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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대(遲遲臺)고개는 경기도 의왕시 왕곡동(골사그네)에서 수원특례시 파장동으로 넘어가는 국도1호선의 고개 이름이다. 한자의 지(遲)는 느리다, 더디다는 뜻이다. '일처리가 몹시 느리다'는 뜻의 '지지부진(遲遲不進)'의 '지지'가 이 고개의 지명과 같은 의미를 가진 단어다.

운전하면서 헤아릴 수 조차 없이 많이도 지나다녔던 이 지지대길이 갑자기 궁금해서 둘러봤다. 지지대쉼터에 잠시 주차를 한 후 이곳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이 길은 조선왕조 22대 임금인 정조대왕이 한양의 창덕궁을 떠나 경기도 수원군(현재의 경기도 화성시)에 안장된 아버지 장조(사도세자)의 능인 융릉으로 참배차 능행하였던 길로,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덕궁을 출발하여 경기도 화성시 융건릉까지 동선이 이어진다.

이조 정조 임금이 수원 현륭원 원행에 취해진 거둥이 무려 11차에 걸쳐 이루어진 것은 주지의 사실로 제3차 현륭원 전배를 마치고 1791년 1월 26일 환궁하는 길에 잠시 이곳에서 쉬었단다. 이때 정조는 신하들에게 이르기를 발을 멈춰 경들을 소견하는 것은 환궁하는 자기의 발걸음이 차마 발을 속히 뗄수 없는 심정이므로 더디게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라고 애틋한 심정을 토로하였다. 그리하여 이때부터 이곳을 '지지대'라 명명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양의 창덕궁에서 출발하여 이 고개를 오르면 멀리 화산에 있는 아버지의 묘소가 보이는데도 거기까지 가는 시간이 아주 더디게 느껴져서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정조는 "왜 이렇게 더딘가?"하고 한탄을 하였다고 하며, 참배를 마치고 서울로 환궁할 때는 이 고개의 마루턱에 어가를 멈추어 서게 하고 뒤돌아서서 오랫동안 부친의 묘역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로타리클럽 100주년 기념비의 모습이다. 로타리 클럽은 세대를 아울러 세상과 지역사회, 그리고 자신에게 지속력있는 변화를 일으키고자 하는 사람들을 한데 모은다. 전 세계의 로타리 회원들은 봉사를 통해 실천에 나서며 친구 및 이웃과의 연결을 강화한다. 대도시에서 시골 마을에 이르기까지 로타리는 우리가 살고있는 지역사회를 변화시켜 나간단다. 클럽을 통한 네트워크는 대중연설, 프로젝트 관리, 행사 기획을 포함한 다양한 기술 함양의 기회를 제공한다고 한다.

정조의 현륭원 전배 코스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덕궁 출발 → 용산구 한강대로 → 한강대교 노들섬(배다리) → 동작구 노량진로(용양봉저정) → 금천구 시흥대로(구 시흥행궁) → 금천구청 → 안양로 → 군포로 → 의왕 경수대로 → 지지대고개 → 수원 장안로 → 장안문 → 화성행궁 → 연무대 → 대황교동(수원 화성 시계) → 화성 융건릉 도착이다. 이곳 지지대비(遲遲臺碑)는 홍문관 제학 서영보가 지었고 윤사국(尹師國)이 글씨를 썼으며, 숭정 기원후 1807년 정묘 12월에 건립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지지대비의 높이는 1.5m이며, 경기도 유형 문화재 제24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정표를 따라 오솔길로 지지대비를 찾아 길을 걷다가 만난 비석을 확인해 보니 요즘 시대의 기독교인 동래정씨의 묘비였다. 묘지위에 돋아난 나무줄기와 잡풀들의 모습에서 묘역을 돌보지 않은 흔적이 확연하게 나타난다.

지지대비 옆 고목나무 아래에서 뭔가를 기원하며 제사를 지냈던 흔적이 보인다. 지지대에서 경수대로를 기준으로 서측에는 1807년 세운 지지대비가, 동측(수원 방향으로 약간 내려간 곳)에는 정조 동상을 세운 효행공원이 있다. 둘이 거의 마주보는 자리에 있지만 정작 둘 사이에는 경수대로를 횡단할 수단이 없어 두 곳을 즉시 방문할 수는 없다. 도보 기준으로 의왕 쪽 골사그내 육교나 수원 쪽 파장IC 아래 횡단보도까지 우회해야 한다.

