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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둘레길은 남산타워(N서울타워)를 기점으로 남산을 한 바퀴 돌아드는 코스로 남산의 북측순환로와 남측숲길을 연결한 7.5 Km의 걷는 길이다. 이 길은 본래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로 조성됐으나 남산의 공원화가 진행되면서 자동차가 아닌, 사람이 걷는 길로 바뀌고 있다. 북측순환로는 ‘웰빙조깅메카길’로 불리며 차량통행이 전면 통제됐고, 남측순환로도 2011년 5월부터 순환버스만 통행할 수 있다. 두발로 걸어서 남산의 자연을 모두 만날 수 있도록 이렇게 아름다운 산책길로 만든 서울시의 시민을 위한 배려이다.
젊은날의 직장동료들이 퇴직후 정기모임 멤버로 벚꽃이 만발한 남산둘레길을 걷기로 했다. 서울의 중앙에는 남산이 있고, 우리들의 직장은 남산의 그 바로 아래에 있었다. 우리들이 근무하던 당시에는 늘상 창 밖으로 그저 바라만 보는 대상이 바로 남산이었다. 출퇴근 길에서도 언제나 마주하며 바라볼 수 있는, 너무 흔한 풍경 그 자체였기에 도심 한복판에 솟은 산에 대한 기대가 별로 없었다. 보통 산이라고 하면 자연이 있고, 넉넉한 쉼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남산은 규모도 작고, 산의 높이와 맞먹는 빌딩숲에 들어앉아 있어 자연적인 쉼터 기능을 상실했다고 여겼었다. 그랬던 우리 모두가 퇴직 후 이렇게 여유롭게 남산 둘레길을 돌아보며, 도심 한복판에 이렇게 아늑한 쉼터가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는 모습들이다.
서울의 중심에 바로 남산이 있다. N서울타워 광장에는 서울 중심점이 있다. 이곳이 중심이라는 얘기다. 남산이 서울의 중심이란 사실은 남산을 올라보면 안다. 북쪽으로는 북한산, 남쪽으로는 관악산이 크게 아우른 가운데 서울이 동심원을 그리며 자리한다. 그 도심을 한강이 유유히 흘러와 남산을 감싸고 돌아간다. 그러나 남산이 본래 서울의 중심은 아니었다. 조선 개국과 함께 한양이 도읍지로 되었을 때, 남산은 그저 남쪽을 지키는 요새였다. 당시 북악산 기슭에 궁궐을 짓고 바라보니 남쪽에 산이 있어 남산이 됐다. 이 산은 한양의 안쪽에 자리한 4개의 산(內四山) 가운데 하나여서 산 위에 성을 쌓고 봉수대를 설치, 도성 방어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겼다. 그랬었던 남산이 오늘날에 와서는 당당히 서울의 중심이 된 것이다. 근대 이후 서울이 급팽창하면서 도성의 중심을 꿰찬 것이다.
남산 둘레길을 찾은 우리와 함께 걷고 있는 시민들이 구름처럼 많은 숫자라서 물어보니, 오늘은 2024년 남산 가족걷기대회날이란다. 2024년 4월6일(토) 11:00 ~ 16:00에 열리는 행사로 남산공원 백범광장(김구선생 동상 앞)에서 서울타워플라자까지 북측 순환로 6km를 걸으면 도보로 약120분이 소요된단다. 화사한 벚꽃들이 만개한 산책로를 무리지어 걸으며, 4월의 첫 토요일로 따사로운 봄날이라서 아마도 서울시민들 절반쯤은 남산길을 걷으러 나온게 아니냐고 재잘재잘 지껄이며 옛 추억속의 길을 웃으며 걷는다.
