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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라는 속설처럼 사람은 누구나 '중심·중앙'이고 싶어한다. 우리네들도 누구나 '중심·중앙'에 살고 싶어서 서울사람으로 살기를 원하며, 이런 지리적 인식은 보편적이란다. 이와같이 자기 위치 중심주의를 옴파로스(Omphalos) 증후군이라 하며, 옴파로스는 우리 몸의 중심인 배꼽을 의미한다. 따라서 '배꼽'이라는 의미의 지명은 쿠스코, 울룰루 등 세계 도처에 있다. 우리나라도 이곳 강원도 양구군 남면 도촌리는 '배꼽'을 마을 이름으로 정했다. '국토정중앙 도촌리 배꼽마을'은 도촌리 일대가 한반도의 중심·중앙에 위치한다고 자부심을 갖기 때문이다.

이곳은 동경 128도 02분 02.5초, 북위 38도 03분 37.5초로 한반도의 정중앙인 강원도 양구군 남면 도촌리 산48번지이다. 새주소인 강원도 양구군 남면 국토정중앙로 127은 대한민국 헌법 제3조에 근거한 우리나라 영토의 개념이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인 점을 반영했을 때, 한반도를 둘러싼 섬을 포함하여 우리나라의 공식적인 동서남북 4극지점으로 잡을 수 있다.

그렇다면 한반도의 기준은 무엇인가? 동서남북 4극 지점을 연결한 경선(經線)과 위선(緯線)을 의미하며, 일종의 수학적인 계산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한반도 동쪽 끝은 경상북도 울릉군 독도, 서쪽 끝과 북쪽 끝은 북한 평안북도 용천군 마안도와 함경북도 온성군 유포면, 남쪽 끝은 제주도 서귀포시 마라도이다. 이들을 기준으로 경도와 위도의 중앙을 교차시키면 양구에서 한반도 정중앙 즉 배꼽이 나온다.

경선(經線)은 지구의 북극점과 남극점을 최단 거리로 연결하는 지구 표면상의 가상의 세로선이다. 런던의 옛 그리니치 천문대를 지나는 경선의 경도를 0으로 하여, 그 동쪽을 동경, 서쪽을 서경이라 하며, 동경과 서경은 각각 180°까지 있으며, 동서 180°의 선은 일치한다. 동경의 범위를 동반구, 서경의 범위를 서반구라고 한다. 같은 경선상의 지점은 같은 시간대에 속하며, 경도 15°로 1시간의 시차가 생긴다.

위선(緯線, parallel)은 지구 위의 위치를 나타내는 가상의 선이다. 적도를 0도 , 북극점과 남극점을 각각 90도 로 정하고, 적도와 평행으로 지구 표면의 같은 위도의 지점을 잇는 가로의 선이다. 적도의 북쪽을 북반구, 남쪽을 남반구라고 하며, 북반구의 위선상의 위치는 북위, 남반구의 위치는 남위로 나타낸다. 북과 남위 23° 7′ 의 위선을 각각 북회귀선, 남회귀선이라 하며, 북회귀선에는 하지에, 남회귀선에는 동지에 태양이 바로 이 점의 위를 지난다.

이곳 강원도 양구군 남면은 2021년 1월부터 양구군 국토정중앙면으로 개칭하였다. 남면의 명칭 변경은 2002년 남면 도촌리 산 48번지가 우리나라의 국토 정중앙이라는 사실이 국립지리원과 강원대 연구팀의 조사로 확인되면서부터 제기됐다. 양구군 도촌리는 4극 지점인 제주 마라도(극남 南端 ), 함북 온성군 유포면(극북 北端), 경북 울릉군 독도(극동 東端), 평북 용천군 마안도(극서 西端)의 교차지점으로 국토정중앙(國土正中央)이다.

요즘은 연일 장마와 폭염같은 날씨가 가슴까지 턱턱 막히게 하는 습하고 무더운 일기(日氣)로 하루를 휘감는다. 선풍기과 에어컨을 24시간 가동하면서 여름날을 식히려고 찬바람 맞아봐야 머리만 아플 뿐 시원한 느낌은 별로 없다. 사무실에 앉아 있자니 일은 손에 잘 안잡히고, 집에 돌아와 자리에 누워도 쉬이 잠들지 못하는 그런 밤이면 생각나는 곳이 바로 이런 곳이다. 잘 알려지지 않고 사람들이 덜 찾아와 조금 한적하다는 느낌을 주는 곳, 물 맑은 계곡 아래 포근한 쉼터가 있는 걷는 길이 바로 여기 양구10년장생길(5년길)의 소지섭길 7km이다.

나때는 군에 입대하여 전방지역에 배속되면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하는 그 유명한 속설이 있었다. 그래서 인제와 양구, 원통이라고 하면 먼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가 ‘비무장지대’(DMZ)였다. 한적한 시내 곳곳에서 군인들을 상대로 하는 가게들만 눈에 띄는 곳이다. 하지만 양구는 이제 더 이상 ‘최전방 소도시’가 아니다. 서울 ~ 춘천고속도로가 거리를 확 줄인 데 이어, 라면처럼 구불구불했던 국도마저 곳곳에 터널이 생기면서 국수처럼 곧게 펴졌기 때문이다.

