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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보은군 속리산 세조길은 법주사에서 세심정까지 약 2.4Km의 저지대 탐방로이며, 예전에는 황톳길이었다는데 지금은 야자열매 섬유로 만든 매트와 나무로 만든 데크가 깔려 있어서 운동삼아 걷기에 아주 편안합니다. 주말이라서 그런지 관광객들이 거의 빈틈이 없을만큼 줄지어 이 세조길을 걸었고, 계곡과 저수지를 옆에 끼고 있어서 정말 엄청난 인파임에도 별로 부딪힘이나 거침없이 단풍과 가을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법주사는 신라 진흥왕 14년(553년)에 의신조사가 천축으로 구법여행 후 돌아오는 길에 하얀나귀에 불경을 싣고 절 지을 터를 찾아다녔는데, 지금의 법주사 터에 이르자 나귀가 가지 않고 제자리를 맴돌았답니다. 그래서 이곳에 절을 짓고 부처님의 법이 머문다는 의미로 법주사(法住寺)라 명명하였답니다. 중학생 시절 수학여행으로 시작했던 법주사는 아마도 두자릿수 넘을 만큼이나 여러번 찾았던 것 같습니다. 법주사 팔상전은 고려시대에 다시 재건하였다는데 5층 목조 건물이 지금의 건축기술로도 불가사의하며, 옆에 우뚝 선 미륵대불은 그 규모가 어마무시한데다 가을날씨 마져 구름 한점없이 쾌청하게 맑아서 황금빛으로 웅장하게 우릴 내려다 보며 빛나는 모습이 모태부터 기독교 신자인 나를 압도하더군요.
법주사 입구 세조길로 들어서려는데 사진을 찍는 관람객들 모습이 단풍과 어우러져 아주 멋짐 폭발이더군요. 조선의 제7대 임금이었던 세조는 꿈속에서 자신이 왕위를 빼앗은 조카 단종의 어머니가 나타나 그에게 침을 뱉은 이후로 생겨난 피부병이 아주 심각했답니다. 재임 중 속리산에 머물던 세조는 달이 높이 뜬 밤에 홀로 산책 하던 중 약사여래의 명을 받고 온 월광태자가 나타나서 "이 산골의 한 계곡주위에 커다란 바위와 소나무가 많은 이곳에 마르지 않는 계곡을 찾아가 거기서 목욕을 하면 피부병이 깨끗이 완치될 것이다."라는 말을 한 뒤 월광태자가 사라졌다고 하며, 목욕소에서 목욕 후 그 지긋지긋한 피부병이 완전히 나았다는 전설이 있답니다. 세조가 목욕을 하러 가신 길이 오늘 바로 이 길이랍니다.
당단풍이라는 나무 숲과 호수가 멋지게 어루러진 절경을 만나니 또 스마트 폰 카메라가 제 역할을 하는군요. 이곳이 이처럼 탐방객이 줄을 잇게된 계기는 2016년에 보은군과 국립공원 속리산사무소가 관광인프라 확충계획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된 법주사와 세심정을 연계하는 세조길을 조성하면서부터, 이 길이 한국관광공사에서 선정한 '걷기 좋은 길'에 선정되었던 이유가 결정적이라네요. 2016년 9월 이 길이 조성된 이후 걷기에도 편하고, 우리 몸에 아주 좋다는 피톤치드가 많이 나와서 힐링에 좋다는 입소문과 인터넷 블로그로 탐방객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네요.
왜 우리는 산에서 물을 만나면 그리도 반색을 할까요? 저 위 계곡 세심정에서 중생들의 마음을 씻겨주고 흘러 내려오는 땟국물이라서 그런지 물빛이 아주 탁해서 오색 단풍나무의 그 아름다운 모습이 물빛에 투영되지는 않더군요. 티 없이 맑고 투명한 물빛을 기대했던 우리를 실망케 했던 이 물빛은 위에서 공사하는 건설기계소리가 요란함 때문에 그 이유를 찾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같은 산수를 배경으로 찰칵 한컷~.
세상을 보는 눈이 비판적인 나이탓이지는 잘 모르겠으나 법주사 입구 매표소 앞에 서서 관광객들의 매표를 가이드하는 한 스님의 모습이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더군요. 속세를 떠나 수행에 드신 스님이 돈을 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자본주의 사회에 오염된 모습을 보는것 같아 불만스러웠는데, 탐방객 중에도 스님의 이런 모습을 큰 소리로 비판하는 말을 몇번 들으니 더더욱 그렇네요. 아무튼 가을산 단풍은 산 전체의 약8할 정도일 때가 절정이라 한답니다. 여기 속리산은 해발 300~ 400m 사이라서 10월 마지막 주 부터 11월 초까지의 단풍이 그야말로 절정이랍니다.