장충체육회를 지나면 지름길이 나온다. 석호정국궁활궁터를 거쳐 1.3km를 크게 돌아가는 길을 단 100m로 가로지를 수 있다. 선택은 우리들의 몫이다. 갈림길에서 데크로 된 계단을 오르면 N서울타워로 갈 수 있다. 남측순환로가 남산 정상을 향해 꾸준하게 오르는 길이라면, 북측순환로는 남산의 허리를 감싸고 돌아간다. 도심권에 접해 있어 여기저기서 올라오는 길들이 많다. 남산1호터널 위를 지나 산모퉁이를 돌아가면 남산을 오르는 케이블카도 보인다. 그 한 쪽에 와룡묘가 있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대단한 책략가 제갈공명을 기리는 사당이며, 와룡은 제갈공명의 호이다.
우리는 서울역 11번 출구에서 모여 남산 둘레길을 돌아서 동대입구역에서 해산하는 노선을 택했다. 보통 명동역과 동대입구역, 서울역 등 지하철 거점이 되는 곳이 많이 이용되며, 남산 둘레길로 가는 진입로는 공식적인 것만 15개다. 이 가운데 가장 사랑을 받는 곳은 명동역과 동대입구역 기점이다. 명동역 1번 출구에서 소파길을 따라 15분쯤 오르면 남산도서관이다. 남산도서관에는 지붕에 천문대 모양의 돔이 있는 서울시교육연구정보원과 안중근의사기념관 등이 있다. 이곳에서 나무데크로 조성한 계단을 따라 잠두봉 포토아일랜드를 거쳐 N서울타워로 갈 수도 있다.
남산은 서울시의 중구 남산동 · 예장동 · 필동 · 장충동과 용산구 후암동 · 용산동 · 한남동에 걸쳐 있는 산으로서, 목멱산 · 목밀산 · 인경산 · 마뫼 · 종남산 · 열경산이라고도 부른다. 그 모양이 주마탈안형(走馬脫鞍形) 또는 누에머리 모습을 하고 있다. 그 능선에는 태조 때 쌓은 성벽이 남아 있고, 상봉에는 봉수대 · 국사당이 있었다. 이 산에 올라서서 바라보면, 서울시가가 눈 아래에 그림 같이 보이며, 북악 아래의 서기가 중천에 떠 있고, 남쪽에 한강이 창일하며, 산마루에는 소나무가 울창하고, 바위틈에는 온갖 꽃이 찬란하다.
남산팔영이라는 이 시는 조선 태종때 판한성부사(서울시장)를 지낸 정이오가 남산(南山)의 빼어난 경치와 조망에 대해 읊은 시를 8수 지어 읊었는데 이를 남산팔영이라고 한다. 남산팔영으로 운횡북궐, 수창남강, 암저유화, 영상장송, 삼춘답청, 구일등고, 척헌관등, 연계탁영과 경도십영의 하나인 목멱상화로 유명하며, 현재는 꼭대기에 서울타워와 팔각정이 있고, 그 밑에 오르내리는 삭도가 있어서 관광지로서 유명하다. 「雲橫北闕(운횡북궐)」은 "玉葉橫金闕(옥엽횡금궐) 옥빛 구름은 금빛 대궐에 비껴 있고 朱甍照碧天(주맹조벽천) 붉은 지붕은 푸른 하늘에 빛나네 丁東傳促漏(정동전촉루) 똑똑 급한 물시계 소리 들려오는데 戌北釀霏煙(술북양비연) 북쪽에서는 안개가 뭉게뭉게 일어나네 佳氣晴相擁(가기청상옹) 아름다운 기운 갠 날 서로 둘렀는데 高標望更連(고표망갱연) 높은 기상 바라보니 다시 잇따랐네 南山將獻壽(남산장헌수) 남산 같은 높은 복을 우리 임금께 드리니 穆穆萬斯年(목목만사년) 오래오래 만년을 누리소서."
