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일월공원(水原)

영대디강 2021. 1. 24. 05:23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구운동과 장안구 천천동에 걸쳐 있는 도시공원이다. 총면적 38만㎡의 부지에 잔디 광장·야외 음악당·생태 공원을 갖춘 대규모 문화 공간을 건설한다는 계획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하였고, 2005 5월에 1단계로 시유지 1 4,500㎡ 위에 공원이 만들어졌다.

농업 용수를 공급할 목적으로 만들었다가 주변이 도시화되면서 주민들의 휴식터로 이용되어 온 일월저수지를 끼고 있는 공원이다. 저수지를 빙 둘러 산책로가 나 있고, 한바퀴를 돌면 1,900미터로 보통 건강한 사람들은 세바퀴 정도는 거뜬하며, 중간에 체력 단련 기구와 벤치 등의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겨울이라서 꽁꽁 얼어버린 얼음위에 한가로이 노니는 오리처럼 생긴 이름모를 새떼들이, 우리 어린시절에 시골마을에서 눈썰매와 팽이치기로 얼음판위에서 동네친구들과 무리지어 놀던 그때 그 시절을 떠오르게 하여 너무나도 정겹다.

 

성균관대학교 캠퍼스앞에서 일월저수지로 흐르는 개울아래에는 잉어떼들이 한가로이 노닐고 있어서, 나무로 만든 다리 위에 서서 잠시 이 모습을 지켜보며, 코로나19에 지친 우리네 힘들고 바쁜 인생들에게 이렇게 여유로운 삶의 모습을 보여 주며 쉼표를 안내해 주는 것 같은 엉뚱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구운동은 본래 들녘에 있는 작은 마을로, 구전에 의하면 머리가 아홉 개 달린 용(九頭龍)이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하여 마을 뒷산을 청룡산이라 하고 마을을 구운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일명 '군들[]'이라고도 한다. 크게 상구운과 하구운으로 나뉘며, 하구운에는 주공주택단지가 들어서 있다.

우리네 조상님들은 모두가 시인이나 소설가 아니었나 그런 생각이 든다. 무슨 소설가처럼 꼬리도 아닌 머리가 아홉개나 달린 용을 상상하고, 이런 잔잔한 물빛을 바라보며 해와달(日月)을 생각하는 아름다운 시를 쓸 수 있었다니 정말 존경스럽다.  

이곳 수원이 특례시가 된다는 현수막이 걸린 여기에 축구장 14배 크기의 수원수목원이 조성된다. 천천동 일월공원 내에 조성되는 수원수목원은 수원시에 처음으로 만들어지는 수목원으로 10 1500㎡ 규모로 조성된다. ‘도심 속 생활 밀착형 수목원이 될 수원수목원은 누구든 편하게 찾아와 쉴 수 있는생활 밀착형 수목원이 조성될 계획이다.

생태정원에는수원시 숲의 생태를 보전하는 숲 정원습지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습지원건조기후 지역의 식물을 전시해 기후변화에 따른 숲의 모습을 보여주는 건조 정원초지(草地)의 예술적 가치를 보여주는 초지원 등이 조성된단다. 웰컴 정원에는한겨울에도 찾을 수 있는 겨울정원예술적으로 조성한 장식 정원식용·약용 식물을 볼 수 있는 맛있는 정원빗물 재활용과 물순환 과정을 볼 수 있는 빗물정원 등이 조성되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삼한시대에 삼한은 크게 마한, 진한, 변한으로 나뉘는데 수원지역은 마한에 속했고, 마한의 54 소국 가운데 경기도 일대에는 모수국(牟水國), 원양국(爰襄國), 상외국(桑外國) 등의 소국이 위치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모수국이 수원 일대의 소국으로 추정되는데 '모수' 이름이 '벌물' 뜻을 갖는 것으로 지금의 '수원(水原)' 뜻인 '물벌' 글자 순서가 바뀌었을 , 뜻이 같기 때문이다. 이후 수원의 이름은 '매홀(買忽)', '수성(水城)', '수주(水州)' 등으로 바뀌었는데 이름에 항상 ''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수원지역을 최초로 차지했던 국가는 백제였다. 백제는 3세기 중엽 고이왕 때에 이르러 급격히 발전하여 4세기 중반 근초고왕 때에는 고대 국가체제를 완성하여 지금의 경기도지역 대부분이 당시 백제의 영토에 포함되었다. 하지만 고구려의 남하정책으로 한강유역과 수원을 포함한 주변지역은 고구려의 영토로 편입되었으며, 이때 수원의 고유 지명은 '매홀'이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권25, 잡지4 지리2 "수성군 본고구려 매홀군 경덕왕 개명 수주(水城郡 本高句麗 買忽郡 景德王 改名 水州)" 기록되어 있다. 수성군은 본래 고구려(삼국시대) 매홀군(買忽郡)이라 불렸는데 통일신라시대 경덕왕 수성군(水城郡)으로 개칭되었다는 것이다. 매홀에서의 '' '', '' '고을' 나타내는 말로 '매홀' '물고을'이라는 발음의 표기로 추정된다.

고려 건국 초인 940(태조 23) 수주(水州) 승격되고, 1271(원종 12) 수원도호부가 설치되면서 '수원(水原)'이라는 명칭은 처음 등장한다. 한자식 지명인 '수성', '수주', 수원' 등의 명칭은 모두 '매홀' '물고을'에서 유래했다고 있다. 이후 수원부-수원군-수원부 등으로 변화를 거듭하다 조선시대에 와서 수원도호부-수원군-수원부-화성유수부-수원군 등으로 바뀌면서 1949 8 15 수원시로 정착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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