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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모항 해변길에서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바다를 만나게 된다. 부안의 격포와 곰소 중간지점에 만들어 놓은 변산마실길을 거닐면서 부안의 서해바다 해풍에 코로나에 갇힌 마음을 열고 여름을 맘껏 누릴 수 있다.
적벽의 노을을 만난다. 서해를 걷는 해변 길 가운데 가히 최고를 다투는 길이다. 절벽과 바다, 그리고 우거진 숲길까지 어우러진 멋진 길이다. 이 길 끝에서 만나는 적벽강과 채석강은 그 자체가 하나의 멋진 여행지이다.
수채화 물감을 풀어 놓은 듯 서해안의 깨끗하고 아름다운 바닷물이 넘실대는 해넘이 최고의 명소 모항 해나루 가족호텔이다. 올 해도 내 형제자매 6남매 커플은 여기서 만나 하룻밤을 동기간의 우애로 진하게 보내야 한다.
숙소에서 바라보이는 저 바닷가 바위 위에 집이 바로 탤런트 이덕화의 별장이란다. 바다낚시를 워낙 좋아하는 이유로 이곳을 자주 찾아서 저 암벽위에서 갯바위 낚시를 즐기고 돌아 간단다. 이렇게 호텔에서 창 밖으로 그냥 바라만보아도 마음이 열리는 곳이다.
그래도 손바닥보다는 조금 크지만, 해수욕장이라기엔 너무 작은 모래밭에는 가족여행을 즐기는 해수욕객들이 즐기고 있으며, 소나무 숲 아래 넓은 모래톱에는 야영텐트들이 즐비하게 서해바다의 여름을 만끽하고 있다.
내소사는 전북 부안군 진서면 내소사로 243에 위치하며,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고창 선운사(禪雲寺)의 말사이다. 633년(무왕 34)혜구(惠丘)가 창건하여 ‘소래사(蘇來寺)’라고 하였다. 그 뒤 1633년(인조 11)에 청민(靑旻)이 대웅보전을 지어 중건하였고, 1604년(인조 18)청영(淸映)이 설선당과 요사를 지었다.
1902년 관해(觀海)가 수축한 뒤 1983년 일주문을 세우고 1985년 대웅보전을 중수하였으며, 1986년 천왕문을 짓고 설선당과 요사를 보수하였다. 1987년 봉래루를 해체 복원하였으며 1988년 요사인 진화사(眞華舍)를 건립하였다. 1995년 수각(水閣)과 종각을 짓고 범종을 조성하였다. 소래사가 내소사로 바뀐 것은 중국의 소정방(蘇定方)이 석포리에 상륙한 뒤, 이 절을 찾아와서 군중재(軍中財)를 시주하였기 때문에,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 고쳐 불렀다고 전하나 사료적인 근거는 없다.
현존하는 당우 및 중요문화재로는 보물 제291호로 지정된 대웅보전(大雄寶殿)을 비롯하여 보물 제277호인 고려동종(高麗銅鐘), 보물 제278호인 법화경절본사경(法華經折本寫經), 보물 제1268호로 지정된 괘불 등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25호로 지정된 요사채, 설선당(說禪堂)·보종각(寶鐘閣)·봉래루(蓬萊樓),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24호로 지정된 삼층석탑 등이 있다. 이 가운데 대웅보전은 1623년(인조 1)에 완공되었는데 그 의장(意匠)과 기법이 매우 독창적인 조선 중기의 대표작이다. 못 하나 쓰지 않고 나무를 깎아 서로 교합하여 만들었다고 하며, 법당 내부의 벽면에 그려진 관세음보살상 등의 그림도 일품이다.
전설에 의하면, 이 건물은 호랑이가 화현(化現)한 대호선사(大虎禪師)가 지었다 하고, 벽화는 관세음보살의 화현인 황금빛 날개를 가진 새가 그렸다고 하는데, 그때의 일화가 지금도 전하고 있다. 또한, 고려동종은 1222년(고종 9)변산 청림사(靑林寺)에서 만든 종인데, 1850년 땅속에서 발굴된 뒤 이 절로 옮겨졌다.
