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나의 이야기

월악산 영봉

영대디강 2018. 9. 9. 13:11

제천 동창교 입구에서 월악산 영봉을 향하여 걸었습니다. 지난번 오대산길을 걸으면서 친구들과 이야기 나누던 중 탄허 스님의 예언이 적중한 곳 중 하나가 월악산 영봉과 충주호라고 해서 일부러 찾았습니다. 겸사해서 아이들에게 선물받은 승합차가 시승을 기다리고 있기도 하고 해서, 토요일 아침 이른 시간에 집을 나섰음에도 정체구간이 많다보니 오전 열시가 넘어서야 겨우 월악산국립공원 송계계곡에 도착하였습니다.

들녁엔 황금빛으로 누우렇게 익어가는 벼들을 바라보며, 유년시절에 아버지에게서 자랑스럽게 들었던 고향 출신의 학승이신 탄허 큰스님의 족적을 찾아 그 분이 걸으셨을 그 길을 걷는 기쁨이 가슴한켠 뿌듯하게 밀려 왔습니다. 자광사 뒷마당에서 조금 오르다가 영봉을 올려다 보니, 그냥 먼 발치로 바라보기에도 영험한 기운이 느겨지는 것 같은 서늘함이 온 몸을 감싸고 흐르네요. 벌써 완연한 가을공기라 여기며 그냥 걷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우리는 가볍게 말 없이 걷습니다. 등산용 스틱이나 목마름을 달래 줄 물 한병 조차도 없이, 그냥 뒷짐을 지고 산책을 하듯 걷습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네요. 바람소리나 물소리도 없구요. 산 새 소리나 풀벌레 소리 조차도 들리지 않습니다.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도, 산행객들이나 심마니들의 이야기하는 목소리는 더더구나 없습니다. 아주 깊은 산골을 혼자서 걷는 느낌으로 조용히 걷기만 합니다.

조금 걷다보니 작은 건물이 나타나서 녹슨 표지판을 보니 월악산 산신당이네요. 이곳은 신라시대부터 사당을 세우고 월악산 산신령에게 제사를 지냈던 영험한 곳이라네요. 고려 제23대 고종 43년(1256년)에 몽고 군사들이 월악산성을 침략하였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천둥을 치며 번개가 쏟아지자 몽고군사가 놀라서 마구 도망하였고, 그 후로도 월악산 신령님이 지켜주시는 덕택에 이조시대 임진왜란 때에도 이곳은 안전하였답니다.

이렇다보니 아무때나 입산을 할 수 없도록 입산시간제한 안내 표지판이 세워져 있네요. 동절기에는 새벽 5시부터 오후1시까지, 하절기에는 새벽 4시부터 우후 2시까지만 허용하여 탐방객의 안전사고를 예방 한답니다. 우린 참 운 좋은 사람들이라 여기며 자신을 돌아봤고, 공부 잘하는 사람은 부모 잘 만난 사람 못 이기고, 부모 잘 만난 사람도 운 좋은 사람 못이긴다는데 난 셋을 다 가졌다고 생각하며 혼자 웃습니다. 

천연기념물 제217호로 지정된 우리 토종 동물 산양이 여기에 산다네요. 운 좋은 사람이라 만날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가졌지만, 오고가는 길목에서 산양의 그림자 조차도 볼 수 없었습니다. 대신에 우리가 걷는 길에 수북하게 떨어져 나뒹구는 도토리들은 무지무지하게 많이 봤습니다. 흡사 도토리를 담은 자루에서 그냥 쏟아놓은 것 처럼 그렇게 많은 양의 도토리들이 산양들의 식량으로 준비되었다는 엉뚱한 생각을 했습니다.  

평소 우리는 둘레길을 걷을 때나 산에 오를 때에도 쉼표를 찍으면 운동이 안된다며 거의 쉬지않고 걷습니다. 여긴 가파른 계단을 끝도 모르게 오르다보니 중간에 쉬지않을 재간이 없습니다. 초가을 월악산 숲길 서늘한 바람결에도 땀이 비오듯 흐르네요. 문득 양사언의 시가 생각나더군요.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오르면 못오를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아니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겉터앉아 숨을 돌렸습니다.

이 돌계단을 쌓아 만든 분들의 노고가 새삼 느껴집니다. 하루 이틀 한두해가 아닐 거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끼가 끼인 돌 하나마다 땀과 정성이 가득 배인 거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 계단을 놓으신 이름모를 분들에게 감사를 드렸습니다.아무리 힘들고 지쳐도 내가 정한 목표를 향해 꾸준히 걷다보니, 중간 지점 어디쯤에서라도 영봉을 바라보며 다짐을 또하고 싶어서 쉬어감을 핑계로 다시 목표지점 봉우리를 올려다 봅니다.

1975년도에 월악산 덕주사에서 주지 월남스님과 탄허스님이 대화 중, 탄허스님이 월악산 영봉에 뜬 달이 물빛에 비추이면 30년 후에 여왕이 나오고 그로부터 5~6년 후에 통일이 된다는 예언을 했는데, 이 첩첩산중에 전혀 예상치 못했던 충주댐이 1983년에 만들어져서 영봉에 뜬 달빛이 충주 호수의 물에 뜨고 2013년에는 여성대통령이 당선되었으며 2018년에는 남북정상이 판문점에서 마주앉아 통일을 논하는 예언이랍니다. 

해발1,097미터 월악산 영봉에 오르니 스스로를 돌아봐도 대단한 사람이라는 건방짐이 고갤드네요. 금욜밤에 경북 김천에서 운전하여 집으로 돌아와서, 토요일 아침 일찍 차를 다시 바꿔 몰아서 충북 제천의 송계계곡 야영장에 주차하고, 맨몸으로 걷고 또 걸어 세시간을 넘겨 걸어서 영봉에 올라 충주호를 바라보는 내 나이가 도대체 몇살일까를 생각해보니 정말로 나는 가리가 사람이 맞노라는 엉뚱한 생각을 또 합니다. 

허기를 달래며 주차장까지 다시 내려왔기에 식사부터 먼저 하자했더니만, 호수 경치를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에서 점심 식사하자며 조금만 더 참으라 합니다. 괴산IC를 향해 달리다가 호수주변의 전망좋은 음식점을 찾아 도토리 묵밥을 시켰는데 도무지 아무런 맛도 없이 얼음조각만 차거워서 몇번 숟가락 시도하다가 먹기를 포기하고, 도토리 묵 무침을 다시 시켜서 그냥 허기 달래고나니,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한 점이 아쉽네요.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천 오봉저수지  (0) 2018.09.15
김천 연화지  (0) 2018.09.14
칠보산  (0) 2018.09.01
치악산 영원사길  (0) 2018.08.05
충주호 종뎅이길  (0) 2018.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