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경기도 의왕시 시청로 11(고천동)에 위치하여 의왕시청을 포근하게 감싸안고 있는 낮은 산이 바로 오봉산이다. 209.8M의 오봉산은 광교산에서 수리산으로 이어지는 한남정맥에 속하는 산으로 봉우리가 다섯개라하여 오봉산(五峯山)이라고 부른다. 의왕시청 주차장에 주차하고, 이 오봉산을 한바퀴 돌아드는 오봉산둘레길은 4.15Km이며, 둘레길에서 만나는 고인돌, 장군바위, 병풍바위, 약바위, 두껍바위, 거북바위 등 다양한 형상을 가진 바위들의 현재는 일부 바위들의 실체가 남아있지 않는 전설적 이야기를 감상하면서 천천히 걸으면 약 3시간 쯤 소요된다.
의왕시청과 이웃하여 시청의 오른쪽에는 의왕시 중앙도서관인 책마루가 있다. 이곳은 조선 8대 명당으로 손꼽히는 청풍김씨 김인백(金仁伯, 1561년(명종 16)∼1617년(광해군 9))의 배위로 안동권씨 묘소가 있다. 김인백의 증조부인 정주목사(定州牧使) 김우증(金友曾)은 조선조 연산군때 중종반정(中宗反正)에 공을 세워 동쪽으로는 백운산(白雲山), 서쪽으로는 오봉산(五峯山), 남쪽으로는 지지대(遲遲臺), 북쪽으로는 모락산에 이르기까지 사방십리를 사패지로 받아 처음으로 이곳에 자리를 잡은 이래, 그의 후손들이 세거하기 시작하면서 취락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안내판을 봤지만, 둘레길 입구인 진입로를 잘 못 찾아서 엉뚱하게 의왕역으로 가는 고갯길로 오르다가 마주친 "우리동네 미술_월암별곡"의 설치 미술작품이다. 2021년 2월 부곡동, 오전동, 고천동, 내손동, 청계동, 기타지역의 뜻있는 분들이 함께 만든 '오봉산 이야기'는 오봉산 장군바위에 전해 내려오던 아기장수와 용마 이야기를 모티브로하여 제작된 공공미술프로젝트이다. 벽화 ‘오봉산 이야기’는 의왕시 마을 주민들의 작은 마음들이 모아지고, 7명의 작가들이 참여하여 힘을 합친 소중한 작업의 결과물이란다.
오봉산에는 조선시대 영조와 정조시절에 6정승을 배출한 왕곡동 청풍김씨에 얽힌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조선 인조 임금때의 일이다. 옛날중국에서 역적으로 몰린 지관(地官)이 조선으로 피신왔다가 이곳까지 내려와 청풍 김씨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청풍김씨 댁 할머님이 병환으로 위독해지자 지관은 후의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오봉산자락에 있는 어느 집터 장독대 자리를 묏자리로 사용하라고 잡아 주었다. 집주인은 자기 집을 산소자리로 내어달라는 요청을 단호하게 거부했는데, 할머님이 돌아가신 그날 밤 때마침 이 집에 큰불이나서 결국은 묘를 쓸 수 있게 되었다."
"이곳에 묏자리를 파던 도중 지관의 말대로 펑퍼짐한 돌이 나왔다. 지켜보고 있던 청풍김씨 막내 동생이 기우뚱거리는 큰돌을 들추었다가 내려놓자 둔탁한 소리와 함께 넓적한 돌은 제자리를 잡았다. 큰돌 아래에는 돌로된 옥동자 6개가 있었고, 그 가운데 하나가 머리가 부러지면서 바닥에 안정되어 무사히 묘를 완성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바로 그 자리가 이곳 의왕시청과 중앙도서관 책마루 사이에 위치한 안동권씨 묘역으로, 지금도 명당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곳에 묘지를 쓴 이후 왕곡동 청풍김씨는 영조와 정조 시대에 6명의 정승을 배출하였으며, 이 가운데 영의정을 지낸 김상로는 사도세자를 죽음에 이르게했다하여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에 의해 삭탈관직 되었다가 훗날 복원되었다.
둘레길에서 만난 고인돌이다. 고인돌(지석묘; 支石墓, dolmen)은 고인의 시신을 넣은 관을 묻는 크고 평평한 바위를 몇 개의 바위로 괴어 놓은 고대의 거석(Megalith) 구조물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청동기시대에 많이 만들어졌고, 옛 학설에서는 고조선의 영역을 추정하는 지표유물로도 생각했고, 아직도 교과서에는 그런 암시가 나오지만 최신 학계에선 고조선과 좀 다른 문화에서 만든 것으로 보는 추세가 있다. 전 세계 고인돌 약 6만 기 중 절반인 3만 기 정도가 한반도에 있다고 한다. 그래서 어떤 동네에서는 집을 지으려고 보니까 무지막지한 돌덩이가 막았고 치우기도 너무 커서 그냥 안에 두고 지었는데 알고 보니 고인돌이더라 하는 집도 더러 있었단다.