기암과 절벽이 어우러진 이곳 속리산은 보은/괴산과 경북 상주의 경계를 이어주는 명산으로, 주봉인 전왕봉과 관음봉 및 비로봉 등 여덟개의 봉우리와 문장대/입석대/신선대 등의 화강암 바위가 정상에 있으며, 은폭동 계곡/만수계곡/화양동 구곡/선유동 계곡/상곡계곡 등의 수려한 계곡을 타고 흐르는 장각 폭포와 오송폭포 등 심산유곡이 그 위용과 정취를 과시합니다. 우린 10여년전 쯤에 세심정에서 왼쪽길로 올라가서 문장대, 문수봉, 신선대 입석봉 석문을 지나 복천암 세심정으로 내려왔던 기억을 더듬으며, 오늘은 이쯤해서 그냥 내려 가자는 결심을 해야만 했습니다.
세속을 떠난 산(俗離山)에서 만나 마음을 씻는 정자라는 세심정(洗心亭)에서 막걸리와 부침개를 먹고 있는 탐방객들을 보면서 그네들이 과연 이 정자에서 마음을 씻었을까... 그런 부질없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런데 천년의 쉼터 세심정의 안내판에는 현실적인 문제 즉 사업문제, 직장문제, 가정문제 등의 복잡하고도 풀어내기 힘든 문제들은 저 산 밖에 내려놓고, 이곳에서는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사람들과 내 앞에 보이고 느껴지는 것들을 즐기라는 뜻이라고 써 놓았네요. 천년의 쉼터 세심정은 세속에 물든 자본주의 사회의 이런 음식점 중 하나이구나를 되새김질 해 봅니다.
여기까지 오르는 길은 새로 조성된 세조길로 올라 왔지만, 내려가는 길은 아스팔트 포장된 길로 그냥 편안하게 내려섰습니다. 아늑한 숲길이라서 공기도 맑고 상쾌한 분위기였죠. 주변 경치와 탐방객들 분위기가 아무리 좋아도 말이 없는 우린 그냥 그렇게 묵묵히 걷기만 합니다. 항상 말을 먼저 거는 내가 "여기 오면서 보니까 보은 대추축제가 열리고 있더구만. 대추나 좀 사가지고 갈까?".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묵묵부답입니다.
커피를 파는 휴게소 앞에 불타는 모습의 붉은 단풍이 나타나네요. 그냥 지나쳐버리기엔 너무 아쉬워서 걸음을 멈추고, 이제는 자글자글한 주름투성이의 내 모습을 들이대며 한장 찍어달라 부탁을 해 봅니다. 이런 논네 모습을 많이도 끌어 당겨서 찍었네요. 이 사진만으로 내 나이를 식별하기엔 아직은 좀 아깝다는 부질없는 생각을 또 해 봅니다. 역시 내 모습을 내가 보고 또 봐도 철이 들려면 아직 멀었다는 생각을 하면서....
너무 아름다운 단풍에 넋을 놓은 채 바라보다가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담아 보려고 이젠 내가 당신을 찍어주겠다며 제의를 해 봅니다. 그런데, 스마트 폰으로 손가락 채팅을 하고 있는 아내에게 지금 여기서 뭐하냐고 물었더니, 송도에 사는 초3 손녀가 연수구청장배 댄싱스포츠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았다네요. 23개 팀이 참가했는데 입상을 했다면서 축하 뒤풀이로 랍스터를 쪄서 우리집으로 온다하니 서둘러 돌아가야 한다네요.
입구에 즐비하게 늘어 선 채 보은 대추를 맛보고 가시라는 맛뵈기도 받아 먹어 보지도 못한 채, 산나물 식당에서 송이버섯 전골을 서둘러 먹고 나오며 왕대추와 옥수수, 더덕과 산나물 등을 한보따리 사서 싣고 집으로 내 달렸습니다. 운전하고 돌아오면서 곰곰 생각해 보니, 내 인생은 내 것이라고 여기며 내 맘과 내 뜻대로 계획하고 꿈꾸며 살아도 일순간에 버튼 한번 조작으로 환경이 반전되는 온라인 게임이 아닐까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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