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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세월 앞에서3

영대디강 2018. 1. 26. 17:05

올 겨울들어 가장 추운날들이 이번 주 월요일부터 연일 계속되고 있습니다. 기온이 보통 아침엔 영하 14도에서 17도로, 한 낮에도 영하 10도 이하를 벗어나지 않는 대단한 추위네요.

 

사람의 습관이란 끈질기고도 무섭다는 생각입니다. 새벽기온이 -10도 이하로 내려가면 절대로 운동을 나가지 말라고 당부하는 아내의 말도 듣지 않고, 아내가 여행중이라서 혼자 사는 독거노인(?)은 또 습관따라 새벽길을 나섰습니다. 돌이켜보니, 어린날에는 그래도 부모님 말씀에 순종하며 잘 따랐던 기억인데, 사춘기 혹은 그 시기 전후로 철이 들면서부터 내 방식대로 사는 버릇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제는 그냥 포기한 채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내 모습을 고치려고 노력조차 하지않는 꼴통이 되었군요.

공항에 픽업은 나오지 말라는 아내의 당부를 무시하고 새벽길을 달려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 도착 게이트B에 나갔습니다. 더운나라 베트남이라서 옷을 가볍게 입고 출국했기에 혹시 감기라도 들까봐, 아내가 평소 운동할때 즐겨입는 오리털 파카를 한손에 들고 출구앞에서 기다렸습니다. 해당 항공사의 프라이어리티 덕분에 아내의 캐리어 수하물표에는 파란딱지가 붙어서 다른 여행객들보다 항상 빨리 나옵니다. 이번에도 역시나 약사인 친구와 둘이서 맨먼저 게이트를 나오더군요. 반가운 마음에 들고간 외투를 먼저 내밀며 입으라고 줬더니, 자기는 차가 있으니 괜찮다며 공항철도를 이용해야하는 친구가 입고가야 된다면서 친구에게 양보하고, 친구는 너 입으라고 가져온 옷을 내가 어떻게 입느냐고 양보하면서 서로 다투는 모습이 진짜 이쁘더군요. 참으로 본 받고 싶은 아름다운 우정이었습니다.

집에 아내를 내려주고 지하주차장에 파킹한 다음에, 대중교통으로 사무실에 출근하자마자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지금도 9명이 분기별 모임을 갖는 초등학교 동창생 모임 중, 오늘은 시간이 되는 친구 셋이 만나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점심이나 먹자는 이야기에, 70년지기 친구들이지만 앞으로 몇번이나 더 만날 수 있을까 싶은 마음에 모든 일정을 뒤로한채 곧바로 콜했습니다. 

 

고등학교 수학 선생님 출신인 친구의 단골이라는 땅끝마을 횟집에서 모듬으로 한접시 떠주는데 육만원이라는데, 물건은 보지도 않고 서로가 먼저 돈을 내겠다는 친구들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정겨운 사람들의 깊은 정을 느꼈습니다. 요즘은 더치페이가 일반화되어 1/n이 자연스러운 회식문화이고, 더구나 이제는 은퇴하여 연금으로 생활함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우리 친구들은 이렇게 싸웁니다.

5층 옥상식당인 하늘정원에서 매운탕으로 점심을 먹으면서, 다 먹기도 전에 기본 상차림비와 맥주 소주 등 우리가 마신 술값을 또 서로 내겠다고 다투는 그림이, 바로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우리네 친구들 모습입니다. 날씨는 무척 추웠고 바람마져 매섭게 차거웠음에도 서로 나눔의 아름다운 우정은 너무 너무 따뜻한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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