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수원둘레길(水原)

영대디강 2023. 7. 9. 05:09

지지대 고개의 효행공원에 주차를 하고 수원8색길 중 제6색 수원둘레길을 걷는다. 맨먼저 만나는 프랑스 한국전 참전 기념비이다. 한국전쟁(6.25전쟁)에 참전한 프랑스군 대대를 기념하기 위한 기념비로 1989 3 16일에 세워졌다. 프랑스는 1 대대 규모의 육군병력을 파견하여 미군 2보병사단에 배속되어 격전을 치른 있다. 유명한 전투로는 지평리 전투 등이 있으나, 참전기념비는 우리나라에 파병된 가장 처음으로 숙영지를 건설한 곳이 이곳 수원이라는 이유로 수원에 세워졌다. 프랑스 대대는 한국전쟁에 연인원 3,400명이 참전하여 전사 262, 부상 1,008명의 손실을 입었다.

광교산 방향으로 등산로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1번국도인 경수대로 옆 영동고속도로 북수원IC 도로 밑에 개설된 시멘트터널을 지나가야 한다. 등산로 입구에서부터 가파른 절벽에서 힘차게 쏟아지는 폭포같은 물소리가 흐르는 하수로의 물길도 만나게 되고, 시멘트로 포장한 언덕배기 오르막길을 조심조심 오르며 먼저 겸허해짐을 마음속에 가득 채워넣는다. 조선의 제22대 왕 정조대왕의 효행을 생각하며 한양에서 여기까지 그 머나먼 길에 생부의 묘소를 찾는 세상과 요즘 시대는 부모가 자녀를 섬기도록 효도의 개념까지 완전히 바뀌었어도, 변하지 않는 진리는 언제나 낳으시고 길러주신 그 은혜에 감사함으로 시작하여 이 길을 걸어야 함을 느끼게 된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의 임금이 거주하던 궁궐인 경복궁이 소실되어,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복원하기 전까지 조선의 왕들은 서울의 창덕궁에 거주하였다. 정조대왕의 생부인 사도세자가 묻힌 현륭원(朝鮮國 思悼莊獻世子 顯隆園) 현재의 화성시 효행로에 위치해있으며, 정조대왕이 정사를 돌보 창덕궁으로부터 62km 거리이다.

정조는 생부인 사도세자를 생각하며 창덕궁에서 출발하여, 시흥행궁, 화성행궁을 거쳐 현륭원(顯隆園)까지 행차했다. 정조는 한강을 건너기 위해 36척을 이용해 임시교인 배다리를 만들어 강을 건널 만큼, 현륭원 능행차에 대한 의지가 그만큼 아주 강했다.

정조대왕은 재위기간인 24 동안 현륭원을 13 행차했으며, 그만큼 아버지인 사도세자에 대한 효심과 수원화성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13회의 행차 그 중에서도 정조 즉위 20 되는 해이자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행한 1795(을묘년) 행차의 규모가 가장 컸다.

정조의 능행차는 사도세자 묘소 참배를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수원화성 점검과 군사력 재정비 왕권 강화의 목적 또한 존재했다. 뿐만 아니라 정조는 능행차 백성들과 소통하며 백성을 이해하고 백성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애민과 소통의 정치를 펼쳤다.

정조의 13 원행(원행이란 정조의 현륭원 행차를 의미) 1 : 1789.10.6~10.9 (34), 2 : 1790.2.8~2.12 (45), 3 : 1791.1.16~1.18 (23), 4 : 1792.1.24~1.26 (23), 5 : 1793.1.12~1.14 (23), 6 : 1794.1.12~1.15 (34), 7 : 1795.2.9~2.16 (78) -> 원행차 가장 규모가 컸던 을묘년 행차였음, 8 : 1796.1.20~1.24 (45), 9 : 1797.1.29~2.1 (23), 10 : 1797.8.15~8.19 (45), 11 : 1798.2.1~2.5 (45), 12 : 1799.8.19~8.21 (23), 13 : 1800.1.16~1.18 (23)이다.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의 기록에 따르면, 정조의 을묘년 능행차 5,661명의 인력 1,417필의 말이 동원되었다고 한다. 지금부터 230여년 정조의 발자취를 그대로 느껴볼 있는 정조대왕능행차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수원의 화성행궁은 주로 조선의 국왕이 머물던 임시 처소로서, 정조 이외에도 순조, 헌종, 고종  역대 왕들이 이곳에 머물렀다. 평소에는 수원부사 또는 유수가 집무하던 관아로서도 활용되던 곳이다. 화성 행궁은 조선 시대에 건립된 행궁 규모가 가장 크며, 수원 화성과 함께 정치적, 군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건축물이다.