128 02 38 03(128도 02분 38도 03분)의 상징을 만들어 놓은 조용하고 한적한 곳에 위치한 국토정중앙천문대의 모습이다. 양구 국토정중앙천문대는 우리나라의 중심에서 하늘을 바라보기 위해 국토정중앙점 부근에 건설되어 2007년 5월 31일 개관했다. 주망원경으로 80cm 반사망원경이 설치되어 있으며, 최신의 천문정보와 더불어 여러 학습 체험이 가능한 전시실과 디지털 가상 밤하늘을 감상할 수 있는 천체투영실이 설치되어 있다. 내가 이곳에 왔노라는 증적을 남기려고 사진을 찍다가 아주 커다란 독사를 발밑에서 무심코 상봉하여 혼비백산하였다.

'사람과 자연이 숨 쉬는 곳' 봉화산 생태등산로 안내판이다. 이 산은 수량이 풍부하고 주변 경관 또한 수려하다. 넓지는 않지만 깊은 숲그늘이 드리워져 물놀이를 즐기며 더위를 쫓기에 딱 좋다. 배꼽점을 만나기 위해서는 여기서부터 700m를 걸어 올라가야 한다. 한반도의 배꼽을 만나려고 노약자들이 걷기에는 조금 먼 거리지만, 작은 나무들 숲 사이로 경사가 완만해서 걷기에 좋아 이길을 걸으면 5년 더 젊어지는건 전혀 의심할 공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멧부리와 봉우리가 반이나 둘러쌌네(岡巒半向環)~.” 고려 명종대(재위 1170~1197년)의 학자 노봉(老峯) 김극기(金克己)는 입만 열면 시(詩)가 줄줄 나왔다고 한다. 그런 그가 산과 계곡의 고장 양구(楊口)를 이렇게 읊었단다. 선조 25년(1592년)에 부임한 감사가 금강산에 이르는 첫 고을의 아름드리 수양수림(垂楊樹林)을 보고 지었다는 그 이름 양구(楊口). 김극기는 나아가 “아름다운 수풀이 빽빽하고~ 대숲에 비친 해가 그윽한, 문득 신선이 사는 곳(洞府)인가 싶다”는 찬사를 보냈다.

배꼽점으로 올라가는 길목에는 이렇게 매100m 지점마다 표지석을 이정표로 만들어 놓았다. 이곳 배꼽점은 2002년 인공위성을 통한 정밀 측정을 통해 양구군 남면 도촌리 산48번지가 대한민국의 정중앙임을 밝혀냈단다. 이로 인하여 군사도시이며 군 사격장이었던 정중앙점은 단숨에 양구의 상징이 되었다. 어쨌든 양구는 ‘한반도의 오지’에서 이제는 ‘한반도의 정중앙’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배꼽점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설치된 배꼽 상징물이다. 지금도 천하의 인제·원통 병사들까지도 양구로 배치된 병사들을 보면서 그들을 위안 삼아 군대생활을 했다고 한다. 지금도 흔히 만날 수 있는 헌헌장부(軒軒丈夫) 장병들의 군기가 바짝 든 모습들이 믿음직스럽기도 하지만, 또 어찌어찌하여 이 최전방까지 배치받았을까 하는 생각에 조금은 애처롭기도 하단다. 인제, 그리고 춘천을 지나 그 유명한 굽이 굽이길을 통해 들어서야 하는 양구의 최전방은 그만큼 멀고 험했던 길이다.

국토정중앙 휘모리탑(국토정중앙점에 있는 조형물로 국토정중앙점의 위치와 의미를 상징 하는 곳)이다. 동서남북을 지키고 있는 네마리의 석조 사자들이 전투자세로 입벌리고 앉아있는 모습에서 한국인이 이곳을 처음 찾아 왔음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휘모리탑 중앙에 조성된 배꼽을 감싸고 만져보며, 한반도 배꼽을 찾은 오늘은 내 인생에서 상당히 큰 의미와 기념비적인 날이라고 생각한다.

국토 정중앙 배꼽마을은 양구군청 소재지인 양구읍에서 인제 방향으로 약 8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양구군의 주산인 봉화산을 배경으로 양구 최대의 곡창지대인 창리 뜰을 품에 안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며 마을 주민들이 순박하고 정이 넘치기로 유명하다. 도촌리, 창 1리, 창 2리 3개의 행정 부락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국토의 지리적 정중앙점이 마을에 위치함으로써 마을의 가치와 의미가 재평가되고 있는 마을이다.

양구는 신선이 아닌 속인(俗人)은 살 수 없었던 땅이었던가? 아니다. 험준한 산과 계곡이 하늘을 가린 이 땅에는 물경 12만 년 전부터 고인류-현생인류가 차례로 터전을 잡고 살던 곳이다. 1986년, 평화의 댐 건설공사를 위해 파로호의 물을 빼기 시작했다. 양구 상무룡리 일대는 1943년 화천댐이 건설되면서 수몰됐던 지역이다. 물을 빼자 그곳에서는 12만 년 전 ~ 1만8000년 전 중기 및 후기구석기 유적이 노출됐다. 그뿐이 아니었다. 화채그릇을 닮았다고 해서 한국전쟁 당시 '펀치볼'로 일컬어졌던 해안(亥安) 분지에서는 구석기-신석기-청동기 시대 유적과 유물들을 쏟아냈다. 굽이굽이 상무룡리에 들어서면 그야말로 천혜의 마을이 하늘의 기운을 내뿜는 양지 바른 곳에 둥지를 틀고 있다. 또한 해안분지는 꼭 피안(彼岸)의 세계, 혹은 무릉도원으로 일컬어질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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