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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강릉(泰康陵)은 서울특별시 노원구 공릉동에 위치하고 있다. 태릉(泰陵)은 조선왕조 제11대 중종의 제2계비 문정왕후 윤씨(文定王后 尹氏)의 능이고, 강릉(康陵)은 제13대 명종과 그의 비 인순왕후 심씨의 능이다. 두 능을 아울러 태강릉(泰康陵)이라고도 한다. 1970년 5월 26일 대한민국 제201호로 지정되었다.
정문인 매표소에서 성인 한 명 기준으로 1,000원의 입장료를 받는다. 안내를 하는 분에게 매표소 에서 신분증만 확인시켜 주면 그냥 들어가라고 한다. 바로 ‘조선왕릉전시관’이 나온다. 그러나 오늘은 휴관이다.
5월의 신록은 바라보기만 해도 힘이 난다. 코로나19로 지쳤던 몸과 마음이 치유되는 느낌이다. 누구에게도 열리지 않았던 숨겨진 신비의 숲인 탓에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신록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기쁨과 행복과 평온함을 갖게한다.
조선 왕릉의 앞에는 신성한 영역임을 상징하는 홍살문이 서 있고 그 뒤로 릉까지 돌길이 놓여 있다. 왼쪽 높은 길은 제사 시 향과 축문을 들고가는 '향로'이고 오른쪽 낮은 길이 임금이 걷던 '어로'라고 하니 조선시대 왕들의 조상을 모시는 효심이 남달랐음을 느낀다.
태릉은 조선 왕조 제11대 임금인 중종(中宗)의 왕비(제3비)인 문정왕후 윤씨(文定王后 尹氏) (1501년∼1565년)의 능으로, 1565년에 조성되었다. 태릉은 왕비의 봉분(封墳) 1기만을 조성한 단릉(單陵)이다. 왕후는 중종의 제2비 장경왕후(章敬王后) 윤씨와 동원(同原)에 있던 중종의 정릉(靖陵)을 봉은사(奉恩寺) 곁으로 천장(遷葬)하고 자신도 그 옆에 묻히기를 원하였지만, 정릉(靖陵) 주위의 지대가 낮아 장마철에 물이 들어 자주 침수되자, 뜻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 이 곳 태릉에 안장되었다.
왕과 왕비가 사망한 후 왕릉에 묻히기까지 국장 절차는, 사망 당일 초종(初終)이라 해서 사망 확인 후 세상을 떠난 왕의 혼을 부른다. 이를 복(復)이라 하며 곧바로 삼도감을 설치한다. 장례는 철저한 격식에 의해 진행되는데, 습(襲)이라 해서 시신을 목욕시키고 9겹의 옷을 입힌다. 또한 종묘와 사직에 고하는 고사묘(告社廟)를 거친다. 이후 3일째에는 소렴(小殮)이라 해서 19겹의 옷을 입히고 이불로 감싼다. 5일째는 대렴(大斂)이라 해서 시신에 90겹의 옷을 입히고 재궁으로 모신 뒤 빈전으로 운반하는데 이를 성빈(成殯)이라 한다. 신하들은 모두 상복으로 갈아입으며 사위(嗣位)라 해서 새 왕이 즉위식을 올린다. 이후 발인(發靷)해 왕을 왕릉에 모신 후 신주를 모시고 궁으로 돌아오는데 이를 반우(返虞)라 한다. 이후 첫 번째 기일(1년째)에 제사를 지내는데 이를 연제(練祭)라 한다. 2년 이후 신주를 종묘에 모시는 부묘(祔廟)로 국장은 일단락된다.
5월 16일 ~ 6월 30일까지 한시적으로 개방을 한다. 태릉과 강릉 사이에는 아름다운 숲길에 1년에 두 번 5월과 10월에 개방된단다.
아마도 이 길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건지, 언제 닫힌 길이 열리는 건지 몰라서 그런지, 코로나19 때문인지 인적은 드물었다.
숲길은 개방된 지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 그런지, 높은 산 깊은 골짜기를 걷는 것처럼 이곳이 서울이라는 생각을 잠시 잊게 한다. 숲길을 걷는 감흥은 자연의 신비를 음미하기에 충분하다.
