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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백제문화단지(扶餘)

영대디강 2021. 3. 7. 05:41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합정리에 위치한 백제 역사 문화단지는 백제역사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고자 3,276천㎡(100만평) 규모로, 1994년부터 2010년까지 17년간 충청남도 부여군에 조성된 역사테마파크이다. 1993년 백제문화권 종합개발계획이 확정 후 1998년 백제문화단지 기반시설공사를 착수하여2006년에 개관하였다.

백제문화단지는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우던 백제역사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고자 건립한 한국 최대 규모의 역사테마파크이다. 넓은 부지 위에 웅장한 백제문화의 흔적이 남았다. 백제의 왕궁인 사비궁은 삼국시대 왕궁의 모습을 최초로 재현했다. 백제의 왕실 사찰 능사는 부여읍 능산리 유적을 실물 크기로 복원했다. 중문인 대통문을 지나 마주하는 능사 오층석탑은 단지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건축물이다. 위례성은 한성백제 시기의 성으로 사비궁과는 다른 시대 백제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제형루에 올라서면 단지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백제 왕궁인 사비궁을 과거 삼국 시대 모습 그대로 재현하였으며, 왕궁뿐만 아니라 능사, 고분공원, 위례성, 생활문화마을 등이 조성되어 있다. 또한 백제역사문화관, 한국전통문화학교와 민자시설인 숙박시설(콘도,스파빌리지), 테마파크, 테마아웃렛, 체육시설(대중골프장)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왕궁과 사찰의 하앙(下昻)식 구조와 단청 등 백제시대 대표적인 건축양식을 사실적으로 재현하여 백제시대 유적과 유물에 근거한 백제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해 볼 수 있다.

678년 역사의 백제는 도읍지를 세 차례나 옮겼는데, 한성(서울)과 웅진(공주)을 거쳐 마지막으로 정착한 곳이 바로 이곳 부여다. 옛날에는 부여를 '사비'라 불렀고, 백제의 도읍지가 부여였던 538년부터 660년까지를 '사비시대'라고 부른다. 백제의 독창적 문화가 꽃피운 시기도 이때다.

정양문은 중국 베이징에 있는 쯔진청의 정문으로 명나라 시절인 1419년에 영락제가 베이징으로 수도를 천도하면서 처음으로 지어졌다. 이곳 백제문화단지 정양문은 사비성의 정문으로 해가 가장 높이 떠서 온 세상을 환하게 비추는 때로 모든 기운이 가장 왕성한 때인 정양(正陽)의 문이다. 유래는 백제가 가장 왕성했던 근초고왕(346 ~375)이 일본의 왕에게 하사했던 칠지도(七支刀)라는 칼에 새겨진 명문에서 인용한 것이다. 건물은 2층 규모로 입구의 상징성을 가지고 있으며, 백제고유의 건축 양식으로 기둥상부에 45도로 경사진 부재가 건물을 웅장하게 해주는 하양식 구조와 목재를 끼우고 맞춤에 의한 방법으로 조립된 전통기법으로 건축하였다.

넓은 부지 위에 웅장한 백제문화의 흔적이 남았다. 백제의 왕궁인 사비궁은 삼국시대 왕궁의 모습을 최초로 재현했다. 백제의 왕실 사찰 능사는 부여읍 능산리 유적을 실물 크기로 복원했다. 중문인 대통문을 지나 마주하는 능사 오층석탑은 단지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건축물이다. 위례성은 한성백제 시기의 성으로 사비궁과는 다른 시대 백제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제형루에 올라서면 단지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천정전(天政殿) 사비궁의 정전으로 국가의 정사를 하늘에 고하여 결정했다는 천정대에서 이름을 따왔다. 왕의 즉위 의례, 신년 행사 각종 국가 의식이 거행되고, 외국의 사신을 맞이하는 사비궁 내의 가장 중요한 건물이었다.

문사전(文思殿) 동궁에서 가장 중심적인 건물로 왕이 평소 집무를 보는 공간이다. 주로 문관에 관한 집무공간으로서 문사전의 문()은 동쪽을 의미한다.

 

백제의 왕궁인 사비궁과 대표적 사찰인 능사, 계층별 주거문화를 보여주는 생활문화마을, 개국 초기 궁성인 위례성 등을 철저한 고증을 거쳐 건축했다. 특히 오른편 한가운데에 솟아오른 능사의 모습이 놀랍기만 하다. 능사는 사비로 도읍지 천도를 거행했던 백제 성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지은 백제 왕실의 사찰을 말한다. 이곳 능사에서 국보 제287호인 '백제금동대향로'와 국보 제288호인 '창왕명석조사리감'이 발굴되기도 하였다.

