한 꽃 냄새가 실바람 타고 솔솔/ 둘이서 말이 없네 얼굴 마주 보면 쌩긋/ 아카시아 꽃 하얗게 핀 먼 옛날의 과수원 길//".

아직은 겨울인데도 파릇하게 보여지는 버드나무 모습이 정겹다. 버드나무는 아래로 축 늘어진 가지와 길쭉길쭉한 잎이 트레이드마크로, 식물에 별 관심 없는 사람도 멀리서 봐도 한 눈에 알 수 있다. 물을 좋아해서 시냇가나 강가, 호숫가와 같은 곳에서 많이 자란다. 사진처럼 우뚝 서서 물에 닿을까말까 할 만큼 가지를 늘어뜨린 버드나무는 물가가 나오는 장면의 클리세 수준으로 산과 들에서도 잘 자란다. 커다란 버드나무를 보면 오래 버티고 섰던 고목 같지만 사실은 엄청나게 빨리 자라서 금방 커진다. 그래서 왕버들처럼 오래 사는 일부 종 말고는 수명이 그다지 길지 않다고 한다

오늘의 걷기 코스는 축만제가 아니라 모수길이므로 축만제를 두바퀴 돌고나서 모수길로 나섰다. 항미정에서 수문길을 따라 나서면 서호천으로 나가는 길이다. 서호천은  총 길이 11.5km의 하천이다. 모수길은 자전거와 도보길이 공유되는 길이라서, 자전거가 안다니는 한쪽방향으로 신경쓰면서 걸어야 한다. 

국도 제42호선(인천 ~ 동해선, 國道第四十二號 仁川東海線)이 지나가는 서둔교 교량아래로 지나간다. 커다란 잉어 두마리가 입을 맞대고 있는 그림이다. 아마도 축만제에 서식하는 서호납줄갱이 모습을 표현한것 같다. 서호납줄갱이는 한국 고유어종으로 수원 축만제(서호)에서만 발견된 잉어과 어류이다. 현재는 멸종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고, 유일한 표본은 미국 시카고 월드 자연사 박물관에만 있다고 한다.

이곳은 본래 물이 맑은 하천이었으나 생활하수와 각종 오폐수로 오염되고 집중호우시 가옥과 농경지가 상습적으로 침수되자, 1998년부터 체계적인 하천정비사업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후 하천가에 갯버들과 갈대를 심고 산책로를 만드는 등 생태도심하천으로 조성하여 주민들의 휴식공간으로 탈바꿈하였다. 가까이에 농촌진흥청 작물시험장이 있으며 정자지구·천천지구 등의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있다. 그리고 이곳은 서호저수지(축만제)의 주하천이다.

얼마 전까지는 서호천 유역에 많은 농경지가 있었으나 현재는 대부분 시가지나 주거지로 바뀌었다. 이곳의 옛 명칭은 사근천(沙近川)으로 추정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사근천을 "광교산"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흐르다가 대천(大川, 현 황구지천)에 합류된다."고 기록하고 있고, 또 『화성지』에 "부의 북쪽 15리 일용면(현재의 파장동, 이목동 일대)에 있고 광교산의 하류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단다

 1872년지방지도』에 따르면, 광교산 바로 서쪽의 일용면에 두 개의 물줄기가 표시되어 있고 이 물줄기들은 축만제로 연결된다. 또한, 두 물줄기 사이에 있는 지지대고개의 옛 이름은 사근현(沙近峴)이라고 표기하고 있다는 문헌들을 통해 볼 때 사근천은 현재의 서호천으로 추정된다.

경기옛길 제5길 중복들길 표지판이다. 이길은 서호공원입구에서 배양교까지 약 9.1Km로  2시간 소요된다. 경기옛길은 역사적 고증을 토대로 원형을 밝혀 지역의 문화유산을 도보길로 연결한 새로운 형태의 역사문화탐방로이며, 조선시대에는 한양과 지방을 연결하는 교통로가 있었다. 이 중 경기도를 지나는 주요 도로망은 제1로인 의주로를 시작으로 시계방향으로 경흥로ㆍ평해로ㆍ봉화로ㆍ영남로ㆍ삼남로ㆍ강화로가 있었다. 조선시대 실학자 신경준이 집필한 역사지리서 ‘도로고(道路考)’와 김정호가 편찬한 ‘대동지지(大東地志)’를 기본으로, 역사적 고증과 현대적 재해석을 거쳐 지역의 문화유산을 ‘경기옛길’로 연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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