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황성공원(慶州)

영대디강 2020. 9. 26. 05:35

황성 공원(皇城公園)경상북도 경주시 용담로 79-41(황성동)에 위치한 숲으로 조성된 시민공원이다. 경주시에서 열리는 많은 행사들이 이 곳에서 진행된다. 숲 사이로 자동차 3,4 대 정도의 너비의 아스팔트로 포장된 길과 산책로가 있으며, 산책로를 따라 30여 종류의 운동시설도 있다

현재 면적은 약 102 4천㎡, 넓고도 울창한 소나무 숲은 신라시대 때 북쪽이 허하다하여 인공적으로 조성한 독산에서 유래된다.
신라 당시에는 왕들의 사냥터로, 지금은 도서관, 시민운동장, 실내체육관, 씨름장, 국궁장, 게이트볼장, 인라인스케이트를 탈 수 있는 연습장, 산책로 등과 함께 경주 시민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경주는 신라 천년의 고도,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적인 역사 도시, 어느 땅을 파도 신라시대 유물이 출토되는 곳으로 유명하다. 사방이 경주국립공원으로 둘러쌓인 경주시에서 황성공원은 문화유적 답사에 지친 여행자들의 발을 편하게 해주는 쉼터 구실을 한다. 경주시 북쪽에 있는 공원으로 신라시대에는 화랑들의 훈련장으로 쓰였던 곳이다. 공원 안에는 공설운동장, 충혼탑, 높이 16m의 김유신장군 동상, 박목월 시비 등이 있으며,공원 주위는 온통 숲으로 덮혀있다. 2년마다 10월 초순이면 신라문화제가 이곳에서 열린다.

신라 천년의 고도 경주 도심속에 둘려쌓여 푸른 하늘과 노송으로 시민의 심신과 발을 편하게 해주는 쉼터 구실을 한다. 이곳에 아침, 저녁이면 맨발로 산책하는 시민들이 곳곳에 목격된다.

 

소나무 밭에는 맥문동이 드넓게 벌판으로 자리하고 있다.  맥문동이라는 이름은 뿌리의 생김에서 따온 것이다. 뿌리는 한방에서 약재로 사용된다. 그늘진 곳에서도 잘 자라는데 그 때문에 아파트나 빌딩의 그늘진 정원에 많이 심어져 있다. 짧고 굵은 뿌리줄기에서 잎이 모여 나와서 포기를 형성하고, 흔히 뿌리 끝이 커져서 땅콩같이 된다. 줄기는 곧게 서며 높이 2050cm이다. 잎은 짙은 녹색을 띠고 선형(線形)이며 길이 3050cm, 나비 812mm이고 밑부분이 잎집처럼 된다.

맥문동 꽃은 58월에 피고 자줏빛이며 수상꽃차례의 마디에 35개씩 달린다. 꽃이삭은 길이 812cm이며 작은꽃가지에 마디가 있다. 씨방상위이며 열매는 삭과로 둥글고 일찍 과피(果皮)가 벗겨지므로 종자가 노출되며 자흑색(紫黑色)이다. 덩이뿌리는 한방에서 약재로 사용하는데 소염·강장 ·진해·거담제 및 강심제로 이용한다.

삼국시대 신라의 삼국통일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한 장수 김유신.

증조부는 532(법흥왕 19) 신라에 투항한 금관가야의 구해왕이며, 할아버지는 무력(武力), 아버지는 서현(舒玄)이다.

어머니는 만명부인(萬明夫人)이다. 어머니의 증조부는 지증왕, 할아버지는 진흥왕의 아버지인 입종갈문왕(立宗葛文王), 아버지는 숙흘종(肅訖宗)이다. 숙흘종은 만명을 감금하면서까지 서현과의 혼인을 반대한 바 있다.