장충단 공원으로 내려오는 길에 수표교(水標橋)를 만난다. 수표교는 수표가 새겨져 있는 청계천의 다리이다. 조선 세종(世宗) 2년에 처음 놓였으며, 서울특별시 종로구 수표동에 있었으나 1958년 청계천 복개공사로, 이곳 장충단공원으로 옮겨졌다. 2005년 청계천 복원 당시 원래 자리에 다시 놓으려고 했으나, 복원된 청계천의 폭과 수표교의 길이가 맞지 않아 옮겨지지는 못했고, 대신 그 자리에는 임시 다리가 놓여 있다. 현재 수표교의 소재지는 서울특별시 중구 장충동2가 197-1이다. 청계천에 있었던 이 다리는 단순한 다리가 아니라 청계천의 수량을 측정하여 홍수에 대비하던 역할을 하던 과학적인 측정다리였다.
남산둘레길에는 맛집들도 많지만 우리는 그 중 유명한 장충족발로 정했다. 장충단은 대한제국 시기 고종이 나라를 위해 순직한 충신들을 추모하는 장충단을 만든 데서 이름이 유래했다. 일제 강점기엔 박문사가 세워져 굴욕의 역사를 겪었고, 해방 이후엔 국가 주도의 건물들이 세워지며 굵직한 역사 현장을 오롯이 지켜봐왔다. 이곳 장충족발의 원조는 ‘평안도집’이고, 나중에 이곳의 동업자들이 각각 독립하여 ‘뚱뚱이할머니집’, ‘평남할머니집’을 원조라고 이름한 많은 장충족발집 앞에는 기다란 대기줄이 있었다. 족발은 돼지족을 간장 양념으로 조린 음식으로 황해도 향토음식인 ‘돼지족조림’에서 유래되었으며, 한국전쟁 당시 북한 출신의 피난민들이 서울 장충동에 뿌리 내리면서 생계를 위해 족발집을 열었는데 세월속에서 서울의 명품맛집 골목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후암로의 끝자락에는 보행특구인 서울로가 있다. 원래 서울로는 프랑스 남부 바르주(州) 신(Seyne)에 한국 기업 비즈니스 센터가 건립되는 것을 기념하여 인근 도로에 붙여진 이름이다. ‘서울로(Avenue Seoul)’는 산업단지에 있는 한국 기업을 위한 비즈니스 센터 인근에 있는 폭 7m, 길이 200여m의 2차선 도로이다. 이 비즈니스 센터는 신(Seyne) 산업단지에 입주해 있는 한국의 벤처기업 ‘리닉스’의 프랑스 현지법인이 한국의 유망 중소업체를 유치하기 위해 건립한 연면적 300평 규모의 2층 건물이다. 그러나 우리가 만난 서울로(Seoullo's)인 이곳은 '걷자 서울'의 서울에 있는 보행특구 '서울로' 란다.
오늘 걸었던 남산 둘레길의 걸음수를 알아보기 위해 만보계를 열었더니 16,736보가 나온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길을 평탄하게 여기며 즐겁게 걸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청춘을 함께 보내며 같은 사무실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들과 옛이야기를 나누며 추억속으로 빠져들다보니 피곤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산책로를 걷는 중간에도 쉼터에 자릴잡고 앉아서 배낭에 넣어온 막걸리잔을 나누는 모습도 정겹고, 꼰대들이 나누는 아재개그 속에서도 공감하며 함께 웃고 즐기는 모습들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으로 벚꽃처럼 화알짝 피어있다.
걷는길에서 만나는 남산의 성곽이 멋지다. 한양도성(漢陽都城)은 조선의 수도였던 한성의 주위를 둘러싼 성곽과 문을 일컫는 말이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1396년에 수도를 한양으로 옮긴 후 궁궐과 도시를 방위하기 위해 지은 도성이다. 흔히 한양도성하면 성벽만을 생각하는데 숭례문, 흥인지문을 비롯한 서울 4대문과 그외 문도 한양도성에 포함된다. '서울성곽'이라는 이름도 한때 이 도성의 공식 명칭이었지만 2011년 7월 사적의 통일된 지정명칭 부여 사업의 일환으로 지금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서울 성곽이라는 단어는 통용되고 있으며 문화재 안내판에도 서울 성곽이라고 표기된 곳이 많으며, 서울시가 정한 도성 순례길의 명칭도 '서울 성곽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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