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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새해 첫날은 독산성세마대산문(禿山城洗馬臺山門) 앞 주차장에서 만보걷기를 출발한다. 2026년 병오년(丙午年)은 육십간지의 43번째로 붉은색과 불의 기운을 지닌 ‘병(丙)’과 말을 상징하는 ‘오(午)’가 만나는 ‘붉은 말의 해’라서 그런지 첫날부터 힘찬 추위가 영하10도를 나타내고 있다.

오색둘레길은 5개 숲길인 갑골산·석산·노적봉·독산성·여계산을 녹지, 공원, 마을길을 연결하여 조성한 17km의 숲 둘레길이다. 오색둘레길 제4코스인 독산숲길은 거리가 약 3.6 ~ 3.8km로 순환형 산책코스이며, 아침·저녁 노을빛이 아름다워 수도권의 일출·일몰의 조망 명소로 회자되는 곳이다. 이 길은 독산성과 세마대지를 품고 있어서 경관이 아주 탁월하고, 걷는길이 아름드리 나무숲길이라서 한겨울임에도 아늑하다.

이곳 오산시의 시장이 새해맞이 현수막 인사를 매달아 걸어 놓은 독산숲길을 걷는다. 오늘은 날씨가 많이 춥지만, 이렇게 훈훈한 덕담으로 희망을 안겨주는 새해맞이 인사를 눈으로 만나니 두툼한 옷자락에도 발걸음이 가볍다.

이정표에서 가리키는 독산성(禿山城)은 548년에 만든 백제의 산성이다. 고구려가 예(濊: 말갈)나라의 군사를 동원해 이곳을 공격했지만 신라군의 지원때문에 성의 공취에 실패하였던 곳이다. 지금은 경기도 오산시에 속하지만, 독산성의 위치는 종래에 충남 예산군으로 보는 견해가 많았다. 당시 백제 · 고구려의 교전지역과 '한강 이북(漢北)'에 있었다는 기록을 존중해 재검토할 필요성이 제기되어서 이 지역이 역사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고 한다.

서기 548년에 한강 남쪽의 독산성이 백제 땅 이었다는 것은 적어도 그 이전에 백제가 한강 유역을 차지하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현재 학계에는 475년~551년 사이 한강 유역의 영유권을 둘러싸고 논란이 분분하다. 기왕의 통설이 ‘고구려 영유설’이라면, 최근에는 연구자마다 한강 유역 회복시기와 범위에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백제 영유설’을 주장하는 연구 성과도 있다. 독산성의 위치가 한강 이남이라면 ‘백제 영유설’의 논리가 보강되는 셈이란다.

문헌의 기록에 의하면 독산성은 원래 백제가 쌓은 고성이었고, 신라통일기나 고려 시대에서도 군사상 요지였다. 독산은 본래 석대산, 향로봉이라고 불려 왔고 조선시대에는 독산성이라 불려 왔으나 임진왜란 때 권율 장군이 폈던 진묘한 병법 전략에 연유해 지금은 ‘세마산’ 또는 ‘세마대’라고도 부르고 있으며, 정상에는 이승만 대통령 친필의 세마대라는 현판이 붙은 누각 건물이 있다.

이 산성은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를 거쳐 임진왜란 때까지 계속 군사적으로 사용되었다. 곧 1593년(선조 26) 7월에 전라도관찰사 겸 순변사였던 권율(權慄) 장군이 근왕병 2만 명을 모아 북상하다가 이곳에 진을 치고서 왜적을 물리쳤고, 이듬해 9월 11일~14일에는 백성들이 힘을 모아 불과 4일 만에 무너진 성을 고쳐 쌓았다고 한다.

사적 제140호인 독산성 및 세마대지는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본성의 총연장은 1,100m이며 내성은 350m에 달하는 아담한 산성이다. 독산성의 처음 축조 연대는 분명치 않지만 독산성의 위치적 특성이 용인, 양지 간에 있는 고성과 남한산성이 기각지세를 이루어 왕도의 문호를 굳게 한다는 전략상의 이점이 있는 것으로 보아 매우 중요한 곳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곳 산성은 많은 군사들이 주둔하기에는 물이 부족한 편이다. 이것이 세마대(洗馬臺)를 만들었단다. 임진왜란 1593년에 권율 장군이 이곳에 주둔하였을 때 왜군이 산에 물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는 물 한 지게를 산 위로 올려보내며 조롱하였다. 권율은 물이 많은 것처럼 보이기 위해 백마를 산 위로 끌어 올리고서 목욕시키는 것처럼 흰 쌀을 끼얹었다. 이를 본 왜군은 말을 씻길 만큼 산 꼭대기에 물이 풍부하다고 생각하고는 물러났다고 한다.

독산성은 또 다른 이름으로 독성산성이라고도 한다. 선조 25년(1592년)12월 임진왜란 중에 권율 장군이 전라도로부터 병사 2만여 명을 이끌고 이 곳에 주둔하여 왜병 수만 명을 무찌르고 성을 지킴으로써 적의 진로를 차단했던 역사적으로 유명한 산성이다.

산위에 자리한 보적사는 독산성 동문에 위치하는데, 경내 가람으로는 대웅전과 선실·요사채가 있다. 대웅전 안에는 석가모니불 좌상을 비롯하여 약사불상·지장보살상·십육나한상 등을 안치했다. 보적사는 전통사찰 제34호, 향토유적 제8호로 지정되어있으며, 사찰의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다.

