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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일월저수지

영대디강 2018. 12. 29. 16:30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생들이 매일처럼 이 저수지를 바라보며 자신들의 삶을 히포크라테스로 꿈꾸었을 것 같은 아름답고 포근하며 평화로운 위치에 일월저수지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아내의 교회모임인 권사회 멤버중 호매실에 사시는 분이 이곳을 추천해 주셔서, 이렇게 잔잔하고 가까운 곳 수원의 호수를 다섯바퀴 돌면서 올 해의 마지막 커플데이트로 결산하기 위하여 찾았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우리는 입을 닫은 채 영하 8도의 차거운 겨울 바람을 맞으며 일월공원 산책로를 돌아듭니다. 한바퀴 돌면 1.9Km, 돌고 또 돌아서 다섯바퀴를 돌면 약 10Km를 도는데 약 두시간 남짓 걸립니다. 아무리 바람이 차겁고 매서워도 우리가 일과처럼 즐기는 걷기 운동이기에 마냥 좋기만 합니다. 이런 분위기가 좋긴 하지만,오늘이 12월 29일로 이틀남은 2018년 이라서 내 머릿속에는 올 한해의 삶에 대한 결산이 고갤 내밉니다.  

첫번째 지표인 입조심/말조심인데 성과가 없었네요. 내 개그 순발력 하나에 반하여 결혼을 감행했던 동반자는 내 자신보다 더 나를 잘 아는 사람으로, 그때나 지금이나 습관적으로 죠크를 즐기는 남편인 내게 당부하는 딱 하나의 부탁 "꼭 필요한 말만하라"는 그것을 올 해도 못 지켰습니다. 농담은 듣는 사람이 때와 장소에 따라 불쾌하게 느낄 수도 있다는 것과 나이 든 남자는 어른이니 항상 진중하게 품위를 지키라는 그걸 올 해도 그만 지키지 못하고 젊은 동료들에게 마구 뱉어 냈습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더럽지 않고, 입에서 나오는 말이 더러운 것이라는 생각으로 말을 참았어야 헸는데, 습관적으로 올해도 아재개그를 무시로 토해내는 모습을 지나간 이제사 반성하게 되는군요.

두번째로 이젠 평생동안 매인 일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그냥 놀아야 겠다는 계획을 세웠으나, 마땅하게 즐기며 놀거리도 아직 못 찾았고 함께 놀아줄 절친 조차도 없어서 성경타자를 혼자놀기 즐거운 취미생활로 시작하였으며, 성경66 31,102절을 일독하겠다는 계획을 올 해 목표로 삼았습니다. 영문성경으로 매일 100절 분량씩 타자하기로 계획하였으며, 올 해 12월25일 크리스마스에 드디어 목표를 달성하였습니다. 물론 친구들과 함께 즐겁게 놀러도 다니며 두마리 토끼를 다 잡았으니, 이 계획은 거의 만점 수준으로 이루었다는 판단이 되네요.  

세번째로 남아있는 시간을 아내와의 동행으로 살겠노라며 주말이면 둘이서 여러곳을 많이 다녔습니다. 반백년 가까운 세월을 함께 동고동락하며 살았지만, 단 한가지 같은 취미는 건강관리 삼아서 걷기를 함께하며 좋은 먹거릴 찾아 다니는 겁니다우리에게 부여된 책임과 의무가 다 끝난 지금 시점에서 인생의 동반자로 주어진 시간이 얼마가 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내 발로 걸으며 나다닐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을 거 같지 않아서 우리의지로 움직일 수 있을때 많이 다니겠다 결심했습니다.

오늘도 함께 일월저수지 산책로를 두시간 동안 함께 걸었습니다. 아기자기하거나 재밋는 대화도 물론 없었고, 손을 맞잡거나 두 몸이 하나로 보이게끔 서로 밀착하거나 부벼대지 않으며 그냥 조금 거리를 둔 상태로 아무 말도 없이 걸었지만, 그래도 우린 함께 걷고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넉넉하게 좋았습니다. 함께 어깨를 나란히 서로 정겹게 붙어서서 사진 한장 찍지 않아도, 서로의 모습을 스마폰에 담아주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습니다.

올 해는 같은 시기에 두사람 모두 고장수리를 받으면서 내 몸도 내 맘대로 계획대로 움직이는게 아니라는 사실 앞에서 내 계획이 내 맘대로 되는게 아니라는 아주 귀중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아내가 오른쪽 어깨 회전근개 파열로 힘들어 하다가 올 해 수술하고 재활치료를 받고나서, 이제는 운전을 하고 운동도 다닐 수 있음에 또 다른 그 어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건강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산책로를 두바퀴째 걸으면서 온통 얼어붙은 호수의 한 모퉁이, 성균관대학교에서 흘러나오는 오폐수가 정화되어 맑은 물이 흐르는 배수로 앞에서 한가로이 노니는 잉어와 붕어같은 물고기떼들의 평화로운 모습을 봅니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함께 부비며 더불어 살아가는 저들의 평안을 바라봅니다. 저들처럼 우리네 인생도 공존공영의 투명하고 맑은 모습으로 살아갈 수는 없을까... 서로 더 많이 가지려고 아귀다툼으로 쫒고 빼았으며 내 뱃속만 채우려고 한 평생을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걸까...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도 저렇게 평화로운 모습으로 살아가는 미물인 물고기한테 배워야하는 것은 아닐런지 그런 부질없는 생각도 해 봅니다.

산책로 세바퀴를 돌면서, 그 맑은 물의 흐름위에 무리지어 유영하는 오리부부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문득 전도서 9:9 (Ecclesiastes 9:9)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에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그것이 네가 평생에 해아래서 수고하고 얻은 네 몫이니라.( Enjoy life with your wife, whom you love, all the days of meaningless life that God has given you under the sun, -all your meaningless days,For this is your lot in life and in your toilsome labor under the sun.)"를 기억에서 떠올려 봅니다. 이건 분명코 그분이 내게 허락하신 내몫이 맞습니다. 그렇게 살 수 있도록 허락하심에 감사합니다.

이제 이틀후에 찾아오는 내년에는 무슨 말씀을 생활 지표로 삼을까 생각하다가, 잠언 16장 "1절: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To man belong the plans of the heart, but from the LORD comes the reply of the tongue.) 2절: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All a man's ways seem innocent to him, but motives are weighed by the LORD.) 3절: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Commit to the LORD whatever you do, and your plans will succeed.)"로 정하기로 했습니다.

나는 올해의 마지막날인 월요일 아침에 김천으로 내려가니, 연말년시를 독거로 외롭게 보내게 해야만 하는 아내를 위하여 광교산 자락의 한정식집 만상에서 송년회를 둘이서 함께 했습니다. 부부가 독방을 차지하고 앉아 임금님 수랏상같은 정갈하고 맛갈스런 요리를 먹으면서, 별고무사로 살아준 올 한 햇 동안의 삶을 먼저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음식점 창밖으로 보이는 광교산 울울창창 늘푸른 소나무를 바라보며 내년에도 우리는 저렇게 늘 푸른 모습으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계절을 살자면서 서로의 마음을 함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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