법화경절본사경은 조선 초기에 이씨 부인이 망부(亡夫)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한 글자를 쓰고 한 번 절하면서 지극한 정성으로 필사한 것이다. 정면 6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인 설선당은 인조 때 승려의 수학 장소로 건축되었고, 봉래루는 1414년 실상사지(實相寺址)에서 이건하였으며, 현재 산문(山門)으로 사용하고 있다.
수령 300년이 훨씬 지났다는 보리수 나무가 신비하고 영험한 모습이다. 장미목 보리수나무과의 낙엽관목과는 다른, 불교 설화에 등장하는 뽕나무과의 인도 보리수나무는 인도, 네팔, 중국 남서부, 인도차이나 반도가 원산지이며 키는 30m 까지 자란다.
부속암자로는 암자로는 청련암(靑蓮庵), 지장암(地藏庵)이 있다. 입구의 지장암(地藏庵)과 절 후방 1.5㎞ 지점에 청련암(靑蓮庵)이 있다. 절 일원이 전라북도 기념물 제78호로 지정되어 있다. 강원도 인제의 월정사에서처럼, 일주문(一柱門)부터 천왕문(天王門)에 걸쳐 약 600m에 이르는 전나무 숲길이 유명하다.
직소폭포를 찾아가서 시원한 폭포수를 만나고 싶었지만, 왕복 이십릿길이라서 왕복 네시간이 소요된다하니 다음에 찾기로 하고 오늘은 아쉽지만 그냥 돌아섰다.
개암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禪雲寺)의 말사이다. 634년(무왕 35) 백제의 왕사(王師) 묘련(妙蓮)이 창건한 백제의 고찰로, 사찰의 이름을 개암(開巖)이라 부르게 된 배경은 뒷산 정상의 웅장한 우금바위(또는 우금암) 전설와 관련된 것으로 여겨진다. 마한의 효왕(孝王) 28년에 변한의 문왕이 진한과 마한의 난을 피하여 이곳에 도성을 쌓을 때, 우(禹)와 진(陳)의 두 장사를 보내어 감독하게 하고 좌우 계곡에 왕궁전각을 짓게 하였는데, 동쪽을 묘암(妙巖), 서쪽을 개암(開巖)이라 부르게 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저 멀리 산 정상에 우뚝 선 우금바위에 천연석굴이 있어 그 바위를 개암이라 불렀는데, 바위의 모습이 멀리서 보면 크게 둘로 이루어진 듯하여 '바위가 열린 상태'라는 의미의 개암(開巖)이라 칭했다는 구전도 있다.
황금전(黃金殿)을 중심으로 하여 동쪽에는 청련각(靑蓮閣), 남쪽에는 청허루(淸虛樓), 북쪽에는 팔상전(八相殿), 서쪽에는 응진당(應眞堂)과 명부전(冥府殿)을 지었으며, 총 30여 동의 건물을 세워 ≪능가경 楞伽經≫을 강의하면서 많은 사람을 교화하였고, 이 때문에 산의 이름을 능가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1414년(태종 14) 폐허가 된 것을 선탄(禪坦)이 중창하였으나 임진왜란으로 황금전을 제외한 전 당우가 소실되었다. 그 뒤 1636년(인조 14) 계호(戒浩)가, 1658년 밀영(密英)과 혜징(慧澄)이 대웅전을 중건하였으며, 1728년(영조 4) 법천(法天)·찬견(贊堅)이 명부전을 중건하고, 1733년 하서암(下西庵)·석주암(石柱庵)·월정암(月精庵)을 중건하였다. 1737년 시왕상과 16나한상을 조성하였으며, 1783년 승담(勝潭)이 중수하였다. 1913년 화은(華隱)이 선당(禪堂)을 짓고, 1960년 대웅보전을 해체 복원하였다. 1993년 응향각을 복원하였고, 이듬해 일주문을 짓고 응진전을 해체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절에서 500m 떨어진 곳에 울금바위라는 큰 바위가 있고, 이 바위에는 모두 3개의 동굴이 있다. 그 가운데 원효방이라는 굴 밑에는 조그만 웅덩이가 있어 물이 괴인다. 전설에 의하면 원래 물이 없었으나 원효가 이곳에 수도하기 위해 오면서부터 샘이 솟아났다고 한다. 원효대사와 의상대사, 진표율사, 원감국사 등 고승대덕이 인연을 맺었던 오랜 역사를 간직한 고찰로 절이 자리 잡고 있는 변산은 우리나라의 8승지로 손꼽힐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을 지닌 개암사는 특히 절의 배경이 되는 우금암이 백제부흥 운동의 근원지로 삼한시대에 창건되었다.
