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삼남길-경기옛길(義王)

영대디강 2021. 6. 27. 05:02

삼남길은 조선시대 전라도, 충청도, 경기도 지역을 총칭하는 삼남대로로 해남-강진-광주-익산-천안-서울을 잇는 1,000리 길을 말한다. 전라남도 해남의 땅끝에서 시작하여 서울의 구파발까지 도보 여행자들이 안전하게 자연과 문화를 느끼며 걸을 수 있도록 조성된 21세기형 문화 탐방로이다.

삼남길 전체코스는 총 47개 코스로 총 600km가 된다. 전라남도는 14개 코스(1-14코스), 전라북도 8코스(15-22코스), 충청남도 10코스(23-32코스), 경기도 12코스(33-44코스), 그리고 서울 5코스로 구성되어 있다. 이곳은 경기도 12코스 중 제3길 모락산길이다.

모락산길의 시점인 백운호수는 1953년에 준공한 인공 호수이며,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북동쪽의 청계산과 남동쪽의 백운산, 그리고 서쪽의 모락산이 만나는 지점에 약 826,450m²(25만평)의 평지가 있는데 그 중 363,638m²(11만평)이 백운호수이다. 이 호수는 원래 농업용수의 원할한 공급을 목적으로 조성되었으나 그후 주변의 수려한 경관, 맑은공기 그리고 잘 정돈된 대형주차장과 호수순환도로로 인해 의왕 시민은 물론 인근 수도권 시민의 휴양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백운호수에서는 라이브카페, 모터보트, 각종 전문요리를 즐길 수 있으며 백운호수를 따라 개설된 호수순환도로는 데이트코스는 물론 드라이브 코스로도 손색이 없다.

백운산은 전국에 아주 많은 이름으로 자리한 흔한 이름의 산이지만, 광교산과 바라산에 이어지면서 산맥 정상부 북단의 567m 고지를 말하며, 이곳에 지적측량 삼각점이 있다. 남동쪽으로는 광교산 490고지로 알려져 있는 총루봉(비로봉)를 거쳐 형제봉으로 이어지며, 북동쪽으로는 고분재·바라산·학현·국사봉·청계산으로 이어진다.

백운호수를 감싸고 있는 백운산은 바라산(428m)·광교산과 능선으로 연결되어 있어 종주 산행을 즐길 수도 있다. 정상에 오르면 북서쪽으로 모락산과 수리산(475m)이 보이고, 북쪽으로 멀리 관악산이 보이면서 의왕시와 안양시를 관망할 수 있다.  백운호수 1953년 9월에 준공된 인공호수로, 서울아래 첫 방죽으로 규모가 커서 음식점, 숙박 시설을 비롯한 유원지로 조성되어 있다.

백운호수는 원래 청계저수지로 반백년 전 그시절에 낚시터로 자주 찾앗던 곳으로, 안양시 평촌 지역에 농업 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만들었으나, 1990년대 평촌신도시 개발로 저수지 기능을 상실하고 관광시설로 이용하고 있다. 지금은 아파트 단지와 대형 쇼핑몰이 들어서고 있어서 도시화가 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한양과 지방을 연결하는 교통로가 있다. 이 중 경기도를 지나는 주요 6개의 도로망은 제1로인 의주로를 시작으로 시계방향으로 경흥로ㆍ평해로ㆍ영남로ㆍ삼남로ㆍ강화로가 있다. 이러한 원형길을 바탕으로 새롭게 조성한 ‘경기옛길’ 중 2013 5월 삼남길 경기도 전체 구간이 개통되었다. 경기옛길에는 지역의 문화유산과 민담ㆍ설화ㆍ지명유래와 같은 스토리텔링이 곳곳에 녹아있어 길을 걸으며 역사와 문화를 경험할 수 있다.

백운호수는 1990년대 평촌 신도시 개발로 저수지 기능을 상실하고 관광시설로 이용하고 있다. 2019년 호수남쪽에 의왕 백운지식문화밸리 도시개발에 맞추어 삼남길 경기옛길 산들길로 종주길까지 이어지는 생태탐방로 데크, 마리나 등의 시설정비를 했다. 백운호수 한바퀴 약 3Km를 천천히 걸어서 돌아드는데 약 30분정도 소요된다. 