오봉산 장군바위의 전설이다. 아주 먼 옛날 가난한 아낙네가 옥동자를 낳고 밥 지으러 나간 사이에 아기가 없어졌다. 이곳저곳 살펴보니 아기가 천장에 붙어 있었는데 아이의 옆구리에 날개가 돋아 있었다. 놀란 아낙네는 아이가 범상치 않아서 자라게되면 오히려 역적으로 몰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갓난 아이를 이불로 덮고 맷돌로 눌러 놓았었다.
그 때 오봉산에서 용마(龍馬)가 달려나와서 바위위로 기어 오르더니 그만 무릎을 끓고 죽었다. 이 용마는 갓 태어난 아기장수를 태워 하늘로 올라가기위해 기다리던 말(馬)인데, 아기가 숨을 거두자 용마도 곧 죽은 것이라고 한다. 지금도 바위에는 말발굽 모양의 자국이 남아 있는데 사람들은 이 바위를 오봉산 장군바위라 불렀고, 아기장수와 용마 이야기는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러나, 장군바위는 군포시 세전마을에서 의왕시 오봉역 근처인 이동마을로 넘어가는 오봉산자락에 있었으나, 근래에 군포시 주택개발 과정에서 사라졌으며 전설만 믿거나 말거나 이렇게 남아있다.
정자(pavilion, 亭子)를 만나니 반갑다. 정자는 경치가 좋은 곳에 놀거나 쉬기 위하여 벽이 없이 기둥과 지붕만으로 지은 집을 말한다. 기둥과 지붕만 있게 지어서 바닥을 마루로 깐 것도 있고, 바닥의 한 부분에 온돌방을 둔 것도 있다. 이곳은 신발을 신은채 그냥 편하게 의자에 앉아서 잠시 쉬었다 길을 가도록 빙둘러 시원하게 만들어 놓았다.
이곳 의왕시의 오봉산 말고도 우리나라에는 오봉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이 많이 있다. 강원도 춘천시 북산면과 화천군의 경계에 있는 오봉산은 779M 이며,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에 있는 오봉산이 683.7M,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의 오봉산이 533M, 전라북도 임실군 오봉산 513.1M로 이곳 오봉산이 209.8M로 그 중에서도 가장 낮은 곳이다.
오봉산 청동기시대 마을 유적지이다. 3천여 년 전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이곳 이동 지역의 오봉산 구릉에서 작은 마을 공동체를 이루어 생활했음을 밝혀주는 집터와 토기 및 석기 등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주변에서 네개의 돌널무덤도 발견되었는데, 이는 고인돌과 함께 청동기시대에 널리 사용되던 무덤 양식이다. 현재 유적지는 이당로 도로개설로 사라졌으며, 발견된 유물은 의왕시 중앙도서관의 향토사료관에 보관, 전시되어 있다.
장마 뒤끝에 찾아온 폭염으로 후덥지근하고 바람결까지 잠이 들어 후줄근하게 흐르는 땀이 온 몸으로 흘러내려 흠뻑 젖은 한여름 7월의 첫날에도, 만보걷기로 오봉산둘레길에서 만난 두껍바위 이야기를 생각하며 재밋게 맺는다. "안골마을에서 오르는 오봉산의 다섯번째 봉우리에 두꺼비 모양의 두껍바위가 있다. 속설에 따르면, 두꺼비의 입은 이동의 창말을 향해 있고 꽁무니는 오전동 오매기 마을을 향해 있어서, 두꺼비가 창말에서 밥을 먹고 오메기에다 대소변을 누어 창말은 동네가 가난하고 오매기는 부자마을이 되었다고 한다"는 스토리의 구성이 엉뚱하게 돌려다 붙여 이야기의 끝을 맺는 옛스런 이야기다. ㅎㅎ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매봉산자락길(麻浦) (17) | 2023.07.16 |
---|---|
수원둘레길(水原) (18) | 2023.07.09 |
백범길(公州) (15) | 2023.06.25 |
구룡탐방로(原州) (13) | 2023.06.18 |
무릉도원수목원(富川) (12) | 2023.06.11 |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 Total
- Today
- Yesterday
링크
TAG
- 황성공원
- 감사
- 서봉산
- 바람길숲
- 광교산
- 보통저수지
- 백범길
- 설날
- 모락산둘레길
- 서울둘레길
- 남동둘레길
- 서호
- 일월수목원
- 소래습지생태공원
- 동물원둘레길
- 모수길
- 여우길
- 일월공원
- 당정근린공원
- 수원팔색길
- 흥부저수지
- 임영대군
- 쑥부쟁이둘레길
- 향토유적 숲길
- 물왕호
- 성경타자
- 경기대학교
- 가족
- 갈산둘레길
- 동방저수지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