이는 신라에 투항한 가야 왕족이 당시에 비록 진골 귀족(眞骨貴族)으로 편입되어 있기는 했지만, 왕족 출신과 통혼할 만한 대귀족은 되지 못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신라에서 금관가야 왕족의 후예들은 신라 왕족의 김씨(金氏)와 구별하여 신김씨(新金氏)라 칭하기도 하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는 서현과 만명이 야합(野合)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한편 숙흘종이 만명을 감금한 곳에 갑자기 벼락이 쳐서 만명이 탈출하여 서현과 다시 만나게 되었다는 설화도 전한다. 이러한 설화는 둘의 혼인이 파격적이고 극히 어려운 상황에서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김유신의 출신이 같은 진골 귀족이라 해도 당시 신라를 주도한 대귀족들과는 차이가 있었음도 암시해 준다.

이러한 상황은 그가 누이를 김춘추(金春秋 : 태종무열왕)와 혼인시킬 때의 극적인 과정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김춘추와 사통하여 임신한 누이를 화형(火刑)시키려고 하자, 그 사실을 안 선덕여왕이 나서서 극적으로 혼인을 성사시킨 것이다.

이는 이 무렵까지도 그의 가계가 왕실과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혼인하기 어려운 처지였음을 보여 준다. 그런데 김춘추와 혼인한 누이는 바로 문무왕과 김인문(金仁問) 등을 낳은 문명왕후(文明王后)로서, 이 혼인의 결과는 그 뒤 그의 일족의 세력이 성장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아내 지소부인(智炤夫人)은 태종무열왕의 셋째 딸이었는데, 그와 태종의 이처럼 서로 얽힌 혼인 관계는 당시 신라 사회의 관습에 어긋나는 일은 아니었다. 지소부인과의 사이에는 삼광(三光)·원술(元述)·원정(元貞)·장이(長耳)·원망(元望) 등 다섯 아들과 네 딸을 두었다. 그리고 서자로서 군승(軍勝)이 있었다 한다.

 

신경주역(新慶州驛)은 대한민국 경상북도 경주시 건천읍 화천리에 있는 KTX의 철도역이다. 2010년 11월 1일 경부고속철도 2단계 구간이 완공되면서 영업을 개시하였으며, KTX SRT열차가 정차하게 되었다. 도시 외곽에 있어 기차를 탈 때 신경주역까지 가는 시간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경주 방내리고분군 1호 돌방무덤 | 慶州芳内里古墳群1號石室墳 The Ancient Tombs Site at Bangnae-ri, Gyeongju 삼국시대 (신라. 7세기경)
경주 방내리고분군은 단석산 동쪽 끝자락인 경주시 건천읍 방내리 산 20-2번지 일원의 구릉에 위치한 삼국시대 고분유적이다. 경부고속철도 건설공사를 위해 2005 11 15일부터 2007 10 8일까지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조사하여 삼국시대 돌덧널무덤石槨墓 34 · 돌방무덤石室墳 23, 고려시대 돌덧널무덤石槨墓 1기 등을 확인하였다.

이곳에 이전복원된 1호 돌방무덤은 널방玄室, 널길羨道, 호석護石, 봉토封墳를 잘 갖춘 굴식 돌방무덤橫穴式石室이다. 널방은 남북방향의 긴네모꼴長方形이며, 규모는 길이 180, 너비 120cm, 높이 145㎝이다. 널방의 축조방법은 판돌과 깬돌을 사용하여 7~8단 정도 쌓아 올린 후, 긴 모양의 판돌 3매를 덮개돌蓋石로 사용하였다. 널방 남쪽으로 이어지는 널길은 길이 145cm, 너비 75cm이며, 판돌 3~4매를 덮개돌로 사용하였다. 널방에서 널길 쪽으로 60cm 되는 곳에는 막음돌閉塞石을 두었으며, 바닥에는 배수로排水路를 설치하였다. 봉토는 둥근꼴이며, 규모는 호석이 설치되어 있는 지점을 기준으로 지름 8~9m, 높이 190㎝이다. 유물은 굽다리단지臺附壺 1점과 토제가락바퀴紡鍾車 1점이 널방 바닥에서 출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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