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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명절 연휴에 찾지 못했던 처가의 선산을 찾았습니다. 장남과 장녀의 역할로 우리는 어른들이 계실때에도 명절에는 반드시 찾아 뵈었는데, 이제는 우리부부가 양가의 가족 중에 피라밋의 꼭지점이 되어버린 탓에 우리를 찾아오는 가족들에게 시간을 내어줘야 합니다. 그 분들 계실때에는 왜 그리도 경제적으로 어렵고 무슨 일이 그리도 많아서 바쁘게만 살았던지 뭔가 자식된 도리를 다하지 못했던 죄송함과 아울러, 이젠 우리가 늙어서 어른이 되고보니 돌아보면 볼수록 아쉬움만 크게 남아서 그런저런 이유로 두분의 유택을 찾았습니다.
선산이 위치한 경기도 여주시 강천면 걸은리에는 마감산이 있습니다. 무신 출신으로 이조 현종대에는 우의정에까지 올랐던 이완(李浣, 1602~1674)장군이 북벌에 참여한 후 여주 영월루에서 말을 풀어 놓았더니 그 말들이 이곳으로 달려와 마감산(馬甘山)이 됐다는 전설대로, 아담하고 작지만 아름다운 산입니다. 거의 평지 같은 긴긴 내리막 솔숲 능선으로만 두어 시간 발길을 인도하는 거의 오르내림이 평평한 수준으로, 야영장에서 부터는 순전한 내리막인 이 소나무 숲길을 걸어서 폭포까지 걷노라면 몸과 마음이 절로 차분히 정리되는 듯한 느낌이 휘감겨 오는, 산림욕장인 등산로가 드물게도 명상적인 분위기의 산입니다.
완경사 능선이어서 정상으로 오르는 오솔길이나 정상에서부터 내려오는 숲길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이며, 방향을 어떻게 잡든 남북으로 긴 능선의 끝에서 끝을 잇는 산행입니다. 여주읍내에서 북쪽 42번 국도를 따라 목아박물관 입구를 지나 1km쯤 가면 왼쪽으로 경기도학생여주야영장 팻말이 보입니다. 이 길을 따라 5km쯤 가면 삼림욕장 간판과 더불어 도로 오른쪽에 작은 주차장이 나타나고, 여기에 주차 후 골짜기를 건너면 곧 마감산으로 아름드리 송림 능선은 가파르지만 넓고 시원합니다.
이곳에서부터 계곡을 따라 내리막길로 조금 걸으면 폭포라는 이름이 어울리지 않게 졸졸거리는 물줄기를 만나게 됩니다. 일본의 어느 주택 정원에 만들어 놓은 조경같은 느낌이 들더군요. 여기서부터는 오르막으로 다시 정상을 향하여 올라가야 합니다. 솔바람 소리와 더불어 천천히 오르다보면 피톤치드가 많이 나온다는 침엽수 군락을 만나게 됩니다. 큰 호흡으로 피톤치드를 마시며 천천히 오르다보니 암릉 아래 오른쪽 옆에 노송과 더불어 감투 형상의 높이 4m쯤 되는 바윗덩이가 하나 서 있는데, 이를 마귀할멈바위라고 부른답니다.
마귀할멈은 나쁜 사람을 골탕 먹이기 위하여 뒤웅박에 구멍을 뚫고 깍두기(하루살이처럼 작고 떼를 지어 날아다니는 날벌레의 일종으로, 특히 바닷가에서 많이 볼 수 있고 사람을 문다)를 가득 담아 어깨에 메고 다니는데, 어느날 마귀할멈은 이 골짜기를 지나던 중 뒤가 하도 급해 대변을 누었으며, 마귀할멈의 대변이 바위가 되었다고 전해진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천상병 시인을 좋아했던 모양입니다. 뜬금없이 마귀할멈바위 아래의 표지판에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로 시작하는 천상병의 시 ‘귀천(歸天)’ 전문을 썼네요.