고려 말 조선 초를 거치면서 서해안에 왜구들로 인하여 다시 폐허가 되었던 개암사는 조선태종14년 1414년에 주지 선탄스님에 인하여 다시 중수되었으며,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개암사는 다시 폐허가 되었고 인조 15년 1636년 계호대사 대법당을 중건한 후 약 370년에 걸쳐 절 안의 많은 건물과 주변 암자의 대 가람이었다. 그러나 이 때 중창된 전각 중 현존하는 것은 대웅보전뿐이다.
짧은 시간에 여러곳을 다니면서 많은 풍경과 역사유적들을 두루 만나다보니 조금은 숨을 돌리며 쉴 곳이 필요해서 잠깐 막내 여동생의 휴양지 겸 별장인 농막을 찾았다. 이곳도 역시 변산반도의 유명 산사에 버금하리만큼 조용하고 아름다운 풍경이 너무 좋다.
선영들이 계시는 선산을 찾아 전북 김제시 만경읍 장산리 능제저수지를 만난다. 새들도 쉬어갈만큼 휴식처가 되어주는 저수지는 김제에서 가장 큰 저수지로 동국여지승람에도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역사가 오래된 저수지이며, 특히 낙조가 아름다운 곳이라는데 지금은 완전 연못이 되어있다.
능제수변의 산책로를 따라 빙 둘러 한바퀴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으며, 구름다리를 건너 작은섬으로 가는 구역이 노란 창포꽃으로 덮여 자연생태학습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기에 이곳도 건너가 정자위에서 잠시 드넓은 호수를 눈으로만 둘러 보았다.
만경초등학교 맞은편에 위치한 능제수변공원은 2만4천520㎡ 규모로 지난 2005년부터 2007년까지 2차에 걸쳐 향토 경관수목, 창포 등 수생식물 식재는 물론 잔디광장, 산책로 조성을 통해 도시민의 휴식처로 새롭게 각광을 받고 있다.
어린시절에 물고기를 잡으며 한 여름철 내내 뜰망으로 살았던, 참으로 오래된 기억속의 공간을 둘러보면서 상전벽해라는 단어가 떠 오른다. 능제저수지가 이렇게 자연생태공간과 주민 휴식공간으로 새롭게 각광 받고 있다는 사실에 그저 가슴이 먹먹해져 옴을 느낀다.
한 몸에서 태어나고 한 집에서 자라난 한 핏줄이라는 연유로 동기간이라는 정으로 묶인 형제자매들이, 서로의 삶에 매여 살다보니 일년에 한번 겨우 만남을 갖는 이 뜻 깊은 여행길이 충분히 즐겁고 편안한 시간이 되었음은 감사 하나뿐이다. 이렇게 우리들이 충분한 휴식을 통한 재충전의 시간이 되도록 마련해 준 이곳은 참 아름다운 곳이다.
이제는 모두 고령자가 되어버린 내 형제자매들, 모두 코로나19 백신을 1차 접종했으며 이곳은 수도권도 아니기에 아무런 부담없이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내가 일하는 곳에서 확진자가 나왔다며 선별진료소의 검사를 받아 결과를 통보해달란다. 시골에서는 주말에 백신검사를 안하기에 약국에서 검사키트를 사서 정상으로 나타난 결과를 보냈음에도 안된단다. 어쩔 수 없이 다른 동기간들은 모두 남겨 두고, 나 혼자서만 서둘러 다시 집으로 돌아와야 했던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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