임영대군 이구(臨瀛大君 李璆, 1420년 1월 6윌 ~ 1469년 1월 21일) 조선 시대 초기의 왕족 겸 정치인으로,  제4대 왕 세종대왕과 소헌왕후의 넷째 아들이다. 그는 일찍부터 긍지를 가지고 부모와 형제에게 효우(孝友)를 지키며 청백하게 생활하였다. 성격에 꾸밈이 없고 사특(私慝)함이 없어서 늘 진실하고 대쪽같다고 칭찬을 들었다무예에 능하여 그의 형 수양대군과 함께 경회루에서 승마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부왕 세종대왕의 총애가 깊어 세종은 여러번 그의 집에 거동하였다. 임영대군은 수양대군을 크게 도왔고 수양대군이 세조로 즉위하는데 일조하였다. 세조반정을 지지한 덕에 임영대군은 양녕대군, 효령대군과 함께 왕실의 수장격이 되었고 형제들인 문종, 안평대군, 금성대군 등과 달리 큰 시련을 겪지 않았다. 예종 원년 50세로 사망하였으며 여기에 묻혔다.

경기옛길 삼남길은 '삼남대로'의 옛 노선을 연구 고증하고, 그 원형을 최대한 따르면서 고속도로 등으로 단절된 구간, 도보자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구간 등에 대해 대체로를 개척하여 조성한 역사문화 탐방로이다. 평택에서 시작하여 조성한 역사문화 탐방로다. 평택에서 시작하여 오산, 화성, 수원, 의왕, 안양을 거쳐 과천으로 이어지는 약 100km의 구간이 조성되어 있다.

경기 옛길 3구간인 모락산길은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가던 이들이 걸었던 길이다. 백운호수를 시작점으로 연결된 이 길은 세종의 넷째 아들인 임영대군의 묘역, 정조의 능행차길의 중요한 지점인 사근행궁터, 골사그네 마을에서 지지대비가 있는 지지대고개를 넘으면 수원으로 접어들며 종점이 된다.

오메기 마을을 보면서 제주도의 오메기떡을 떠올렸는데 연관이 없단다. 각기 다른 다섯 성씨가 이곳에모여 막을 지어 오막이었는데 오메기로 변했다는 것, 발음 따라 굳은 의성어로 또 다섯 마리 말이 달리는 형국이라 오마동이 오매기가 되었다는 그런 설도 있다. 모락산 자락을 따라 작은 마을들이 자리하고 있다

경기옛길은 옛길을 찾아 새길을 걷는다, 서울에서 땅 끝까지 장거리 트레일 워킹코스 01구간은 한양으로 가는 관문, 02구간은 옛 도로교통의 중심지, 인덕원을 지나는 길 03구간은 옛 마을의 고즈넉한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길 04구간은 백로와 오리가 노니는 서호천을 따라 걷는길 05구간은 탁 트인 중복들을 가로지으며 걷는 길 06구간은 아버지 사도세자를 향한 정조의 효심이 깃든 길 07구간은 독산성에 올라 주변 풍광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길 08구간은 도심속에 숨은 여유를 찾아가는 길 09 구간은 평택의 옛 중심이었던 진위고을을 지나는 길 10구간은 바른 정치의 이상이 담긴 대동법의 길이다.

백운산(白雲山)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 과 수원시 장안구 상광교동, 의왕시 오전동, 왕곡동에 걸쳐 있는 산으로 높이는 해발 567m이다. 북서쪽의 유수는 백운호수에 모였다가 학의천을 거쳐 안양천으로 흐르며, 서쪽의 유수는 왕곡천을 거쳐 안양천으로, 남쪽의 유수는 광교저수지에 모였다가 수원천·원천천을 거쳐 황구지천으로, 동쪽의 유수는 동막천을 거쳐 탄천으로 유입되고 있다.

의왕시 왕곡동 은행나무는 경기도 의왕시 왕곡동184-1에 있는 수령 540년의 은행나무이다. '경기-의왕-3'으로 지정된 보호수이다. 높이 29.7m, 둘레 6.9m, 수관직경 27.9m이다. 조선시대 비바람으로 인해 큰 나뭇가지가 부러질 때마다 청풍김씨 문중에서 정승이 배출되어 이 가문에서 5정승이 나왔다고 전해진다.

