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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명(明)과 암(暗)

영대디강 2018. 2. 18. 15:41

올 설에는 영종도 한국의 라스베가스라는 카지노호텔 파라다이스 시티에 갔습니다.

민속명절인 설....세시풍속 중에 세배가 먼저 떠오르는 군요.  옛 어른들이 살아 계실때엔 아이들을 싣고 최장 21시간까지 달려 고향집에 내려가 설을 쇠고, 설날 아침 일찍 본가에서 출발하여 노량진 처가로 가서 세배를 해야했던 수십년 추억이 있습니다. 이제는 양가 모두에서 내가 삼각형의 꼭지점이 되었지만 한곳에 모이지 못하고, 친동생이나 처동생 들도 이제는 장성한 자녀들을 맞으며 각자 따로 보내는 명절이 되었습니다.

한 가문의 26세 종손으로 귀하게 태어나서, 설날이면 어린시절부터 갓을 쓰고 수염이 하얀 할아버지들도 맞절을 하던 세배의 종손 대우를 받았지만, 25세 종손이신 아버지로 부터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지체 교육을 받으며 살아 온 어린날들이 지긋지긋하게 싫어서 나는 제사를 지내지 않습니다. 명절에도 차례 대신 예배로, 기일에는 제사 대신 성묘로, 식사는 외식으로 집안의 문화를 완전히 바꿨습니다. 품위있는 양반의 자손으로 살고 싶지않고, 근본없이 부티나는 상놈으로 자본주의 세상에서 살겠노라 결심을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시대의 종손은 아버지로부터 엄한 교육을 받으며 조상님들의 옛이야기를 귀가 닳도록 들으며 자랐기에, 역사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겠다고 사회교육학을 선택했지만, 서울에 올라와 살아보니 지난 시간은 우물안 개구리로 어리석었습니다. 지금도 나는 과거에 붙잡혀서 미래로 나가지 못하는 그런 아픔에 대하여 분노합니다. 역사는 분명히 기억해야 할 과거이지만 세계를 무대로 경쟁하며 살아가야할 우리아이들 앞날에 장애물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며, 이렇게 황금빛 밝은 그림을 벽에 걸어 놓고 바라보며 그렇게 살고 싶었습니다.   

개장한지 얼마 안된 외국인 전용 카지노라서 최고의 시설과 환경을 갖춘 호텔이지만, 2층 키즈존에서 우리 아이들만 독점적으로 놀다가 너무 지겨워해서 을왕리 바닷가로 나갔습니다. 종종 다니는 마시란해변으로 나가니 거긴 또 바람불고 추운곳이라 그런지 또 우리네 가족들 뿐이었습니다. 아직 모래사장엔 하이얀 눈들이 덮여있고, 눈과 모래에 푹푹 빠지는 환경에서 아이들을 뛰어놀게 할 수 없어서 카페 안으로 금방 다시 들어와야 했습니다. 

늦은 점심시간, 가족들이 카페에서 시켜먹는 음료수나 피자 종류들이 우리세대는 입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우리 부부는 칼칼한 조개구이와 칼국수를 먹자면서 차를 몰고 나왔습니다. 전망이 아주 좋은 조개구이집에서 9만원짜리 조개구이 메뉴를 시켜놓곤 아무래도 양이 너무 많아서 남길 거 같다고, 다 못 먹게되면 포장을 해 달라고 이야기하자면서 우리는 둘만의 시간을 말 없이 마주 바라보며 앉아 있었습니다.

웬걸... 명절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뜨내기 손님만을 받는 곳이라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예상을 완전히 뒤집었습니다. 조개의 양도 둘이서 먹기에 충분한것 같진 않았지만, 구운 조개에서 갯벌흙이 가득 들어 찬 조개가 나옵니다. 이걸 손님들에게 먹으라고 내어 놓은건지 아니면 이런 경우도 있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그런건지.... 이런 흑~ 흙~~ 재밋고 즐거운 설날에 만난 딱 하나의 이런 어둠이 있었네요.

조개구이를 맛있게 먹다가 그만 입맛이 싸악 돌아서서 그냥 포기하고 나왔습니다. 최고의 시설에서 유명 쉐프의 맛갈스런 음식을 먹던 밝은 행복의  명(明)이 금방 갯벌흙으로 가득찬 시커먼 조개구이의 암(暗)으로 바뀌는... 이게 바로 인생이구나... 그런 생각 했습니다. 다시 마시란비치하우스에 돌아와서 우리 부부는 하트로 만들어 놓은 붉은 철근 조각품 앞에 서서 서해바다를 바라보며 금새 또 밝은 미소로 함께 했습니다. 

지금도 행복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린 이렇게 재밋고 즐겁게 살아갑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명암의 모든 조건도 그저 행복이라고 느끼면서 오늘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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