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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안산자락 둘레길

영대디강 2018. 1. 8. 14:12

주말에는 서대문 안산자락길을 한바퀴 돌아보자고 더불어짝꿍과 길을 나섰습니다.

 내겐 고치지 않아도 될 장점이 더러 있습니다. 초저녁에 일찍 잠자리에 들고 새벽에 같은 시간에 일어나는 규칙적인 습관이나, 간식을 전혀 안하면서도 삼시 세때 먹을거 가리지 않고 잘 찾아먹는 습관, 밖에서 일보고 집에 들어오면 반드시 손발부터 씻는거나, 가족간에 중요한 날짜를 절대 기억하고 뭔가를 이벤트로 챙기는 장남의 어른노릇 습성은 지금껏 버리지 않고 잘 삽니다. 또한, 오래 몸에 밴 버릇으로는 업무 특성상 매 주마다 목적지를 바꾸어 출장을 다니며 일하는데, 출장지에서 먹어 본 맛깔스런 음식이나 좋은 경관은 반드시 기억해 둿다가 시간이 되면 아내와 함께 찾는다는 겁니다. 새로운 곳에 대한 여행과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아내는 70여회 해외여행을 다녔고 내가 경험한 국내 출장지는 거의 다녔으므로, 이번엔 또 옛직장 동료들과 함께 걸었던 서대문 안산자락길로 안내하였습니다.  

이제는 경로카드로 전철도 그냥 타고 다니는 부부가 되어 평생을 내 전담 비서로 살아 온 아내에 대한 감사입니다. 결혼 전 아내는 대법원장 비서실에서 7년간 일 했습니다. 결혼 후 지금까지도 아내는 여전히 내가 불편하지 않도록 모든 것을 항상 챙겨 줍니다. 출장이 잦은 업무 탓에 주말이면 보따리를 싸야하는 형편임에도 내 손으로 한번도 여행가방을 챙겨 본 기억이 없습니다. 한집살림을 시작한 후 지금까지 내가 먹고 입고 자는 그 모든 생활에 신경을 쓰지 않도록 모든걸 챙겨주니 집에서 나는 임금처럼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지금도 돈을 쓸 줄 모릅니다, 사실 말이지만, 내 지갑속에 든 지폐가 언제부터 거기 그렇게 자릴잡고 있었는지 전혀 생각이 나질 않습니다. ㅎㅎ 너무 고맙지요.

아내는 다섯남매의 맏이였고, 나는 여섯남매의 맏이였습니다. 게다가 아이들도 당시 보통 사람들보다 갑절로 많은 넷이나 되었습니다. 외벌이로 나 혼자서 가족부양의 경제적 책임을 모두 짊어지고 있었음에도, 우린 젊은날에도 돈을 모으려 목표치를 세워놓고 절약하며 애쓰지 않았고 그냥 낭만적인 일상을 편안하게 즐기며 살았습니다. 서양사람들처럼 그렇게 말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모아놓은 재산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남들에게 꾸우러 다닐만큼 어렵지도 않습니다. 큰 욕심을 내지 않고 산다면 노후까지도 보장된 그런 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햇볕이 따사로운 저녁나절에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찾았습니다. 햇볕에 드러난 내 얼굴을 바라보던 아내가 갑자기 깜짝 놀라면서 "귓볼에 주름이 있는 사람이 치매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는" 염려스런 말을 던집니다. 둘이서 네시간을 넘겨 함께 있었음에도 첫마디로 입을 연 말이 그랬었지만, 나는 또 "나중에 그렇게되면 내가 독립운동가였던걸로 기념사진을 찍어서 좀 알려주면 되겠넹~" 농담으로 받아들이며 웃었습니다.

  옛날에는 오복이란 수(壽)/부(富)/강령(康寧)/유호덕(攸好德)/고종명(考終命)이라 했고, 요즘은 일건(健康)/이처(配偶者)/삼재(財産)/사사(事)/오우(友)라고 한답니다. 그렇네요. 오복을 다 가진 사람이군요. 20대 대학생이던 젊은 딸을 미국 유학중 교통사고로 먼저 보내야 했던 아버지가 50억을 출연하여 만든 이진아기념도서관을 둘러보면서도 그렇게 감사했지만, 조국의 독립운동에 모든것을 바치신 선열들의 얼이 서려있는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둘러보면서도 역시 오늘의 내가 누리는 이 평안이 그냥 굴러 들어온 복덩이가 아님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벤처 정신으로 도전적인 삶을 살았었기에 많은 역경과 싸워서 이겨내느라 재판정에 서야했던 당사자의 온갖 경험을 모두 치뤘었지만, 돌이켜보니 유치장이나 구치소 그리고 교도소는 전혀 경험해 보지 않았음에 새삼 또 감사를 하게 됩니다. 

이상한 기분이 들것만 같은 "사형장 가는 길" 표지판 앞에서 일부러 기념사진을 찍으면서도 두려움 없이 평안이 넘치는 모습이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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