강릉 가는 길에 소나무 숲을 만났다. 봄비가 내린 다음 날과, 안개가 낀 날 소나무 숲은 참 신묘한 기운을 느끼게 해준다. 1년 내내 푸르름을 간직한 소나무가 지닌 의미가 '불로장수, 영원불멸, 자비, 절개' 라고 해서 소나무를 특별히 더 좋아한다.
'강릉 가는 길'이란 이정표가 보인다. 조금만 더 걸으면 속초에가서 점심은 싱싱한 횟집에서 먹어야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하면서 혼자 음흉한 미소를 짓는다.
강릉은 문정왕후 윤씨의 아들이자 조선 왕조 제13대 임금인 명종 (明宗, 1545년∼1567년 재위)과 그의 비(妃) 인순왕후 심씨(仁順王后 沈氏, 1532년∼1575년)의 능이다. 강릉은 한 언덕에 왕과 왕비의 봉분(封墳)을 나란히 마련한 동원(同原) 쌍봉릉(雙封陵)이며, 난간으로 연결되어 있다. 강릉은 원형 보존을 위해서 일반인에게는 공개되지 않았으나 태릉을 찾는 관람객의 강릉 관람요구에 부응하여 편의시설 설치와 문화재 정비를 마치고 2014년 1월 1일 부터 문을 열게 되었다.
태강릉은 원래 동일한 능역 안에 있었지만 개발 등의 여파로 완전히 분리된 상태이며 입구도 다르다. 태릉 입구에는 조선왕릉박물관이 있는데 국장 절차와 조선 왕릉의 건설 방법, 부장품, 조선 왕릉에 담긴 역사와 문화, 산릉 제례를 포함한 왕릉 관리 등 상세한 사항을 알려주고 있다.
조선 왕실의 장례는 매우 까다롭고 복잡했다. 조선시대 편찬된 ‘국조오례의’에 따르면 왕이 죽으면 3년에 걸쳐 총 60단계가 넘는 절차를 밟아야 국상이 끝난다.
숲은 언제나 아름답다. 태릉-강릉 숲길은 그동안 인간의 발길이 덜 찾았기에 더욱 평온하고 아늑한 느낌을 주었다. 아름드리 소나무 군락과 산벚나무, 갈참나무, 신갈나무 군락을 사이로 비추는 햇빛이 아름답다. 이 숲길은 총 1.8km로 왕복 1시간이면 충분히 걸을 수 있는 거리이기에 금방 왕복했다.
태릉과 강릉을 잇는 가장 아름다운 숲길(1.8㎞)을 정비하여, 조금이나마 두 능 간의 역사적 관계성을 점차 회복하고 국민이 문화재를 향유할 수 있도록 숲길을 개방한다는 안내판이다. 왕복 약 1시간 30분 소요란다.
문화재청 조선왕릉관리소는 그동안 관람이 제한되었던 태릉과 강릉을 잇는 아름다운 숲길(1.8㎞)을 조성하여, 조선 왕릉을 옛 모습으로 복원하는 과정에서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었으나, 그동안 관람이 제한되었던 강릉을 일반 국민에게 전면 개방하였다.
태릉-강릉 숲길은 시적인 여운을 불러일으킬 만큼 아름다운 길은 아니다. 꽃이 만발한 화원처럼 찬연하지도, 굵직한 노송이 피톤치드를 내뿜는 휴양림처럼 시원하지도 않다. 하지만 이곳에는 평범함이 주는 편안함이 있다. 아무리 훌륭하게 꾸며 놓은 정원이라도 산길 비탈진 곳에 핀 꽃 한 송이보다 못할 때가 있다. 이곳이 딱 그런 느낌이다. 게다가 50년 세월의 뒤안길을 걷는 가슴 떨림, 조용한 숲길에서 진지하게 자신을 되돌아볼 정도의 여유를 느끼기에, 이곳은 안성맞춤이다. 태릉과 강릉을 잇는 숲길은 1966년 태릉선수촌이 건립되면서 두 권역이 분리돼 길이 끊어졌다. 하지만 올해 처음 이 숲길이 정비돼 일반인에 공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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