마한·백제영역 내의 움무덤군은 석촌동 하층 고분군, 천안 청당동·화성리, 청주 송두리·송절동·신봉동, 화순 용강리, 승주 요곡리 고분군 등이 있다. 특히 청주 송절동 고분군과 천안 청당동 고분군에서는 봉분의 외곽을 감싸는 도랑(周溝)이 확인되어 봉분의 형태를 짐작할 수 있다. 도랑이 돌려지는 형태를 통해 이러한 종류의 움무덤에는 방대형(方臺形)의 봉분을 쌓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13층 건물 높이의 오층탑은 국내에서 최초로 재현된 백제시대 목탑으로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던 곳이다. 생활문화마을에서는 백제 인물 열전이 펼쳐진다. 이곳에는 당시 백제인들의 생활풍습을 엿볼 수 있는 전시물이 많다. 계백장군의 가옥과 백제 건축가인 아비지의 집, 의박사 왕유능타의 집, 오경박사 단양이의 집 등 중류계급과 서민계급의 가옥을 연출해놓고 있다.

무덕전(武德殿)서궁에서 가장 중심적인 건물로 왕이 평소 집무를 보는 공간이다. 주로 무관에 관한 집무공간으로서 무덕전의 무()는 서쪽을 의미한다.

백제의 복식에 관하여는 유물이나 기록이 많지 않으므로 그 복식 구조를 자세히 알기는 쉽지 않으나, <양서(梁書)>에 이르기를 백제의 언어와 복장이 고구려와 거의 같다고 하였으니 백제인들도 고구려 고분벽화에 보이는 인물상들이 입고 있는 복식과 판이하게 다른 복식을 착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며, 다만 한반도 내 지역적 차이에 근거하여 외국인이 쉽게 알아볼 수 없는 다소간의 차이점이 있을 것으로만 추정된다.

삼국시대에는 최고의 계층에 속한 국왕과 귀족들만이 금으로 만든 관식(冠飾) 및 금동관을 사용하였다. 그 이하의 계층에서는 천으로 만든 모자를 썼다. 이러한 점이 당시 복식문화의 특징으로 손꼽히고 있다. 고대사회에서는 계급과 신분에 따라 사회적 지위가 결정되었으므로 복식에도 이처럼 신분에 따른 철저한 구분이 있었다.

의복의 경우 연령의 구별 없이 처음에는 소매가 좁은 저고리와 가랑이의 통이 좁은 바지를 착용하였다. 그러나 점차 귀족층을 중심으로 소매가 길고 넓으며 자락이 긴 저고리와 통이 넓은 바지를 입는 형태로 변하였다. 그 외의 계층에서는 여전히 긴 저고리와 통이 좁은 바지를 답습하였다. 특히 신분이 높은 사람의 경우 옷의 깃이나 소매 등에 두르는 선의 폭을 넓게 하고, 그 안에 다양한 문양을 꾸며 넣는 경우가 많았다. 때로는 저고리 위에 붉은색이나 색깔이 있는 두루마기를 입어 높은 신분을 과시하기도 하였다.

군관주택(계백장군댁)은 계백장군은 백제 말기 신라와 당나라의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공격하자 군사 5000명을 이끌고 전쟁에 나가 황산벌에서 신라 김유신의 5만 군대와 맞서 네 번이나 승리했다. 그러나 18만 명의 나당연합군을 상대로 싸우기에는 백제 군사의 수가 너무나 부족했다. 백제의 마지막 보루였던 계백장군은 결국 전투에서 패했고, 678년을 이어온 백제는 멸망했다.

초기 마한·백제지역의 무덤양식은 매장시설에 따라 나무널움무덤과 독널무덤이 주된 무덤양식이었다. 움무덤은 매장시설로서 나무널이나 덧널을 주로 사용하고 독널무덤은 매장시설로서 지하에 독널을 사용한다. 3-4세기대까지 마한·백제의 영역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무덤양식은 움무덤이다. 대개 덧널움무덤이 출현하면서 나무널움무덤은 소멸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마한·백제의 영역에서는 나무널움무덤이 지속적으로 사용되는 것이 특징이다.

서동왕자와 선화공주의 사랑 이야기는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는 역사이다. 혹자는 삼국사기에 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지어낸 설화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무왕의 어머니는 과부였으며 용과 동침하여 낳은 아이가 서동이었고, 서동이 신라 진평왕의 셋째 공주인 선화공주를 좋아해서 선화공주 우리 공주 선화공주/ 시집일랑 아니 가고 밤이면 또 밤마다 서동 방만 찾아가서 안고 굴며 논다네/ 서동이여 서동이여 어서 오소 어서 오소 염통일랑 하나 인데 염통 반쪽 떼어다가 / 공주님께 바쳤다네.”라는 노래를 지어 골목쟁이 아이들한테 가르쳐서 그 소문이 진평왕의 귀에 들어가 공주를 궁에서 내보냈고, 서동을 찾아와 공주와 결혼한 서동은 백제의 무왕이란다.

연영전(延英殿)주로 문신들의 집무 공간이며 천하의 인재를 맞이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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