정조대왕은 생부인 사도세자의 무덤 현륭원(현재 화성시 융릉隆陵)에 참배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이 고개만 넘어서면 멀리서나마 무덤을 볼 수 없게 되므로, 언제나 이곳에서 행차를 멈추었다고 한다. 생부인 사도세자의 무덤을 뒤돌아보며 떠나기를 아쉬워했기 때문에 이곳에 이르면 왕의 행차가 느릿느릿하였다고 하여 한자의 느릴지()’ 두자를 붙여 지지대(遲遲臺)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참고로 지지(遲遲)라는 표현은 맹자 만장의 "去魯,曰:『遲遲吾行也。』去父母國之道也。"(공자가 노나라를 떠날 때에 말씀하시기를, "더디구나, 내가 가는 것이."라 하셨으니 부모의 나라를 떠나는 길이기 때문이다.)에서 온 것이다. 이를 두고 생각하면 참배 갈 때의 아쉬움보다는 떠날 때 선뜻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는 애틋한 아들의 마음이 이 고개의 작명에 더 강하게 작용하였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수원둘레길인 이곳은 수원시와 의왕시의 경계지역이라서 그런지 의왕시에서 의왕대간이라고 세워놓은 표지판도 보인다. 이 둘레길은 수원시 외곽을 연결하는 길로 기존의 광교산길, 칠보산길, 원천천길, 영통의 경계를 연결하여 수원의 경계를 둘러 볼수 있는 녹음이 아주 좋고 풍부한  길이란다.

헬기장까지 올라오는 수원둘레길의 숲길은 여름날에 걷기에는 아주 좋은 길이다. 걷는길에는 요소요소에 표지판으로 이정표를 만들어 놓아서 출발지로 부터 목적지까지 어디로 얼마나 걸어야 하는지 알려주고, 바닥에 야자매트가 깔려 있어 안전하고 쉽게 발길을 내딛을 수 있으며, 양 옆으로 줄지어 선 나뭇그늘 사이로 바람결도 서늘하게 불어오며, 중간 중간에 앉아 쉬면서 음료수나 간식을 먹을 수 있도록 나무 의자도 널찍하게 만들어져 있다. 다만, 등산로 공사 중으로 출입통제 구역이 있어서 안내표지 현수막을 지나치지말고 눈여겨 참고해야 한다.

지점마다 세워놓은 이정표이다. 등산로 초입인 철탑에서는 광교 광교헬기장 2.4Km 통신대헬기장 3.9 Km 경기대 12.5Km이고, 산마루에서는 광교헬기장 1.8Km 통신대헬기장 3.3 Km 경기대 11.9Km, 지지대 954m이며, 범봉에서는 광교헬기장 1.4Km 통신대헬기장 2.9Km 경기대 11.5 Km이며, 광교헬기장에는 통신대헬기장 1.5Km 시루봉 4.1 Km 경기대 10.1Km 한철약수터 2.3Km 청련암 6.5Km 이다. 걷는 사람들의 체력맞춤형 목표지점으로 설정하고 걷기에 아주 좋은 안내판이다.

