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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의왕시 오전동 산113-2 오매기마을은 모락산에서 백운산의 등산로 아래에 위치한 아담한 마을이다. 삼태기처럼 깊은 골짜기에 위치해 있어서 예로부터 전란 등이 일어나면 피난의 최적지로도 유명했다고 한다. 문화 류(柳)씨를 포함한 류씨, 진씨, 노씨, 마씨, 문씨 등 성씨가 산다 해서 오막동이라 했다가 조선시대 말기부터 오매기 마을로 불렸다고 전한다.
역사적으로 이곳의 동 이름은 자연마을인 오마동(五馬洞 :오매기)의 '오' 자와 전주동(全朱洞)의 '전' 자를 따서 오전리라고 한 데서 비롯되었다. 조선시대에는 광주군 왕윤면 지역이었고, 1914년 오마동·전주동·등곡동을 병합하여 수원군 의왕면 오전리로 되었다. 1936년 수원군 일왕면 오전리로 바뀌었고, 1949년 화성군 일왕면 오전리로 되었다. 1963년 시흥군 의왕면 오전리로 되었다가, 1980년 시흥군 의왕읍 오전리로 바뀌었다. 1989년 의왕읍이 시로 승격되면서 의왕시 오전동으로 명명되었다. 오전동 옆에는 오후동이 또 있을까를 생각해보는 건 나같은 얼간이로 모자란 수준은 없을거라 믿는다.
올해 여름은 우리나라 폭염의 역사를 새로 쓰면서 열대야의 기록까지 모두 갈아치우면서 추석이 지나도록 그렇게 무덥던 여름날이, 오늘은(9월 21일) 갑자기 비와 함께 기온이 급강하해서 32도에서 17도로 뚝 떨어져 좀 쌀쌀하다. 습관적으로 걷는 만보걷기를 위하여 복장도 역시 반팔차림에서 긴팔차림으로 바꿔입고 길을 나섰다. 백운산에서 계곡마다 흘러 내리는 물소리가 소나기와 어우러진 덕택에 아주 시원스럽게 들린다. 바람결도 서늘하고 물소리도 청량하게 맑아서 걷기에 아주 좋은 구월의 산행이다.
사근행궁터 안내 표지판이 보인다. 이곳은 조선 정조가 부친의 묘인 화성 현륭원을 참배할 때 쉬어 가던 유서 깊은 터로 불린다. 1760년 정조의 부친 사도세자가 온양온천에 행차할 때 이곳에서 잠시 쉬어 간 일이 있어서, 그이후 아들 정조가 이곳 노인들에게 쌀을 나누어주며 이 자리에 행궁을 지은 것이다. 정조는 현륭원을 참배할 때마다 이곳에 들려 은혜를 베풀었는데, 특히 1795년 2월 10일과 15일에는 어머니 혜경궁 홍씨와 함께 들러서 551량 4전 9푼에 달하는 수랏상을 사근행궁에서 든 것으로 전해진다.
이렇게 멋진 길이 오매기길이다. 오매기 마을의 산세가 5마리의 말이 각각의 기수를 태우고 달리는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하여 오마동이라고 했다고도 한다. 오매기 마을은 토속적인 시골길의 편안함과 농촌 마을 풍경을 볼 수 있어 과거를 보러 이길로 걷는 선비들에게도 삼남길에서도 으뜸가는 풍경으로 유명하며, 1945년 8ㆍ15 해방 때에 약 70호 정도였다고 한다. 또 다른 설은 그곳에 집(幕)이 다섯 채가 있어서 ‘오막(五幕)>오막이>오매기’가 되었을 것으로 보는설도 있단다. 내가 걷는 이 길가에 만들어 놓은 표지판에도 오매기와 오메기가 같이 쓰이고 있어서 어떤 표현이 정확히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삼남길은 과거시험을 치르러 떠난 선비나 유배를 떠나던 사람들이 항상 이 모락산길을 지나갔다고 한다. 모락산길의 초입이자 규모만으로도 가슴이 탁 트이는 백운호수를 지나면 조선 세종대왕의 넷째아들인 임영대군의 묘역이 눈에 들어온다. 자그마한 사당과 무덤이 임영대군의 묘소이다. 임영대군은 정신이 온전치 못한 첫째 아내와 파혼하고 수많은 기생과 염문을 뿌리다가 왕의 노여움을 받아 대군 자격을 두 번이나 박탈당한 인물이다. 한편으로 무인기질이 강하고 총명해 무기 개발에 큰 공을 세우기도 했다는 그의 묘소를 지나며, 조선시대 왕들의 역사를 생각하며 오매기마을로 이어지는 산길은 걷는다.
