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경기도 용인특례시 처인구 모현읍 능곡로(능원리) 산3의 고려 후기 문신이며 학자인 포은 정몽주(圃隱 鄭夢周) 선생의 묘역이다. "지방문화재제1호 포은 정몽주 선생 묘역"의 비석을 먼저 만난다. 지방문화유산은 시·도지사가 지방자치단체 조례에 따라 지정한 문화재로, 유형·무형·기념물·민속문화재 등으로 구분된다. 지방자치단체는 국가의 시책을 고려해 문화유산 보존·관리·활용을 위한 지역적 시책을 수립·추진할 책무가 있다.

개경에서 피살된 포은 정몽주의 묘소가 왜 이곳에 있을까 먼저 그게 궁금하다. 그는 순절한 뒤 개성 풍덕군에 묘소를 썼다가, 고향인 경북 영천으로 이장하던 중 그 행렬이 용인시 수지면 풍덕천리에 이르렀을 때, 명정이 바람에 날아가 지금 묘소의 위치에 떨어져 상여가 움직이지 않자 이곳에 안장하였다고 한다. 이곳은 후대의 정비로 원형을 많이 잃었으나 정몽주의 충절과 절의, 자취를 살펴볼 수 있는 유적지이다.

고려말의 충신인 포은 정몽주의 묘소는 문수산(221m) 북서 자락의 야트막하게 완만한 능선 위에 자리한다. 단분(單墳)이며 무덤의 좌향(坐向)은 북서향이다. 이 일대는 영일정씨(迎日鄭氏)와 연안이씨(延安李氏) 일가의 묘역(墓域)이 분포한다. 그런 연유로 이웃에는 저헌 이석형 선생의 묘와 신도비가 더 넓게 자리하고 있다.

묘의 봉분(封墳)은 평면 원형(圓形)이며 주위에 현대에 설치한 병풍석(屛風石)과 난간석(欄干石)이 둘러져 있다. 그 바깥으로 ‘팔(八)’형으로 곡장(曲墻)이 에워싸고 있다. 봉분 전면 좌우에는 현대에 설치된 망주석(望柱石) 1쌍이 세워져 있고 그 앞으로 1단의 계체석(階砌石)이 설치되어 있다. 계체석에 잇대어 봉분 정면에 현대에 제작한 상석(床石) 2기와 향로석(香爐石) 1기가 배치되어 있고, 그 좌우에 옛 상석 2기가 놓여 있다.

묘소에서 바라다 보이는 풍경이다. 정몽주(鄭夢周, 1337~1392)는 경상도 영천에서 태어나서 1357년(공민왕 6) 감시(監試)에 합격하고, 1360년 문과에 장원급제해 1362년 예문관(藝文館)의 검열(檢閱) · 수찬(修撰)이 되었다. 1363년 낭장 겸 합문지후(郎將兼閤門祗候) · 위위시승(衛尉寺丞)을 역임하였고 동북면도지휘사(東北面都指揮使) 한방신(韓邦信)의 종사관(從事官)으로 종군하였고, 1380년 조전원수(助戰元帥)로 이성계를 따라 전라도 운봉(雲峯)에서 왜구를 토벌하였다. 1392년(공양왕 4) 개경(開京) 선죽교(善竹橋)에서 피살되었다.

도로에 그려 놓은 선죽교에 올라서 봤다. 봉분 정면 좌측 묘비(墓碑)는 1517년(중종 12)에 세운 것이다. 규모는 높이 220㎝, 비신 높이 151㎝, 폭 62㎝, 두께 15㎝이다. 백색 대리석 전면에는 “고려수문하시중정몽주지묘(高麗守門下侍中鄭夢周之墓)”라 썼다. 뒷면에는 “1517년(중종 12) 문묘(文廟)에 배향(配享)하고 묘에 표석(表石)을 세웠는데 고려의 벼슬을 쓰고 조선의 시호를 쓰지 않음은 공께서 두 왕조를 섬기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기 위함이다.”라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포은 정몽주가 죽은 뒤 13년이 지난 1405년, 이방원은 정몽주를 영의정에 추증하고 익양부원군에 추봉했으며, 문충(文忠)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새 나라의 기틀을 다지는 조선에도 정몽주 같은 충신이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후 정몽주의 충절은 선죽교에 뿌린 피가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다는 전설로 남았고, 그의 학문과 이념은 조선의 사림파에게 이어졌다.

'백로가'는 정몽주 선생의 어머니가 쓴 시이다. "까마귀 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마라/ 성난 까마귀/ 힌빛을 새오나니/ 청강에 고이 씻은 몸을/ 더럽힐까 하노라//"

우리가 잘 아는 정몽주 선생의 단심가이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의 이 시는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 이방원이 정몽주 선생의 마음을 떠 보기 위해서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서 백 년까지 누리리라//"의 답시이다.