보적사(寶積寺)는 용주사의 말사로, 확실한 건립시기는 알 수 없지만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401년(백제 아신왕 10년)에 창건되었다고 한다. 이곳 산성을 만들 때 절을 같이 세운 듯하다. 보적사에도 창건에 관련한 전설이 있다. 춘궁기에 먹을 것이 쌀 한 되 밖에 되지 않던 노부부가 그 쌀을 부처님께 공양하고 집에 돌아왔더니, 곳간에 쌀이 가득 차 있었다고 한다. 이를 부처의 은혜로 여긴 부부는 그 후로 더욱 열심히 부처를 공양한 데서 '보적사'(보배가 쌓인 절)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고 한다.

독산성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분명하지는 않으나 원래 백제가 쌓은 성일 것으로 추측되며, 통일신라시대나 고려시대에도 군사상 요충지로 쓰였을 것으로 본다. 이조 선조 27년(1594)에 백성들이 산성을 쌓고, 임진왜란이 끝난 선조 35년(1602)에 당시 부사 변응성(邊應星)이 다시 보수하고, 그후 정조 16년(1792)과 20년(1796)에도 다시 공사했다는 기록이 있다.

독산성의 처음 축조 연대는 분명치 않지만 독산성의 위치적 특성이 용인, 양지 간에 있는 고성과 남한산성이 기각지세를 이루어 왕도의 문호를 굳게 한다는 전략상의 이점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서 매우 중요한 곳이었음을 알 수 있다.

548년 봄 정월에 고구려 양원왕(545~559)이 예(濊)의 군사 6천 명을 동원하여 한북(漢北)에 있는 백제의 독산성( 禿山城)을 공격하였다. 이때 신라의 장군 주령(朱玲, 또는 朱珍)이 군사 3천 명을 거느리고 백제를 구원하여 고구려가 패하여 물러갔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독산은 본래 석대산, 향로봉이라고 불려 왔고 조선시대에는 독산성이라 불려 왔으나, 임진왜란 때 권율 장군이 폈던 진묘한 병법 전략에 연유해 지금은 ‘세마산’ 또는 ‘세마대’라고도 부르고 있으며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 대통령 친필의 세마대라는 현판이 붙은 누각 건물이 있다. 세마대는 1957년에 복원되었다.

동서남북으로 사방을 둘러봐도 어느곳 하나 막힘없이 탁트인 곳이 바로 이곳 독산성길이다. 이 성곽길을 걸으며 병오년 올 한해도 우리 모두가 이렇게 트인 앞을 바라보며 거침없이 건강하게 걸을 수 있도록 기원해 본다.

독산성에서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드넓은 평원을 바라보며 걷다가 마주친 예닐곱살 쯤 어린이들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를 하는데 그 모습이 너무 이쁘다. 나도 함께 답변으로 새해인사를 하면서 그냥 지나치기에는 너무나도 아쉽고 예쁜 마음에 지갑을 열어서 내 마음도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고 스란히 펼쳐진다.

독산성이 군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놓여있긴 하지만, 내가 만약 전생에 백제의 왕 이었다면 이곳에 궁궐을 지었을 것 같다. 그리 높지않은 산에 이처럼 사방이 탁 트인 곳에 왕궁이 위치하고 있었다면, 샘물이 부족한 단점을 수원지를 만들어 수도시설로 충분히 극복하였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이곳에는 동서남북 네개의 문이 통로로 이렇게 보존되고 있으며, 현재 성내에는 세마대지(洗馬臺址)가 있는데 “화성지(華城誌)”에 의하면 왜군이 독산성에 물이 부족함을 알고 성안을 포위하자, 권율장군이 말을 산위로 끌고 가 쌀로 씻기는 시늉을 해보여 왜군이 물이 풍부한 것으로 속아서 물러났으며 이후 그곳을 세마대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독산성 산림욕장은 오산시의 독산성 및 세마대지 주변의 산림 20만 7,000m²에 조성한 산림욕장이다. 1999년에 개장하였으며 오산 시민들의 심신단련 및 휴식공간과 어린이들의 자연 체험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전망대와 휴게공간, 숲 속 교실, 피크닉장, 수목관찰로 등이 있으며, 각종 체력단련 시설과 모험 극기 시설 등이 마련되어 있다. 오산시 시티투어의 ‘역사탐방 코스’와 ‘광역코스’를 신청하면, 독산성 산림욕장의 둘레길 산책과 독산성 투어 두 가지를 체험할 수 있다.

독산성의 위치는 기왕에 충남 예산군으로 보는 견해가 많았다. 이들이 주목한 것은 '일본서기(日本書紀)' 였다. 곧 '일본서기' 권19, 흠명천황(欽明天皇) 9년(548) 4월조에 고구려가 침입한 것으로 나오는 마진성(馬津城)을 백제가 멸망한 후 당이 설치한 현에 “마진현은 본래 고산이다(馬津縣本孤山).”이라고 한 것에서 착안하였다. ‘고산(孤山)’= ‘독산(獨山)’이라는 것이다. '삼국사기' 지리지 웅주(熊州)에 따르면, 고산현(孤山縣)이 지금의 충남 예산군이다.

울창한 수림이 피톤치드를 내뿜는 이 산성은 독성산성(禿城山城)이라고도 불린다. 돌로 쌓은 산성으로 둘레는 약 3.6㎞인데, 현재 약 400m 정도의 성벽과 성문 4곳이 남아 있다. 쌓은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전략적 요충지에 자리하였으므로, 한강 하류에 도성을 두었던 백제시대에 축조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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