비비람에 떨어진 나뭇가지와 산열매들이 걷는 길을 막아서듯 즐비하게 깔려있다. 여기서 떨어진 밤이나 도토리 등을 줍는 할매급 아낙네들의 모습이 종종 보인다. 내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으로는, 이 열매들이 내것과 네것을 떠나 우리 다음 세대에서는 아마도 절대 그런걸 줍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어렵고 힘든 세월을 살면서 배고픔을 견뎌야만 했던 우리들 세대에게는 길가에 떨어진 홍시 한개가 뱃속에 도움이 되든 안되든 무심히 넘어갈 수 없는 일이었으니 그냥 줏어야만 했던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오매기길은 수평적으로 숲길과 마을길을 연결한 산책로이다. 도시와 자연을 잇는 방식으로 걷는 길을 조성해서 숲 속을 산책하며 주변 풍광을 감상할 수 있고 역사‧문화 지역과 주변 맛집도 여유롭게 찾을 수 있는 수도권의 휴식공간이다. 이런 산골짜기에 마을이 형성될때 집 다섯 채가 한꺼번에 만들어질 수도 없었을 것이며, 그렇게 되었다 해도 마을이름을 바로 ‘오막(五幕)>오막이>오매기’로 부르게 되었다는 것은 좀 그렇다. 움막이 아닌 다음에야 주택을 막(幕)이라 하지는 않았을 것이며, 다섯 채 집이 만들어질 때까지 마을이름이 없다가 갑자기 ‘오매기’가 되었다는 것도 좀 그렇다. 오매기길은 1.8km로 너무 짧은 거리라서 연결된 산책로인 왕곡천을 돌아 왕림천을 주르륵 길따라 백운사까지 걸었더니 일만이천보가 됐다.
정상에 하얀 구름이 덮힌 백운산(白雲山)의 모습이 보인다. 경기도 의왕시와 수원시 및 용인시의 경계에 위치하는 높이 567m의 산으로 백운호수 뒤편에 위치하고 있다. 조선시대 정조 임금이 수원의 융릉을 참배한 후 돌아가는 길에 이곳 행궁에 들렀다고 전해진다. 백운산은 산세가 깊고 험한 산으로 알려져 있으며 바라산(428m), 광교산(582m)과 연결되어 있어 능선을 따라 봉우리를 넘는 종주산행이 가능한 산이기도 하다. 백운산 정상에 오르면 북서쪽으로 모락산(385m)과 수리산(475m)이 보이고 안양시, 군포시, 의왕시의 전경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화가들의 단골 사생 현장이라는 오매기마을과 효도의 상징인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참배하러 행차할 때 숙소로 사용한 사근행궁터 그리고 조선왕들의 유적지가 곳곳에 있는 오매길을 걸으며 우리 역사를 생각한다. 여긴 1506년 조선시대 중종반정(中宗反正)에 참여하여 정국공신 3등에 책록된 김우증이 백운산 아래 왕곡동을 중심으로 사방 십리를 사패지로 하사받은 이래 청풍김씨들이 그곳에서 아래로 사나골, 용머리, 목배미, 뒷골, 백운산 등 작은 마을들을 합쳐서 넓게 오매기라 부르기도 했었다고 한다. "오메~ 기(白雲山氣)를 살려주는 아주 좋은 길이네!" 이렇게 아재개그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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