여러곳을 많이 걷다보니 자주 마주치게 되는 현위치번호가 이곳은 다르다. 국가지점번호가 보통 한글 문자 2개와 아라비아 숫자 8개를 조합하여 나타내며, 전국을 하나의 좌표체계로 표현한다. 국토의 위치 안내 표시 방식을 통일하여 재난재해 긴급상황에서 신속한 대응이 가능하도록 국가안전망이다. 도로명주소가 없는 비거주 지역을 좌표로 표시해 긴급 상황에서 활용할 있도록 하고, 경찰·소방·산림청 기관·지역별 서로 다른 위치표시체계를 통일하여 대국민 서비스 효율화를 위해 시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재난사고  응급상황 발생 신속한 위치 안내와 인명구조 관계기관이 공동 활용한다는데 이곳은 왜 다를까 궁금해진다.

이곳은 야자매트로 깔아 놓은 친환경 등산로 길이라서 너무 좋다. 보통 등산로 오르막이나 내리막길에 보행자의 안전을 위해 깔려 있는 야자매트는 동남아시아에서 자라는 야자나무의 열매에서 추출된 줄기껍질로 만들어졌다. 자연적인 나무섬유질로 만들어진 것이기에 친환경 소재이며 주변 등산로나 공원 산책로 시설물등에 많이 사용하고 있다. 야자수매트나 보행매트로도 불리고 있으며 두께가 35T이상은 되어야 최소 3~5년정도는 사용할수 있단다.

사실은 오늘 걷고자 했던 길이 파장저수지이다. 수원의 7대 저수지 중에서 일월저수지서호저수지일왕저수지광교저수지원천저수지신대저수지는 모두 걸었는데파장저수지만 유일하게 걷지 않아서 네비게이션에 그곳을 찍고 찾아 왔다.  자료를 찾아보니, 파장저수지는 1981 상수도 보호구역으로 설정되었으며수원시민의 식수로 사용하는 파장정수장이 설치되어 있고, 광교산에서 발원하여 파장저수지를 거쳐 서호저수지로 유입된다는 내용 밖에는 다른 사항이 없었다. 파장 저수지의 총 저수량은 522,900톤이고 수위는 16.3m이다. 저수량은 계절별로 차이가 있는데, 3월에는 저수량이 평균 79.110, 6월에는 157,578, 9월에는 288,600, 12월에는 195,794톤이다.

내가 찾은 자료에는 일월저수지서호저수지(축만제)일왕저수지(만석거), 원천저수지신대저수지의 용도가 모두 농업용수로 되어있고, 광교저수지와 파장저수지만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어서, 이전에 상수원보호구역인 광교저수지를 걸었던 경험으로 이곳 파장저수지도 걸을 수 있으리라고 단순하게 판단했었다. 그런데, 막상 파장저수지 입구 주차장에 주차해놓고 저수지로 들어가려고 했더니 이곳은 출입이 안된다며 관리인들이 막아선다. 나중에 알고보니 우리가 찾은 곳은 파장저수지가 아닌 파장정수장이었다. 이래저래 오늘은 파장(罷場)이었다. ㅎㅎ

수원시 파장동(芭長洞)에 있다고 해서 파장저수지라고 불린다. 미륵당 저수지라고도 불리는데, 이 저수지 아래 미륵당과 미륵당 마을이 있기 때문이다. 이 곳은 본래 미군의 사격장이어서, 인근 주민들이 탄피를 주우려 무척이나 많이 왔던 장소라고 한다. 한국전쟁 이후 미군이 미륵당 마을 일대를 포 사격장으로 만들어 훈련을 하였는데, 현재의 저수지 자리에 포를 쏘아 거대한 웅덩이가 생겨났다. 미군이 철수하고난 뒤 물이 고인 그 웅덩이 자리에 제방을 설치하여 저수지를 만들었는데, 이때가 1970년이다. 1981년 제방을 증축하여 현재의 모습을 띠게 되었다. 원래 저수지 위로는 천수답(天水畓)이 있었는데, 저수지가 만들어지면서 모두 잠기었다. 이 지역은 1981 6월에 상수도 보호 구역으로 지정되었으며, 1981 10 31일에는 정수장이 설치되어 수원시에 물을 공급하게 되었다. 1990년까지는 광교저수지와 더불어 수원 전역에 물을 공급하였으나, 현재에는 장안구 일원과 권선구 일부에만 공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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