경기도 의왕시 사그내길 11의 사근행국터는 1789 10 6, 양주 배봉산에 있던 사도세자(생부)의 원침(예전에왕세자나 왕세자빈왕의 사친 등의 산소를 이르던 )을 천장(무덤을 다른 곳으로 옮김)하던 상여가 이곳에 이르자, 이 자리에 행궁을 지으니 이름을 사근행궁(肆覲行宮) 또는 사근평행궁, 사근참행궁, 사근참필주소, 사근천행궁이라고 하였고, 주필(駐畢임금이 행차하다가 잠시 어가를 멈추고 머무르거나 묵던 일)행궁이란 현액을 걸어 이곳이 행궁임을 알렸다. (왕이 본궁 밖으로 나아가 머무는 임시장소로서의 궁궐을 행궁이라고 하며, 이궁(離宮) 또는 행재소(行在所), 행궐(行闕)이라고도 했다).

모락산길은 의왕시 모락산 자락을 걷는 길로 의왕과 수원이 경계를 이루는 지지대고개까지 이어지며 한적한 숲길과 고즈넉한 농촌마을을 지나는 정겨운 길이다. 백운호수와 연결된 이 길은 세종의 넷째 아들 임영대군의 묘역을 지나 모락산을 옆으로 하여 남쪽으로 길을 재촉하다보면 김징의 묘역을 지날 수 있다. (김징의 아들들을 시작으로 100년간 6명의 정승을 배출한 명문가인 청풍 김씨 세거지가 바로 이 지역이다). 청풍 김씨 세거지를 지나 의왕 시가지 쪽으로 길을 잡으면 정조 임금 능행차길의 중요한 지점인 사근행궁 터를 지나 골사그내로 갈 수 있다. (사근행궁을 거치지 않고 청풍 김씨 세거지에서 바로 길을 잡아도 통미마을길을 지나 골사그내로 갈 수 있다). 골사그내에서 지지대비가 있는 지지대고개를 넘으면 삼남길은 수원에 이르게 된다. 

1919 3 31일 의왕면 고천리 주민 800여 명이 만세운동을 벌였던 곳 광주군(廣州郡) 의왕면 고천리 만세시위는 1919 3 31일 밤 고천리에서 800여 주민이 만세시위를 펼치면서 시작되었다. 의왕면과 인근 주민은 지지대 고개에서 횃불을 높이 들어 올리고 만세를 높이 부르며 면사무소와 주재소를 둘러싸고 만세를 외쳤다. 일제 경찰은 군대를 불러 시위대를 해산시켰으며 이날 46명의 주민이 체포되어 즉결 태형을 맞았는데 걷지 못할 정도로 매를 맞았다고 한다.

사근행궁은 왕궁과 원침의 중간 지점인 이 자리에 억울하게 죽은 사도세자의 원혼을 달래기 위하여 머나먼 능행을 했던 정조의 큰 뜻을 알 수 있다.(특히 1795년 윤 2 10일과 15일에 어머니 혜경궁 홍씨와 함께 들러 수라를 들었던 곳이기도 하다). 또한 이곳은 1919 3 31, 당시에는 면사무소였던 이 자리를 중심으로 8백여 명의 시위대가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여 면사무소의 주재소를 습격하고, 일부는 지지대고개에 올라 횃불을 높이 들고 독립만세를 외치던 의왕지역 3.1운동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6대 대로 중 한양과 충청, 전라, 경상의 삼남지방이 이어었던 1,000리에 달하는 긴 길을 '삼남대로'라고 불렀다. 조선시대 육로교통의 중심축으로 과거를 보러가던 젊은 선비들이 이 길을 걸었고, 삼남지방의 풍부한 물산도 이 길을 오갔다. 또한 이 길은 정조께서 아버지 사도세자를 참배하기 위해 현릉원으로 행차하던 길이며, 이순신 장군이 전라 좌수영으로 부임하던 길이고, 삼봉 정도전, 다산 정약용이 유배를 떠났던 길이며, 암행어사가 된 이몽룡이 남원으로 한달음에 달려갔던 길이기도 하고, 임진왜란과 한국전쟁의 격전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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