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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사랑나무(扶餘)

영대디강 2023. 10. 9. 05:00

'사랑나무'로 유명한 충남 부여군 임천면 성흥로97번길 167(군사리) 가림성(加林城 ) 느티나무의 우람한 모습이다. 수령 400년 이상으로 추정되는 이 느티나무는 높이 22m, 둘레 5.4m의 크기이며, 백제시대 군사적 요충지인 가림성 남문지(南門地)에 위치한다. 이 느티나무의 가지가 하트처럼 보여서 일명 사랑나무로 불리는 가림성의 랜드마크이다.

가림성 정상부에 있는 느티나무는 거센 비바람으로 인해 땅위에 판 모양으로 노출된 독특한 뿌리 모양과 함께 탁 트인 주변환경과 어우러진 나무 모양이 천하일품이다. 이 나무에는 고려시대 유금필(庾黅弼)장군과 관련한 전설이 있다. 유금필 장군이 임천에 머무르는 동안 후백제 패잔병들이 노략질이 심하고 흉년까지 겹쳐 백성들의 생활이 어려웠다고 한다. 장군이 이 광경을 보고 고을 창고를 모두 열어 백성들에게 식량을 나누어 주며 민심을 수습하고나서 이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나무의 나이가 400년이 아니라 추측컨대 1200년 이상 됐을거 같다는 생각이 헤아려진다. 

부여 가림성(扶餘 加林城)은 사적 제4호로 백제의 사비천도 이전인 서기 501년에 쌓은 백제시대의 산성이다. 해발 268미터의 성흥산 정상에 돌로 쌓은 석성과 그 아래쪽에 흙과 돌로 쌓은 토성이 있다. 석성의 둘레는 1,350m이고 성곽 높이는 4m 가량되는데, 성 내부에는 우물터, 건물터 등이 남아있으며, 남문, 동문과 서문 3개의 문터가 확인되었다. 현재까지 백제시대의 성곽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된다. 나당 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멸망한 후에는 백제 부흥운동의 거점이 되었다. 이렇게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므로 18세기 중엽까지 사용되었다.

가림성이라는 명칭은 김부식의 《삼국사기》 28 백제본기 6(百濟本紀 第六) 의자왕(義慈王) 고종 용삭2 가을 7 ( 高宗 龍朔二年秋七月) 中에  지역의 이름이 가림군이었기 때문이다. 부소산성 부여군(백제때 지명은 "사비")으로부터 직선거리로 10 km 남쪽에 위치한 이곳은 백제 도성들(부여 및 공주)을 따라 흐르는 금강 하류 요충지로서, 금강 하류 일대를 조망하며 관측할 있다. 백제 시대 성곽 유일하게 축성연대와 당시의 지명을 있는 곳이다. 또한, 부여 일대의 석성산성, 증산성, 청마산성 등과 함께 사비도성을 보호하는 거점산성으로 알려져 있다.

가림성(扶餘 加林城)은 백제 후기 사비도성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석성이다.  삼국사기 권26 백제본기 제4에 501(동성왕 23) 11월에 위사좌평(衞士佐平) 백가()가 쌓았다는 기록이 전한다. 백제시대 성곽가운데 성을 쌓은 시기가 정확히 알려진 유일한 성이자, 옛 지명을 알 수 있는 유적으로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 가림성이 둘러싸고 있는 성흥산은 금강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략적 중심지로서 백제가 멸망한 후에는 백제 부흥운동이 거점이 되기도 했던 곳이다.

이 성을 쌓은 백가는 동성왕이 자신을 이곳으로 보낸 것에 앙심을 품고 동성왕을 살해하고 난을 일으켰으나, 무령왕이 왕위에 올라 난을 평정하고 백가를 죽였다고 전한다. 오늘날의 대통령경호처장과 유사한 직위로, 높은 관리인 위사좌평(衞士佐平)으로 하여금 이 성을 지키도록 하였다는 사실은 가림성의 전략적 중요성을 말해주고 있다. 

가림성의 형태는 산꼭대기를 빙둘러 쌓은 테뫼식으로, 돌과 흙을 함께 사용하여 성벽을 쌓았다. 안에는 ··북문터와 군창터, 우물터 3곳과 돌로 쌓았던 방어시설인 보루가 남아있다. 또한, 백제 부흥운동군의 거점지이기도 이곳에는 고려 전기의 장수 유금필이 이곳에 들러 빈민구제를 하였다고 하여 해마다 제사드리는 사당이 있다. 성은 백제 쌓은 성곽 가운데 연대를 확실히 있는 유일한 성이고, 지명을 있는 유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원래 이 성의 명칭은 부여성흥산성이었으나(부여성흥산성  부여 가림성)으로 명칭변경 되었다(2011.07.28 고시).

성흥산은 높이가 260미터에 불과한 높지 않은 산으로, 주차장에서 약 5분쯤만 걸으면 성곽까지 오를 수 있어서 오르기도 그리 어렵지 않다. 낮은 높이의 산이지만 부여로부터 휘돌아 나가는 금강을 끼고 있는 평야지대와 인근의 야산들로 인해 탁트인 시야를 제공한다. 매년 1 1일에는 정기적으로 새해 해맞이 행사와 고려시대 유금필장군의 사당에서는 충혼제라고 하는 연래행사가 치러지고 있다.