정조는 재위에 오른 이래로 매번 아버지 사도세자를 생각하며 아버지가 안장된 왕릉인 수원 융릉으로 참배를 가기위해 능행을 하였는데, 그가 머물렀던 한양 창덕궁을 출발하여 한강을 배다리로 건너서 경기도 시흥군을 거쳐서 수원군에 있는 아버지 능인 융릉으로 가서 참배를 하였고, 능행 중에는 수원의 화성행궁에 머무르면서 정사를 보기도 하였다. 이는 정조가 1800년에 붕어(崩御)할 때까지 이어졌으며 정조는 붕어 후 그의 유언대로 아버지의 융릉 옆에 있는 건릉에 안장되었다.

삼남길 제3길 모락산길과 제4길 서호천길 사이 경기옛길의 안내 표지판이다. 삼남길은 총 95Km로 과천시: 9.9 Km 안양시: 3.5 Km 의왕시: 9.7 Km 수원시: 17.1 Km 화성시: 7.7 Km 오산시: 13.9 Km 평택시: 33.3 Km이다.

경기옛길은 역사적 고증을 토대로 원형을 밝혀 지역의 문화유산을 도보길로 연결한 새로운 형태의 역사문화탐방로이다. 조선시대에는 한양과 지방을 연결하는 교통로가 있었으며, 이 중 경기도를 지나는 주요 도로망은 제1로인 의주로를 시작으로 시계방향으로 경흥로ㆍ평해로ㆍ봉화로ㆍ영남로ㆍ삼남로ㆍ강화로가 있었다. 조선시대 실학자 신경준이 집필한 역사지리서 ‘도로고(道路考)’와 김정호가 편찬한 ‘대동지지(大東地志)’를 기본으로, 역사적 고증과 현대적 재해석을 거쳐 지역의 문화유산을 ‘경기옛길’로 연결하였다.

해우재(解憂齋)는 경기도 수원특례시 장안구 이목동에 있는 수원시 공립박물관이자 전시관이다. 수원시 이목동에 있는 화장실을 소재로 한 박물관이며 1995년부터 2002년까지 수원시장을 지냈던 심재덕(1939 ~ 2009)이 세계화장실협회 창립을 기념하고자 설립을 추진하였고, 2010년에 개관하여 현재는 수원시 공립시설로 운영되고 있다. 원래 이 곳은 심재덕 시장이 30년동안 살았던 자택지(自宅址)이자 개인 사유지로 심 전 시장이 화장실박물관 설립을 위해 자택을 철거하고 시민 누구나 개방하고 이용할 수 있는 공유지이자 화장실박물관으로 신축하여 2007년에 착공하였다.

1905년 개업한 경부선이 건설 당시 원래 이 고개를 관통할 예정이었지만 '이곳에 철도가 놓이면 융건릉의 지세에 영향을 준다'는 풍문이 돌아 당시 대한제국 황실의 요구로 노선이 변경되어 현재와 같이 의왕시의 왕송호수 인근을 경유하게 되었다. 정확하게는 현재 경부선상의 금정역~수원역 구간으로 지도를 살펴보면 이곳 지지대고개를 관통했을 때가 최단거리임을 알 수 있다.

땡볕이 강하게 내려쬐이는 여름날의 산길을 걸으며 내 머릿속에 떠 오르는 생각은 당시 이곳에 살았던 백성들의 고통이 얼마나 혹독했을런지 당시의 모습을 생각해 본다. 동방예의지국인 당시의 충효사상으로 정조임금의 효행은 모든 백성에게 돋보였겠지만, 임금님 지나가시는 길목에 위치한 고을의 벼슬아치들과 생업을 뒤로한 채 동원되어야만했던 힘 없는 백성들이 정조의 효행길에 부담해야하는 갖은 희생과 노역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으리라.

너무도 초라한 화선봉의 모습이다. 그래도 경기옛길에는 지역의 문화유산과 민담ㆍ설화ㆍ지명유래와 같은 스토리텔링이 곳곳에 녹아 있다. 그동안 점으로 산재되어 있던 문화유산을 선으로 연결하여, 길을 걸으며 역사와 문화를 경험할 수 있도록 조성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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