깃발이라는 유치환 시인의 시를 보면서 내 자신의 옛시절이 기억났습니다. 고교시절에 줄줄 외우고 다녔던 시로 펜팔하던 소녀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많이 인용했던 싯귀들 입니다. 글 솜씨로 충청도와 경상도는 물론 멀리 강원도 태백에서까지 나를 찾아 먼길 왔었던 소녀들이 생각나면서 어머니 속을 무던히 썩였던 기억입니다. 국어나 역사 교과서는 첫장부터 끝장까지 줄줄 외웠던 반면에 수학문제를 단 한문제도 내 실력으로 풀어냈던 기억이 없습니다. 그냥 문제와 답을 달달 외워서 시험지만 채웠던 사람인데, 기초학문인 수학도 모르면서 순전히 국비로 공대를 졸업하여 엔지니어이자 과학기술인으로 한평생을 살아 온 엉터리 사기꾼 인생이라는 생각에 미치자 내 자신에게 쓰디쓴 웃음이 나더군요.
정상부근에서 내려다보니 끝 없이 넓게 펼쳐진 여주 평야가 황금빛 일렁임으로 한 눈에 쏘옥 들어 오네요. 마감산은 늘 여기에서 우리를 기다림하며 삶과 일상에 지친 우리들에게 어서 찾아와서 힐링하라고 손짓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넓고 시원한 내 품안에서 세상사를 모두 잊고 편히 쉬어 가세요!”라며 부르는 듯 합니다. 푸른 산 숲속에서 삼림욕을 하고, 시원한 계곡물에 발을 담그며 피톤치드가 퐁퐁 솟아나는 자연휴양림과 물 맑은 계곡으로 어서 오시라며 어머니의 그 품처럼 포근하게 활짝 가슴을 열어주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폭포에서 30분쯤 그리 가파르지 않은 백토길을 천천히 오르면 마감산 정상으로, 꼭대기에는 나무로 만든 정자각과 벤치 등의 시설이 드넓은 여주 평야를 내려다 보라며 쉼터를 내어 주네요. 초가을의 청명한 날씨가 숲 사이로 아스라히 남한강 물줄기까지 내려다보이는 이곳은, 이 산봉 오른쪽은 당고개이며 왼쪽에는 보금산으로 금마교를 건너야 함을 알려주고 곧장 내려가면 야영장이라는 표지판 곁에 마감산 정상이 작은 표석으로 표기돼 있고, 정자각 옆에는 이곳 강천면 주민들의 모임인 강천푸른산악회가 작년 초에 세운 정상이라는 표지석이 388m라고 검은색 글자로 쓰여져 있습니다.
경기도에서 강원도로 넘어가는 도로 위에 산행객을 위하여 구름다리(금마교)를 만드었네요. 이곳을 지나면 보금산으로 오르는 겁니다. 우리는 보금산으로 오르는 길은 다음 기회에 처가 가족들과 모두 함께 오는 기회를 만들어서 그때 걷자며, 늦은 점심을 먹기위해 여주청소년야영장 주차장을 향하여 왼쪽 계단으로 곧장 내려왔습니다. 계곡 여기저기에 전원주택을 짓는 기계음들이 분주하게 들리는 도로를 따라 내려왔습니다.
이전에도 두어번 육회를 먹어본 한정식집 청기와는 여주 IC로 돌아나오는 세종로 길목에 위치한 옛스런 한옥입니다. 오늘도 이곳 대부분의 손님은 중노년층 여성들이었습니다. 한우요리 중심의 푸짐하고 맛깔스런 한정식 점심을 둘이서 양껏 먹다가 도저히 포화상태인 위장에게 더이상 담아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수라며 많이 남겨놓은 밥상을 뒤로하고 돌아 나서는 발길이 결코 홀가분하지 않았습니다. 풍요로운 요즘과 달리 어린시절부터 몸에 배인 절약 습관으로 정성껏 차려준 음식을 남기면 안된다는 우리시대의 가정교육 탓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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