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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걸었던 청계산맥을 오늘은 바라산에서 시작하여 광교산 지지대고개까지 걷기로 했습니다. 오늘 아침엔 기온이 급강하하여 영하 -11C까지 떨어졌음에도 우리는 지난 주 약속된 계획을 바꿀 수 없습니다. 어젯밤에 김천에서 운전하고 올라와 피곤한 몸을 하룻밤 쉰채로 아내를 따라 산행에 나설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내 바보같은 문학적 표현 때문입니다. 반전(일의 형세가 반대로 됨)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지난 월요일에 마흔두번째 맞는 결혼기념일이라서 기념일 화분을 집으로 보낸 그날로 부터 시작이 됩니다.
"배려와 양보로 하나됨 반백년 / 오늘도 내일도 감사로 살아요"라고 쓴 리본이 문제였죠. 왜 정확히 42주년이라고 쓰지 않고 반백년이라 표현했느냔 겁니다. 월요일 아침 일찍 단골인 동네 꽃집 여주인이 집으로 화분 배달을 왔는데, 결혼하신지 50년이나 됐는데도 이렇게 젊으시냐고 인사를 해서 구태여 해명까진 하지않았지만, 자기를 노인으로 여기게끔 왜 그렇게 만드느냐로 혼자서 화가 났답니다. 사실은 글자수를 세글자로 맞출려는 문학적 심리로 인해서 '반백년'이라 표현했는데, '반백년'은 '사십이주년'을 사사오입을 한다해도 이건 너무 너무 말이 안된다는 겁니다.
우리가 그날 결혼한 이후로 단 한 해도 건너뛰지 않고 나는 자축의 꽃바구니나 화분을 아내에게 보내곤 했었는데, 이번에도 잘 해보려고 시도했던 결과가 엉뚱하게 이런 반전의 결과를 낳고야 말았네요. 반전의 매력이란 또 이런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는 묘한 감성에 젖어 출장지인 김천에서 저녁 식사 후 숙소에서 쉬고 있는데, 큰 손녀가 축하 메시지를 보내주었군요. 우리가 결혼해서 아이들을 키우고 그 아이들이 자라서 가정을 이루어 낳은 손주가 벌써 이렇게 자라 우리네 결혼기념일을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보내주는 또 하나의 깜짝 반전 매력에 흠뻑 취해야했습니다.
오늘이 올 겨울들어 가장 추운 기온 탓에 눈물과 콧물이 줄줄 흘러도 바라산에서 백운산까지 묵묵히 아내의 뒤만 따라 걸었습니다. 결혼 후 지금까지 아내는 내가 가져다 주는 쥐꼬리 수입에 전적으로 의지하여 말없이 내 뒤를 따르며 살아왔는데, 우리시대 아내들은 늙어서 보자고 벼르며 참고 살았노라는 아내의 뒤를 따라가며 살아야 한다는 반전 생각이 머릿속에 채워지니 날씨보다 더 춥다는 느낌이 듭니다. 어쩌겠습니까? 유사이래 세월을 이긴 사람이 아직은 없는데... 남정네들은 나이들고 힘 없으면 아내에게 순종해야한다는...그저 살아님기위해 말 없이 따르리라 그런 결심이 서니 다시 온몸이 훈훈해지네요.
백운산을 지나 광교산으로 수원 팔색길을 걸으면서 생각해보니, 인생에서 내 의지대로 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요소중의 으뜸이 젊음이라 여겨집니다. 그냥 씩씩하게 걷고있는 아내는 아직 육학년생이고 나는 이미 6학년 과정을 마치고 졸업한 퇴물이니, 내가 아무리 건강하다고 건방을 떨어도 세월이 지나갈때는 무심하게 그냥 지나가지 않으니 반드시 뭔가 흔적을 남기고 지나갔을 터...아무리 노력해도 되돌릴 수 없는 젊음을 생각하자니, 나도 육학년 시절엔 한번도 쉬지않고 이런 산행 쯤이야 가볍게 올랐던 젊음이 있었는데....가쁜 숨소리 헉헉대며 그런 생각하자니 인생사새옹지마(人生事塞翁之馬)라는 구절이 머릿속을 휘젓네요.
그렇지 않아도 요즘들어 젊은 동료들과 함께 일하면서 미안하다는 생각때문에 언행이나 업무나 매사 조심스럽게 처신하고 있습니다. 점심시간에 공공기관 구내식당이나 음식점에 들어가 식사하면서도 내 나이 또래로 일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기에...인건비가 같다면 부리기 편하게 젊고 똑똑한 사람을 써야 당연지사...요즘 취업난이 극심하여 공시생들이 즐비하다는...일본도 중국도 아닌 우리나라에선 나이가 그냥 계급인데...지구상 어디에도 노인을 좋아하는 나라는 없다는데....친구들은 모두 일하는 내가 부럽다지만, 나이 먹은게 무슨 죄가 아님에도 이래저래 죄지은 사람처럼 눈치 보이니....
우린 언제나처럼 네시간 반 동안 아무말 없이 그냥 걸었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머릿속에 굴리며 걷다보니 어느사이 지지대고개 정조대왕상 앞에 도착을 했습니다. 조선 22대 왕인 정조는 어린 나이에 왕세손으로 책봉됐지만, 아버지 사도세자(장조)가 비좁은 뒤주에 갇혀 돌아가심을 목격해 평생 아버지를 그리워했답니다. 자신이 죽어서라도 아버지 곁에 있고 싶었던 정조는 사도세자와 같은 곳에 묻혀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효심을 전하고 있다고하네요. ‘수원화성(화성행궁)’과 화성시의 ‘융·건릉(사도세자 부부묘)’이 정조대왕의 효심을 보여주고 있어서, 수원의 여러곳에 정조대왕 동상을 세워 후손들에게 효도를 가르치려는 수원시의 상징이랍니다.
이른 아침 8시부터 네시간반 침묵의 산행으로 배고픔을 달래려 허기진 걸음으로 광교산 입구 지지대고개 가까운 곳에 찾아든 식당이 유명인사들이 모두 찾아왔었던 맛집으로 이 또한 완전한 반전이군요. 우리도 역시 한자리 차지하고 앉아서 오리바베큐에 들깨수제비로 포식을하고 나서니 세상이 모두 아름답게만 보이는 배부름이 있네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오늘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냥 아무런 원인행위도 없었는데 이런 결과가 제발로 걸어서 나를 찾아오겠는가 싶어지니, 세상일은 어떤 경우에나 원인 없는 결과도 없고 우연도 없으며 공짜도 없다는 법칙이 여기에도 적용되나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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