'정몽주 선생의 생애와 충절의 혼'이 묘소 입구 카페의 벽에 붙어 있다. 정몽주의 마음을 분명하게 알게 된 이상 그를 살려둘 수는 없다고 판단한 이방원은 조영규 등을 보내 집으로 돌아가는 정몽주를 선죽교에서 습격하여 죽였다. 이때 정몽주의 나이 쉰여섯이었다. 이성계 일파는 “정몽주는 도당을 만들어 나라를 어지럽혔다.”라며 다시 효수하고, 정몽주와 뜻을 같이했던 문관들은 유배 보내, 정적들을 완전히 제거했다. 정몽주를 처형한 3개월 뒤 이성계는 고려 공양왕을 내치고 왕위에 올라 새로운 나라인 조선을 열었다.

어린이날인 5월5일 오늘은 손자 민수, 이수와 함께 역사 공부를 겸하여 찾은 포은 정몽주의 묘소 바로 아래 편에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 능원리 258-9는 삼국시대로부터 조선시대의 등잔과 등잔대·촛대의 300여점 및 조선시대 부엌·안방·사랑방 등의 세간살이들을 모아 전시하는 재단법인 한국등잔박물관이 있다.

우리 곁에는 어둠이 매일, 하루도 빼먹지 않고 우리에게 찾아온다. 선조들은 안방으로, 부엌으로, 사랑방으로 쉬지 않고 찾아오는 밤을 등잔불로 다스렸다. 방마다 등잔불, 호롱불을 밝히고 남폿불을 밝혔다. 어른들은 기름 닳는다 꾸짖으며 자주 불을 껐다. 저녁 밥도 해 지기 전에 일찍 해먹었다. 이런 일상이 수십년 전까지 이어져 왔다.

한국등잔박물관은 세계 유일의 등기구 박물관으로서 한반도의 조명 역사를 재조명하고, 등기구와 함께 여러 생활 민속유물을 전시하며 조상들의 문화를 표현한 생활용품이자 예술품을 알리고자 조성한 개인박물관이다. 한국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는 대표 박물관으로서 조명역사를 전시, 연구, 보존, 교육 등 활동을 원활히 운영하여 국가적 문화융성에 기여하고자 한다는 뜻이 있단다.

한국등잔박물관의 외형은 수원 화성의 공심돈을 본떠 설계한 것이다. 돈이란 성곽 높은 곳에 쌓아 적을 쉽게 관찰하고 공격할 수 있게 만든 방어시설이다. 공심돈은 내부를 비어 있게 만든 돈을 뜻한다. 국내 유일의 이 소중한 등잔박물관을 설립한 분은 산부인과 의사 김동휘씨다. 개인적으로 평생 수집해온 등잔과 촛대 등 생활용품들을 1987년부터 이곳에 전시하여 벌써 3대가 됐단다.

1층 상설전시실엔 조선시대 양반 집에서 사용하던 생활용품들을, 2층엔 선인들이 직접 사용하던 등잔과 등잔대, 촛대, 도자기 등을 전시했다. 3층 다목적 문화공간 에선 1년에 5~6회 특별기획전이 마련된다. 70평 규모의 지하층에는 교육실도 있다. 김동휘씨가 각국을 여행하며 찍어온 다양한 표정의 주민·관광객 사진들을 ‘인간 가족전’이란 주제로 전시한 공간이다.

용인특례시의 주요 관광명소 중 정몽주 선생 묘가 첫번재로 소개된 안내판이다. 이 밖에도 충렬서원, 와우정사, 백남준아트센터, 에버랜드 및 캐리비안베이, 한국민속촌, 용인자연휴양림, 용인농촌테마파크가 소개되어 있다.

용인의 관광안내도 모습이다. 용인8경 등 대중교통정보와 주요 놀거리 및 볼거리들이 사진과 함께 소개되어 있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서호천길(水原) (12) | 2026.05.02 |
|---|---|
| 반월호수둘레길(軍浦) (7) | 2026.05.01 |
| 관악산둘레길(冠岳) (15) | 2026.04.25 |
| 풍전저수지(瑞山) (16) | 2026.04.18 |
| 강남둘레길(江南) (14) | 2026.04.11 |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 Total
- Today
- Yesterday
링크
TAG
- 일월공원
- 늠내길
- 왕송호수
- 흥부저수지
- 양재천
- 경기대학교
- 감사
- 여우길
- 축만제
- 정조대왕
- 동물원둘레길
- 수원팔색길
- 광교저수지
- 서울대공원
- 보통저수지
- 임영대군
- 경기옛길
- 모수길
- 황성공원
- 가족
- 성경타자
- 서울둘레길
- 서호
- 설날
- 누리길
- 소래습지생태공원
- 광교호수공원
- 지게길
- 반월호수
- 삼남길
|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 1 | 2 | |||||
| 3 | 4 | 5 | 6 | 7 | 8 | 9 |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 31 |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