가림성이 위치한 정상에서는 강경읍을 비롯한 인근 지역을 한 눈에 조망할 있어서 방비용 성으로서의 입지가 상당히 훌륭하다. 가림성은 백제의 가운데 기록에 의해 축조 연대가 전해지는 유일한 성이고, 부여군의 지명을 있는 유적이기도 하다. 1963 1 21일에 사적 4 '부여 성흥산성'으로 지정되었다가, 2011 07 28 '부여 가림성'으로 명칭이 변경 고시되었다.

이곳은 금강하구인 충청남도 논산, 강경, 서천과 전라북도 익산까지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도록 전망이 탁 트인 곳이다. 산성은 성흥산의 꼭대기 8부 능선을  따라 내성을 쌓고 동쪽으로 외성에 붙어있는 형태로 이중 또는 사슬모양의 구조이다. 성안에는 남문, 동문, 서문 터와 우물터 등이 남아 있다.

사랑나무라는 느티나무 주변에는 기타 다른 수종이나 식물들이 생육하고 있지 않으며, 답압의 피해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느티나무는 수형이 매우 아름답고 웅장하며, 또한 주변에 나무나 숲이 없어 멀리서도 눈에 띄어 가림산성의 랜드마크적 성격을 나타낸다. 또한 느티나무가 있는 곳에서는 임천면의 전경을 모두 바라다볼 있어 조망점이 아주 빼어난 곳이다. 느티나무는 경관적으로 매우 아름다울 아니라 산성의 성벽안에서 생육하고 있어 오랜 역사성을 띠고 있다고 있다.

가림성 최근(2011년)까지 성흥산성이라고도 불리었는데, 이는 가림성이 위치하고 있는 산의 이름이 바로 성흥산이기 때문이다. 가림은 백제시대 지방의 명칭으로 사용된 기록이 있다. 통일신라시기에 김유신과 천관녀사이에 태어난 김시득 장군이 이곳에서 활동하며, 당나라와의 기벌포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고 전해진다. 현재의 지방 이름은 임천으로 백제때 백가의 반란에 의해, 지방의 이름이 강등되는 의미로 바뀐 것으로 전한다. 임천은 고려와 조선시대에 임천군으로 유지되다가, 부여군과 통합되어 현재는 부여군 임천면이. 가림이라는 지명은 초등학교 등의 이름에도 일부 사용되었다.

충혼제를 올리는 사당이다. 임천 충혼제는 매년 4 가림성 내에 위치한 충혼사에서 나당연합군에 항전하다가 순국한 무명 장졸들의 넋을 달래고 우국충절을 기리기 위해 개최하는 제례행사이다. 충혼사에는 마지막까지 백제의 수도를 수호하던 장졸들의 신주(神主) 해당하는 수성장졸제신위(守城將卒諸神位)라고 적힌 위패들이 모셔져 있다. 1979년에 거행한 이후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임천향교 총재의 조화가 외롭게 지키고 있다. 

안내표지판에 사적 제4호로 지정된 부여 가림성은 성의 면적이 182,526 ㎡이다. 성곽의 구역 내성길이 약 1,342m이고, 면적은 92,568㎡이며, 외성길이 약 724m이고 면적이 38,173㎡이다. 이곳 부여 가림성 느티나무는 역사성, 경관성, 심미성이 뛰어나 한국의 자연유산으로서 가치를 인정받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가림성 느티나무는 나뭇가지가 하트처럼 보여 일명 ‘사랑나무’로 더 많이 알려졌고, 각종 드라마와 영화의 촬영지로 주목 받고 있다. 대하드라마 '대왕세종(KBS)'에서도 자주 촬영지로 이용되었으며, 마지막 편이 여기에서 촬영되었다. 신윤복과 김홍도를 중심인물로 그린 '바람의 화원(SBS)', 고려 전기를 배경으로 하는 '천추태후(KBS2)', 환타지 사극인 '환혼(tvN)'에서도 촬영장소로 활용되었다. 

초가을의 서늘한 날씨와 함께 한글날 연휴에 하늘나라로 떠나신 이모를 조문하고 찾은 곳이라서 그런지  마음이 쓸쓸하다. 내 윗대인 1촌, 3촌, 5촌 중에서 유일하게 생존해 계시던 이모를 떠나 보내고나니, 이제는 사랑을 받는 시절이 지나고 오로지 사랑을 베풀어야 하는 가족들 삼각점의 꼭지점이 되었다. 이모의 여고생 시절에 초딩이던 나와는 열살차이로 너무 이뻐해 주셨던 이모가 급성담도암으로 돌아가시고, 받은 사랑이 너무 그리워서 조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검은 상복을 입은채로 이곳 사랑나무를 찾았다. 군대에 입대하기 전 석달동안, 가축병원을 하시던 이모댁에서 아카시아 나무의 말린 이파리를 사서 사료공장으로 납품하던 일을 도와드렸던 오십몇년전의 아슴하던 그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부여 가림성 솔바람길 4.63km 안내 표지판이다. "대조사 전설에 따르면, 한 스님이 큰 바위 아래서 수도중에 관음조(觀音鳥) 한마리가 날아와 그 바위 위에 앉자 놀라 잠을 깨니, 바위가 미륵보살상으로 변해 있어서 절 이름을 대조사(大鳥寺)라 했다고 한다. 가림성은 501(백제 동성왕 23) 8월 위사좌평(衞士佐平) 백가(加)가 축조하였다고 전해지는 토축산성으로 사적 제4호로 지정되어 있다." 고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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