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망중한이랄까 주변을 돌아볼 시간도 없이 바쁘게 일하다가 모처럼의 시간을 내어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비슬산을 찾았습니다. 대구의 2대 명산이 팔공산과 비슬산이라는데, 주차장에서 전기차를 타지 않고 그냥 걸어 오르기로 작정한 우리들의 눈 앞에는 비슬산 입구에서부터 범상치 않다는 느낌을 아주 강하게 받았습니다. "비슬(琵瑟)"이란 인도 범어의 발음을 그대로 표기한 것으로 신라시대에 인도의 스님들이 이 산을 구경한 후 비슬산이라는 이름을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답니다. 비슬이라는 한자는 비파와 거문고라는 뜻입니다.
소재사 옆에서 보각국사 일연 스님이 우리 일행을 맞아 주시네요. 삼국유사를 지으신 일연 스님(1206∼1289)은 고려 희종 2년(1206) 경주의 속현인 장산군(현재의 경산)에서 태어났으며, 가문은 지방의 향리층으로 짐작되고, 일연 스님은 처음 포산에 들어온 이후 22년간에 걸쳐 포산의 여러 사찰에 머무르면서 활동하시는데 포산(비슬산)은 다양한 불교 형태가 공존했던 지역이기때문에, 어느 특정 신앙이나 종파에 얽매이지 않고 여러 계통의 신앙과 사상을 모은 「삼국유사」와 같은 저술을 이루게 되는 바탕이 되었답니다.
스님이 나이 70이 넘어서 92세의 속가(俗家) 어머니를 봉양하고자 국사(國師), 국존(國尊)의 높은 지위를 마다하고 “부모가 계신 고로 내가 생겼으니, 어머니께 효를 다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인각사로 내려오셔서, 그것도 옴병(지금의 나병으로 추정)을 앓고 있는 어머니가 주위 사람들로부터 천대받는 것을 스님 홀로 1년여를 봉양하시며 어머니의 임종을 보셨다고 하니, 스님의 인간미를 잘 알게 해주는 이야기이지요. 한편 불후의 역작인 『삼국유사』는 그 후 5년 여에 걸쳐서 집필을 완성하셨다고 합니다.
비슬산은 높이 1,084m로 비슬산맥에 솟아 있으며, 최고봉은 대견봉(大見峰)입니다. 주위에 청룡산(靑龍山 : 794m)·최정산(最頂山 : 886m)·우미산·홍두깨산 등이 있으며, 산으로 오르는 곳곳에 암석들이 무더기로 터를 이루고 있는데, 기반암은 석영반암으로 산마루에는 풍화·침식 작용으로 이루어진 여러 모양의 암석이 드러나 있답니다.
사람의 나이와 운동량은 함께 가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동료들 중에서 가장 버젼이 낮은 4레벨임에도 5~6레벨의 동료들이 헉헉거리며 걷기를 즐기는 나를 따라잡지 못하니 그냥 혼자서 슬슬 걸어도 언제나 일등이네요. ㅎㅎ 이렇게 여럿이서 걷다보니 내가 제일 젊은 나이인가 착각을 하게 되는군요. 발걸음의 달인인 나를 따라오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서 잠깐 포토존에 홀로 서서 스리퍼 신발로 지나가는 커플에게 내 스마트 폰을 건네주며 한컷 부탁하여 찰칵~했슴다.
대견사로 오르는 오르막길 중간 중간에 통나무 집으로 멋스럽게 지어놓은 캠핑테크를 보면서 가족과 함께 꼭 다시 찾고 싶다는 마음에서 달성군시설관리공단 사무실에 들러 예약안내 팜플렛을 받았습니다. 캐라반이 10인용(참꽃)이 주중엔 10만원이고, 주말에는 12만원, 성수기에는 14만원으로 비교적 저렴한 이용료라서 그 또한 맘에 딱 들었습니다. 내부 구조를 살펴보려고 시도를 했지만, 잠겨 있어서 눈으로 점검은 못했는데, 이용하고자 하는 그 달의 전월 1일 오전 10시부터 예약이 가능하답니다. 통나무집 9동, 콘도 2동, 캐라반 20동, 캠핑데크 23면 이더군요.
대견사는 신라 흥덕왕 때 창건된 사찰이며, 당나라 문종(文宗)이 절을 지을 마땅한 곳을 찾고 있었는데, 어느날 아침에 얼굴을 씻으려고 떠놓은 대야의 물에 아주 아름다운 경관이 나타났고, 이곳이 절을 지을 곳이라 생각한 문종은 사신을 파견하여 절터를 찾게 하였답니다. 당나라에서는 찾을 수 없게 되자 해동성국 신라로 사람을 보내어 찾아낸 곳이 바로 이 아름다운 경관의 절터로, 이 터가 대국에서 보였던 절터라 하여 절을 창건한 뒤 대견사라 이름하였다는 전설이 전한다네요.
이곳에는 신라시대에 축조한 것으로 추정되는 길이 30m, 높이 6m의 축대가 지금도 남아 있고, 무너진 구층석탑과 거대한 석조선각불상, 10여 명이 앉을 수 있는 동굴대좌(洞窟臺座) 등이 있습니다. 이 중 축대는 현재까지 온전히 보존되어 있으며, 동굴은 참선 또는 염불도량으로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 도굴꾼에 의해서 무너진 구층석탑은 원래 높이 4.5m, 기단 너비 1.2m이었던 석탑이구요. 이 절은 비슬산의 중심사찰로 산 밑에 있는 소재사(消災寺)는 옛날 이 절의 식량이나 각종 생활용품·의식용품 등을 공급하던 곳이었다고 하며, 소재사 앞터에는 방앗간을 비롯하여 두부공장·기왓골 등도 있었다 합니다. 현재 이 절의 축대 밑에는 맑은 물이 솟아나는 샘터가 있으며, 가뭄 때면 달성군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기우제를 지내고 있다 하네요.
1시간 40여분을 걸어 올라가 대견사까지만 관람해야했던 아쉬움이 남네요. 시간여유가 됐다면 천왕봉(1,084)까지는 못 가더라도 대견봉(1,048)까지는 오르고 싶었는데, 정상에 오르면 사방이 탁 트이는 충만감으로 시야가 넓어지며 멀리 대구 시내도 보이고, 산 정상의 바위 모습이 신선이 거문고를 타는 모습과 같다고 해서 비슬이라는 이름이 전해지기도 한다는 그 설을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기도 했는데, 그냥 아쉬움을 뒤로한 채 훗날에 다시 찾을거라는 쓸쓸한 기약만 남겨두고 내려와야 했습니다만, 아직도 비파와 거문고 소리가 들리는 듯.... 이 가을과 단풍과 비슬산이....
- Total
- Today
- Yesterday
- 광교산
- 쑥부쟁이둘레길
- 서울둘레길
- 골프장둘레길
- 백범길
- 당정근린공원
- 임영대군
- 소래습지생태공원
- 바람길숲
- 서봉산
- 산들길
- 향토유적 숲길
- 수원팔색길
- 피톤치드
- 중랑둘레길
- 동물원둘레길
- 모락산둘레길
- 가족
- 우음도
- 기천저수지
- 감사
- 여우길
- 구로올레길
- 성경타자
- 황성공원
- 화랑호수
- 화랑유원지
- 동방저수지
- 설날
- 경기대학교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