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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행복담아함께걷길(華城)

영대디강 2025. 9. 27. 21:21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와우리의 동네 한바퀴 코스를 9월의 마지막 주말 만보걷기로 선택했다. 봉담 '행복담아함께걷길' 3.2km라는 수원대 표지판이 해발고도 100미터가 조금 넘어서는 금덩산에서 안내한다.

야트막한 산봉우리 수기봉 이정표가 '봉담 웃음 만발 놀이숲'까지 1.21km이고, 효암바위까지는 1.3km라고 알려준다. 

와우리 동네 뒷산 능선을 따라 개설된 숲 사이로 걷는 길이 맨발로 걸어도 좋을만큼 매그럽고 평탄하다. 

봉담 와우리는 도시화된 곳임에도 시골동네 뒷산을 산책하듯 가벼운 차림으로 한적한 오솔길을 걷는다. 

하늘을 향하여 곧게 치솟아 오르는 소나무 숲 사이로 불어오는 상큼한 바람결이 초가을의 신선함을 느끼게 해준다. 줄지어 늘어선 나무들의 뿌리가 영켜있는 오솔길을 걷는 기분이 표현하기 어렵도록 묘하다.

수원대자연생태농장이라는 표지판을 만난다. 이 농원은 농약, 제초제, 화학비료, 비닐덮개를 쓰지 않으며, 더불어 거름도 만들어 쓰고 친환경 농업을 지향하는 청정농업이란다.

금덩산 정상의 표지판이다. 화성시 봉담읍 와우리와 봉담읍 분천리가 나뉘는 지점임을 화살표로 나타내준다. 이웃동네인 군포시에 있는 금정역과 닮은 금덩산이 많이 헷갈리는 지명이다.

이곳은 갈랫길이 곳곳에 너무 많음에도 방향과 거리를 알려주는 이정표가 전혀 없어서 마냥 이리저리로 걷게 된다. '최루백 효자바위'라는 종이로 만들어 붙여놓은 표지가 효암바위를 화살표로 나타내고 있다.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수기리 홍법산(弘法山) 기슭에 있는 이 효암(孝巖)은 고려 의종(毅宗)때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지낸 효자 최루백(崔婁伯)이 아버지 최상저(崔尙)가 사냥을 갔다가 호랑이에게 물려 죽자 곧 도끼를 메고 추적해 이 바위 아래에서 호랑이를 잡아 부친의 원수를 갚고, 또 호환(虎患)으로 난리를 겪던 이곳 백성들의 걱정을 덜어주어 칭송을 받았던 곳이다.

효암위에서 증적을 남기는 이곳은 지금의 수기촌과 분천 일대는 고려 때에 용성현(龍城縣)에 속했으며, 조선 시대에는 삼봉(三峯)이라 불리던 것을 일제가 삼봉 갈담(三峯 葛潭)을 합쳐 봉담(奉潭)으로 개명하였다.

조선 제22대 정조대왕(正租大王)은 효성이 지극했던 임금으로 아버지 사도세자(思悼世子)의 능을 이곳 화산으로 옮기고 자주 이곳에 행차했는데, 행차길에 최공의 후손을 불러 훌륭한 조상이라 극찬하며 수기촌을 효자문골  큰바위를 효암(孝巖)이라 부르게 한데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

정조대왕은 최공의 효행을 포호도(捕虎圖)와 함께 누구나 알기 쉽도록 한글로 번역, 오륜행실도(五倫行實圖)를 간행케 하여 만인의 귀감(龜鑑)으로 삼게하였다.

임진왜란때는 충효(忠孝) 겸전(兼全)의 성장(聖將) 이순신(李舜臣) 장군(將軍)이 백의종군(白衣從軍)할 때 이곳 수원부에서 하룻밤을 머물렀으니, 가히 효의 3()이 여기 삼봉(三峯)에서 꽃을 활짝 피워 국민 모두의 효원(孝園)의 순례지(巡禮地)로 돋보이게 하여 더없이 자랑스럽다. - 화성시장(수원최씨 대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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