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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김천 연화지

영대디강 2018. 9. 14. 05:40

퇴근 후 김천에서 가장 맛있는 칼국수집에서 저녁을 먹자며 동료들과 함께 김천 교동 연화지를 찾았습니다. 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김산현과 동잠현으로 김산군(金山郡)의 관아가 위치했던 이 지역의 오랜 읍치(邑治)이자 문화의 중심지였던 이 연못을 1707년부터 1711년까지 김산군수를 지낸 윤택(尹澤)이라는 분이 솔개가 봉황새로 변해 날아오르는 꿈을 꾼 뒤 솔개연(鳶)자와 바뀔화(嘩)를 써서 연화지라 이름하였답니다.

조선 초기에 벼 농사하는 논에 물을 대기 위한 관개지로 활용하기 위해 조성되었던 연화지는, 물이 맑고 주변 경관이 너무 좋아서 영남의 풍류객들이 삼산이수를 형상화하여 연못 가운데에 세개의 뫼봉우리를 쌓아 작은 산을 만들고 정자(봉황대)를 지어 시인 묵객들이 시를 읊고 술잔을 기울이며 노닐던 곳이라네요. 근래에는 농업관개시설로서의 기능이 상실되어 1983년에 시민휴식공간으로 조성하여 연꽃이 만발하였습니다.

연못 가운데 지어진 봉황대는 옛날에는 맑은 물 위에 산과 구름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연못 둘레에는 숲이 우거져서 풍류객들이 술잔을 기울이면 절로 시흥(詩興)이 일어서 붓을 들게 했다는 곳입니다. 연못 주위에 산책로를 만들었고 그 길을 따라서 봄이면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장관을 이루며 여름이면 분수가 시원하게 뿜어 더위를 잊게하는 이곳 정자에 올라 앉아 시 한수를 읊으면서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있는 곳이랍니다.

조선 시대 김산군 군내면 교리와 향동 일대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1914년 향동과 상리 일부가 병합되어 김천군 금릉면 교동으로 개편되었다가 1931년 김천읍 교동이 되었고, 1949년 김천시 교동이 되었답니다. '아름다운 연화지'의 시인 휴호인은 1445년에 태어나 1462년(세조8년)에 생원, 1474년(성종5년)에 문과 급제로 1480년 거창현감, 1488년 의성현령, 1494년 합천군수로 재직중 병사하였답니다. 1710년에 연화지가 됐다는데 1477년에 연화지라는 이름이 생길걸 어떻게 알았는지 참으로 신기하다는 논리적 추리를 해 봤습니다. 

금릉의 하룻밤을 시로 쓴 이안눌은 1599년(선조32년) 문과에 급제하고 1607년 홍주목사와 동래부사를 거쳐 1610년 담양부사 후 고향으로 내려와 1631년 함경도관찰사, 다음해 예조판서 겸 충청도순찰사로 일하면서 4,379수의 방대한 양의 시를 문집에 남겼으며, 그의 생전에 두보의 시를 일만번이나 읽었다는 그가 시를 지을 때는 한 글자도 가볍게 여기지 않았으며, 서예도 출중하여 특히 당나라의 시성 이태백에 비유되기도 한답니다.

연화지 입구쪽에 길게 줄을 선 사람들 앞에 보이는 간판이 '호박 해물칼국수'집 입니다. 음식점 이름만으로는 호박으로 만든 칼국수인걸로 예상했었는데, 여기와서 실제 먹어보니 생굴 칼국수였습니다. 라면이나 칼국수같은 밀가루 음식을 나는 일년에 한두번 먹을까 말까일 만큼 즐기지 않는데도, 국수가락이 아주 부드럽고 생굴이 듬뿍들어 있어 국물 맛도 칼칼하여 칼국수로 맛있고, 군만두는 알찬 만두소가 고기씹는 맛을 보여줘 마냥 배부르게 저녁을 먹었습니다.  

 저녁 식사 후 연못 주변을 두어번 돌면서 사꾸라 울창한 이곳을 관광하는 부부가 유창한 일본어로 정겹게 대화하는 모습도 보였고, 북유럽인 외모로 황금빛 노오란 머릿결을 가을바람결에 흗날리며 동방의 반도 작은나라 코리아에서 김천을 이야기하는 젊은 친구들 표정도 많이 밝았습니다. 재밋게 일하며 맛있게 먹고 이런 풍경을 즐기며 하루하루 멋지게 살아가는 내 모습을 바이러스 삼아 저들도 모두 행복충만 삶이 되기를 바라면서 활짝 웃는 연꽃무리를 그윽하게 쳐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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